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711 - Chapter 720

745 Chapters

제711화

하지만 죄를 피하려면 놀란 사람처럼 연기해야 했다. 희정은 서진의 품에 기댄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울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아빠는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조금 뒤 차장섭의 비서도 현장에 도착했다.차장섭이 흰 천에 덮인 채 희정의 집에서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보자 비서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비서 이용재가 다급하게 달려갔다.“시장님!”희정이 울먹이며 설명했다.“이 비서님, 아빠가 실수로 넘어지면서 찻잔을 쓰러뜨렸어요. 깨진 유리 조각에 뒤통수를 다쳐서...”말을 잇던 희정은 끝내 문장을 마치지 못했다.희정은 입을 틀어막고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이용재는 눈썹을 찌푸렸다. 밖으로 나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잠시 뒤 다시 들어왔다.“시청에서 전담 조사팀을 구성해 사망 경위를 확인할 예정입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 시장님의 시신은 시청 측에서 관리하겠습니다.”당분간 화장은 진행하지 않고 희정에게도 시신을 임의로 처리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었다.희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아빠를 해쳤다고 의심하는 건가요? 친아버지를 죽여서 제게 무슨 이익이 있다고요?”“저도 아빠가 돌아가셔서 너무 괴로운데, 제가 용의자 취급까지 받을 줄은 몰랐네요.”이용재는 희정을 유심히 바라봤다. 시신을 시청에서 잠시 관리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반응이 지나치게 컸다.이용재가 차분히 설명했다.“차희정 씨, 이런 돌연사는 전담팀을 꾸려 조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구나 차 시장님은 현직 시장이십니다.”“이유도 모른 채 돌아가신 것으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시민들에게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합니다.”그때 서진이 희정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여기서 더 연기를 하면 오히려 과해 보일 수도 있었다.서진이 적당한 때에 말을 보탰다.“희정아, 네가 장인어른의 유일한 딸인데 이 비서님이 너를 의심할 리 없잖아. 정해진 절차를 밟는 것뿐이야.” “너도 장인어른이 단지 넘어졌을 뿐인데 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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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서진도 잠에서 깼다.희정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자, 서진은 어깨를 감싸면서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악몽 꿨어? 무서워하지 마. 내가 곁에 있잖아. 꿈은 전부 가짜니까 믿지 마.”희정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서진의 품으로 파고든 희정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안 돼. 언젠가는 전부 밝혀질 거야. 내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해외로 떠나자. 응?”법의학은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밝혀내는 분야였다. 원인을 확인하는 건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부검이 끝나고 법의학 감정서가 나오면 사건 당시 현장에 혼자 있던 희정은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생각할수록 두려웠다. 해외로 나가서 수사망을 벗어나면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도, 여러 국가가 얽힌 사건이라 수사가 훨씬 까다로워질 터였다.숨어 지내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면 쉽게 찾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사람을 찾지 못하면 처벌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희정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었다.서진은 입술을 다문 채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그런데 여권이 둘 다 신혼집에 있어. 해외로 가려면 먼저 집에 들어가서 여권을 가져와야 해. 내가 먼저 가서 필요한 물건을 챙길게. 내일 바로 출발하자.”희정은 서진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무서워. 나 혼자 두지 마. 같이 가서 찾자.”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두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희정은 차장섭이 다시 꿈에 나타날까 봐 겁이 났다.꿈이 지나치게 생생해서 희정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꿈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서진은 잠시 망설이다 지금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알았어. 차로 같이 가자. 도착하면 너는 차 안에서 기다려.”희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밤길에는 차량이 거의 없어 두 사람은 금세 신혼집에 도착했다.집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수사관들이 현장을 수색하며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서진은 차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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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모처럼 서진의 약점을 잡은 건훈은 일부러 불쾌한 말을 던져 괴롭히고 싶었다.현직 시장인 차장섭이 서진의 집에서 석연치 않게 숨진 사건이 크게 번지면, 천씨 집안 전체가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서진은 사촌동생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오래전부터 질투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건훈을 슬쩍 한 번 바라봤을 뿐 말없이 멀리 세워 둔 차로 걸어갔다.서진이 그대로 떠나자 건훈은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채찍으로 사람을 때릴 때 비명을 크게 질러야 더 흥분되는 것처럼, 건훈은 상대가 괴로워하는 반응을 보고 싶었다.더구나 조금 전에는 형수인 희정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건훈은 서진이 듣지 못할까 봐 상체를 창밖으로 깊숙이 내밀었다.“형, 형수는 어디 있어? 오늘 첫날밤은 보냈어? 형수랑 자니까 좋았어?”그 말을 들은 서진은 걸음을 멈췄다.