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721 - Chapter 730

745 Chapters

제721화

건훈은 손안에서 USB 메모리를 굴렸다. 조금 전 관리사무소에서 빼 온 CCTV 영상이었다.어제 저녁, 옷매무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건훈의 집에서 나온 희정은 바로 옆 신혼집으로 돌아가다가 차장섭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부녀가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CCTV 화면만 봐도 차장섭이 크게 화가 난 건 분명했다.두 사람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고, 대략 30분쯤 지나 서진이 돌아왔다.그로부터 십여 분 뒤에 구급차가 다급하게 도착했다.이 영상만 손에 있으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경찰은 차장섭의 사망 원인에만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정작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건훈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건훈은 영상을 따로 복사한 뒤 관리사무소에 남아 있던 원본을 지워 버렸다.영상을 끝까지 본 희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관리사무소 CCTV가 이렇게까지 선명할 줄은 몰랐다.희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 건훈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희정이 물었다.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데?”[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널 신고할 생각이었으면 벌써 했지. 내가 왜 굳이 전화까지 했겠어?]건훈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을 전부 서진 형한테 뒤집어씌울 생각 없어? 남은 인생은 나랑 살고.]역시 건훈은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었다.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제안을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서진은 건훈의 친형이나 다름없는 사촌형이었다.희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어쩌면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서진이 희정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한 뒤, 희정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서진은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지금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 주는 사람은 서진뿐이었다.희정은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난 절대 서진이한테 그런 짓 안 해.”말을 끝낸 희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건훈
Read more

제722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래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호가 회사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유호는 해인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여보, 괜찮아?”해인은 멍하니 서 있었다.유호가 부르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듯했다.테라스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해인에게 다가간 유호는 외투를 조심스럽게 어깨에 걸쳐 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해인이 물었다. “당신 언제 왔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네.”유호도 이미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해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유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면 참지 말고 울어도 돼.”해인은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유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정말 잠깐만...”슬픔이 밀려왔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이상할 만큼 차갑게 가라앉았다.‘차 시장님은 심장병으로 죽은 걸까?’ 이용재의 말대로라면 심장에 문제가 있기는 했어도, 꾸준히 약을 먹었고 상태도 잘 조절되고 있었다. 갑자기 발작할 이유가 없었다.문제가 생긴 장소는 희정의 집이었다.‘차희정...’해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오후에 해인은 차장섭에게 희정과 서진의 손에 이미 여러 사람의 피가 묻어 있다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차장섭은 곧장 희정을 찾아갔다.그런데 그 만남 끝에 목숨까지 잃었다.해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차희정의 짓인가...?”친아버지를 해친다는 건 해인에게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정도까지 갈 수 있나 싶었다.하지만 자연사가 아니라면, 당시 현장에 있던 희정과 서진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해인이 고개를 돌려 유호를 바라봤다. “당신이 차희정이랑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잖아. 당신이 기억하는 차희정은 어떤 사람이야?”유호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무슨 소꿉친구야. 예전에 집안끼리 조금 왕래가 있었을 뿐이야.” “내가 없어졌을 때 우리 어머니가 희정이를 자주 집에 불러서
Read more

제723화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간병인이 놀라 깨면서 눈을 떴다. “사모님, 괜찮으세요?”병실 밖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해인도 안쪽에서 난 소리를 들었다.도수희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정신이 반쯤 빠져나간 사람처럼 넋이 나가 보였다.문을 열고 들어온 해인을 본 도수희가 놀라 말했다. “해인아, 이 시간에 왜 왔어? 방금 꿈을 꿨는데 네 아빠가 꿈에 나왔어. 꼭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먼 데 간다면서, 나보고 몸 잘 챙기라고 하더라...”도수희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겠지? 이상하다. 내가 왜 그런 꿈을 꿨지...”도수희는 핸드폰을 찾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안 되겠다. 네 아빠한테 전화해야겠어. 요즘 몸조심하라고 말해 줘야지. 괜히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해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도수희 앞에 다가갔다. “이 시간엔 이미 주무실 거예요. 지금 전화하면 괜히 깨우기만 해요.”도수희는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도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럼 아침에 전화해야겠네.”그러다 해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넌 왜 갑자기 병원에 온 거야?”벽시계는 새벽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라면 해인은 집에서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해인이 차분하게 둘러댔다. “밤에 잠이 안 와서 수면제 처방이라도 받을까 하고 왔어요. 온 김에 엄마도 보고 가려고요.”도수희는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봤으니까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지만 해인은 병실로 들어오더니 소파에 몸을 눕혔다. “너무 늦었어요. 왔다 갔다 하기도 귀찮으니까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잘래요.”도수희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딸이 자신의 곁에서 자겠다고 하니 기쁜 마음이 더 컸다.“소파에서 자면 불편하지 않겠어? 밤에 춥지는 않을까? 이불을 하나 더 달라고 할까? 아니면 간병인한테 간이침대라도 구해 달라고...”도수희가 귀
Read more

