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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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강진철의 감정이 점점 더 격해졌다.이때, 의사가 급히 달려와 배윤제를 막아섰다.“일단 나가주셔야겠어요. 환자분이 그쪽을 보고 너무 흥분하신 상태라, 지금 이대로는 위험합니다.”“그럴 리가 없어요! 한 번만 더 확인하게 해주세요.”배윤제가 다시 다가가려 하자 강하율이 그를 확 밀쳐냈다.“그만 좀 해! 우리 아빠 죽는 꼴 보고 싶어?”“아니, 난 그냥...”“아빠는 몸이 편찮으신 거지 바보가 아니야. 누가 자기한테 함부로 대했는지 정도는 다 알고 계신다고.”강하율이 신랄하게 쏘아붙였다.“우리 아빠 자주 찾아와 준 건 맞지만 한 번의 상처가 그동안 쌓은 정을 다 깎아 먹고도 남거든.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가.”배윤제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결국 발길을 돌렸다.강하율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강진철에게 다가가 안심시켰다.강진철은 차츰 진정되었지만, 손에는 여전히 만년필을 꽉 쥐고 있었다.강하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윤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윤호 오빠, 어떻게 아빠한테 만년필을 선물할 생각 했어요?”“아버님이 어떤 만년필을 유독 애지중지하시길래 여기 계시는 동안 뭐라도 적으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했지. 이건 그때 본 거랑 같은 회사 제품이야.”배윤호가 사실대로 대답했다.강하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아빠한테 만년필을 선물하신 건 맞아요. 그런데 집안에 그런 일이 닥치고 나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 모르겠네요, 예전에 짐 정리해둔 상자 어딘가에 들어있을지.”강씨 가문 저택이 압류될 때, 다행히 그녀의 물건 중 일부는 챙겨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옷 몇 가지와 강진철의 서재에 있던 책들을 좀 챙겼다.하지만 그 외의 물건들은 파산 소식이 들리자마자 친척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진작에 쓸어갔다.배윤호가 위로를 건넸다.“집에 가서 한번 찾아봐. 정 안 되면...”이내 손가락으로 그녀가 입은 원피스를 가리켰다.똑같은 걸로 하나 더 만들면 그만이라는 뜻이었다.강하율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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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강하율은 배윤제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배윤호가 뒤를 따르려던 순간, 배윤제가 팔을 들어 가로막았다.“형, 하율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야. 지금은 기억 잃고 다른 여자 만나서 화가 난 것뿐이라고.”자신만만한 배윤제의 태도에도 배윤호는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는 듯, 그의 휴대폰 화면을 차갑게 훑었다.“네 여자친구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그러다간... 또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그야말로 뼈 있는 한마디였다.배윤호는 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강하율이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 했어요?”배윤호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여자친구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강하율의 반응이 더욱 가관이었다.“이따가 어디 가서 밥 먹을까요?”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지난번에 갔던 거기 어때?”“좋아요.”강하율이 미소를 살짝 지었다.한편, 배윤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또 왜?”“윤제 씨, 축하드려요. 이제 아빠 됐네요.”정다인이 웃으며 입을 뗐다.배윤제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한창 넋을 잃은 찰나, 휴대폰 너머로 신예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전 이만 호텔로 들어갈게요.”“응, 가봐. 좀 있으면 윤제 씨가 나 데리러 올 거야.”그러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정다인!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예진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배윤제가 경고했다.“예진이요? 윤제 씨는 여자한테 호감이 생기면 꼭 호칭부터 바꾸더라. 이를테면 ‘하율’에서 ‘강하율’이 되었다가 저도 다시 풀네임을 부르는 것처럼. 워낙 다정다감한 분이라 그렇다 쳐도... 뭐, 어쩌겠어요? 내 아이 아빠인걸.”“말도 안 돼! 우리 매번 조심했잖아.”“흥분하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 건 윤제 씨였어요. 나도 정신없어서 약 챙겨 먹는 걸 깜빡했나 보죠.”정다인이 웃음을 터뜨렸다.배윤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언제나 제 기분이 최우선인 남자.배경을 떠나서 그와의 잠자리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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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정다인은 차분하게 조건을 제시했다.