부부의 잠자리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떠드는 행동은 서진이 보기에 몹시 저급했다.서진은 건훈을 매섭게 노려봤다.“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할 일이 그렇게 없어?”건훈은 도를 넘고 있었다. 서진은 원래부터 이 사촌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건훈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꽤 한가해. 낮에는 몸을 많이 써서 밤에 잠이 안 오거든.”“그래서 구경할 게 없나 보고 있었지. 여기 집은 방음이 별로라 저녁에 형네 집에서 다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더라고.”그 말을 들은 서진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서진은 건훈을 노려보며 경고했다.“입 단속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지 마.”건훈은 다른 뜻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받아쳤다.“내 입 걱정할 시간에 형수나 잘 지켜. 가까운 사람한테 뒤통수 맞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서진은 그 말을 장난스러운 도발로만 여기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30초쯤 뒤 서진은 차로 돌아왔다.희정은 목을 길게 빼 건훈 쪽을 살폈다.건훈은 여전히 창가에 기대 있었다. 희정과 눈이 마주치자 뻔뻔하게 손으로 키스까지 날렸다.희정은 찔리는 마음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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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별말 안 했어.”서진은 건훈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아내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희정이 건훈의 일을 캐묻는 것도 싫었다.“여자 관계가 복잡한 인간이야. 가능한 한 엮이지 마.”희정은 찔리는 마음에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알았어.”서진이 말했다.“당장은 여권을 가져올 수 없으니 호텔로 돌아가서 쉬자.”희정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가능한 한 빨리 해외로 떠나야 했다.그런데 여권은 출입이 통제된 집 안에 있으니 어떻게 꺼내야 할까?신혼집은 출입이 금지됐고 대문 밖에는 경찰관이 지켰다. 하지만 수사관이 집 안에 계속 머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어떻게든 몰래 들어가 여권만 챙긴 뒤 조용히 빠져나오면 되잖아.’기억이 맞다면 건훈의 집 창문 하나가 신혼집 베란다를 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희정의 눈이 반짝였다.‘방법을 찾았어!’...호텔.이른 아침부터 희정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는 사람을 통해 여권을 꺼낼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서진은 데려다주려고 했지만 희정이 거절했다.서진은 호텔 스위트룸 창가에 서서 희정이 택시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내려다봤다.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쌓여 있었다. 모두 본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전날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졌을 터였다. 차장섭의 죽음은 큰 사건이니 뉴스에도 보도됐을 가능성이 컸다.아버지가 왜 계속 전화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집안에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가족을 속이고 싶지도 않았고, 차장섭의 죽음에 희정이 얽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오래 고민한 끝에 서진은 전화를 받지 않고 일단 상황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았다. 서진은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을 작성해 보냈다.[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 이기적인 선택을 용서해 주세요. 희정이와 해외에서 살겠습니다. 두 분한테 아들이 없었다고 생각해 주세요.]문자를 받은 천호선은 분노해 다시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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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서진은 그동안 큰 굴곡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능력도 뛰어나서 장차 천하메디컬그룹을 물려받을 사람인데 어떻게 살인 사건에 휘말릴 수 있겠는가?뭔가를 깨달은 진정화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희정이야! 분명 걔 때문이야! 내가 둘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말했잖아.”“점을 봤을 때도 희정이가 우리 아들 인생의 큰 액운이라고 했어.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결혼을 막았어야 했는데!”진정화는 뒤늦게 후회했다. 희정이 임신하고도 아이가 한씨 집안의 핏줄이라고 주장했을 때부터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서진이 좋아하고 둘이 잘 살기만 한다면 괜찮다고 마음을 바꿨다.이렇게 빨리 문제가 터지면서 서진이 희정에게 끌려 들어갈 줄은 몰랐다.이럴 줄 알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희정이 분명해. 내가 직접 신고해서 살인죄를 밝혀낼 거야! 내 아들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서진이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천호선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지면서 아내를 매섭게 노려봤다.“무슨 살인 타령이야? 입 다물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경솔하게 소리부터 질러? 살인이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도 되는 줄 알아?”“아무 일도 아닌 게 당신 입 때문에 큰일이 될 수도 있어!”아직 사건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이 밖으로 퍼지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남편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진정화는 억울한 듯 눈물을 닦았다. 천호선도 마음이 어지러워서 아내를 달래 주지 않았고 결국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밖에 떠들지 마. 우리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그럼 아들은? 서진이는 그냥 내버려 둘 거야?”“내가 뭘 어떻게 해? 십대라면 부모가 붙잡고 가르치기라도 하지. 