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881 - Chapter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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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수아는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한숙미는 실망한 눈으로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야, 네가 어떻게 이렇게 됐니...”한숙미는 자신이 아파 입원해 있는 동안, 수아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까지 가담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그런데 수아에게는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조차 없었다. 사람 목숨을 별것 아닌 일처럼 여기는 태도였다.살아 있던 한 사람의 목숨이었다. 그런데 수아는 생명에 대한 두려움도 죄책감도 전혀 없는 걸까?한숙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깊은 실망이 한숙미의 마음을 채웠다. 놀라고 가슴이 무너진 뒤에는 혼란까지 밀려왔다. “수아야,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니? 내가 잘못 키운 걸까?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나 봐... 그래서 네가 이렇게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거야?”수아가 짜증스럽게 한숙미를 바라보며 드물게 변명했다.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나도 속았어!”그 일을 떠올리자 수아의 짜증이 더 거세졌다. “나도 당한 거야. 그 늙은이가 날 이용했다고! 그 인간도 일처리를 왜 그렇게 못해? 경찰에 단서나 흘리고!” “자살로 위장도 하나 제대로 못 해? 괜히 나까지 이렇게 큰일에 끌어들이고!”한숙미는 수아의 변명만 듣다가 눈을 감았다.‘너무 무서워.'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수아는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눈앞의 수아는 이제 어린 시절의 그 착하고 철들었던 아이가 아니었다. 한숙미가 하루 종일 돌봐 주고 밤에 동화책까지 읽어 준 날이면, ‘엄마,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말하던 그 아이와 너무 달라져 있었다.수아는 제멋대로고 이기적인 데다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눈물 한 방울이 한숙미의 뺨을 타고 흘렀다. 다시 눈을 뜬 한숙미가 유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수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한숙미를 바라봤다. 역시 한숙미가 친딸을 정말 감옥에 보내도록 내버려 두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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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오수아 씨, 현재 확보된 증거는 명확합니다. 수사에 협조하고 사실대로 진술하면 재판에서 양형에 참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하지만 계속 사실을 숨기다 중형이 선고되면, 수십 년 뒤에나 밖에 나올 수도 있어요. 가장 젊고 좋은 시절을 전부 감옥 안에서 보내게 되는 게 아깝지 않습니까?”닫힌 조사실 안에서 수아는 두 손에 수갑을 찬 채 피의자석에 앉아 있었다.수아 앞에는 형사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진술 내용을 기록했고 다른 한 명은 질문을 이어 갔다. 수아와 형사들의 신경전은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술만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뒤에야 수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진술거부권이 있어요. 변호사 부를 거예요.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제 변호사한테 물어보세요!”한 형사가 말했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확보된 증거 때문에 오수아 씨는 정식 피의자 신분이고, 진술을 거부한다고 수사가 멈추는 건 아닙니다.”“오수아 씨, 알고 있는 사실을 직접 말하는 편이 본인에게도 낫습니다. 계속 입을 다물면 본인 책임만 더 커질 수 있어요.” “뒤에서 이 일을 벌인 사람은 빠져나가게 두고 혼자 모든 책임을 질 생각입니까?”예상대로 형사의 말에 수아의 눈에 망설임이 떠올랐다.그 형사가 다시 물었다. “우선 이선보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부터 말해 보죠. 두 사람이 어떻게 공모해서 피해자 하지훈 학생을 살해하게 됐습니까?”수아는 눈을 감았다.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침묵만 지킨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했다.형사들의 말처럼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말하면 형량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결국 이선보 대신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꼴이 아닌가.오랜 침묵 끝에 수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 조금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처음엔 사기인 줄 알았거든요.”