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371 - Chapter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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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1화

배윤호가 미소 짓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손을 뻗어 만년필을 들었다가 뚜껑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만년필 뚜껑을 돌릴 때면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바로 리모컨 역할을 하는 장치인 듯했다.강하율이 그것을 꾹 누르자 녹음 파일에서 들었던 소리와 똑같은 딸깍 소리가 났다.“어머니는 이걸 숨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대체 양지원 총괄님과 무슨 얘기를 했길래 양지원 총괄님이 그렇게 경계했던 걸까요?”“양지원 씨는 네 곁에 오래 있었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걸 보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관계였던 것 같아.”배윤호가 덤덤히 말했다.이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대표님, 이제는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강하율도 두 사람이 그곳에 오래 있었다는 걸 알았다.“오빠, 일단 돌아가서 회의해요. 오빠가 먼저 가고 저는 잠시 뒤에 갈게요.”“응.”두 사람은 곧바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뒤 몰래 사무실을 떠났다.강하율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했기에 배윤호와는 다른 길로 가야 했다.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마침 길가에 차 한 대가 서 있었고 그 차 안에는 정다인이 앉아 있었다.정다인은 퇴사 절차를 끝내기 위해 호텔에 온 것이었는데 인사팀에서 회의가 있다며 그녀에게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굳이 갔다가 다시 오는 게 귀찮았던 정다인은 아예 차를 그곳에 세웠다.그런데 그녀가 쉬고 있는 사이에 강하율과 배윤호가 나란히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두 사람 몸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고 정다인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몰래 두 사람을 지켜봤다.강하율은 직원 통로 쪽으로 걸어갔고 배윤호는 먼지를 털어낸 뒤 회의실 쪽으로 걸어갔다.정다인은 배윤제가 강하율 때문에 자신을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리려고 했다는 걸 떠올리고는 씩씩댔다.그녀는 차에서 내린 뒤 강하율을 따라 탈의실로 들어갔다.강하율은 옷을 벗자마자 자신의 옆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정다인?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인사팀 직원한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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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정다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곧바로 팔찌를 풀어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결국 수정된 흔적을 발견하고 말았다.사실 정다인도 처음 팔찌를 받았을 때 배윤제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배윤제는 디자이너가 일부러 그렇게 디자인했다면서 그것 또한 예술의 일종이라고 했기에 정다인은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게다가 강하율과 정다인 두 사람이 모두 착용했던 탓에 수정된 흔적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정다인이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 강하율이 손을 뻗어 팔찌를 빼앗았다.“강하율, 뭐 하는 짓이야? 팔찌를 돌려줘!”“정다인, 이건 처음부터 내 거였어. 그리고 애초에 배윤제가 제작한 것도 아니야. 잘 생각해 봐. 배윤제가 어느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건지 너한테 얘기해 준 적 있어?”“그건...”정다인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대체 누가 만든 건데?”“그건 네가 알 필요 없어. 중요한 건 이건 다른 사람이 내게 선물로 준 거고, 내 거라는 거야.”강하율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물건을 챙기고 탈의실을 떠났다.아무것도 얻지 못한 데다가 오히려 팔찌까지 빼앗기게 된 정다인은 화가 나서 사물함 문을 발로 찼다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했다.그녀는 문득 강하율이 팔찌를 들고 있을 때의 표정을 떠올렸다. 분명 남자가 선물로 준 것일 테다.비록 그 위의 보석들이 아주 귀중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이 수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보석들의 품질과 크기를 보면 굉장히 공들여서 선택한 듯했다.그렇다면 아마 그 팔찌를 선물한 건 배윤호일 것이다.‘둘이 같이 떠났던 이유가 있었어.’강하율은 참 운이 좋았다. 배윤제가 없어도 배윤호가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정다인은 배윤제의 마음조차 붙잡지 못했다.현재 사람들은 모두 정다인을 배윤제의 여자라고 생각했고, 만약 두 사람이 헤어진다면 앞으로 그녀와 만나려고 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강하율, 내가 잘 지내지 못하면 너도 잘 지낼 생각 하지 마. 나한테는 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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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강하율, 너 엄청 급했나 보다? 내가 버린 것들이 그렇게 갖고 싶었어?”“정다인, 빼앗은 물건은 오래 가지 못해. 네 물건을 되찾으러 온 거라면 시간을 줄 테니까 챙겨 가도록 해.”강하율이 너그럽게 자리를 내주었다.강하율의 무심한 태도에 정다인은 오히려 광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화가 났다.그녀는 체면을 지키려고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아무런 쓸모가 없는 오브제들을 정리했다.강하율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마음이 살짝 조급했던 정다인은 짐을 정리하다가 서류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정다인은 곧바로 허리를 숙여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도도하게 박스를 들고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문 앞에 선 정다인이 갑자기 멈춰 서서 몸을 돌려 강하율을 바라봤다.“강하율, 승진 기념으로 선물을 줄게.”“...”강하율은 정다인이 호의로 선물을 주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나 그녀가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사무실 문이 닫힌 뒤 강하율은 의자에 앉아 오르골과 만년필을 꺼내서 자세히 살펴봤고 곧 기분이 가라앉았다.