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이전보다 훨씬 깊숙하고, 동시에 훨씬 더 고요한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라제는 그 안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걸음을 그대로 멈췄다. 그 침묵은 자연스럽게 뒤쪽까지 번져 나가 제이와 에릭, 시그, 피터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을 다문 채 조용해졌다.방 안에는 디리안이 서 있었다.그의 모습은 말끔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여전히 눈에 띄게 구겨져 있었고, 험난했던 여정의 흔적이 온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세만큼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꼿꼿하게 서 있었으며, 정면을 향한 그의 시선은 곧게 뻗어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데다 그와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불편함을 느낄 만큼 강한 압박감까지 서려 있어,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 해도 그 시선을 오래 견디기는 어려워 보였다.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에릭은 그 자리에서 몸을 긴장시켰으며, 시그와 피터는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짧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누구도 디리안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은 원래 외부에 닫혀 있고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장소였기 때문이다.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라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침착한 척하려 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졌다.“공작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그 질문은 공중에 그대로 매달렸다. 단순한 놀라움만이 담긴 질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불신과… 약간의 두려움까지 함께 섞여 있었다.디리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으로 라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는 판단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몸을 숨길 여지를 내어주는 것도 아니었다.“놀란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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