“그런데 이선보라는 그 사람이 제가 공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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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그러니까 네가 대표를 못 하는 거야. 그 여성 대표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어떻게 했는데?][그 틈을 타서 거래 조건을 다시 짰대. 원자재 단가를 무려 20퍼센트나 낮췄다더라.][거래처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지. 예전보다 이익이 20퍼센트나 줄어든 셈인데, YD그룹이라는 큰 고객을 놓치긴 싫으니까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대.][대박이다. 진짜 본받아야겠네. 혹시 사업하려고 태어난 사람 아니야?][...]온라인에서 ‘사업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해인은 막 YD그룹의 부서 합동 회의를 끝낸 참이었다.해인은 비서와 함께 회의실에서 나왔다.태블릿을 든 비서가 해인에게 앞으로 이틀 동안의 일정을 하나씩 확인해 주고 있었다.조용히 듣던 해인이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요?”비서가 얼른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늘 저녁에는 영업부 회식이 있습니다. 영업본부장님이 대표님께서 직접 오셔서 직원들 격려도 해 주시고, 분위기도 좀 북돋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해인이 웃었다. “부서 사람들끼리 편하게 하는 회식인데, 제가 가면 다들 불편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거 아니에요?”해인도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올라온 사람이었다. 동료들끼리 편하게 모인 회식 자리에 윗사람이 나타나면 분위기가 얼마나 굳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젊은 비서가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 회식은 안 가시겠습니까?”해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그 일정은 빼 주세요. 오늘 저녁에는 집에 가서 남편이랑 아이하고 밥 먹으려고요.”며칠째 일에만 매달리느라 유호와 아이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 주지 못했다.비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해인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대신 직원들한테 전해주세요. 다음 분기에 열심히 해서 목표 실적만 달성하면 성과급은 두 배로 주겠다고요.”해인은 대표실로 돌아왔다.물을 몇 모금 마시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수화기 너머로 유호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리스마 대표님, 일 다 끝났어?]장난치는 말투를 알아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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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보름 뒤.“석방 절차는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해인을 납치하도록 친동생을 끌어들이고 흉기까지 휘두른 일로 김수원은 구속된 채 보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김수원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데다가 피해자 측과 합의가 이뤄져서 처벌불원서까지 제출되자, 구속 상태에서 해제되어 불구속 수사로 전환됐다.다만 석방 절차를 밟으러 나온 김수원은 정신이 반쯤 빠져 있었다. 눈은 초점이 없었고 반응도 예전보다 훨씬 느렸다.얼마 전 아들을 잃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관자놀이에는 흰머리까지 생겼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또래보다 훨씬 젊어 보였던 김수원이었다.담당 경찰관이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하면 절차가 끝납니다.”김수원이 입술을 다문 채 물었다. “내가 이렇게 빨리 나가도 되는 건가요?”김수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납치한 일은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었다.게다가 흉기로 사람까지 다치게 했다.경찰관이 설명했다. “모르셨습니까? 피해자분이 직접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피해자 측의 의사가 반영된 데다 다른 사정들도 함께 고려해서 구속이 풀린 겁니다. 사건 자체가 끝난 건 아닙니다.”김수원이 멈칫했다. ‘강해인이 나를 봐준 건가?’‘대체 왜 나를 봐준 거지?'김수원은 멍하니 서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경찰관이 다시 재촉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나가실 수 있습니다.”경찰서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김수원을 비췄다. 빛 아래 드러난 피부가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김수원이 걸음을 옮기려던 때, 정장을 갖춰 입고 서류가방을 든 남자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남자는 출입 확인을 하는 곳으로 가서 신분을 밝혔다. “오수아 씨가 선임한 변호사입니다.”