제724화

간병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수희의 결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희정은 도수희에게 너무 차갑게 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결혼식까지 찾아가서 직접 면사포를 씌워 주려고 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수많은 하객 앞에서 도수희를 내쫓았다.도수희가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희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산을 일부 남겨 줘도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여길 사람이었다....다음 날 아침, 해인이 아직 잠든 사이 도수희가 먼저 눈을 떴다.이상하게도 눈을 뜬 뒤 몇 번이나 차장섭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아침부터 급한 공무라도 생긴 건가?’‘하지만 무슨 일이기에 아침 6시부터 연락 한 번 할 틈도 없을까?’도수희는 좀 불안해졌다.30분쯤 지난 뒤 해인이 눈을 떴다.간호사가 들어와 도수희에게 수액을 연결했다. 해인이 깨어난 걸 본 도수희가 물었다. “어젯밤에 내가 코 골아서 시끄럽지 않았어?”잠을 푹 잔 해인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네 아빠 어디 갔는지 알아? 왜 전화를 안 받지? 설마 내 핸드폰이 잘못된 건가?”도수희는 핸드폰을 해인에게 내밀며 봐 달라고 했다.해인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차장섭과 도수희의 금실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겨우 반나절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찾을 줄은 몰랐다.“핸드폰은 괜찮아요. 전화를 못 받으신 건 아마 일이 있어서 바쁜가 봐요.”해인은 일단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도수희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어젯밤 일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차장섭은 매일 업무를 마치면 병원에 들렀고, 일이 한가한 날에는 중간중간 전화도 했다.저녁이면 남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도수희는 조급해하지 않았다.그래서 간병인에게 TV를 켜 달라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대부분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제대로 보지 않더라도 소리라도 들려야 덜 적적했다.해인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일부러 말했다. “TV가
Read more

제725화

해인은 이렇게 한가하게 하루를 병원에서 보낼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도수희의 마음에 의심이 피어났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해인이 보인 행동을 되짚어 보니, 마치 일부러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뭔가 떠올린 도수희의 눈빛이 가라앉으면서 갑자기 해인의 손을 잡았다.“의사가 너한테 무슨 말 했어?”해인이 눈을 깜빡였다. “네?”도수희는 두 손을 펼치고 뒤쪽 베개에 몸을 기댄 채 체념한 듯 말했다. “의사가 나 며칠 못 산다고 했지? 이제 곧 죽는다고?”그게 아니고서야 해인이 갑자기 밤낮으로 자신의 곁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도수희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직 살고 싶은 마음이 남은 사람처럼 억울한 기색까지 비쳤다. “혹시 나 마지막 가는 길 지켜 주려고 온 거야?”해인은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도수희는 이미 생사를 어느 정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없었다.해인은 잠시 침묵한 뒤 도수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의사 선생님이 요즘 상태가 꽤 괜찮다고 했어요. 며칠 안에 엄마한테 맞는 신장이 나올 수도 있대요.”“몸 잘 관리하고 신장 이식을 받은 다음에, 거부 반응만 잘 넘기면 차츰 좋아질 수 있대요.”도수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의사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몇 년이나 신장 이식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이 목숨이 먼저 다할 것 같을 정도였다.도수희는 자신보다 순번이 앞이었던 환자들이 결국 장기를 기다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그래서 이제는 거의 희망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회가 찾아왔다.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수희를 달래려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어젯밤 담당 의사에게 도수희의 상태를 물었을 때 직접 들은 말이었다.신장 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도수희의
Read more

