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Bab 91 - Bab 100

354 Bab

제91화

[오빠, 사모님 생신은 잘 치르셨어요? 제가 사모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 오빠가 대신 전해주셨어요?]예주가 이소정을 위해 준비한 건 브로치였다.급여가 많지 않은 예주에게는 반년치 저축을 몽땅 써야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물론 그 선물은 전해지지 않았다.이소정은 애초에 예주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예주의 선물을 받을 리도 없었다.태겸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너 임신했어?”전화기 너머에서 예주는 잠깐 멈칫하는 기색이었다.[해인 언니가 오빠한테 말했어요?]태겸의 목소리가 단단히 가라앉았다.“너 임신했냐고. 누구 애야. 전화로 똑바로 말해. 내 명예 더럽히지 말고.”잠시 침묵이 흘렀다.예주는 해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눈치챘다.[오빠, 그때 기억 안 나요? 오빠 신혼집에서요. 오빠가 많이 취했고... 우리 그때... 그 뒤로 얼마 안 돼서 임신한 걸 알았어요. 애는 당연히 오빠 애예요.]태겸의 얼굴이 굳어졌다.“그게 언제였는데?”‘말도 안 돼.’‘내가 하예주랑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그 말을 들은 해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역시 그 집에... 하예주는 한 번만 간 게 아니었네.’[최근요. 오빠, 지금 어디예요? 보고 싶어요. 제가 오빠한테 가면 안 돼요?]최근이라면, 한 달 전이었다.태겸과 해인이 가장 심하게 부딪히던 때.해인이 신혼집을 팔자고 소리쳤고 둘은 크게 다퉜다.그날 밤, 태겸은 술집에서 만취했다.바텐더가 예주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 달라고 했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예주는 신혼집에 있었고 태겸에게 죽을 끓여 주고 있었다.태겸은 주먹으로 핸들을 세게 쳤다. 표정은 무거웠고 생각은 복잡했다.‘그럴 리가 없어.’‘기억이 전혀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하예주랑...’[오빠, 운전 중이에요?]경적 소리를 들은 예주가 걱정스레 말했다.[이제 아빠가 될 사람이잖아요.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저랑 아기한테도...]태겸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해인은 뒷좌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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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유호의 말투는 늘 가볍고 흐트러져 있었다.저 말이 친구 사이에서 나왔다면, 가벼운 농담쯤으로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겸과 유호는 서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친구가 아니라 철저한 적이었다. 농담이 될 수가 없었고, 조롱에 가까웠다.태겸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지금은 말다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오늘 하루만해도 일이 너무 많았다. 태겸은 예주를 찾아가야 했다. 전화를 끊은 태겸은 곧바로 핸들을 꺾고 차의 방향을 바꿔서 하늘빌을 빠져나갔다.어둠 속에서 유호는 멀어지는 차량의 후미등 불빛을 바라봤다. 그는 이빨로 꽉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손끝에 붉은 불빛이 번지면서 유호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30분쯤 지난 뒤, 태겸의 차는 예주가 사는 아파트 앞에 멈췄다.새것도 낡은 것도 아닌 애매한 연식의 단지였다. 고급 승용차가 동 출입구 바로 앞에 서자, 주변 주민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였다.이런 차는 평범한 직장인이 몰기 어렵다. 차 안에 누가 타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예주는 급히 현관을 나오면서 뛰어왔다. 숨이 가쁜 모습이었다.조수석 문을 열면서, 예주는는 미안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오빠, 오래 기다리신 건 아니죠?”태겸은 예주를 바라봤다. 시선에는 온기가 없었다.“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예주는 잠시 멈칫했다.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제가 언제 오빠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하세요?”“HJ그룹 건. 너랑 해인이가 경쟁 관계였잖아. 왜 그걸 말 안 했어.”태겸의 말이 이어졌다.예주는 손가락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이 일은 언젠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 말을 고른 뒤, 그녀는 태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고 회장님이 해인 언니를 더 아끼신다는 거, 오빠도 아시잖아요. 해인 언니랑 경쟁해 봐야 저는 가능성이 없어요. 고 회장님은 분명 언니를 선택하실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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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저녁 시간이었다.해인은 일부러 집에서 반찬과 국을 차려 놓았다.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며칠 전 신미주 교수의 집에 갔을 때, 신 교수 옆에서 급히 배운 것들이 전부였다.그래도 음식의 색감은 제법 그럴듯했다. 