서른이 넘은 성인이 우리 말을 듣기는 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진정화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다만 서른이 넘은 성인이 왜 이제 와서 사춘기 아이처럼 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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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건훈의 쓸데없는 말을 받아 줄 여유가 없던 희정은 곧바로 창틀을 딛고 올라서려고 했다.건훈이 다시 비꼬듯 말했다.“쯧쯧, 이런 일은 원래 남자가 해 주는 거 아니야? 우리 형은 늘 형수를 사랑한다고 떠들면서, 왜 형수 혼자 우리 집처럼 위험한 곳에 보낸 거야? 창문까지 넘게 만들고.”어느새 건훈은 희정의 등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뒤에서 희정을 품에 끌어안은 건훈은 눈을 감은 채 목덜미에서 나는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여기까지 왔으니 나부터 만족시켜 주고 가.”건훈은 희정을 안아 올린 뒤 등 뒤의 넓은 침대 위로 던졌다.푹신한 매트리스가 깊게 꺼졌다. 희정은 건훈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지금은 그런 일을 할 마음이 전혀 없어서 희정은 다급히 둘러댔다.“나랑 자고 싶으면 다음에 해.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건훈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여유롭게 물었다.“그 중요한 일이란 게 네 죄를 입증할 증거를 없애러 가는 거야?”희정의 표정이 변했다.“무슨 증거?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내가 헛소리를 한다고?”건훈의 손바닥이 희정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가벼운 눈빛 사이로 묘한 다정함이 섞였다.“어제 네가 내 집에서 나간 뒤 옆집에서 엄청나게 크게 다투는 소리가 났어. 경찰이 찾아와서 물으면 내가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입을 다물까?”희정은 놀란 눈으로 건훈을 바라봤다.“나를 협박하는 거야?”“협박한 적 없어. 네가 멋대로 생각하는 거지.”건훈은 고개를 숙여 희정의 목덜미를 살짝 빨면서 유혹하는 눈으로 말했다.“나한테 몸을 맡겨.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뜨거운 입술이 희정의 피부 위로 내려앉았다.희정은 손가락을 움켜쥐면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희정의 마음은 전날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건훈과 다시 몸을 섞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혐오감뿐이었다. 어제의 즐거움이나 흥분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건훈이 거칠게 움직이는 동안,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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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신혼집 곳곳에는 사건 현장처럼 출입 통제선이 둘러져 있었다. 바닥 여러 군데에는 감식 표시까지 남아 있었다.희정은 표시된 자리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전날 차장섭이 쓰러진 곳과 찻잔에 머리를 맞은 장소였다.가슴이 서늘해졌다. ‘여권을 찾는 대로 바로 떠나야 해.’‘머지않아 경찰이 우리를 불러서 조사할지도 몰라.’다행히 점심시간과 맞물려서 수사관들이 식사를 하러 나간 듯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희정은 발소리를 죽여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을 뒤진 끝에 자신과 서진의 여권을 무사히 찾아냈다.두 여권을 주머니에 넣고 희정은 곧바로 돌아섰다. 모든 움직임은 소리 없이 이루어졌다.다시 창문을 넘어갈 때 건훈이 반대편에서 희정을 받아 줬다.희정은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건훈의 품에 그대로 안겼다.건훈은 곧바로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희정의 어깨에 기대며 떨어지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굴었다.“다음에는 언제 다시 올 거야?”건훈의 목소리에는 뜻밖에도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희정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그저 몸만 섞은 사이인데, 설마 이 미친놈은 감정이라도 생긴 건가?’희정은 서진과 곧 해외로 떠날 거라는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떠난 뒤에는 건훈 같은 인간과 다시 만날 일도 없을 터였다.희정은 대충 달랬다.“아마 금방 다시 오겠지.”건훈은 고개를 돌려 희정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아까 한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어.”희정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뭐가?”“어제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 집 방음이 너무 좋아서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거든.”건훈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굉장히 긴장했던데. 혹시 아버지가 죽은 일에 형수가 관련된 건 아니지?”희정은 과민할 정도로 크게 반응하며 부정했다.“무슨 헛소리야? 내 아빠야! 갑자기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사고로 돌아가신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아빠를 죽여?”건훈은 희정을 깊이 바라봤다.“나는 네가 죽였다고 말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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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희정이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막 호텔로 돌아온 뒤였다.희정은 생각할 것도 없이 메시지를 바로 삭제했다.오후 3시.희정은 호텔 객실로 들어가 조금 전 가져온 여권을 서진 앞에 내려놓았다.“가져왔어.”서진은 여권을 펼쳐 확인했다. 자신의 것과 희정의 것이 맞았다.“어떻게 가져온 거야?”“아빠가 오랫동안 시장으로 일했잖아. 나는 시장 딸이고.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몰래 들어갔어.”희정은 되는대로 둘러댔다.서진은 입술을 다문 채 희정을 살폈다. 아침에 나갔을 때와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입술은 유난히 붉었고 조금 부어 보였다. 옷도 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바깥이 그렇게 추웠나?’희정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비행기 표는 네가 예약해. 나는 먼저 좀 씻을게.”그러고는 욕실로 들어갔다.욕실 거울에 비친 몸에는 붉고 검푸른 키스마크가 가득했다. 희정은 속으로 건훈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몸에 밴 남자의 냄새를 깨끗이 씻어 내고 톤 보정 크림을 온몸에 발라서 최대한 흔적을 가렸다.모든 정리를 마친 희정은 욕실 밖으로 나왔다.