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891 - Chapter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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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화

손세강이 급히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몇 년을 같이 했는데 제가 어떻게 형님을 그런 식으로 넘기겠습니까?]이선보는 쓸데없는 인사를 주고받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하자.”손세강은 그 말을 듣고 눈에 띄게 망설였다. [뭘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다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불법적인 일은 못 합니다.]이선보는 속으로 비웃었다. ‘말은 잘도 하지. 경매로 검은돈 세탁할 때는 겁내는 걸 못 봤는데...’‘이제 와서 깨끗한 사람인 척하네.' 하지만 이선보는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 “예전에 내 돈을 자네한테 맡겨 둔 게 있지? 계산하면 4억 원 가까이 될 거야.”손세강도 부정하지 않았다. [네,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자금 사정이 어려울 때 형님이 빌려주신 돈이죠. 지금 그 돈을 어디에 쓰시려고요?]“절반은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줄 거고, 나머지 절반은...”이선보는 말을 끊었다가 음흉한 눈을 번뜩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곧 내 환갑이잖아. 불꽃놀이용 폭죽 좀 많이 구해 줘.”전화 너머의 손세강은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의아하게 물었다. [형님, 갑자기 폭죽은 왜요?]환갑을 앞둔 사람이 큰돈을 들여 폭죽을 산다는 것부터 이상했다.게다가 지금 이선보는 도망치는 처지였다. 어느 때보다 돈이 필요할 때였다.이선보는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피곤한 숨을 내쉬었다. “왜? 나도 낭만을 좀 즐기면 안 돼?”이유를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 분명했다.손세강은 더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을 드릴게요.]...한편, 통화가 끝나자 손세강이 고개를 돌렸다.맞은편에는 경찰 여러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통화는 처음부터 스피커폰으로 진행됐다. 방금 이선보와 나눈 대화도 경찰들이 모두 듣고 있었고, 손세강은 경찰이 미리 알려 준 방향대로 대답했다.“다음에 이선보가 또 전화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만나자고 하세요.”“제가 보자고 해도 안 나올 겁니다. 이선보를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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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여행을 앞둔 해인은 손에 잡고 있던 중요한 업무부터 모두 인수인계를 진행했다.해인은 비서에게 거듭 당부했다. “제가 보름 동안 회사를 비울 테니까, 각 부서 본부장들한테 정신 바짝 차리고 맡은 일 잘 챙기라고 전해주세요. 문제가 생기지 않게요.”비서가 대답했다.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해인은 그 전에 도수희의 집에 들러서 이안을 데려와야 했다.차가 도수희의 집 앞에 막 멈췄을 때, 아무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해인은 고개를 들어 의아하게 바라봤다.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누가 돈이 남아도나? 대낮부터 웬 불꽃놀이지?'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유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방금 엄마 집 앞에 도착했어. 왜?”[경찰에서 방금 연락 왔는데, 이선보가 도망쳤어.]“도망쳤다고?”경찰은 이미 이선보의 행적을 파악하고 체포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작전을 벌이려고 하는데 사람이 빠져나간 것이다.해인은 다시 고개를 들어 멀리서 터지는 불꽃을 바라봤다.불꽃이 터지는 쪽은 이선보와 손세강이 만나기로 했던 장소였다. 대낮부터 불꽃놀이가 벌어진 이유도 짐작이 갔다. 이선보가 빠져나간 일과 저 폭죽이 분명 관계가 있었다.[도망치기 전에 이선보가 폭죽 일부를 빼돌렸대. 안에 든 화약도 가져갔다는 거야.]해인의 생각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씨 집안을 노리는 건가?”이선보는 한씨 집안 사람들을 뼛속 깊이 미워했다. 그 사람들이 괴로워하길 바라면서 위험한 화약까지 손에 넣었다.“유호 씨, 이 전화는 나한테 할 게 아니라 할머니랑 집에 계신 분들한테 먼저 해야 할 것 같아.”한원랑과 권영자가 아직 한씨 집안에 남아 있었다. 집에는 가사도우미와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수십 명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 가볍게 볼 수 없었다.이선보처럼 궁지에 몰린 사람이 무슨 짓까지 벌일지 아무도 몰랐다.해인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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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이선보가 손세강에게 폭죽을 준비하라고 한 건 핑계였고, 진짜 원한 건 폭죽 안의 화약이었다.다만 손세강이 경찰과 손을 잡고 자신에게 덫을 놓을 줄은 이선보도 예상하지 못했다.손세강은 폭죽을 전부 준비했다고 속였다. 이선보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주변에 경찰이 미리 숨어 있었고, 경계가 느슨해지는 때를 노려서 자신을 체포하려고 했다는 걸 알았다.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이선보는 경찰에게 잡힐 뻔했다.다행히 낌새를 빠르게 알아차린 이선보가 바로 달아나면서, 경찰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수단까지 썼다.이선보는 애초부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여러 출입구로 택시들을 움직이게 하면서 경찰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그 덕분에 겨우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이선보는 폭죽에서 빼낸 화약을 등 뒤의 배낭에 조심스럽게 담고서 음산하게 웃었다.경찰도 이선보가 폭죽을 가져간 이유가 화약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목표가 한씨 집안이 아니라 도수희의 집이라는 건 쉽게 예상하지 못할 터였다.한씨 집안 사람들은 이미 전부 대피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선보도 지금 그곳으로 가 봐야 빈집만 보게 될 것이고, 다시 경찰의 매복에 걸릴 위험까지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선보는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반대로 목표를 도수희의 집으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졌다.