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의 모든 챕터: 챕터 361 - 챕터 370

497 챕터

제361화

그것은 최근에 녹음한 오디오 파일인 듯했는데 그 내용은 일기와 다름없었다.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파일에 담겨있는 건 양지원의 개인적인 심정이었다.그러다 기소정과 김혜은이 호텔에 찾아온 그날, 수상한 점이 드러났다.“김혜은 씨가 오늘 호텔에 왔다. 김혜은 씨를 다시 보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주체가 안 될 뻔했다. 선희 언니가 예전에 얼마나 잘해줬었는데... 사람들이 시골 출신 졸부라고 무시할 때 선희 언니는 김혜은 씨에게 예절 교사도 붙여주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 있게 김혜은 씨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었다. 대표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선희 언니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게 바로 김혜은 씨였는데 김혜은 씨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두 사람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돈까지 챙겨서 도망쳤다.”돈을 챙겨서 도망쳤다는 말에 강하율은 의아해졌다.“무슨 돈을 말하는 걸까요?”배윤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양지원 씨는 과거의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네.”그 이후로 양지원은 더 깊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강하율은 자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녹음 파일이 곧 끝날까 봐 불안해했다.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쾅 소리가 들려왔다.“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대체 뭐 때문이야?”그건 강하율 어머니의 목소리였다.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내가 잘 못 해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래? 왜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야?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굴복할 것 같아? 이 함정이 완벽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네 존재 자체가 허점이니까. 언젠가 사람들은 진실을 알게 될 거야.”탁.그 말이 끝이었다.강하율은 복잡한 심경으로 녹음기를 손에 꽉 쥐었다.“저희 엄마는 분명 증거를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살해당한 거겠죠.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다른 사람 말에 속아서 그 비서의 가족들을 조사했어요. 사실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데 말이에요.”강하율은 그동안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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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강하율은 차 안에서 다시 녹음 파일을 재생했고, 눈치 빠른 양승아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시동을 껐다.비싼 차라서 그런지 방음 기능이 뛰어나 순식간에 차 안에서 미약한 숨소리만 들렸다.귀 기울여 들으니 녹음 파일에서 무엇인가를 닫는 듯한 아주 작은 딸깍 소리가 들렸다.그러나 경선희의 숨소리와 분노 어린 목소리 때문에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배윤호가 말했다.“내가 전문가에게 분석을 맡길게. 잡음을 제거하면 더 잘 들릴 거야.”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어느새 아파트에 도착했지만 강하율은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김혜은의 죽음과 양지원의 사건 때문에 그녀는 자꾸만 두려움이 생겼다.비록 강하율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배윤호는 그 점을 완벽히 꿰뚫어 보았다.배윤호는 강하율의 집 현관문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같이 술 한잔할래?”“괜찮아요.”강하율이 입술을 짓씹었다.“새로 가져온 거야. 한 병에 4천만 원짜리인데.”“4천만 원이요? 그렇게 비싸요? 그러면 맛 좀 볼게요.”강하율은 곧바로 몸을 돌려 배윤호의 집으로 들어갔고, 배윤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강하율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30분 뒤, 강하율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녀가 취기를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배윤호가 담요를 덮어줬다.눈을 뜨고 가까이 다가오는 배윤호를 본 강하율은 손을 뻗어 그를 잡아당기더니 그에게 완전히 몸을 기댔다.“향이 엄청 좋네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글쎄.”“언제였더라...”강하율은 열심히 떠올려보았지만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배윤호에게 몸을 기댄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배윤호는 팔을 뻗어 강하율을 안은 뒤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고개를 숙여 강하율을 바라보았다.“하율아, 다 괜찮을 거야.”강하율은 그 말을 들은 건지 편안한 마음으로 깊이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강하율은 낯선 주변 환경에 의아해하다가 의자에 걸쳐 있는 옷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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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강하율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낯선 번호인 걸 본 강하율은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다.“강하율, 너 어디야? 윤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바에서 잠을 잤어. 계속 네 이름만 부르고 있는데 제발 부탁이니까 여기로 한 번만 와줘.”“배윤제는 곧 결혼할 사람이야. 그런데 나를 부른다고? 나는 배윤제 뒤치다꺼리할 생각은 없으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강하율이 쌀쌀맞게 대꾸했다.“강하율, 너 진짜 배윤제를 신경 안 쓰는 거야?”“응. 끊는다.”강하율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배윤제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들었든 못 들었든 상관없었다.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뒤 강하율과 배윤호는 약속대로 집 밖에서 만나서 함께 강씨 가문 별장으로 향했다....바 안.