오늘 배윤제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한동안 정적 끝에 배윤제가 입을 열었다.“생각 좀 해볼게.”“사흘 드릴게요. 마침 할머니께서 식사하러 오라고 하셨으니, 그때 기쁜 소식을 발표하면 딱 좋을 것 같네요.”“알았어.”이내 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배윤제는 돌아서자마자 쓰레기통을 걷어찼다.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란 경비원이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장천우가 급히 다가가 상황을 설명한 뒤, 다시 배윤제의 곁으로 돌아왔다.“도련님, 일단 차로 돌아가시죠.”“정다인 뒷조사해봐, 최근에 누구 만났는지. 딱 삼 일 준다. 장천우, 네 주인이 누군지 똑바로 기억해.”배윤제가 장천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장천우는 재빨리 고개를 주억거렸다.“네, 알겠습니다.”“그나저나 신예진은 왜 정다인과 같이 있었던 거지?”배윤제가 물었다.“아까 통화하실 때 호텔 쪽에 따로 확인해 봤는데요. 오늘 정다인 씨가 호텔에 물건 찾으러 갔다가 신예진이랑 부딪혔나 봐요.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신예진이 병원에 데려다줬고, 임신 사실도 그때 밝혀진 모양이에요. 정작 신예진은 아직 모르는 눈치입니다.”배윤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감히 날 협박해? 정다인, 네가 그럴 짬밥은 아닐 텐데.”...레스토랑.강하율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배윤호가 손을 닦으며 물었다.“무슨 생각해?”“윤호 오빠 말대로 사설탐정한테 가짜 정보를 흘리긴 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네요.”강하율은 거짓말한 게 들통났을까 봐 내심 불안했다.“뭐라고 했어?”배윤호는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강하율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이번에 판을 좀 크게 키워보려고요. 아빠가 정신 멀쩡할 때 나한테 뭘 남겨줬다고 했거든요.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때 사건이랑 관련 있는 물건이라고.”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윤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강하율은 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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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강하율은 병상에서 깊게 잠든 아버지를 가슴 졸이며 바라보다가,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머릿속으로는 방금 자신이 흘렸던 정보가 떠올랐다.‘아빠가 정신 멀쩡할 때 나한테 뭘 남겨줬다고 했거든요...’고작 한 마디에 아버지는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이게 다 제 탓이에요.”“네 잘못 아니야. 이 정도로 삼엄한 곳에 금방 손을 뻗칠 줄 누가 알았겠어?”배윤호가 그녀를 다독였다.손을 뻗치다니?강하율은 즉각 무언가를 깨달았다.“그럴 리가 없는데... 아빠한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인이거든요. 그나마 증오가 깊은 건 예전 아빠 비서 가족 정도라, 심지어 지금은 외국에 있단 말이에요. 설마... 그냥 미끼였던 건가요?”배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비서 한 명 따위가 어떻게 네 부모님이 평생 일군 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겠어?”“그럼 사설탐정도 절 속인 거네요. 이 얘기, 그 사람한테만 했거든요.”누군가 어둠 속에서 계속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강하율은 소름이 끼쳤다.“그나마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지. 이번 일로 놈들도 위협을 느꼈을 테니 한동안은 잠잠할 거야. 이제 아버님도 안전해.”강하율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강진철의 손을 꼭 맞잡았다.그러다 곁눈질로 베개 밑에 살짝 삐져나온 모서리를 발견했다.재빨리 꺼내 보니, 뜻밖에도 배윤호가 선물했던 만년필 케이스였다.하지만 상자를 열자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만년필은 어디 갔죠?”강하율은 고개를 숙여 주변을 훑었고, 침대 밑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조차 없었다.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찾지 마. 아마 가져갔을 거야.”“왜죠?”강하율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네가 사설탐정한테 아버지가 남겨둔 게 있다고 했잖아. 놈들은 분명 그걸 노리고 온 거야. 다만 뭔가 오해했나 보군.”배윤호가 빈 상자를 내려놓았다.강하율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즉각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그러니까 우리 아빠 사건에 정말 숨겨진 내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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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난 하율 씨가 해낼 줄 알았어.”“다 총괄님께서 잘 이끌어 주신 덕분이에요.”강하율이 대답했다.