제726화

저녁이 되자 서진은 희정을 차에 태우고 공항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떠나는 모습을 눈에 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려는데, 공항 직원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희정은 본능적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설마 부검 결과가 벌써 나온 건가?’서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공항 직원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죠? 항공권에 이상이라도 있습니까?”“항공권 문제는 아닙니다. 라스베이거스행 항공편이 상부 지시에 따라 임시 결항됐습니다.”희정이 바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갑자기 왜 결항이에요? 다음 비행기는요? 아니면 지금 가장 빨리 출국할 수 있는 항공편은요? 어느 나라든 상관없어요.”‘일단 이 나라만 벗어나면 돼.’직원은 희정의 과한 반응이 이상했는지 몇 번이나 힐끗 쳐다봤다.서진도 희정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서진은 희정의 손등을 가볍게 눌러 진정시킨 뒤 직원의 의심을 피하려는 듯이 말했다. “됐어. 오늘은 그냥 가지 말자.”서진은 희정의 손을 잡고 탑승구에서 멀어졌다.사람이 없는 곳까지 가자, 희정은 서진의 손을 뿌리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갑자기 안 가겠다는 거야? 오늘 못 나가면 다음에는 정말 못 나갈 수도 있다는 거 몰라?”벌써 하루가 꼬박 지났다. 희정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에게 불리해질 뿐이었다.차장섭의 사건은 시에서도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수사는 일반 사건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이미 부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몰랐다.경찰서에 불려 가 조사나 심문을 받게 되면 두 사람은 완전히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다.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흥분한 희정과 달리 서진은 훨씬 냉정했다.공학을 전공한 서진은 무슨 일이든 논리적으로 따져 보는 습관이 있었다.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가 하필 이때 갑자기 결항된 걸 절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미 누군가
Read more

제727화

전화를 받은 해인은 병원 아래층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고르고 있었다.해인은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이 특별히 부탁한 일이었다. 유호의 능력을 생각하면 살아 있는 두 사람을 놓칠 리가 없었다.“어떻게 빠져나갔어?”유호라면 희정이 출국하지 못하게 막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유호 역시 이 일을 떠올리면 어이가 없었다.서진과 희정이 공항에서 한 번 막힌 뒤에는 출국할 길을 전부 차단했다고 생각했다.어느 항공사를 뒤져도 두 사람이 새로 항공권을 예매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유호도 잠시 경계를 늦췄다.그런데 국내 호텔을 아무리 뒤져도 두 사람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유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유호가 사실대로 말했다. [밀항이야. 배를 타고 R국으로 넘어간 것 같아.]해인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비정상적인 경로로 국경을 넘었다면 미리 막아 내기 어려웠다.하수구 속 쥐처럼 어둠 속에 숨어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애초에 생각하는 방식부터 달랐다.해인이 말했다. “밀항한 거라면 여권에 정상적인 입국 기록이 없을 거야. R국 안에서는 움직일 수 있어도 다른 나라로 넘어가긴 어려울 거야.”다른 곳으로 가려다가는 출입국 심사에서 걸려 본국으로 돌려보내질 가능성이 컸다.유호가 낮게 대답했다. [다행히 R국은 그렇게 큰 곳이 아니야. 둘 찾는 데 아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조금만 시간 줘. 내가 직접 끌어낼게.]유호가 말을 돌렸다. [참, 내일 저녁에 만찬이 하나 있는데 파트너가 필요해.]유호가 부드럽게 물었다. [여보, 저녁에 한 번만 나한테 시간 좀 내줄 수 있어?]해인은 과일을 다 고르고 입원동으로 걸어갔다.“무슨 만찬인데?”[말하자면 그 둘이 빠져나간 일하고도 조금 관련이 있을 것 같아.][야마모토 교수가 돌아왔어. 내 쪽 사람들이 알아본 바로는 여기서는 ‘이선보’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겉으로는 자선사업가로 알려져 있대.]태상은 예전에 야마모토 교
Read more

제728화

B시에 있는 최고급 특급 호텔.해인은 유호의 팔짱을 끼고 자선 경매 행사장에 들어섰다.산간 지역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작품 한 점이 무려 억대에 가까운 가격에 낙찰됐다.해인은 유호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이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런 그림이 이렇게 비싸게 팔려? 사람들이 정말 기부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건가?”유명 화가 작품도 비슷한 가격일 것 같았다.유호는 해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이선보가 돌아온 뒤 처음 여는 경매야. 자기 영향력을 보여 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 물론 가격이 부풀려진 것도 있겠지.”유호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고.”“이런 경매 중에는 뒤에서 돈세탁에 이용되는 경우도 많아.”해인은 그제야 이해했다. ‘그래서 돈이 그렇게 많았구나.’이선보가 해외에 대규모 실험실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대형 장비를 갖추는 데도 막대한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유호가 실험실을 통째로 불태웠는데도 이선보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쉽게 들어온 돈이니 잃어도 크게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새로운 경매품이 올라오자 유호가 바로 번호표를 들었다.해인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사람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려고?”유호가 설명했다. “작품에 가장 많은 돈을 쓴 상위 세 명은 이선보가 따로 저녁 식사에 초대한대.”경매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예상대로 저녁 초대 명단에 들어갔다.직원이 다가와 해인과 유호를 호텔 안 고급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상석에 앉아 있던 사람을 본 해인은 소문으로만 듣던 야마모토 교수가 바로 이선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이선보는 인상이 부드럽고 사람 좋아 보였다. 키는 크지 않았고 체격도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하지만 그런 평범한 겉모습 뒤에 악의가 숨어 있었다. 유호의 머리에 몰래 칩을 심어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던 사람이었다.해인은 이선보의 얼굴을 볼수록 묘하게 낯이 익었다.‘대체 어디서 봤
Read more

