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해인아,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 왜 내 아들 태상을 다치게 해!”예철진은 태상의 손가락이 이상하게 꺾인 것을 보았다. 손가락 뼈를 다친 게 분명해 보였다.부모 된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자신의 자식을 망치고 싶겠는가?예철진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태상아, 빨리 의사한테 가서 봐라. 지금 가면 다시 붙일 수 있을지도 몰라!”해인도 자신이 태상의 손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태상이 스스로 예철진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태상을 바라보았다. 태상은 힘없이 웃었다.“해인 씨, 이제 조금 진정이 되셨습니까? 일단 도끼부터 내려놓으세요. 해인 씨가 다치면 안 됩니다. 괜찮겠습니까?”태상은 먼저 해인이 다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리고 멀쩡한 손을 뻗어 해인이 쥐고 있던 도끼를 잡으려고 했다.해인은 그제서야 손을 놓았다.태상은 비로소 안도하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급히 도끼를 아래로 던져 두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인에게 말했다.“이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저를 의사에게 데려다 주실 수 있습니까?”태상의 감정은 너무도 안정되어 있었다. 해인이 태상을 다치게 했는데도, 화를 내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작스럽고 어색한 부탁을 들은 사람처럼.“설마 저 혼자 의사를 찾아가라고 하시는 겁니까?”태상은 창백한 낯으로 웃었다. 눈빛은 맑게 빛났다.“그러면 제가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해인 씨가 미워하는 사람은 제 아버지지, 저는 아니잖습니까. 맞죠?”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이성을 잃고 충동적으로 움직이기 쉽다.태상은 해인이 예철진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해인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두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태상은 반드시 해인이 이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봐야 했다. 그래야 해인이 완전히 진정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무고한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해인은 결국 태상과 함께 예철진의 병실을 나섰다.예
예철진은 차갑게 웃었다.“그동안 나한테서 챙겨 간 것도 적지 않으면서, 이제 일이 터지니까 나를 내쫓겠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내가 아직 살아 있는데 벌써 내 회사를 나눠 가지려고 해? 꿈도 꾸지 마.”예철진이 이토록 조금도 물러서지 않자, 사람들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세상의 관계란 거대한 이익의 사슬과도 같았다. 정말 의리와 정으로 버티는 사람은 드물었다.마른 체격의 키 큰 남자가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태상을 힐끗 보았다.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태상아, 너도 네 아버지 좀 설득해 봐라.”태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예철진이 말을 끊었다.“예씨 집안 회사인데, 내 아들한테 나를 설득해서 너희한테 넘기라고?”“형님,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형님이 살인범으로 확정되면 회사는 어차피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형님이 감옥에 들어가고 나면, 태상이가 형님 대신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맞습니다. 아드님은 명문대 출신에 원래 앞길이 창창한 사람 아닙니까? 살인범 아버지를 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행한데, 나중에 형님 빚까지 갚아야 한다면, 참...”남자는 뒤의 말은 굳이 잇지 않았다.태상은 그동안 해외에서 연구를 해 왔다. 갑자기 귀국한 이유는 예철진이 태상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태상이 제대로 후계자가 되기도 전에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마른 체격의 키 큰 남자가 말했다.“형님, 오늘은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고개를 돌리던 남자는 문밖에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던 해인을 보았다. 곧 다른 사람들에게 눈짓을 보내자, 서로 눈치를 보았다. 해인이 찾아온 이상 좋은 일이 생길 리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해인 씨...”태상이 멈칫하며 해인 쪽으로 걸어갔다.며칠 전 장례식 때, 태상은 조문을 하러 가서 향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경비원이 태상을 막아섰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해인은 잠시 멍해졌다.유호가 며칠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락 한 번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주헌을 따돌리고, 몰래 차희정을 찾아간 거야?’해인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내 남편 바꿔.”[싫은데? 내가 왜? 내가 네 심부름꾼인 줄 알아?]희정의 목소리는 몹시 기세등등했다.[강해인, 유호가 왜 네 양어머니 장례식에 안 갔는지 알아? 네가 엄마 잃고 미쳐 가고 있을 때, 유호는 나랑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 하하...]해인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희정은 해인이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끊을 줄 몰랐다.희정은 한창 우쭐해져 있었다. 