‘오수아'라는 이름을 듣자, 김수원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오수아도 경찰에 잡혀 온 건가?' 김수원이 돌아봤을 때, 경찰관은 방문 기록을 확인하고 변호사 신분증까지 검사한 뒤 안으로 들여보냈다.김수원은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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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죄가 없어? 태어나는 날부터 그 애는 이미 이 일에 들어와 있었어. 하나도 안 억울해!” “오기홍이 지난 시간 동안 나랑 엄마보다 너희 모자한테 더 신경을 썼잖아?”“내가 성년이 되던 해 성년의 날에, 오기홍은 분명 나랑 엄마랑 같이 저녁 먹기로 약속했어. 그런데 당신이 건 전화를 받고 가 버렸잖아.”“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그랬어.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다 같이 왔는데 나한테는 엄마만 있었어.” “왜 그랬는데? 그날 지훈이가 열이 난다고 당신이 오기홍을 불러 갔잖아.”오래전 일이었지만 수아는 하나도 잊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수아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인 기억들은 이미 평생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있었다.수아가 김수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따졌다. “정말 억울해? 하지훈이 정말 아무 죄도 없어? 하지훈은 당신이 오기홍의 관심을 붙잡아 두는 수단이었어. 나랑 우리 엄마가 진짜 피해자라고!”“피해자가 반격 좀 하면 안 돼? 하지훈 하나만 없애면 다 끝나는 일이었어.”그제야 경찰관들이 두 사람 사이를 몸으로 막으면서 완전히 떼어 놓았다.소란을 피운 김수원은 따로 엄중한 경고를 받았고, 수아도 다시 조사 대기 장소로 옮겨졌다.경찰관의 질책을 듣는 동안 김수원은 멍한 눈으로 바닥만 바라봤다. 깊은 슬픔이 온몸에 내려앉아 있었다.방금 수아가 쏟아 낸 말은 김수원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결국 나였어...’‘내가 오기홍과 그런 관계를 이어 간 탓에 내 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린 거야.'다시 경찰서 밖으로 나온 김수원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경찰서 정문 앞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하나둘 김수원의 몸 위로 떨어졌다.김수원은 젖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꼬박 30분이나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엉망이 된 차림과 이상할 만큼 넋이 나간 모습을 보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인가 싶어서 힐끗 쳐다보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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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핸드폰이 울리자, 김수원은 천천히 손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김수원 여사님 맞으시죠? 아드님을 장례식장 안치실에 모신 지 꽤 됐습니다. 화장 일정은 언제쯤 잡으실 예정이신가요?]핸드폰을 쥔 김수원의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이대로 무너져 있을 수는 없었다. 지훈이 없어졌다고 해도 김수원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자신의 인생이 남아 있었다.인생의 앞부분은 이미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친아들에게까지 끔찍한 결과를 안겼고, 김수원 역시 그 대가를 치렀다. 남은 인생만큼은 속죄하며 살아야 했다.김수원은 뭔가 마음을 정한 듯 해인이 건네준 검은 우산을 손에 쥐고 한 걸음씩 자리를 떠났다....한숙미는 김수원이 병문안을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예전에는 같은 공장 사택 단지에 살면서 가끔씩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김수원은 한숙미와 남편 사이에 끼어든 여자였다.김수원은 늘 콧대가 높았다. 마주쳐도 한숙미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고,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먼저 인사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과일을 들고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김수원이 서 있었다. 한숙미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한숙미의 목소리에는 적대감과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손가락은 호출 벨 위에 올려 둔 채 언제든 사람을 부를 준비를 했다. “김수원, 여기 왜 왔어? 뭘 하려는 거야?”김수원이 병실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오자, 한숙미는 긴장한 채 김수원을 계속 바라봤다. 몸까지 일으켜서 병상에 앉았다.“내가 경고하는데 여긴 병원이야. 네가 함부로 소란 피울 데가...”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김수원이 털썩 소리를 내며 한숙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한숙미는 뜻밖의 행동에 그대로 굳었다.김수원이 병상에 있는 한숙미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랑 오기홍 사이를 망가뜨리면 안 됐어!”