객실에서는 서진이 희정의 핸드폰을 들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희정의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죄를 들킨 사람처럼 곧바로 달려가 핸드폰을 빼앗았다.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핸드폰에는 전날 오후 건훈에게 눌린 채 몰래 찍은 수치스러운 영상이 남아 있었다.원래는 나중에 건훈이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붙잡아 둘 증거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먼저 지우고 싶은 약점이 됐다.서진이 영상을 보게 되는 것도 두려웠고, 자신을 지켜 줄 유일한 버팀목을 잃는 것은 더 무서웠다.건훈의 메시지를 지우는 것만 급해서 영상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희정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자 서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한참 바라봤다.“나한테 숨기는 일 있어?”서진은 핸드폰 내용을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려면 신분 정보가 필요해 잠시 들었을 뿐인데 희정의 반응이 너무 컸다.질문을 받은 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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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희정은 친아버지를 죽였고 남편을 배신했다. 이제 남은 평생 동안 이름과 신분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서진에게 영원히 말할 수 없는 비밀까지 생겼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희정은 서진의 어깨에 기댄 채 눈물만 계속 흘렸다.서진은 눈물을 닦아주면서 희정을 품 안으로 깊이 끌어당겼다.“무서워하지 마. 해외로 떠나기만 하면 안전해.”희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무섭지 않아? 내 손으로 아빠를 죽였잖아.”서진은 고개를 저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사고였어. 내가 아는 희정이는 마음씨 착한 아이야.”“어릴 때 또래들이 나를 괴롭히면 네가 앞에 나서서 지켜 줬잖아. 그런 네가 무서울 리 없어.”희정은 흠칫하며 굳어졌다. 어릴 때 서진을 지켜 준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진이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할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 행동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모든 일은 오라희라는 여학생과 한 내기에서 시작됐다.희정과 라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라희는 서진을 바라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다. 사춘기 소녀가 처음 품은 풋풋한 호감이었다.희정은 라희에게 서진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장담하며 내기를 걸었다.자신이 싫어하는 라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싶었다.일부러 서진에게 가까이 다가간 희정이 두 번이나 괴롭힘에서 지켜 주자, 서진이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희정은 복수에 성공한 듯 통쾌했다. 며칠 뒤 라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다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서진이 그때부터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았다.하지만 희정에게는 그저 내기일 뿐이었다.진실을 말할 수 없어 마음이 답답했지만 서진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계속 비밀로 묻어 두면 된다고 여겼다.서진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기가 희정을 진정하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가까이 붙어 있었다. 희정은 서진의 목젖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살며시 건드렸다.그러자 서진의 눈빛이 한층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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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서진아, 하지 마...”희정은 더 늦기 전에 멈춰 세웠다.“아빠가 방금 돌아가셨잖아.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희정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싼 서진은 깊고 애틋하게 입술을 한 번 눌렀다.솟구친 욕망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서진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알았어. 네 뜻을 존중할게. 오전 내내 돌아다니느라 밥도 못 먹었지? 먼저 아래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해. 나는 씻고 나갈게. 조금 뒤에 공항으로 출발하자.”서진이 욕실로 들어간 뒤 곧 물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로 남자의 억누른 낮은 신음소리도 섞여 나왔다.희정은 입술을 깨물었다.이 상황에서도 참아 내는 걸 보니 서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듯했다.희정은 예전에 한 책에서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당시에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하지만 서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희정의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욕실 문 너머로 흐릿하게 비치는 서진의 실루엣을 잠시 바라보다가 객실 밖으로 나갔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형수, 어떡하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건훈의 목소리에 희정은 눈살을 찌푸렸다.[메시지를 보냈는데 왜 답이 없어? 경찰 앞에서 내가 제대로 해 주지 않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내가 말을 바꿔서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형수 아버지의 죽음을 밝힐 중요한 증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희정은 관자놀이를 눌렀다.“대체 원하는 게 뭐야?”건훈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뭘 원하는지 정말 몰라? 침대에서는 그렇게 잘 맞았으니 형수도 나를 계속 생각할 줄 알았는데...]희정은 이제야 문제가 얼마나 까다로워졌는지 실감했다.건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서 희정의 삶을 전부 어지럽힐 수도 있었다.희정은 뒤늦게 후회했다. 전날 왜 이런 남자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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