전화 너머로 해인이 울부짖고, 고통에 무너져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해인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차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희정은 가슴속에 뭔가 답답하게 걸린 듯했다. 삼킬 수도, 토해 낼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분명 유리한 쪽은 희정 자신인데, 조금도 통쾌하지 않았다.희정은 재미없다는 듯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해인은 전화를 끊은 뒤, 까맣게 꺼진 핸드폰 화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이어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유호가 희정과 함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해인은 분명 화가 났다.하지만 해인은 곧 예전에 유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유호는 해인한테 시간을 좀 주라고 당부했다.이 기간 동안 자신이 희정과 어떻게 보이든, 해인에게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유호가 자신이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전부 솔직하게 해인한테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희정보다 유호를 믿는 쪽을... 해인은 당연히 선택했다.해인은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유호 씨를 만나면, 분명히 납득할 만한 설명을 다 해줄 거야.’...해인은 병원으로 갔다.주여진의 장례가 끝난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예철진은 계속 병을 핑계로 경찰 조사
“시장 비서실 쪽 비서네.”권영자는 명함을 한 번 내려다본 뒤, 다시 해인을 돌아보았다.“해인아, 네가 아는 사람이니? 안으로 들이라고 할까?”해인의 출생에 얽힌 일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씨 가문 사람들은 그 사정을 알지 못했다.해인의 눈빛은 담담했다. 조용한 목소리로 해인이 말했다.“모르는 사람이에요. 저 집에 없다고 전하고, 돌아가시라고 해주세요.”경비실 직원은 내려갔다. 잠시 뒤, 정갈하게 포장된 오미자편 몇 상자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그분께서 떠나시기 전에 맡기고 가셨습니다. 작은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거라며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해인은 겉포장만 보고도 금세 알아차렸다. 어릴 적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전통과자점의 오미자편이었다.우연일 리 없었다. 차장섭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해인의 취향을 알아보게 한 게 분명했다.하지만 해인은 이제 고작 오미자편 몇 상자로 달랠 수 있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권영자는 오미자편 상자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작은 의심을 품었다.해인은 시장 비서와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그런데 상대는 해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과자를 들고 왔다.그 안에는 남들이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한씨 가문과 차씨 가문은 어느 정도 왕래가 있었다. 한씨 가문은 사업을 하는 집안라서, 정부 쪽 인사들과도 자연스럽게 부딪힐 일이 있었다.하지만 두 집안이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오히려 희정이 어릴 때부터 한씨 가문에 자주 드나들었다. 누가 봐도 유호에게 마음이 있는 모습이었다.권영자는 그런 희정을 좋게 보지 않았다. 희정의 집안 배경 때문에 유호가 시장 집안의 힘을 빌려 재계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씨 가문은 그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집안이었다.그래서 희정이 몇 번이나 은근하게 때로는 대놓고 권영자에게 두 사람을 이어 달라는 뜻을 보였지만, 권영자는 끝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권영자는 희정과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어서 희정의 성격도 조금은 알고 있
차를 한참이나 몰던 희정은, 사람 하나 지나갈 것 같지 않은 길가에 멈춰 세웠다.희정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표정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주여진이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강해인이 벌써 차씨 가문으로 돌아와 내 것을 빼앗으려 해? 어림도 없어.’‘차씨 가문의 유일한 딸은 나 차희정이야. 누구도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희정은 한참 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야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눈빛은 더없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일은 성공했어?”수화기 너머에서 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거의 된 것 같아.”“다행이네.”희정은 입꼬리를 휘어 웃었다. 그제야 가슴에 맺힌 답답함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장례가 끝난 뒤, 해인은 심한 감기에 걸렸다.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임신 중이라 함부로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해인은 침대에 누워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해인이 집에서 혼자 지내다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 권영자가 직접 해인을 한씨 가문 본가로 데려와 쉬게 했다.권영자는 자신의 곁을 오래 지킨 가사도우미를 붙여서, 해인 곁에서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고 보살피게 했다. 해인이 먹는 음식도 따로 조리했고, 식사 전에는 가정의가 먼저 확인하게 했다.권영자의 태도는 한씨 가문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였다.해인의 뱃속 아이는 한씨 가문에서 가장 귀하게 지켜야 할 존재였다. 작은 문제도 생기게 둘 수 없었고, 누구도 함부로 손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왕단영과 천하솜은 속으로야 달갑지 않았지만, 유호의 보복이 두려웠다. 얼마 전 두 여자의 아들들이 유호에게 이미 ‘경고’를 받은 터였다.두 사람은 본래 한씨 가문에서 이름도 자리도 없는 처지였다. 뒤에서 불평을 늘어놓을 수는 있어도 겉으로 감히 티를 낼 수는 없었다.권영자는 침대에 누워 병색이 완연한 해인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유호도 참... 귀국했으면 집에 와야지, 이게 무슨 막된 짓이야.”해인은 막 가까운 가족을 잃었다. 정신