한숙미는 어리둥절했다. “너 갑자기 왜 이래?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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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이건 이선보가 저지른 범죄를 입증할 자료입니다. 반년쯤 전부터 이선보는 제 남편을 여러 차례 해쳤고, 본인의 동의도 없이 몸에 칩을 이식하기까지 했습니다.”해인은 서류 한 묶음을 경찰에 건넸다. “관련된 증거와 자료는 전부 시간순으로 정리해 뒀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이선보가 여러 해 동안 해외의 한 섬나라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자선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여러 차례 자선 경매를 열었습니다.”“실제로는 자선을 내세워 돈세탁을 한 정황이 있고요. 행적을 추적하실 거라면 이 부분부터 확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오래전 일 때문에 이선보와 저희 한씨 집안 사이에는 좋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얼마 전에는 제 시아버님 댁 근처를 계속 맴돌며 감시하기도 했고요. 최근에도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서, 가족들에 대한 신변 보호를 요청하고 싶습니다.”가장 위험해 보이는 곳에 오히려 숨어드는 방식. 이선보 같은 사람이라면 수사망 바로 옆의 허점을 파고드는 데 익숙할 가능성이 컸다.해인은 혹시 모를 일을 미리 막아 두려는 것이었다.경찰관은 자료를 받아 들었다. “알겠습니다. 제출하신 자료는 면밀히 검토하겠습니다.” “피의자를 최대한 빨리 검거할 수 있도록 수사를 진행하고, 가족분들 주변에도 인력을 배치해 살펴보겠습니다.”유호와 해인은 함께 경찰서를 나왔다.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유호는 반사적으로 해인을 자기 옷 안쪽으로 더 끌어당겼다.“바람이 세다. 내 품에 붙어 있어. 그래야 비를 덜 맞아.”해인은 유호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었다. 눈을 조금만 들면 매끈하게 이어지는 유호의 턱선이 바로 보였다.해인이 말했다. “유호 씨, 이 일 다 끝나면 우리 신혼여행 가자.”유호가 눈썹을 올렸다. “왜 갑자기 신혼여행 생각이 났어? 나랑 둘이 있고 싶어?”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해인이 바로 설명했다.“당신 결혼식 준비할 때부터 신혼여행 일정 다 짜 놨잖아. 항공권도 예약했고.”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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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차는 도수희의 집 앞에 멈춰 섰다.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를 멀리서 본 도수희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마중을 나가려고 했다.최근 보름 가까이 이안은 도수희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 어린 이안은 치발기를 손에 쥔 채 신이 나서 입에 넣고 있었다.걸음을 떼려던 도수희는 뭔가 떠올린 듯 다시 돌아와서 소파에 있던 이안을 번쩍 안아 들었다.“아이고, 하마터면 널 두고 갈 뻔했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인데 소파에 혼자 두면 떨어질 수도 있지.” 도수희는 아이를 안은 채 혼잣말처럼 계속 중얼거렸다.해인이 어릴 때 도수희의 친정 식구들이 몰래 데려가서 버리는 바람에, 도수희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육아의 많은 부분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그래도 도수희는 꼼꼼하고 세심했다. 보름 동안 이안을 아주 살뜰하게 돌봤다.마침 집 안으로 들어오던 해인은 도수희가 허리를 숙이면서 이안을 품에 안는 모습을 봤다. 그렇게 외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해인을 맞으러 나왔다.“밖에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갑자기 웬일이야?”해인은 허리를 숙이고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대답했다. “집에 계시면서 제 생각 하실까 봐 왔죠.”도수희는 잠깐 멈칫하다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해인이 가끔 이렇게 툭 던지는 말은 도수희의 기분을 유난히 좋게 만들었다.도수희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해인이 이안을 자기 집에 맡기면서 겉으로는 권영자가 연세가 있어서 어린아이를 계속 보기도 힘들고, 자신도 유호와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하지만 그 말들이 전부 핑계라는 걸 도수희는 알고 있었다.해인은 도수희가 차장섭을 잃은 슬픔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길 바랐다.따져 보면 차장섭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반년이었다. 이안도 어느새 생후 아홉 달이 넘었다.이안이 집에 온 뒤 보름 넘는 동안 도수희의 집에는 웃음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도수희도 그제야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제대로 느꼈다.해인이 어릴 때 직접 돌보지 못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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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이안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까만 눈동자만 동그랗게 뜬 채 해인을 순진하게 바라봤다.