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강하율은 문득 양지원이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손에 넣은 것이 녹음 파일뿐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양지원의 사무실에도 증거가 있을지 몰랐다.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서류를 챙겨 그것을 양지원의 사무실에 가져다 놓으려는 척했다.양지원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강하율은 양지원의 습관을 떠올리며 주변에 놓인 서류들을 둘러봤다.비록 이러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강하율은 부모님을 위해, 양지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강하율 먼저 양지원의 사무실을 뒤진 사람이 있었다.비록 겉으로 봤을 때는 사무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결벽증이 있는 양지원의 성격상 사무실 서랍 안이 엉망진창일 리가 없었다.양지원은 서류 끝부분이 접히면 그 부분을 예쁘게 펴놓은 뒤 서랍 안에 넣는 사람이었다.그렇다면 누군가 그들이 회의하는 사이에 양지원의 사무실을 뒤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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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예전에 강하율이 메시지를 보내면 사설탐정은 한참 뒤에야 답장을 했다.그러나 이번에 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강하율은 그동안 사설탐정이 해외에 있어 신호가 좋지 않아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그녀를 애태운 듯했다.강하율은 자신이 갑자기 그의 문자를 무시한다면 사설탐정의 뒤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의심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미끼를 던졌다.[남수미 씨를 조사해 주세요.]강하율은 그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이 뭔가를 알아냈다고 생각한다면 남수미에게 그 사실을 알릴 거라고 짐작했기에 그렇게 얘기한 것이었다.남수미가 당황해한다면 그녀가 당시 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사설탐정은 남수미를 조사해달라는 문자에 시간이 좀 지나서야 답장을 했다.[왜 갑자기 남수미 씨를 조사하려는 거죠? 제 조사에 따르면 강하율 씨 주변인들 중에 이미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이 있을 텐데요.]문자를 본 강하율은 사설탐정이 자신에게서 양지원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아마도 양지원에게서 정보를 얻지 못해 이렇게 성급히 그녀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모양이었다.그러나 오랫동안 그에게 속아온 의뢰인인 강하율은 일이 그의 뜻대로 흘러가게 할 생각이 없었다.[역시 알고 계셨군요. 하지만 양지원 총괄님은 그저 운이 나빴던 것뿐이에요. 경찰 쪽에서도 그렇게 얘기했고요. 제 일이랑은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장태석 씨는 남수미 씨만 조사해 주면 돼요.]답장이 없었다.강하율은 장태석이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전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비록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말이다.다른 한편, 사설탐정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역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네요. 양지원 씨 일과 자기 일을 전혀 연결 짓지 못하고 있어요. 보아하니 그쪽에도 별다른 증거는 없는 것 같아요.”“그래. 계속 도와주는 척하면서 조사해.”“알겠습니다.”...병원.강하율은 동료들과 함께 양지원의 병실에 들어갔다. 양지원은 수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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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예전이었다면 강하율도 분명 흔들렸을 것이다. 꽤 오랫동안 만난 사람이니 말이다.그러나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그간 쌓아온 정까지 탈탈 털렸다.강하율은 배윤제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서요?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 제가 겪은 모든 일들은 다 대표님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요.”배윤제는 순간 당황했다.“이제 저희 사이에 더 이상 빚은 없으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강하율은 몸을 돌렸다.배윤제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빚이 없다고 누가 그래? 강하율, 나는 널 구해줬어. 그런데 지금 은인인 나한테 이런 식으로 구는 거야?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그리고 너는 이미 우리 집안에 많은 신세를 졌잖아.”강하율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배윤제를 바라봤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요?”배윤제는 차갑게 웃었다.“내가 은인이니까 내 말에 따라야지. 내가 빚을 다 갚았다고 해야 다 갚은 거야. 하율아,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헛짓거리는 하지 않아. 나는 그저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뿐이야.”다른 사람을 멋대로 주무르고 휘두르려는 배윤제의 모습에 강하율은 그제야 자신이 한때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배윤제가 만든 화려한 새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배윤제는 무대 위 남자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무대 밖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작가였다.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을 때는 갑자기 무대 아래 관객이 되어 강하율이 사람들 앞에서 사랑에 눈이 먼 비참한 여자가 된 모습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배윤제가 사랑하는 건 오직 본인뿐이었다.강하율은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용서를 구하지 않은 자신을 구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자기가 은인이라고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 대표님은 그런 거 혐오하셨잖아요. 그리고 그때 떨어뜨리셨던 장갑은 돌려드릴게요.”배윤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이 살짝 부자연스러워졌지만 이내 다시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왔다.“됐어. 장갑일 뿐인데 그냥 가져.”“하.”강하율은 차갑게 웃었다.