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501 - Chapter 510

558 Chapters

제501화

식당을 나온 뒤에도 정수는 차 안에 앉아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생각할수록 죄책감이 밀려왔다.태상을 유호에게 소개한 사람은 정수였다. 지금 유호에게 문제가 생긴 이상, 정수에게도 책임이 컸다.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유호의 머릿속 칩을 꺼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친구로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수술은 너무 복잡했다. 정수는 원래 수술 쪽이 전문이 아니었고, 당연히 직접 집도할 수도 없었다.지금은 태상과 야마모토 교수도 믿을 수 없었다. 정수의 추측이 맞다면, 그 칩은 애초에 두 사람의 연구실에서 나온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정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수술계에서 이름난 선배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수는 앞뒤 사정을 최대한 돌려 말하면서 설명했다. 하지만 상대들은 하나같이 수술을 맡기 어렵다고 했다.예상한 결과였다. 만에 하나 수술 중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했다. 이건 누가 봐도 골치 아픈 일인데, 상대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 기술 자체가 아직 충분히 안정된 것도 아니었다. 후유증이 어떻게 나타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일은 막다른 길에 부딪힌 듯했다. 정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하지만 칩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을 꼽자면, 아마 해인일 것이다.두 사람은 부부 관계가 이혼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정수가 해인을 찾아갔을 때, 해인은 집 안에 앉아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새끼 고양이 세 마리는 모두 건강했다. 조그맣기만 한 녀석들이 이상할 만큼 활발해서, 어미 고양이를 꽤나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해인은 자신의 배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저 새끼 고양이들처럼 해인을 고생시킬까 하는 그런 생각이 스쳤다.승아는 해인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승아는 산후조리원 몇 군데를 추천하며 해인에게 미리 준비해 두라고 했다.다만 출산 전에 먼저 새끼 고양이들을 맡아 줄 사람부터 찾아야 할 듯했다.지금도 해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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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뱃속의 아이마저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해인이 배를 한참이나 쓰다듬으며 달래자, 아이는 그제야 조금씩 조용해졌다.이 시기의 아이는 이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버렸다.유호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다. 며칠 전 여행에서 어렵게 쌓였던 감정도 전부 사라졌다. 해인은 차라리 유호를 처음부터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유호가 자신과 아이에게 이토록 차가울 줄은 몰랐다. 해인은 아이에게 몇 번이고 속으로 말해 주었다.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해 줄게. 아빠 몫까지 전부 채워 줄게.’문이 손가락에 걸려 닫히지 않자 해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비켜 주세요. 더 안 비키시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정수는 해인이 막 유호와 크게 다투고 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정수는 다급하게 말했다.“제수씨, 혹시 알고 계셨어요? 유호 머릿속에 칩이 심어져 있어요. 유호가 한 많은 행동은 유호 의식과 상관없이 나온 걸 수도 있고, 기억도 조각이 난 상태예요.”“이상하다고 느끼신 적 없어요? 유호는 두 분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요.”해인이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추면서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칩이요?”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달 전쯤 유호가 저를 찾아왔어요. 두통이 심하다고 해서, 제가 검사해 보니 후두부 쪽에 금속성 물질이 있었어요. 칩일 가능성이 높았을 거예요.”정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앞뒤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제가 아는 선배를 소개해서 수술을 맡겼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겼고, 칩은 제거되지 못했어요.”해인이 바로 물었다.“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정수가 말했다.“복잡해요. 그 선배가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칩 자체가 그 선배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요.” “이 일은 제 책임도 큰데... 제가 유호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소개한 셈이니까요.”들을수록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해인은 정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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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예약된 환자들이 남아 있어서, 정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병원으로 돌아갔다.여성 환자 두 명을 진료하고 났을 때, 세 번째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남자였다. 상대는 정수 맞은편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정수 선생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진료를 보러 왔다면 어디가 불편한지부터 말해야 했다. 그런데 남자는 증상 대신 인사부터 건넸다. 어딘가 뜻밖이었다.아무래도 병을 보러 온 환자 같지는 않았다. 정수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남자를 바라보았다.“어디가 불편하십니까?”“먼저 인사부터 드리죠.”남자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정수는 명함을 받아 훑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 컴퓨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예약자 이름은 천서정이었다. 그런데 명함에 적힌 이름은 서진이었다.정수는 명함을 다시 밀어 놓았다.“천서정 씨입니까, 천서진 씨입니까?”“그게 중요합니까? 