해인은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몰래 두어 번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적어도 먹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공기 속에 옅은 담배 냄새가 섞여 들었다.해인은 멈칫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 있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유호였다.유호는 언제부터였는지 거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채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 놓은 모습이었다.유호는 해인을 내려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몰래 먹고 있었어?”말이 이상하게 들려서 해인은 태연하게 대꾸했다.“제가 한 건데, 맛보는 게 뭐가 문제예요?”그러면서 허리에 두른 잔꽃무늬 앞치마를 풀고, 음식을 하나씩 옮겼다.“당신 입맛은 모르니까요. 맛이 없어도 탓하지 마세요.”그 말을 듣고 유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해인을 따라가는 시선에 묘한 기색이 섞였다.“나 먹으라고 만든 거야?”“그럼 누가 먹겠어요?”묘하게 날이 서 있던 유호의 기운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손을 씻고 나와, 국이 가득 담긴 그릇을 자연스럽게 들고 왔다.해인은 유호가 이런 잔일을 스스로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앞으로 같이 밥을 먹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유호의 식사는 빠르고 깔끔했다.해인은 남길까 봐 걱정했는데, 어느새 상 위의 음식은 전부 사라져 있었고, 밥알 하나 남지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해인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나... 요리에 재능이 있는 걸까?’식사가 끝난 뒤 해인은 화장실에 다녀왔다.나왔을 때는 유호가 이미 주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정장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고, 셔츠 소매는 팔꿈치 위까지 걷혀 있었다.드러난 팔에는 단단한 근육이 잡혀 있었다. 과하지 않은 선이었지만, 힘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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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대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화기 너머에서 이어지고 있었다.[아니, 근데 말이야. 제수씨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우리 한유호를 이렇게까지 길들여 놨어? 완전 아내 말 잘 듣는 타입이 됐네.]“아내 말을 잘 듣는다고?”유호는 눈을 떴다. 이마 위로 내려온 잔머리 몇 가닥이 눈꺼풀을 찔렀다.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대현은 유호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말투만으로도 분위기를 짐작했다. 웃으면서 대현이 말을 이었다.[칼 들고 총 드는 건 잘하면서 그 손으로 설거지를 하신다? 그 정도면 아내 말 잘 듣는 거 맞지.]유호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대현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가, 문득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설마... 강...]그때, 태겸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해인의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해인이도 여기서 밥을 먹고 있는 건가?’태겸은 주변을 둘러봤다. 저녁 시간대라 가게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잠시 시선을 옮겨 가며 살폈지만, 해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각선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대현이 눈에 들어왔다.그 사이 예주는 막 익힌 고기를 태겸의 접시에 올려주고 있었다.“오빠, 입맛에 안 맞으세요? 왜 안 드세요?”태겸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착각이었을 것이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난 안 먹어도 돼. 너 먹어.”예주도 따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저도 거의 다 먹었어요. 그럼 우리 그냥 집에 가요.”태겸은 직원을 불러 계산을 했다.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예주는 자연스럽게 태겸의 팔을 끼었다. 부드럽게 웃으며 태겸에게 밀착했다.태겸은 잠시 멈칫하며 본능적으로 팔을 빼려거 했다.“쯧, 고태겸. 덩치 큰 남자가 뭐 그렇게 부끄러워해?”두 사람은 마침 대현의 테이블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대현은 고개를 들더니 예주를 보고 비웃듯 웃었다.“어라? 사람이 바뀌었네? 강해인 씨는? 너 버리고 갔냐?”태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현은 더 신이 나서 말을 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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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유호가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반 병쯤 마신 뒤였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유호는 화면을 한 번 훑어본 뒤 전화를 받았다.