배윤제는 술을 마시면서 강하율이 한 말을 곱씹다가 코웃음을 쳤다.그는 강하율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강하율은 분명 나를 좋아하는데. 이건 전부 정다인 탓이야.’배윤제는 술잔을 내팽개치더니 바를 떠나 차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다인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배윤제에게 밀쳐져 침대 위에 쓰러졌다.“꺅! 윤제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정다인, 다 너 때문이야! 하율이는 이제 나랑 말조차 안 섞으려고 해.”“하하.”정다인은 차갑게 웃었다.“윤제 씨가 하율 씨 신분이 별로라고 싫어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제 탓을 하는 거죠?”정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배를 쓰다듬었다.정다인이 대외적으로 임신했다고 발표하여 배윤제는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배윤제는 정다인을 힐끗 보더니 그녀를 끌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우리 집 바닥은 주기적으로 왁스 칠해서 관리해. 네가 여기서 실수로 미끄러져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유산하게 된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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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정다인은 계단 입구를 벗어난 후 배윤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윤제 씨가 차마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아가서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강하율 씨가 알게 된다면, 그동안의 정 때문에라도 강하율 씨는 마음이 흔들릴 거예요.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마음도 약해지겠죠.”배윤제는 벽에 기댄 채로 정다인을 유심히 바라봤다.그동안 그가 정다인에게 깜빡 속았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다인의 연기는 그만큼 수준급이었으니 말이다.배윤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한 번만 더 믿어줄게. 만약 이번에도 또 나를 속인다면 너뿐만이 아니라 너희 집안까지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윤제 씨,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감히 또 윤제 씨를 속이겠어요?”“방으로 돌아가.”말을 마친 배윤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떠날 준비를 했다.정다인은 방으로 돌아간 뒤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미친놈. 진짜 미친놈이야.”아래층으로 내려간 배윤제는 이제 막 안으로 들어오던 장천우와 마주쳤다.“무슨 일이야?”장천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양지원 씨가 차에 치여서 혼수상태입니다.”“양지원 씨? 또 호텔과 관련된 일인 건가?”배윤제가 낮게 말했다.“그때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야?”“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설탐정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강 대표님께서 제정신이었을 때 강하율 씨에게 뭔가를 남겼다고 하셨대요. 그 뒤 양지원 씨는 강하율 씨와 통화한 직후 교통사고를 당하셨고요.”장천우가 사실대로 보고했다.배윤제는 창가로 가서 담배를 꺼냈다.강씨 가문이 억울하게 그런 일을 겪었었던 거라면 강하율이 신분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진다.그렇게 되면 강하율의 성격에 절대 배윤제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배윤제는 몸을 돌려 장천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양지원 씨를 철저히 감시해. 그리고 양지원 씨에 관한 것들을 전부 다시 조사하도록 해.”“네.”배윤제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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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강하율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배윤호가 말했다.“정말 뭔가를 숨기려 했다면 절대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뒀을 거야. 너희 집에 왔던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지러 온 거니까 굳이 다른 걸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배윤호의 말에 강하율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예전에 부모님이랑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분명 뭔가를 봤는데... 한 번 아팠던 이후로는 기억이 흐릿해져서 그곳에 어떻게 들어갔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지금 기억나는 건 제가 아래층에서 한 바퀴 달렸고 부모님은 저를 찾는 척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 기회를 틈타 부모님의 뒤로 돌아가 몰래 위층으로 올라갔었고...”강하율은 기억을 더듬으며 위로 올라가다가 중간에 멈춰 섰다.“아니, 여기서 멈춰 섰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멈췄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강하율,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봐. 예전에 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복기한 뒤에 다시 한번 살펴봐.”배윤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강하율을 달랬다.강하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의 옛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여기가 아니에요. 저는 분명 뭔가를 발견했을 거예요.”“그러면 이 위치에서 또 어디가 보이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배윤호가 말했다.강하율은 그의 말대로 다시 시선을 옮기다가 별안간 멈췄다.옆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고 마침 유리창 너머로 정원의 연못이 보였으며 연못 주위에는 석가산이 있었다. ‘석가산... 석가산이라...’강하율은 속으로 되뇌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어요. 저 석가산을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것 같아요...”강하율은 정원으로 천천히 향했고 아까 보았던 연못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연못에는 물이 없어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아름답지도 않아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배윤호는 연못을 한 바퀴 돌았다.