천서정 씨는 우리 집 가사도우미 이름입니다.”“진료를 보러 오신 게 아니군요.”“네.”“그럼 무슨 일입니까?”“정 선생님께 이직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천하병원으로 오시죠. 정 선생님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군의관으로도 근무하셨다죠. 저희는 인재를 아낍니다. 특히 정 선생님처럼 정의감이 있는 분을 좋아합니다.”‘천하병원?’그 이름을 듣자 정수는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얼마 전 뉴스에 올랐던 병원이 바로 그곳이었다.의사 한 명이 매수되어 환자 상태를 조작했고,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든 일로 경찰에 체포됐다고 했다.당시 의료계에서도 꽤 큰 파장이 일었다.‘잠깐... 유호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던 병원도 천하병원 아니었나?’정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분명한 경계가 서렸다.정수가 가볍게 웃었다.“제가 운영하는 이 개인 병원도 괜찮습니다. 저는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천서진 씨는 더 훌륭한 분을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서진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그렇다면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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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쾅!굉음이 터졌다.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도로를 긁고 지나가며 불꽃이 튀었고,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해인은 어미 고양이에게 산후 보양이 될 만한 닭가슴살을 조금 삶아 주었다.어미 고양이는 맛있게 먹었다. 해인은 방으로 들어와 경영관리 관련 책을 읽으려 했다.하지만 책을 손에 들고도 계속 첫 페이지에만 머물러 있었다.해인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정수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오후 내내 그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입으로는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해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해인도 오래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유호가 갑자기 자신에게 차가워진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정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일이 설명이 되었다.적어도 정수의 말 중 하나는 맞았다. 해인도 연구를 해 본 사람이었다. 지금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기술이라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구란 본래 조심스럽고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수많은 임상 시험을 통과한 뒤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법이었다.해인은 생각 끝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막 노트북을 들려던 때, 초인종이 거칠게 울렸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전 일을 겪은 뒤라 이번에는 훨씬 조심스러웠다. 먼저 도어뷰어로 바깥을 확인했다.문밖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이 서 있었다. 해인은 의아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경찰관이 물었다.“혹시 정수 씨를 아십니까?”해인이 미간을 찌푸렸다.“오늘 오후에 한 번 만났어요. 무슨 일인가요?”“정수 씨가 한 시간 전 교차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그런데 자료상으로는 가족이 없는 분이라, 정수 씨의 동선을 확인하던 중 사고 전 이곳에 들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두 분이 아는 사이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해인이 사는 곳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였다. 낯선 사람이 드나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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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해인은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손을 배 위에 올렸다.‘정 선생님처럼 건장한 남자도 피하지 못했는데...’‘하물며 배가 이렇게 부른 임산부인 나는...’경찰이 화물차 운전자의 문제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건, 이 모든 일이 애초부터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뜻일지도 몰랐다.상대는 어떤 증거도, 약점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해인은 임신 중이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해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까지 함께 위험해진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다를 게 없었다.해인은 임신 7개월인 몸으로는 어떤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해인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유호였다.그러나 해인의 눈빛은 곧 어두워졌다.유호는 애초에 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까지 내뱉었다.정말 유호의 머릿속에 칩이 있다면, 그 칩이 남아 있는 한 유호는 절대 해인과 같은 편이 될 수 없었다.해인은 그 위험을 걸 수 없었다.승아에게 전화해 곁에 있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해인은 친구까지 휘말리게 될까 봐 걱정됐다.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해인은 무거운 배를 받치며 다가갔다.“선생님, 정수 씨 상태는 어떤가요?”“수술은 끝났습니다. 다만 환자분 부상이 심합니다.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언제 깨어날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해인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상대가 그렇게까지 손을 썼다면, 정수가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일지 몰랐다.해인이 말했다.“꼭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세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정수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오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지금은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미동도 없고, 생기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해인의 마음은 복잡했다.