“대표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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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사진 속에서 양지원은 경선희의 뒤에 서 있었고, 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로 보였다.“양지원 씨. 그리고 할머니.”배윤제가 말했다.“사실 양지원 씨뿐만이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예전부터 호텔에서 오래 일했던 직원들 대부분을 승진시키셨어요. 도련님께서 계속 자르고 싶어 하셨던 그 사람들 말이에요.”장천우는 사진 몇 장을 더 꺼냈다.배윤제는 사진 속 사람들을 보다가 그들이 호텔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주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그중에서 오직 양지원만이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었다.사실 자신의 경력을 믿고 배윤제를 은근히 배척하던 사람들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양지원처럼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을 예의주시해야 했다.“양지원 씨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더 알아낸 게 없어?”“아직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잡지 못했습니다.”장천우가 보고서를 건네며 말했다.배윤제는 보고서를 훑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보고서를 읽은 뒤 자기도 모르게 강하율이 한때 그에게 엄마의 교통사고에 관해 얘기했던 걸 떠올렸다.너무 비슷했다.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그때 그 사건에서 운전자는 즉사했고 이 사건에서는 운전자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양지원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호텔에 남아 있었던 것도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더 알아낸 건 없어?”“조사 결과 당시 양지원 씨도 그때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양지원 씨는 혼자 무사히 빠져나갔죠.”“할머니가 도와준 거 아니야?”“아닙니다.”장천우의 대답에 배윤제는 고민에 빠졌다. 할머니가 아니라면 양지원은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배신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사실 진짜 배신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힘들었다.“그런 일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도련님, 지금 상황을 보면 당시 강씨 가문 사건과 관련되어 밝혀지지 않은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 강하율 씨가 알게 된다면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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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제가 고용한 사설탐정이 지금까지 연기를 해왔던 거라면 죽은 사람의 유가족 쪽 단서도 가짜겠네요. 언제쯤 그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강하율은 조금 풀이 죽었다.이때 배윤호가 서류를 건넸다.“읽어봐.”강하율은 곧 익숙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저희 아버지 비서네요. 그 당시 죽은 사람이기도 하고요.”“이 사람이 죽은 뒤 이 사람 전처의 계좌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 입금되었고, 그 뒤로 그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어.”“전처라고요? 언제 이혼했는데요?”강하율이 서류를 넘겼다.“저희 집안에 문제가 생기기 한 달 전에 이혼했네요. 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 전 이 사람은 제게 아내가 직접 만든 거라면서 저한테 디저트를 준 적이 있어요. 이혼한 부부가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가 있나요?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뒤에 있는 사진들을 봐.”배윤호가 차분히 말했다.강하율은 강진철 비서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른 남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사진을 보니 둘이 아주 친밀한 관계인 듯했다.그리고 그 아이는 강진철 비서의 아들이었다.강하율이 물었다.“아내가 바람을 피운 건가요?”“맞아. 이 여자는 이혼한 후에 돈을 받았고 조용히 지냈어.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람은 죽었고, 이 여자는 곧바로 아들을 데리고 다른 남자랑 함께 해외로 떠났어.”“그런 일이 있었다면 죽은 남자의 가족들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요.”“그 사람들 계좌도 확인해 봤는데 전처가 그들에게 돈을 줬었어. 그래서 아마 전처를 의심하지 않은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들은 전처가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아예 몰랐을 수도 있어. 게다가 당시에 모든 증거가 너희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었지.”배윤호가 분석했다.강하율이 고민하다가 말했다.“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 이 여자는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였어요. 우리 어머니랑 만난 적이 있는데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었고 좀 눈치가 없는 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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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병원.강하율과 배윤호가 도착했을 때 양지원은 이미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의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저는 정말 그런 약을 처방한 적이 없습니다. 대체 누가 그 약을 주사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제때 응급조치를 취해서 정말 다행이에요.”강하율은 의사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범인은 그 의사가 아닐 것이다.이렇게 대놓고 죽인다면 자신의 미래와 병원의 평판까지 망치게 될 테니 말이다.시선을 든 강하율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 두 명이 그들 쪽을 지켜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강하율은 배윤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오빠, 저 두 사람은 오빠 부하직원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여기 있던데요.”강하율은 평소 고객을 자주 상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특징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오후에 동료들과 함께 병문안을 왔을 때도 그 두 사람은 함께 복도에 서 있었다. 