“이 석가산이 10년 넘게 변함이 없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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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자동으로 파손될 수도 있다니.강하율이 어머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그렇다면 반드시 리모컨을 찾아야 열 수 있겠네요.”“응.”배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분석했다.“너희 부모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셨으니 분명 너한테 얘기해 주었을 거야. 어쩌면 네가 그 얘기를 들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어.”강하율은 죄책감이 들었다.부모님은 그녀에게 굉장히 잘해주었고 그녀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뭔가 특별한 것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배윤호가 위로했다.“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돼. 이미 많은 것들을 알아냈으니 급할 것 없어.”강하율은 알겠다고 한 뒤 석가산을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그 뭔가가 바로 이곳에 있는 걸까요?”“여기에 두는 게 안전할 테니까. 그쪽에서는 이미 네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쓰기 시작했어. 다음 목표물이 네가 될지도 몰라.”강하율은 순간 헛숨을 들이키며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알겠어요. 그러면 여기는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겠어요.”“가자. 양지원 씨를 보러 가고 싶다면서.”배윤호가 문가를 가리켰다.“네.”두 사람은 차를 타고 떠났다.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양승아가 서류를 건넸다.“대표님, 급한 건이라서요. 여기 서명해 주셔야 합니다.”“알겠어.”배윤호는 서류를 건네받은 뒤 만년필을 하나 꺼내 사인하려고 했다.그런데 마침 그 만년필이 강진철에게 선물했던 것과 똑같은 브랜드의 만년필이었다.그것이 강하율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강하율은 가까이 다가가서 만년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만년필이에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만년필을 선물해 줬었는데 아버지는 늘 그 만년필을 몸에 지니고 다니셨어요. 제가 보고 싶어 하면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면서 앞으로 그 만년필을 저한테 물려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뒤에는...”배윤호는 재촉하지 않고 강하율에게 만년필을 건네주며 그녀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게 했다.“그 뒤에는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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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배윤호는 다시 한번 파일을 들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아마 양지원 씨가 아닐까? 이 파일은 양지원 씨가 너희 어머니랑 의논을 마친 뒤에 수상함을 느끼고 녹음한 걸지도 몰라. 그리고 여기 언급됐던 사람들은 양지원 씨도 다 아는 사람인데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걸 거야. 그렇다면 두 사람이 있던 곳은 호텔일 가능성이 커. 너희 어머니가 본인이 쓰던 사무실과 방 외에 다른 곳에 본인 물건을 둘 리는 없겠지.”그 말이 강하율을 일깨웠다.예전에 강하율은 피곤하면 엄마 사무실로 가서 쉬곤 했는데 그 안에는 서류 외에도 온갖 잡동사니가 있었다.가끔 강하율은 보기 좋아지라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선반 위에 올려뒀었다.예를 들면...딸깍.또 한 번 그 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이 번쩍 든 강하율은 배윤호를 바라봤다.“오르골이에요! 오빠가 선물해 준 오르골 안에 숨겨진 공간이 있어요. 저는 그 사실을 엄마한테 몰래 알려준 적이 있었고 그걸 사무실 선반 위에 놔뒀었어요. 그 사무실은 이후에 윤서 이모가 관리하게 됐는데, 윤서 이모는 익숙한 풍경을 보면 슬프다는 이유로 그 사무실을 잠갔었어요. 오르골은 분명 그 안에 있을 거예요.”강하율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틀림없어!’경선희와 양지원이 그녀에게 호텔에 남아 있으라고 한 걸 보면 호텔에 증거가 있을 것이다.비록 양지원은 그게 뭔지 몰랐지만 경선희의 딸인 강하율은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계속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언젠가 강하율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권력이 생길 테고, 권력이 생기면 권한이 그만큼 커질 테니 말이다.강하율은 당장이라도 호텔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차는 이미 호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강하율은 당황했다.“오빠, 일 보러 가야 하지 않아요?”“걱정하지 마. 일은 다 처리할 거니까. 너 혼자 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그래.”“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말은 그렇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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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강하율은 순간 숨을 쉬는 걸 잊었다. 그녀는 문득 그날 방 안에서 나눴던 키스를 떠올렸다.비록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아무도 그 얘기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강하율은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도착했습니다.”양승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차를 세우자마자 곧바로 말했다.그런데 두 사람이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채고 멋쩍어하면서 말했다.“제가 한 말은 무시하고 그냥 뽀뽀하셔도 돼요.”“...”배윤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하율은 빠르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뒤 스트레칭을 했다.“산속이라서 그런지 공기가 참 좋네요.”사실 강하율은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이내 배윤호도 차에서 내렸고 양승아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그는 휴대폰을 가리키며 말했다.“다들 회의하러 갔고 CCTV도 껐습니다. 