제729화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데도, 이선보는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 웃을 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여기는 법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을 죽이면 처벌받습니다.”유호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쪽 같은 흉악범을 처리하는 건 죄도 아니야.”그때 유호의 핸드폰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울렸다.유호는 받지 않았다. 상대가 연결되지 않자 이번에는 해인의 핸드폰이 울렸다.아이 돌보미의 전화라는 걸 확인한 해인은 급히 받았다.전화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사모님, 큰일 났어요. 기사님이랑 이안을 예방접종하러 데리고 가는데 차 타이어가 갑자기 터졌어요.] [방금 교통경찰이 확인했는데,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저격총으로 타이어를 맞힌 거래요.]‘저격총?’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태상의 죽음이 머릿속을 스쳤다.태상도 자신의 실험실 앞에서 저격을 당해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해인은 곧바로 이선보를 바라봤다.통화 소리가 또렷해 유호도 전부 들었다.유호는 이선보를 노려봤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면서 턱 근육이 단단하게 굳었다. “내 아들을 건드렸어?”이 모든 일은 이선보가 미리 예상한 듯했다. 두 사람이 이런 전화를 받은 것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선보는 손가락으로 유호의 총신을 가볍게 건드려 옆으로 밀었다.“한 대표님, 젊은 사람은 너무 성급하면 안 됩니다. 위험한 물건은 조금 멀리 두는 게 좋겠군요. 잘못 발사돼 죄 없는 어린아이라도 다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명백한 협박이었다. 아이를 인질처럼 들먹이는 데 숨길 생각조차 없는 협박이었다.유호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이선보에게는 뛰어난 저격수가 함께하고 있었다.오늘 유호가 이선보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면, 그 저격수가 아이에게 보복할 가능성이 컸다.지금도 어딘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랐다.유호에게 자신이 다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이 다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선
Read more

제730화

해인이 본가로 돌아왔을 때, 이안은 이미 아기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아이 돌보미는 오후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차가 멀쩡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타이어 두 개가 한꺼번에 터졌어요. 다행히 아기가 카시트에 잘 묶여 있었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해인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고 있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일찍 쉬세요.”아이돌보미가 나가자 해인은 굳은 표정으로 유호를 바라봤다.“빠르게 달리는 차 타이어를 맞힐 정도면 총을 너무 잘 쏘는 거 아니야?”타이어를 정확히 맞힐 수 있다면 아이를 겨누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해인은 몸을 숙여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큰 사고를 간신히 피한 뒤에야 느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유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아들이 위험해졌어.”이선보가 이렇게 치밀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을 붙여 아이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의 방심이었다.해인은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유호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탓이 아니야. 잘못한 건 그 사람들이야.”해인이 조용히 덧붙였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꼭 지켜야 해.”그러다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야마모토 교수 옆에 있는 저격수는 누굴까? 실력이 너무 좋은데...”달리는 차 타이어까지 정확히 맞혔다. 그 사람은 야마모토 교수가 가진 강력한 카드이자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다.유호가 대답했다. “천하솜.”해인의 눈이 커졌다.유호가 차갑게 말했다. “전에 아버지한테 총까지 겨눴잖아. 보통 실력은 아닐 거야.”천하솜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도 완벽하게 숨기고 있었다.그런 저격수가 한 씨 집안 안에서 거의 10년이나 숨어 지냈다니.유호는 일부러 요란하게 옷장을 뒤져 가죽 벨트 하나를 꺼냈다. “감히 내 아들을 놀라게 했으니 나도 천하솜 아들한테 받아 내야지.”해인이 어이없다는 듯
Read more
PREV
1
...
707172737475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