하지만 해인이 당장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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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내 뒤에 있는 저 사람이... 미쳐 날뛰기라도 하면...’‘괜히 무고한 사람들까지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해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갔다. 그러다 앞쪽에 쌓인 잡동사니 더미 사이에서 대나무 막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해인은 망설이지 않고 허리를 숙여 막대를 집어 들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였다.하지만 해인의 행동은 상대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배가 불러 움직임이 둔한 여자였다. 막대를 들고 있다 해도, 상대의 눈에는 여전히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약자일 뿐이었다.남자는 해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해인은 손에 쥔 막대를 휘두르며 차갑게 경고했다.“다가오지 마. 이거 사람 안 가려. 맞고 어디 부러져도 당신 책임이야.”상대가 조용히 웃었다.“해 봐.”그러더니 아주 뻔뻔하게 목을 해인 쪽으로 쑥 내밀기까지 했다.해인은 호신술을 조금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겁게 부른 배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적이었다.“누가 보냈어? 얼마 받았는데? 내가 두 배 줄게.”위협이 통하지 않자, 해인은 조건을 걸었다.“허... 말이 많네. 이 바닥에도 규칙이 있어. 의뢰인 팔아넘기는 짓은 안 해.”“당신은 아이 없어? 나를 해치고 나면, 밤에 잠들 때 양심이 괴롭지 않겠어?”“아가씨, 왜 이렇게 순진해? 이런 일 하는 사람한테 양심 같은 게 남아 있을 것 같아?”말이 끝나자 남자는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곧장 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해인은 막대를 붙잡고 마구 휘둘렀다. 어떻게든 남자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하지만 남자도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곧바로 막대 끝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해인의 손에서 빼앗았다.막대를 놓친 해인은 오히려 몸이 딸려가며 휘청거리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남자가 말했다.“힘 빼. 배도 불렀는데 내가 너무 험하게 하긴 좀 그렇잖아. 자, 두 대만 맞자. 기절하면 죽을 때도 덜 아플 거야.”해인의 표정이 굳어졌다.상대가 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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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우진은 상대에게 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평소 말수는 적었지만, 손속만큼은 무서울 만큼 빨랐다.그동안 익혀 온 킥복싱 기술이 남자의 몸 위로 거침없이 꽂혔다.남자는 자신이 우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곧바로 발을 빼더니 골목 밖으로 달아나려 했다. 조금 전 해인을 몰아붙일 때 보였던 그 오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우진이 본능적으로 뒤쫓으려고 했지만 해인이 우진을 막았다.“됐어, 우진아. 쫓아가지 마.”그 남자는 보기만 해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괜히 다치면 손해였다.남자가 혼자 찾아온 건, 임신한 해인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인 곁에 갑자기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만약 남자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거나, 근처에 공범이 숨어 있다면 해인과 우진도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일이었다.해인은 우진이 남자를 더 몰아붙였다가 보복을 당할까 봐 걱정됐다.우진은 해인의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곧장 다가왔다.“팀장님, 괜찮으세요?”해인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그런데 이제 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그럼 뭐라고 부를까요?”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이름으로 불러.”우진이 말했다.“그럼 제가 전에 불렀던 걸로 할게요. 해인 누나.”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우진은 해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해인은 거절하지 않았다.솔직히 그녀는 무서웠다. 지금은 괜히 강한 척할 상황이 아니었다.다만 아파트에 도착했는데도 우진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진은 해인을 바라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이고 있었다.해인이 먼저 물었다.“왜 그래? 할 말 있으면 해.”우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누나 혼자 여기 지내시는 거 위험해요. 제가... 지켜 드리고 싶어서요.”해인은 현관문을 열고 우진에게 들어와 앉으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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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지금 우진은 같은 학교 친구 몇 명과 함께 IT 스타트업을 차렸다. 반년이 지난 지금, 우진의 회사는 첫 게임을 출시한 상태였다.공교롭게도 그 게임은 해인이 얼마 전 다운로드했던 게임이었다. 그날 해인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앱스토어의 신작 차트를 보았다. 그림체가 꽤 괜찮아 보이는 미니 게임이 눈에 들어와 내려 받았다.잠깐 해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다만 그 뒤로 B국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해인은 그 게임을 한쪽에 미뤄 두고 있었다.해인은 우진이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불과 반년 만에 회사를 이만큼 궤도에 올려놓았을 줄은 몰랐다.해인은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 우진이 해인을 구해 준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우진은 바로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서로 어느 정도 챙겨 주는 일은 가능할 것 같았다.해인이 말했다.“우진아, 누구든 반드시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야. 나도 예전에 말했지. 내가 너를 도운 건 은혜를 갚으라고 한 일이 아니야.”