“아니야, 순전히 하율 씨 실력이 출중해서 얻은 결과야. 앞으로도 잘해봐. 본인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날이 분명 올 테니까.”평범한 축하 인사 같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머릿속으로 문득 놈들이 필사적으로 찾고 있던 ‘물건’이 떠올랐다.양지원은 어머니 곁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했으니 부모님 사이의 일들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총괄님, 혹시... 예전에 저희 부모님이 유독 소중하게 여기셨던 물건 같은 건 없었나요?”“갑자기 왜?”양지원이 되물었다.“그게... 집을 정리하다 보니까 부모님 유품이 진짜 손에 꼽을 정도네요. 두 분이 너무 보고 싶어서요.”“예전에 살던 그 집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니? 지금은 비어 있는 데다 경매도 계속 유찰돼서 방치된 상태거든. 어쩌면 하율 씨가 놓친 옛 물건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아.”양지원의 조언에 강하율의 눈이 반짝였다.강씨 별장은 압류된 상태였지만 사람이 죽은 집이라는 소문 때문에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고, 부자들은 재수 없다며 꺼리는 탓에 번번이 유찰되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강하율은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서둘러 문을 열러 나갔다.배윤호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강하율은 양지원이 해준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배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내일 가보도록 하지.”시간을 확인해 보니 곧 본가로 가야 해서 지금 당장 움직이기엔 확실히 무리였다.“네, 일단 가요.”두 사람은 함께 배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고 있는 정다인과 마주쳤다.평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지 넉넉한 핏의 캐주얼 차림이었다.정다인은 강하율을 보자마자 즉각 손을 들어 허리를 문질렀다.“아주버님, 하율 씨, 왔어요?”아주버님이라니? 이 여자,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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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가정부가 한창 회포를 푸는 강하율과 조윤서 사이에 끼어들었다.“이모, 어서 갑시다.”강하율이 말했다.조윤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와 함께 1층으로 향했다.주방에서 마침 정다인과 명혜숙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조윤서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강하율을 바라보았다.“하율아, 난 정말 네가 참 좋다. 꼭 우리 며느리로 삼고 싶었어. 나 몰래 윤제랑 만났었지? 둘 다 서로 마음 못 접은 거 내 눈엔 훤히 보여. 윤제도 지금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야.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 난 진작부터 너를 친자식처럼 생각했어.”조윤서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며 강하율이 환하게 웃었다.“이모는 저한테 늘 가장 소중한 가족인걸요. 걱정 마세요, 윤제 오빠한테 서운해할 일은 없을 거예요.”그런 인간 말종에게 화를 내는 자체가 아까웠다.사실 마주치는 것조차 넌더리가 났지만 조윤서를 위해서라면 앞으로 사이좋은 척 연기라도 할 생각이었다.조윤서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주방으로 들어섰다.명혜숙은 강하율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얜 왜 부른 거니?”조윤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님, 하율이는 제가 오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희가 수년 동안 키운 아이인데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서요.”명혜숙은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정다인이 일어나 강하율을 거들고 나섰다.“할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도 강하율 씨랑 구면이고 하니까 그냥 친구가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온 셈 치죠, 뭐.”강하율이 멈칫했다.할머니? 게다가 우리 집이라니?오늘따라 수상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닌 정다인이었다.생각 외로 명혜숙은 순순히 수긍하며 손을 내저었다.“내가 다인이 체면을 봐서 참으마. 다들 앉거라.”강하율은 남의 집에서 굳이 언쟁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오늘 모인 이들은 대부분 배씨 가문 식구들이었고, 그중에는 강하율조차 처음 보는 얼굴이 여럿 섞여 있었다.나중에 정다인이 삼촌이니,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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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그 후로 모든 사람이 정다인에게 매달린 덕분에 강하율은 오히려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밥을 먹고 나서 자리를 뜨려는데, 조윤서가 그녀의 손을 붙잡더니 같이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하율아, 솔직히 말해서 다인이가 임신했다는데도 내 마음은 영 편치가 않구나. 