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유호의 눈이 가늘어졌다.“기다려.”그 말만 남기고, 외투를 집어 든 유호가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해인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다 거실을 보게 됐다.테이블 위에는 절반쯤 비워진 레드와인 병이 놓여 있었다.이 브랜드의 와인은 집 안 와인 캐비닛에서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걸까?’해인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았다. 마침 목도 말랐다.잔에 조금 따라서 한 모금 마셔 봤다.생각보다 달았다. 뒤에 은근한 여운도 남았다.조금 더 마셔 볼까 하던 차에 희미하게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해인이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열 통도 넘게 찍혀 있었다.‘누가 이렇게 연락을 한 거지?’잠금을 풀자 전부 같은 이름이었다. 예주였다.‘하예주가 왜 나한테 전화를 하지?’해인은 반사적으로 차단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그때 마침 예주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해인은 손이 흔들리며,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끊지 말아 주세요!]예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이건 또 뭐야. 동정심이라도 사보겠다는 건가?’해인은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목소리는 차가웠다.“뭐야?”[태겸 오빠가 다른 사람하고 싸움이 났어요. 지금 경찰서예요.]‘고태겸이... 싸움을 했다고?’해인에게 태겸과 싸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학생 시절부터 태겸은 늘 모범생이었고, 몸으로 부딪히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예주는 전화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급하게 설명했다.해인은 담담하게 물었다.“그래서?”예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언니가 와서 태겸 오빠 보석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그러면 오늘 밤은 경찰서에서 보내야 해요.]해인의 속에서 불이 확 올라왔다.“그러니까 네 말은... 태겸이 널 감싸다가 싸움이 나서 경찰서에 있는데, 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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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예주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해인 언니... 지금 오는 중이래요.”태겸은 잠시 멍해졌다.‘해인이... 진짜 오겠다고 했다고?’하루 종일 최악의 연속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느슨해졌다.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면서 상처를 건드렸다.“씨...”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예주는 깜짝 놀라 태겸을 바라봤다.“많이 아파요? 조금 있다가 제가 병원에 같이 갈까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대현이 코웃음을 쳤다.“아이고, 그럼 빨리 네 오빠한테 ‘후’ 하고 불어 주지 그래? 상처 다 낫겠다. 고태겸, 진짜 유난은... 그 정도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잖아.”대현의 얼굴에도 멍이 있긴 했다.하지만 태겸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경미한 수준이었다.지금 대현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 앉아 있었다.조서 쓰러 온 사람이라기보다는 현장 점검 나온 상사에 가까워 보였다.태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심대현, 나랑 무슨 원수라도 졌어? 왜 이렇게 나한테 시비야.”오늘 벌어진 일들을 곱씹어 보자, 대현이 먼저 판을 깔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런데 태겸과 대현 사이에는 딱히 얽힌 것도 없었다.“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난 정의 구현 중이거든.”대현은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귀 쪽으로 가져가면서 뭔가를 불러내는 시늉을 했다.“불법을 행하는 악당을, 부처님 대신 내가 잡아 주는 거지.”태겸은 속으로 혀를 찼다.‘이 인간...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더 말 섞고 싶지 않았다.태겸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대현은 그걸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더 신이 난 표정이었다.“너 지금 자신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지? 미녀를 위해 분노한 기사님 같은 거.”대현의 입은 쉬지 않았다.“근데 말이야, 얼굴은 하나잖아. 좀 아껴 써야지. 네가 먼저 주먹 휘둘렀는데도 이 모양이면, 솔직히 말해서 너 좀 약한 거 아니야?”태겸은 눈을 뜨고 대현을 노려봤다.“진짜 맞고 싶어?”대현은 즉시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경찰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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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양쪽의 감정이 더 격해지기 직전, 경찰 한 명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그 경찰도 이미 눈치를 챘다. 