아직 돌도 안 된 어린 이안이 지금 도수희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안은 한씨 집안 사람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는 아이였다.‘이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한씨 집안 전체가 무너지겠지.'그런 생각을 하며 이선보는 차에서 내렸다.밤이 깊었다. 경비원은 경비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차장섭이 세상을 떠난 뒤, 외부를 지키고 있던 전문 경호 인력은 모두 빠지고 평범한 경비원들로 바뀌었다.이선보의 눈에는 제대로 된 경비로 보이지도 않았다. 돈만 받고 시간을 보내는 나이 든 사람들 같았다. 정말 일이 터지면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예전의 삼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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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라이터 불꽃이 도화선에 닿기 직전, 이선보의 등에서 거센 통증이 터졌다.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에서 누군가 이선보를 거세게 걷어차 버린 것이다.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이선보는 바닥에 엎어지듯 거칠게 넘어졌다.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의 불도 바로 꺼졌고, 라이터는 바닥을 구르면서 멀리 튕겨 나갔다.나이가 있는 탓에 이선보는 한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픈 꼬리뼈 쪽을 붙잡고 뒤를 돌아본 이선보는 뒤쪽에 서 있는 유호와 시선이 마주쳤다.원래 집 안에서 아이를 달래고 있어야 할 해인도 어느새 밖으로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이선보를 내려다봤다.이선보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그렇게 조심했는데 벌써 들켰다고?'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었다.‘경찰까지 왜 여기 있는 거야?'아까까지 경비실에서 졸고 있어야 할 경비원도 전혀 졸린 기색 없이 경찰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이선보는 잠시 동안 굳어 있다가 뒤늦게 전부 이해했다.‘그래서 그랬군!'방금 전까지 이선보가 한 행동은 전부 상대의 감시 아래 있었다.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졸고 있던 것도 일부러 잠든 척하며 이선보가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연기였다.집 안에서 아이를 달래던 모습까지 전부 연기였다. 계획이 바로 성공할 것처럼 믿게 만들고, 도박꾼이 다음 판에는 반드시 딸 거라고 생각하듯 스스로 함정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이선보는 그제야 자신이 상대가 정교하게 짜 둔 덫에 완전히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행동뿐 아니라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까지 전부 다 읽힌 셈이었다.아직 돌도 안 된 이안까지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하지만 이선보는 화약을 손에 넣자마자 쉬지 않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유호는 차갑고 오만한 눈으로 이선보를 내려다봤다. 더러운 하수구 쥐를 보는 것처럼 경멸의 기색이 선명했다.“우리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궁금하지?”유호는 입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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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순순히 따라가겠습니다. 대신 저 두 사람하고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주세요.”이선보의 시선은 유호에게 향했다.하지만 경찰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금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경찰은 그렇게 말하며 이선보를 데리고 현장을 벗어나려고 했다.이선보는 조금 전 크게 넘어지면서 어딘가 다쳤는지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비틀비틀 걸었다.유호 옆을 지나던 이선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 엄마가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알아?”고개를 돌린 유호가 이선보를 차갑게 바라보면서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이선보가 웃었다. “네 아버지 때문에 죽은 거야. 내가 지금까지 한 일도 정란의 복수를 해 주려고 한 거고. 한씨 집안은 사람을 잡아먹는 집안이야.”“네가 그 집에 돌아간 뒤로 네 아버지한테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 네 엄마가 진짜 사랑한 사람은 나였어. 네 아버지가 억지로 데려가 결혼한 거라고!”그 말을 듣자 유호가 손을 들어 이선보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갑자기 맞을 줄 몰랐던 이선보는 피할 틈도 없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입안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옆에 있던 경찰관이 급히 막아섰다. “한유호 대표님!”유호는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치료비는 제가 책임지죠.”유호의 시선이 다시 이선보에게 꽂혔다.“내가 세 살짜리 애인 줄 알아? 그 몇 마디로 속일 수 있을 것 같아?”“내가 모를 줄 알았어?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부자 사이가 망가진 건, 당신이 밖에다가 내가 당신 아들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야.”“우리 아버지는 사실을 마주할 용기도, 내가 정말 자기 아들인지 확인할 용기도 없어서 그 화를 나한테 풀었고.”“내가 어릴 때 학대받고 인신매매범한테 납치된 것도 다 당신이 꾸민 일이야. 내가 겪은 고통도 그쪽이 만든 거라고.”말을 마친 유호가 다시 주먹을 들었다. 경찰이 말리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유호의 주먹은 이선보의 복부를 세게 가격했다.유호는 오랫동안 꾸준히 운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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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이선보가 끌려간 뒤에도 유호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해인은 유호의 감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유호가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일의 시작에는 전부 이선보가 있었다.