차장섭은 말문이 막혔다.해인은 인사를 하고 그대로 돌아서서 나갔다.차장섭은 그런 해인의 모습에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그는 줄곧 희정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해인은 희정보다 더 달래기 어려운 아이였다.지금의 차장섭은 어디를 가든 수많은 시선이 따라붙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 차에 올라 떠났다.차장섭은 며칠 뒤 해인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면, 다시 기회를 찾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우리 아빠는요?”이른 아침 차장섭의 집무실에 찾아온 희정은, 차장섭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겼다.비서가 말했다.“시장님께서는 지인분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셨습니다.”“장례식요? 누가 죽었는데요?”말을 끝낸 희정은 문득 뭔가를 떠올리면서 표정이 확 굳어졌다.주여진의 죽음은 비밀이 아니었다.‘아빠가... 설마 주여진을 조문하러 간 걸까?’차갑게 굳은 얼굴로 시장실을 나선 희정은 곧장 시청 청사 안뜰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탔다.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대형 의전 차량 한 대가 들어와 희정의 차 옆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차장섭이 내렸다.희정의 차는 선명한 붉은색이라 눈에 잘 띄었다. 희정의 생일에 차장섭이 선물해 준 차이기도 했다.그런데 차장섭은 바로 옆에 세워진 희정의 차를 보지 못했다.희정은 차 안에서 차장섭이 곁에 있던 비서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해인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봐. 좋은 걸로 골라서 네가 직접 보내고. 해인이가 받지 않으면... 더 귀찮게 하지 말고, 억지로 권하지도 마.”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희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빠... 방금 정말 강해인을 만나러 갔어!’‘게다가 비서에게 강해인의 취향까지 알아보라고 했어!’‘...’지난 세월 동안 해인은 차장섭 곁에서 살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교류도 쌓인 정도 없었다. 그런데도 차장섭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해인이 있었던 것이다.그 사실을
해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볍게 연애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유호에 대한 인상이, 마음속에서 한결 더 두터워졌다.‘한유호는 노는 것뿐만 아니라... 꽤 무책임한 사람 같네.’권영자의 목소리는 전화기 너머에서도 격앙돼 있었다.울분이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난 몰라! 그 아가씨는 날 구한 은혜가 있는 사람이야. 네가 감히 이혼하겠다고 하면, 오늘 밤에 집에서 목 매달고 죽을 거야! 내일 넌... 본가에 와서 내 시신이나 거둬!]딱! 분노를 참지 못한 권영자는 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끊었다.유호는 이런 반응에 이미 익숙했
유호는 해인과 50cm쯤 떨어져서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은 해인의 도자기처럼 하얀 뺨 위에 머물렀다.“밥 사준다며. 왜 멍하니 서 있어?”전화기 너머의 음성과 현실의 목소리가 겹치며 들렸다.해인은 고개를 들어 유호를 바라봤다.유호의 얼굴은... 열 번이 아니라 만 번을 봐도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는 얼굴이었다.그가 나타난 이후 주변의 소음도 한층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졌다.해인이 물었다.“뭐 드실래요?”유호가 직접 내려온 걸 보자, 데스크의 직원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주헌은 사실대로 말했다.“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그럼 됐어.”유호가 단정하듯 말했다.“너는 미인계에 당한 거야. 그 여자는 여우 같은 여자거든.”주헌이 유호의 비서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했다.그런 주헌마저 판단을 흐릴 정도였다면, 유호는 그 여자에 대한 인상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역시 계산적인 여자였군.’주헌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도련님은 언제 시간이 되시는지요? 가정법원 일정 잡아야 해서요.”결혼은 서류로 끝낼 수 있었지만 이혼은 달랐
“진짜 그 남자랑 사귀는 거야?”해인을 레스토랑 밖으로 데리고 나온 태겸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으로 이끌었다.태겸은 해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해인의 속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않았다.해인이 되물었다.“왜? 너는 하예주 남자친구 자격으로 회식에 참석해도 되고, 나는 안 돼?”“너는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뒤에서는 우리 아버지한테 말 다 해놓고. 해인아, 너 내가 얼마나 좋은지 스스로도 모르는 척하지 마. 네가 그런 짓 하는 거, 결국 내 관심 끌려고 그런 거잖아. 그리고 그 남자는 너랑 아무 상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