얼른 가세요. 저는 회의실에 가서 시간을 끌겠습니다.”“그래.”배윤호는 강하율과 함께 샛길을 걸어 지원팀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지금 보이는 건물은 배윤제가 호텔을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로 리모델링된 건물이었는데, 예전의 그 건물은 리모델링된 건물 바로 뒤에 있었고 사무실의 대부분이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강하율은 몇 번이나 그곳에 가고 싶었으나 매번 배윤제의 사람들에게 가로막혔었다.“배윤제가 너를 막았었다고? 왜?”“우리 어머니 사건이 다시 들춰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그 일로... 제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된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호텔에 영향을 미칠까 봐 저를 막았던 거겠죠.”강하율은 자조했다.“그렇다면 왜 건물을 그냥 놔뒀을까? 그건 배윤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말이야.”배윤호가 핵심을 찔렀다.강하율은 멈칫했다.“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여태 제가 눈치채지 못했던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그렇다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해. 일단 들어가자.”배윤호는 강하율을 데리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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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그건 단순히 물건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강하율이 몸을 돌려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오르골은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하지만 사무실이 너무 어지러워서 우선은 서류들을 다 치워야 찾을 수가 있었는데, 이미 사무실 안은 엉망진창이었고 어쩌면 누군가 오르골을 가져갔을지도 몰랐다.배윤호는 쭈그려 앉은 뒤 바닥에서 서류 한 장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강하율이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배윤호가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여기를 뒤진 사람이 이걸 실수로 두고 간 것 같네.”강하율은 서류를 만지며 말했다.“이상하네요. 이건 재질이 다른 서류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배윤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을 가리켰다.“여기가 마침 창문 아래잖아. 햇빛이 여기까지 비출 수 있어서 다른 서류들이랑은 종이 재질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그러니까 이건 원래 다른 서류랑 똑같은 재질이었다는 거네요. 이 위에...”강하율은 쭉 읽어보더니 조금 신난 얼굴로 말했다.“이건 우리 부모님이 계획했던 그 프로젝트에 관한 서류인 것 같아요. 사인란이 있는 페이지인데 왜 우리 부모님 이름만 있는 걸까요?”“여기 이윤이 잘못 적혔어. 게다가 눈에 띄는 허점도 꽤 많아. 사인 페이지만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앞부분의 내용을 읽은 뒤에 바로 사인을 했다가 전 재산을 날렸을 가능성이 커.”“그건 불가능해요. 이건 우리 부모님의 프로젝트가 아닐 거예요.”강하율이 반박했다.“우리 부모님이 그럴 리가 없어요.”“강하율, 진정해. 우선은 왜 증거가 이곳에 남아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배윤호가 설득했다.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요. 우리 아버지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태도가 매우 건성이었어요. 게다가 증인을 찾아낸 경찰이죠. 만약 상대방이 그 경찰과 협력해서 일을 꾸민 거라면 이런 증거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게 되죠. 일단 우리 부모님은 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에요.”“나도 알아. 그래서 나는 이 서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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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강하율이 기억하는 건 많지 않았다.부모님은 아마 그녀가 걱정할까 봐 일이 터진 뒤에도 그녀에게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누군가 강하율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고 했을 때야 강하율은 비로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당시 경선희는 모든 것이 곧 해결될 거라고 했었고, 강하율은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더라면 절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이때 귓가에서 갑자기 배윤호의 목소리가 들렸다.“우리 아버지는 죽기 직전에야 나한테 자기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얘기해 주셨어. 세상에 자식이 매일 걱정을 안고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거야.”강하율은 고개를 들어 글썽이는 눈으로 배윤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강하율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몸을 돌렸다.그러나 강하율은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팔에 고개를 기댔다. 아주 친밀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애정이 느껴졌다.배윤호는 멈칫하더니 움직이지 않고 강하율이 자신에게 기대게 놔두었다.그는 팔을 뻗어 강하율을 끌어안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잠시 뒤 강하율은 구석에 놓여 있던 상자에 햇빛이 비치는 걸 보았다.“오르골이에요.”공주 인형이 달려 있던 오르골이었다.사실 햇빛이 그곳까지 비추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배윤호는 그제야 그 서류 아래에 있던 유리로 된 오브제를 발견했다. 햇빛이 그 오브제를 비췄는데 빛이 굴절되어 마침 오르골을 비춘 것이었다.강하율은 마치 어머니가 자신을 이끌어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곧이어 그녀는 가득 쌓여있는 서류와 박스들을 지나쳐 뒤쪽에서 오르골을 발견했다.누군가 물건을 찾을 때 오브제들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은 듯했다.그리고 마침 오르골이 박스 뒤쪽에 떨어졌고 오르골에 달려 있던 공주 인형이 구석에 떨어진 듯했다.강하율은 오르골을 들어 그 위에 묻어있던 먼지를 닦아냈다.그녀가 오르골을 열자 인형이 춤추던 회전판과 그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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