당시 한 명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두 사람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걸 보니 수상했다.배윤호가 답했다.“내 사람이야. 그쪽에서 양지원 씨를 죽이고 싶어 하잖아. 양지원 씨가 살아있는 한 그들은 반드시 또 손을 쓸 거야.”강하율은 마음이 따뜻해져서 배윤호를 향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배윤호가 감사 인사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강하율이 말했다.“약을 쓴 걸 보면 의사인 척했을 것 같은데... 혹시 찾았나요?”“아니요.”경호원이 말했다.“이 층에는 중환자들이 많아서 의료진도 많이 몰려요. 게다가 응급 상황도 많아서 이래저래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요.”이래저래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그곳에는 환자 가족들, 주치의, 간호사 등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았다.경호원들이 열심히 조사한다고 해도 마스크를 쓴 의료진들만 보여서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웠다.강하율이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러면 여기도 이제는 안전하지 않은 거네요.”배윤호가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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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배윤호는 당시 강하율이 그런 일을 당할 거라는 걸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녀를 구한 건 우연이었다.그리고 은인인 척한 사람은 틀림없이 배윤제일 것이다.배윤제는 점점 더 황당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배윤호는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음식을 먹은 뒤 배윤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마친 뒤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하율이 입을 열었다.“오빠, 혹시... 차 마시고 갈래요?”배윤호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강하율을 바라봤다.강하율은 쑥스러워하면서 테이블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피곤하면 쉬러 가도 돼요.”배윤호는 싱긋 웃었다.“안 그래도 잠이 안 왔는데 잘됐네.”강하율은 곧바로 자신의 다기 세트를 꺼냈다. 그녀는 조윤서의 곁에 있으면서 다도를 조금 배운 적이 있었다.다만 찻잎은 그냥 그랬다.“오빠, 찻잎은 그냥 평범한 건데 괜찮죠?”“찻잔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차를 잘 아는 건 아니야.”“그래도 오빠는... 차를 좋아하잖아요. 아닌가요?”강하율이 질문했다.“그건 그냥 연기야. 차를 좋아하는 이미지가 술을 좋아하는 이미지보다는 낫잖아.”배윤호의 입에서 이미지라는 말이 나오자 강하율은 당황했다.무자비하고 냉담하다고 알려진 배윤호 같지 않았다.배윤호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턱을 괴고 강하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을 홀렸다.강하율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조용히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호흡이 뒤섞이는 순간, 강하율은 본능적으로 배윤호의 입술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배윤호는 시험하듯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으나 더 이상 행위를 이어가지 않았다. 마치 강하율에게 물러날 시간과 기회를 주듯 말이다.강하율은 물러나지 않고 시선을 들어 배윤호를 마주 보았다.“하율아.”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강하율을 불렀다.배윤호가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고, 매번 그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억누르는 것 같은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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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강하율은 밤새 뒤척였다. 걱정 때문이 아니라 키스 때문에 말이다.결국 날이 밝아올 때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래서 나랑 오빠는 대체 무슨 관계지?”서로 원해서 한 일인데 갑자기 우리가 무슨 사이냐며 따져 묻는 건 이상했다.‘어휴.’강하율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아침에 일어났을 때 강하율은 기운이 없었다. 집을 나와 출근하러 갈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윤호의 집 현관문을 힐끗 바라봤고, 아무런 기척이 없는 걸 확인한 뒤 떠났다.차를 타고 떠난 강하율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혜슬과 마주쳤다.안혜슬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왜 그래? 누가 또 괴롭혔어? 이게 다 양 비서님 탓이야.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안혜슬이 사나운 표정을 해 보이며 손을 들었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양 비서님은 네가 가장 잘나가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도와줬잖아.”강하율이 물었다.“그래. 바로 그것 때문이야.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나랑 다른 사람들의 수준 차이가 얼마나 큰지 체감하게 됐어. 그래서 뒤에 서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글쎄 그 교수님이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겨서 나를 모욕했다니까!”“뭐? 너한테 뭐라고 했는데?”“나한테 질문을 하나 하길래 나는 내가 배운 지식을 이용해서 대답을 했지. 나는 내 대답이 정답이라고 확신해. 그런데 교수님이 글쎄 나한테 융통성이 없다면서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안혜슬이 씩씩대며 말했다.“솔직히 독학해서 교수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면 대단한 거 아니야?”“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수업을 이해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교수님이 이유는 말씀 안 해주셨어?”“그게 문제야. 내 대답이 틀렸다면 나한테 이유라도 알려줘야지. 그 교수님은 그냥 가버렸어. 그리고 나한테 절대 그 대학교에 다니지 못할 거라고 했어.”“그 뒤에는?”“그래서 바로 입학처로 달려가서 물었지.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그 대학교에 다닐 수 없대. 그 교수님 말이 맞았던 거야.”안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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