난 여전히 네가 제일 좋은데 말이다. 하지만... 애가 무슨 죄가 있겠니.”“이모, 저랑 윤제 오빠 어차피 이루어질 운명이 아니에요. 하지만 전 앞으로도 이모를 엄마처럼 모시고 효도할 거예요.”강하율이 살갑게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조윤서가 그녀의 손등을 토닥였다.“하율아, 네가 이렇게 곁에 있어 주니 참 좋네. 걱정 마. 내 마음속에선 다인이 걔는 너랑 비교도 안 되니까.”강하율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그저 미소만 지었다.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는 정다인의 귀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정다인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하율을 노려보았다.‘두고 봐!’잠시 후, 조윤서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강하율은 정원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정다인이 나타났다.“정말 대단한 수단이네. 윤제 씨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이젠 사모님 옆에 붙어서 이간질이야? 안타깝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윤제 씨 짝은 나야. 넌... 평생 음지에나 머물 팔자고.”강하율은 반박하려다 멈칫했다. 정다인이 임산부라는 사실, 그것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점이 머릿속을 스쳤다.이런 여자와는 아예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강하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정다인 씨 말이 다 맞으니까, 그 잘난 흥 깨지 않을게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곧이어 자리를 뜨려 했으나 정다인이 덥석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누구 맘대로? 내가 가라고 했어?”강하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아니나 다를까 정다인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누군가 밀치기라도 한 듯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당황한 강하율이 급히 손을 뻗었지만, 그녀보다 한발 빠른 사람이 있었다.바로 배윤제였다.정다인을 부축해 세운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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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정다인의 얼굴을 보자니 혐오감이 치밀었지만, 배윤제는 어쩔 수 없이 놓아주기로 했다.“정말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그게 무슨 말이죠?”정다인이 목을 감싸 쥐며 물었다.“네 뱃속에 있는 애, 아빠가 도대체 누구야?”“당연히 윤제 씨...”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다인은 살기등등한 배윤제의 눈빛을 마주쳤다.“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살려주세요.”배윤제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정다인은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겁에 질린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이미 들통 난 이상 아예 막 나가기로 결심했다.“맞아요. 윤제 씨 아이 아니에요. 근데 지금 세상 사람들이 다 윤제 씨가 아빠인 줄 알잖아요. 내가 바람피웠다고, 딴 남자 애 가졌다고 광고라도 할 거예요? 윤제 씨 자존심에 그 망신을 견딜 수 있겠어요?”“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제대로 협력이나 하죠? 어차피 당신도 마음속에 품은 그 여자 지키려는 심산이잖아요. 나랑 결혼해요. 그러다 나중에 적당한 구실 만들어서 조용히 갈라서요. 지난 몇 년 동안 당신 수발든 값이라고 치죠. 우리 둘 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질색이잖아요? 윤제 씨는 대외적인 평판도 챙기고, 덤으로 배 대표님까지 상대할 수 있을 텐데.”정다인은 당당하게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배윤제가 얼마나 집요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만약 그가 마음속에 품은 여자를 위해 배윤호를 끌어내릴 기회마저 포기하겠다고 나온다면 더 이상 승산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배윤제의 지독한 이기심을 과소평가했다.배윤제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닦았다.“방금 네가 한 말, 토씨 하나라도 어기면 가만 안 둬.”그 말을 듣자 정다인은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좋아요, 그렇게 하죠.”...강하율이 떠나려던 참에 마침 조윤서와 마주쳤다.다만 그녀는 화장실 쪽이 아니라 명혜숙의 방에서 걸어오는 중이었다.“이모가 왜 거기서...?”“아, 어머님이 갑자기 부르셔서 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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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배윤호가 갑자기 다가오자, 무거운 숨결이 느껴졌다.