옆에서 듣던 유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둘만의 신혼여행인데, 이 꼬맹이도 데려가려고?”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안이는 아직 어리고 엄마가 제일 필요한 때잖아. 평소엔 내가 일이 바빠서 YD그룹에 거의 모든 시간을 쓰고 있고. 모처럼 여유가 생겼으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같이 있어 주고 싶어. 당연히 데려가야지.”유호는 누가 봐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해인이 먼저 말한 일이라 반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정말 작은 방해꾼이네.”이안은 그 말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유호의 표정은 읽을 줄 아는 모양이었다.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눈치챈 듯했다.방금까지 생글생글 웃던 이안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니, 금세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표정 전체가 억울함으로 잔뜩 구겨졌다.이안은 서러운 눈으로 해인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곧 커다란 눈물이 눈가에 가득 맺히더니, 콩알만한 눈물이 한 방울씩 통통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해인의 마음은 금세 물러졌다. 아들을 더 꼭 안아 주며 다정하게 달랬다. “아빠가 장난친 거야. 우리 이안이는 세상에서 제일 귀엽지.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누가 우리 이안이를 방해꾼이라고 하겠어?”말을 마친 해인이 고개를 돌려 유호를 노려봤다. “당신도 얼른 아들한테 사과해.”유호는 멈칫했다. 자신이 아직 돌도 안 된 꼬맹이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사과를 한다고 이안이 알아듣기나 할까 싶었다.하지만 아내 말은 들어야 했다. 유호는 아무 토도 달지 않고 해인을 따라 이안의 작은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곧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잘못했어, 아들. 내 아들이니까 아빠를 특별히 용서해줘.”“풉...”해인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엄마가 웃는 걸 본 이안도 영문을 모른 채 입을 크게 벌렸다. ‘까르르’ 하고 따라 웃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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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해인은 도수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틀 뒤 이안을 데리러 오기로 했다. 해외로 휴가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유호와 함께 집을 나섰다.“장모님 음식 진짜 맛있네.”유호는 해인의 손을 잡은 채 바로 차에 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단지 안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특히 갈치조림이 간도 잘 배고 살도 부드럽더라. 유명 호텔 주방장이 해도 그만큼 맛있기 힘들겠어.”해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당신 입에 맞으면 앞으로 자주 오자. 엄마 혼자 계시면 외로우실 텐데, 우리가 오면 집도 북적거리고 엄마도 좋아하실 거야.”저녁 식탁에서 본 도수희는 차장섭이 막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눈에 띄게 웃는 일이 많아진 모습이었다.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외 다녀오면 매주 장모님 댁에서 밥 먹자.”해인도 좋았다. 도수희는 이 세상에서 해인에게 남은 소중한 가족이었다. 큰 수술을 이겨 내고 어렵게 목숨을 건진 만큼, 해인은 더 오래 곁을 지키며 도수희가 편안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게 해 주고 싶었다.이쪽은 따뜻하고 평온했지만, 같은 도시 반대편에서는 누군가가 쫓기는 짐승처럼 몸을 숨겨 가며 달아나고 있었다.이선보는 운전대를 꽉 쥐고 속도를 높여 한참을 달린 끝에야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을 겨우 떼어 냈다.차를 외곽의 인적이 없는 한 구석으로 몰고 간 뒤, 주변에 따라붙은 사람이 없는지 거듭 확인했다. 그제야 브레이크를 밟은 이선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운전대를 세게 내리쳤다.‘오수아, 그 멍청한 년!' 수아는 그렇게 허술하게 경찰에 꼬리를 잡힌 뒤 그대로 잡혀 갔다.애초에 믿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자기까지 불어 버릴 줄은 몰랐다.이제 도시 곳곳에 이선보의 공개수배 전단과 정보가 퍼져 있었다. 전에 머물던 호텔로는 돌아갈 엄두도 못 냈고 차 안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야 했다.가장 위험한 곳이 오히려 가장 안전할 수도 있었다. 오늘 밤 이선보는 원래 한씨 집안 본가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밤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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