이선보가 체포됐다고 해서, 어린 시절 유호가 입은 상처까지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유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해인은 현장 정리를 돕기 위해 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걸 본 유호가 바로 해인의 앞을 막았다. “뭐 하려고? 이런 위험한 일은 우리가 할 테니까 넌 안에 들어가서 쉬어.”유호가 해인 앞에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해인은 유호에게 떠밀리듯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폭발물 처리 인력이 화약을 거의 다 수거한 뒤에도 유호는 아직도 안심하지 못했다. 혹시 남은 위험물이 없는지 주변을 다시 꼼꼼히 확인했고, 전문 탐지 장비까지 동원됐다.해인은 유호가 진지하게 현장을 확인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그때 도수희가 이안을 안고 해인 옆으로 다가왔다.도수희는 밖을 잠깐 바라보더니 말했다. “한 서방이 왜 저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해인이 돌아봤다. “엄마도 그렇게 보이세요?”도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온 만큼 유호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도 몸짓과 행동만으로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도수희가 물었다. “나쁜 사람도 잡혔으니 좋은 일이어야 하는데, 한 서방은 왜 저래?”해인이 바로 설명했다.“유호 씨는 가족한테 따뜻하게 사랑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릴 때도 많이 힘들었고요. 사람마다 마음속에 감추고 사는 상처가 있잖아요.”“유호 씨는 그걸 너무 깊이 묻어 뒀던 것 같아요. 오늘 갑자기 다시 꺼내 놓고 보니, 상처가 아문 게 아니라 안에서 계속 곪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겠죠.”해인의 말을 이해한 도수희가 해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 서방은 널 믿어. 좋은 관계는 사람 마음을 낫게 해 줄 수도 있어.” 해인이 잠시 말없이 도수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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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돌아가는 길, 이안은 카시트에서 곤히 잠들었다.유호는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해인은 유호의 팔을 살며시 끼고서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붙였다.어린 시절부터 남은 상처는 몇 마디 위로만으로 낫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아픔은 가시가 가득한 깊은 골짜기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서, 쉽게 건너갈 수도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었다.잊으려면 결국... 마음속 응어리를 완전히 풀어야 했다.해인이 갑자기 앞에서 운전하는 기사에게 말했다. “오늘은 바로 집에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 주세요.”기사가 대답했다. “네, 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 “본가요.”한밤중에 갑자기 본가로 가자고 하는 해인을 보면서 유호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본가에 뭐 두고 온 거 있어?”“없어.”“그럼 왜...”해인은 손을 들어 유호의 입술 앞에서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했다. “그냥 갑자기 할머니랑 다들 보고 싶어서.”유호는 더 묻지 않았다. 이안은 카시트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차가 본가 차고에 들어서자, 차 소리를 들은 권영자가 직접 집 밖으로 나왔다.이안은 보름 동안 도수희 곁에서 지냈다. 권영자는 벌써 손주가 많이 보고 싶었다. 이안이 태어난 뒤부터 줄곧 직접 돌봐 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그래도 어른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걸 권영자는 잘 알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는 둘이 정할 일이고, 자신이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 된다는 걸. 해인이 아이를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이안아...”권영자는 보물이라도 안듯 이안을 카시트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서 품에 안았다. “며칠 못 봤는데 볼살이 더 오른 것 같네. 해인아, 네 어머니가 이안을 잘 돌봐 주셨구나.”해인이 웃었다. “엄마도 아이 보는 건 처음인데 워낙 세심하세요. 저도 놀랐어요.”권영자가 바로 말했다. “그만큼 널 아끼니까 네 아이도 더 정성껏 보는 거야.”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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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해인은 서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한원랑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쉽게 사과할 리 없었다.해인이 해야 할 말은 했지만 결국 한원랑의 심기만 건드린 셈이었다.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지 않은 것만 해도 한원랑이 며느리인 해인을 어느 정도 배려해 준 결과였다.그래도 어떤 일은 직접 해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해인은 시선을 내린 채 거실로 돌아왔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화장실에서 나온 유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해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방금 위층 방 좀 보고 왔는데 가사도우미가 깨끗하게 정리해 뒀더라. 우리 올라가서 쉴까?”해인은 조금 전 한원랑의 서재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유호에게 하지 않았다.아무 결과도 없는 일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유호는 대답하지 않고 해인의 얼굴만 가만히 바라봤다. 유호의 시선이 계속 따라오자 해인은 저도 모르게 뺨을 만졌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유호가 고개를 저었다.해인이 웃었다.“그럼 왜 계속 그렇게 봐?”“우리 여보가 너무 예뻐서.”유호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해인도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랑하면 다 예뻐 보인다더니 딱 그런 모양이었다.그래도 지금 유호는 저녁때보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해인은 속으로 안도했다.