이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의 자제들이라서, 하나같이 다루기 까다로운 인물들이었다.경찰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사람들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래서 바로 유호에게 절차를 밟으라고 재촉했다.유호는 서류에 서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현을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밖으로 나오는 길 내내 대현은 말이 많았다.“와, 오늘 싸움 진짜 시원했어. 제수씨가 알면 분명 잘했다고 할 거야. 제수씨 대신에 한 번 제대로 풀어준 거잖아.”그러다 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생각해 보면 제수씨도 참 안 됐어. 친정 쪽에서 나서 주는 사람도 없고, 그 어머니라는 분도 참... 자기 딸이 그렇게 당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다니.”대현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진짜로 말이 안 통하면, 내가 따로 사람 써서 고태겸 몇 번 더 손을 봐줄까?”유호는 대현의 말을 듣다가 옆으로 시선을 줬다. 말투에는 특별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듯했다.“제수씨라는 호칭, 꽤 자연스럽게 쓰네.”“그럼 당연하지!”대현은 대답하고 나서야, 조금 늦게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어라? 지금 유호 말투가 좀...’가슴이 살짝 철렁했다.‘설마 이런 것도 신경 쓰는 거야?’유호는 더 말하지 않은 채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대현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을 꺼냈다.“근데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신기해. 너 같은 인간이 결혼을 했다는 게.”라이터를 꺼내 든 유호는 불을 붙이지는 않고 손끝으로 천천히 굴렸다. 대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네 성격이라면 평생 혼자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근데 요즘 보면, 밤도 안 깊었는데 집에 가더라? 제수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거야.”유호는 어릴 때부터 ‘집’이라는 개념이 희미한 사람이었다.집은 그저 주소만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차라리 술집 VIP룸 소파에서 자는 걸 택할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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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대현은 그제야 모든 게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유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그때 해인이는 가족들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었어. 아마 내 꼴이 너무 흉해서였겠지.”“해인이 두 오빠가 놀랄까 봐 해인이를 가운데에 두고 감싸더라. 그렇게 이미 멀어지고 있었어.”말을 하다 말고, 유호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천천히 눈을 감았다....아홉 살짜리 소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한쪽 다리를 접은 채, 무릎 사이로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겨울이었다.하지만 어린 유호가 입고 있던 옷은 너무나도 얇았다.차가운 바람이 살을 파고들었고, 몸에 묻은 피는 얼어붙어 있었다.그 앞에 작은 여자아이가 다가왔다.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오빠 아픈데, 왜 병원 안 가?”대답은 없었다.아홉 살의 유호는 눈썹만 살짝 들어 올려 아이를 바라봤다가 다시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그때의 해인은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작고 말간 얼굴은 바람에 금세 붉어질 만큼 여렸다.누가 봐도 집에서 곱게 자란 아이였다.유호는 알고 있었다.자신 같은 아이와 저런 아이는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다는 걸.곧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차가운 시선을 느끼면, 금세 겁을 먹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아이는 다가오더니 유호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작은 머리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어린 해인의 눈에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해인은 차갑게 얼어 있던 유호의 손가락을 살짝 건드렸다.“오빠, 나 작은 의사야. 내가 상처 싸매 줄까?”해인의 손은 말랑하면서도 따뜻했다.말을 하며 등에 멘 토끼 모양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그 안에서 붕대 하나, 면봉 하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제법 그럴듯했다.해인은 진지하게 유호의 상처 위에 뭔가를 발랐다.유호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이 아이는 집에서 병원 놀이를 꽤 많이 해 봤다는 걸.분홍색 연고에서는 강한 향이 났다.지나치게 달고 진했다.