“그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강하율은 금세 꼬리를 내리더니 똑바로 앉고 창밖을 내다보았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며 미묘한 분위기를 깨뜨렸다.강하율은 번호를 확인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총괄님?”그러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다급하게 배윤호를 바라보았다.“양지원 총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대요. 지금 병원에서 응급 수술 중이라는데, 아침에 저랑 통화한 기록이 있어서 경찰이 연락이 왔네요.”“경찰이? 가해 차량 운전자는?”배윤호가 핵심을 찔렀다.“도망쳤대요.”강하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배윤호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일단 병원부터 가자.”이동하는 내내 그는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모이도록 조치했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그들 역시 수술실로 막 들어간 참이었다.강하율을 보자 경찰이 다가왔다.“강하율 씨?”“네, 접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강하율이 다급하게 물었다.“호텔 쪽으로 가던 모양인데, 대형 트럭에 들이받혀 길가로 전복됐어요. 가해 차량 운전자는 겁이 났는지 도망쳤어요. 사고 지점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해당 트럭을 발견했고, 확인 결과 폐차 직전의 노후 차량이었어요.”“폐차요...?”그녀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경찰이 설명을 덧붙였다.“시골에서는 차 상태가 어떻든 굴러가기만 하면 그냥 모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쳤으니 배상하는 것보다 차를 버리고 튀는 게 낫다고 판단했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계속 조사 중이니까.”강하율은 이게 절대 단순한 우연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이때, 배윤호가 끼어들었다.“CCTV에 찍힌 건 없어요?”“보통 그런 노후 차량 모는 사람들은 감시카메라 사각지대를 기가 막히게 피해서 다녀요. 이 트럭도 마찬가지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CCTV에 코빼기도 안 비쳤어요.”“그럼 운전자의 행방도 전혀 모른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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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배윤호는 그런 강하율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오늘 아침에 양 총괄님이랑 통화했는데, 그러고 나서 오후에 바로 사고가 났어요. 설마... 이것도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요?”강하율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책감이 그녀를 덮쳤다.“자책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움직여. 그게 훨씬 생산적이니까.”“저 양 총괄님 집 주소 알아요. 어쩌면... 거기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요.”말을 마친 강하율은 배윤호를 데리고 양지원의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건물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경찰 무리가 보였다.그녀가 걸음을 재촉하며 다가갔다.“무슨 일이죠?”곁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대답했다.“도둑이 들었대요. 이따가 관리사무소 가서 따져야지 원. 관리비를 그렇게나 많이 내는데 도둑놈이 쉽게 드나들어서 되겠냐고요.”강하율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혹시 1201호인가요?”“어머, 아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았대?”아주머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강하율은 사람들을 헤치고 배윤호와 함께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경찰이 양지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듯 보이자, 강하율이 성큼성큼 다가갔다.“실례합니다. 양지원 씨가 지금 입원 중이라 제가 대신 물건을 좀 챙기러 왔어요.”말을 마치고는 신분증을 건네주었다.경찰은 신원을 확인한 뒤 병원 측에 양지원의 상태에 관해 물었고, 현재 의식 불명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야 강하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여기 와보신 적 있어요? 저희도 지금은 뭐가 없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요.”“네. 귀중품은 대부분 금고 안에 있을 거예요.”강하율이 구석의 장식장을 가리켰다.경찰이 다가가 겉에 걸려 있던 그림을 치우자 금고는 이미 통째로 사라진 상태였다.“없어진 물건이 뭔지 알 것 같군요. 실례지만 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강하율은 뜯겨 나간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보통 도둑이라면 조용히 움직이기 마련인데, 소음이 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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