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일을 겪은 탓에 이미 몹시 피곤했다. 다음 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다.푹 쉬기 위해서 해인은 유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올라갔다.다만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잠옷 차림의 유호가 침대에 앉아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왜 그래?”유호가 대답하지 않자 해인도 더 묻지 않았다.해인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했다. 눈을 막 감았을 때 옆에 있던 유호가 입을 열었다.“난 그 사람 사과 필요 없어.”해인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따뜻한 벽등 불빛 아래에서 해인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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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그런데 서정란은 한원랑이 배우자에게 바라던 조건을 전부 갖춘 데다가 생각하는 방식까지 잘 맞았다. 한원랑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운이었다.중년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한원랑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서정란에게 점점 더 깊이 빠졌다. 서정란도 종종 존경과 동경이 섞인 눈으로 한원랑을 바라봤고, 한원랑은 그런 시선을 좋아했다.결혼한 뒤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좋았다. 서로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잘 맞았다.유일하게 모든 것을 흔든 사람이 이선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에 다른 사람과 사귄 적이 있고 그 옛 연인이 직접 찾아와 도발하기까지 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질투와 소유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한원랑과 이선보 사이에는 사회적 지위와 배경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한원랑은 자연스럽게 우월감을 느꼈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선보를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그러던 어느 날 서정란이 친정에 다녀온 뒤, 서정란과 이선보 사이를 두고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소문은 유호가 서정란과 이선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처음에는 한원랑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유호가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된 뒤 몰래 사람을 시켜 조사했고, 유호를 납치한 배후가 이선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의심이 생겼다.‘유호가 이선보 아들이라서 데려간 건가?' 당시 서정란을 따라 친정에 갔던 가사도우미도 서정란과 이선보가 몰래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왜 만난 직후에 유호가 갑자기 사라진 거야?'질투가 한원랑의 마음속에서 거칠게 들끓었다.주변에서는 모두 서정란이 아들 유호를 잃은 뒤,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병이 들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하지만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유호가 사라져 있던 몇 년은 한원랑과 서정란의 관계도 무너져 가던 시기였다.원래 그토록 좋았던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다. 한원랑은 집에 들어가는 날도 줄었고 밤늦도록 회사에서 일하다 그대로 회사에서 자는 날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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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오래된 기억에 금이 간 듯했다. 깊이 묻어 두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면서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한원랑은 책상 옆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봤다. 탁해진 눈가가 서서히 젖어 들었다.귀에는 조금 전 해인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아버님은 지난 세월 동안 유호 씨에게 사과 한마디를 빚지고 계세요.’‘유호 씨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님은 화가 나거나 유호 씨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그 잘못을 유호 씨한테 돌리셨어요.’ ‘그건 유호 씨한테 너무 불공평해요.사실 유호가 정말 자신의 친아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한원랑도 오래전에 답을 알고 있었다.차분히 생각해 보면 해인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한원랑은 분명 유호에게 사과의 말을 빚지고 있었다.한참 뒤 한원랑이 의자에서 일어났다.밤이 깊었다. 나이가 든 김 집사는 서재 밖에서 대기하며 하품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서재 문이 조용히 열렸다.김 집사는 깜짝 놀라 하던 하품을 얼른 삼켰다.“회장님, 이제 쉬시겠습니까?” 김 집사가 물었다.한원랑은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차 준비해.”김 집사는 멈칫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벌써 새벽 1시 반이었다.김 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어디로 가시려고요?”한원랑은 대충 답했다.“사람 하나 만나러 간다.”...30분쯤 달린 차는 한원랑을 태운 채 경찰서 앞에 멈췄다.바깥 바람이 거센 걸 본 김 집사가 바로 외투를 꺼내서 한원랑에게 걸쳐 주려 했다.한원랑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보였다.그리고 곧바로 경찰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저녁에 체포된 이선보는 아직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조사는 벌써 몇 시간째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담당 경찰관들은 서류를 정리하며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다른 경찰관 한 명이 들어와 담당자에게 짧게 뭔가를 전했다.서류를 정리하던 경찰관이 이선보를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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