나중에서야 유호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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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이 시간의 경찰서에는 폭행 사건으로 끌려온 사람도 있었고, 절도 혐의로 붙잡힌 사람도 있었고, 사소한 다툼으로 고성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그런 곳에 해인이 들어서자, 어둡고 탁한 공간에 이질적인 빛이 스며든 듯했다.해인이 경찰서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자 주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몰렸다.저마다 손에 쥔 일을 멈추고, 무심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고태겸 씨 보석 때문에 왔습니다.”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태겸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해인을 보는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태겸의 시선이 해인에게 고정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다는 기색이 스쳤다.‘이 밤에 저렇게 입고 나왔어? 안 춥나?’서류를 처리하던 경찰은 해인을 보자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이쪽으로 오세요.”해인은 경찰을 따라 절차를 밟으러 갔다.그동안 단 한 번도 태겸이나 예주 쪽을 보지 않았다.태겸의 시선이 계속 해인을 따라가자, 예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오빠, 저희가 해인 언니랑 남편분 데이트를 방해한 거면... 언니 기분이 안 좋지 않을까요?”예주의 말에 태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데이트?’‘해인이... 진짜 약속이 있었던 거야?’‘이 옷도... 다른 남자 보라고 입은 거고?’서류에 서명이 끝나자 경찰 한 명이 태겸 쪽으로 다가왔다.“두 분,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이미 해인은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태겸은 바로 발걸음을 재촉해서 뒤를 따라갔다.예주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가, 어쩔 수 없이 함께 따라 나섰다.경찰서 밖에서 해인은 휴대전화를 꺼내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그때 해인의 어깨 위로 재킷이 떨어졌다.익숙한 향이 희미하게 스쳤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구 옷인지 알 수 있었다.해인은 반사적으로 재킷을 벗어 태겸에게 돌려줬다.밤바람이 거세게 불었다.가느다란 체구의 해인은 바람에 휘청이는 듯 보였다.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더 애처롭게 보였다.태겸의 가슴이 답답해졌다.“안 추워?”해인이 바로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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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방금 경찰서 안에서 사건으로 끌려온 남자들이 해인에게 보내던 시선을 떠올리자 태겸의 속이 거칠어졌다.그 시선들은 필요 이상으로 끈적했고, 조절되지도 않았다.“다음부터는 다른 남자들 만날 때, 그렇게 입고 다니지 마.”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웃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데?”옷은 해인이 일부러 고른 게 아니었다.밤중에 잠깐 나오는 길에 누가 신경 써서 차려 입겠는가?옷장 앞쪽에 걸려 있던 걸 집어 입었을 뿐이었다.입고 나와서야 색이 유난히 눈에 띈다는 걸 알았다.밝은 색이 해인의 피부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그래도 다시 갈아입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태겸 때문에 거울 앞에 서서 옷을 고를 만큼 해인은 여유롭지도 않았다.해인은 태겸의 손을 차갑게 뿌리쳤다.태겸은 더 다투지 않았다.“차 저쪽에 있어. 밤도 늦었고, 혼자 가기엔 좀 그래. 데려다 줄게.”예주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러면서도 옆에서 말을 보탰다.“맞아요, 언니. 금방이에요. 오빠하고 제가 같이 데려다 드릴게요.”‘이런 인간들이... 꼭 둘이 붙어서 사람 속을 긁지.’해인은 냉소를 흘렸다.태겸과 예주를 더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해인의 눈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담겼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또렷하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유호와 대현은 거리가 있어서 그쪽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들리지 않았다.대현이 웃으며 말했다.“야, 나 갑자기 느꼈는데, 고태겸 저거 은근히 집착형 아니냐? 제수씨는 그냥 보석만 해 주고 가는 것 같은데, 둘이 뭐가 있어 보이진 않잖아.”‘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유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차가웠다.“그래?”대현은 말을 이었다.“솔직히 난 오래된 감정이 있으니까 제수씨가 아직 못 놨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근데 지금 보니까, 못 놓은 쪽은 고태겸인 것 같아.”말을 하다 말고, 대현은 멈칫했다.멀리서 보고만 있던 상황이었는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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