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야.”“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네가 손을 내밀어 주면 나는 고맙게 받을 거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네 안전이 먼저라는 거, 알지?”우진은 당연히 알아들었다.해인은 우진에게 거듭 당부했다. 정말 위험한 일이 생기면, 우진이 먼저 자신부터 지켜야 한다고.떠나기 전, 우진은 해인에게 작은 물건 하나를 건넸다.“이거 몸에 지니고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버튼만 누르시면 됩니다. 제가 집에 있으면 바로 들을 수 있어요.”해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이거 봐라. 아주 준비까지 해 왔네.’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작은 팔찌였다. 특별할 것 없어 보였지만, 가운데 작은 진주 하나가 박혀 있었다. 비상 버튼은 바로 그 진주였다.해인이 물었다.“네가 직접 만든 거야?”“제가 그런 재주는 없죠. 아는 작업실 선배한테 부탁해서 만든 겁니다.”해인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혹시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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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해인의 시선이 얼마 전 배달원이 두고 간 고양이 사료에 머물렀다.해인은 태상과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태상을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나와 정 선생님을 해치려고 사람을 보낸 사람이 예태상인가?’하지만 해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예태상이 한 짓이라면, 예태상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대체 뭐지?’‘복수?’‘그렇다 해도 우리 엄마를 죽게 만든 사람은 예태상의 아버지였잖아!’ ‘예태상에게 나를 원망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프라이빗 클럽.희정이 룸의 문을 밀고 들어왔다.“갑자기 왜 불렀어?”희정의 시선이 서진에게 닿았다. 표정에는 참을성 없는 기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서진은 희정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일에 이미 익숙했다.서진도 잘 알고 있었다. 희정이 자신과 얽히는 건, 결국 부탁할 일이 있을 때뿐이라는 걸.하지만 서진은 희정을 사랑했다. 그러니 더 많이 내주어야 했고, 희정의 모든 면까지 품어야 했다.서진은 희정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칩 일이 들켰어. 그래도 걱정 마. 내가 처리해 뒀으니까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거야.”칩 이야기가 나오자 희정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누가 알아냈는데?”“정수. 의사야. 한유호 친구고.”희정의 표정이 변했다.“그럼 유호도 알아?”“아마도. 그래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희정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결국 우리까지 들키는 거 아니야?”희정은 유호를 잘 알았다.유호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움직임이 없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쩌면 크게 한 방 먹이려고 조용히 준비 중일 수도 있었다.“그렇지만도 않아.”서진은 희정보다 훨씬 침착했다.“쉽게 파고들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정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지금 의식이 없어. 한유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희정이 물었다.“그게 네가 말한 ‘처리했다’는 거야? 교통사고를 꾸민 게 전부야?”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희정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눈에는 사람 목숨을 대수롭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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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희정아...”서진은 조심스럽게 희정의 손을 잡았다.“지금이라도 멈춘다면 아직 늦지 않아. 모든 책임을 야마모토 팀에게 돌릴 수 있어. 예태상도 있잖아. 알아서 굴러들어 온 희생양이나 다름없어.”서진은 원래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야마모토 팀과 연락할 때도 자기 핸드폰을 쓰지 않았고, 음성 변조기까지 사용했다. 돈을 보낼 때도 자기와 연결된 계좌는 절대 거치지 않았다.언젠가 일이 터질 때를 대비해, 처음부터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둔 것이다.서진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태상뿐이었다.하지만 예씨 집안은 이미 무너졌고, 태상은 더 이상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요즘 태상이 채권자들에게 시달린다는 소문도 들었다. 돈이 절실한 사람에게 적당히 돈을 주면, 얼마든지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는 걸 서진은 잘 알고 있었다.서진의 어두운 눈동자 안에는 희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나한테 약속했잖아. 우리 결혼하기로. 희정아, 그 말 아직 유효한 거야?”“우리 해외로 나가서 살자. 네 커리어도 거기서 더 크게 펼칠 수 있어.” “너 상 받고 싶어 했잖아. 아카데미상,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꿈꾸는 상이야. 내가 네가 원하는 상 다 받게 해 줄게. 그러면 안 될까?”희정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다.처음 서진과 결혼하겠다고 말한 건, 어디까지나 서진을 달래기 위한 핑계였다.희정과 서진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지만, 희정은 단 한 번도 서진에게 마음이 움직인 적이 없었다. 서진을 보면 친오빠를 보는 것 같았다. 서진을 안아도 가슴은 전혀 뛰지 않았다. 잠자리를 함께해도 아무 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늘 어딘가 부족했다.정말 서진과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희정은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희정은 늘 자신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기 인생을 서진에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희정은 서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냈다.“왜 그렇게 조급해해? 내가 말했잖아. 유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다음에 너랑 같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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