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24

124 챕터

제121화

현관까지 걸어갔던 남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구태윤이 고개를 돌려 정루아를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눈동자는 속내를 알 수 없었다.그는 손을 뻗어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셔츠 단추를 풀며 다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정루아는 위험을 감지했다. 방금 한 말을 당장이라도 주워 담고 싶었다.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오지 마! 나 출근해야 한단 말이야.”겁에 질린 여자의 얼굴을 보자 구태윤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앞으로는 그딴 소리 다신 하지 마.”그가 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네가 방금 한 말, 몸소 증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약 먹을 일도 없을 테니 마음 놓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이었다.정루아는 입술을 깨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그가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 아래로 씁쓸함과 슬픔이 묻어났다.어젯밤 구태윤이 했던 말들, 비록 증거까지 보여주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겨우 그까짓 일 때문에 발목이 묶여 이혼 못 하는 신세라니.지독한 무력감이 그녀를 덮쳤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정석주였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정석주가 짧게 명령했다.“병원으로 와.”“왜요? 무슨 일인데요?”아까보다 훨씬 더 냉랭해진 말투였다.“정루아! 아버지한테 어디서 그따위 태도로 말대꾸야? 일이 없으면 연락도 못 해? 네 엄마가 아직 병원에 누워 있는데 어쩜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니?”정석주의 가식적인 온화함은 3초도 가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가 기어이 폭발하고야 말았다.정루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쏘아붙였다.“당신들한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이미 한 명 있잖아요. 내가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이 계집애가...!”정석주는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당장 기어와! 싫으면 네 지분까지 몽땅 시연이한테 넘겨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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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정석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시연아,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우리 식구가 된 이상 당연히 챙겨줘야지. 그러니까 괜한 고민 하지 마. 경영 좀 모르면 어떠니? 내가 사람을 구해서 회사 맡기면 되니까 얼른 사인해.”임혜숙도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맞아, 하준이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네가 언제까지 애 옆에만 붙어 있을 수는 없잖니. 너도 자기 인생 살아야지. 이게 다 네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거다.”정시연은 크게 감동한 표정이었다.“아빠, 엄마... 저를 걱정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이내 손으로 눈가를 살짝 훔치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전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해요. 괜히 이런 일로 두 분 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더는 말씀하지 마세요. 저 사인 안 할 거니까.”“시연아, 네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 같아서 엄마 마음이 참 그래.”임혜숙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고, 눈빛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정석주도 한마디 보탰다.“네가 우리 친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기가 막혀서, 원.”곁에서 한 편의 쇼를 지켜보던 정루아가 대놓고 콧방귀를 뀌었다.“흥, 가식덩어리들.”말을 마치고는 곧장 뒤돌아 가버렸다.“저 계집애가 정말!”정석주는 멀어져 가는 정루아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팍 찌푸렸다. 대놓고 불쾌한 기색이었다.임혜숙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시연아, 네 동생이 철이 없어서 그래, 우리가 너무 받아주며 키웠나 봐. 혹시라도 너한테 심술부려도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엄마가 대신 사과할게, 응?”정시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저 화 안 났어요. 그래도 제 동생이잖아요.”임혜숙은 그제야 안도하며 환하게 웃었다.“그래, 역시 우리 시연이가 제일 착하네.”...정루아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어쨌거나 지분을 챙겼고, 정시연은 아직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무슨 이유로 거절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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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이연희가 말했다.“밑져야 본전이니까 일단 한번 찾아보자.”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았어.”이연희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참, 그리고 너 전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외할머니께서 갖고 계셨다던 사파이어 귀걸이 말이야. 예전에 난리 통에 잃어버려서 평생 찾으셨다고 했잖아. 내가 혹시 몰라 큰 경매장 정보 계속 눈여겨봤거든? 근데 최근에 비슷하게 생긴 게 딱 올라왔더라고. 사진 보낼 테니까 얼른 봐봐. 외할머니 귀걸이 맞는 것 같아?”순간, 정루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대박, 얼른 보내줘!”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단박에 알아보았다.바로 이거였다. 외할머니의 귀걸이가 확실했다.집에서 정시연을 입양한 이후로 정루아는 외할머니댁에서 자주 지내곤 했었다.외할머니는 늘 그녀를 품에 안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며 소장한 골동품들을 구경시켜 주셨는데, 그 귀걸이 사진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그건 외할아버지한테서 받은 프러포즈 선물이었다.나중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수십 년 동안 찾아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해 가슴 한구석에 한으로 남은 물건이었다.정루아가 다급하게 말했다.“연희야, 이거 맞아! 어느 경매장에서 올라온 거야? 경매는 언제 시작한대?”이연희가 대답했다.“자세한 일정은 문자로 보내줄게.”“응, 고마워.”내용을 확인해 보니 경매는 바로 사흘 뒤였다.마침 결혼반지를 처분한 돈도 들어올 테고, 정석주와 구태윤에게서 뜯어낸 것까지 합치면 이 귀걸이를 낙찰받기엔 충분했다.그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대충 가방만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그러고는 바로 허도준에게 연락했다.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두 남녀.허도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정루아를 바라보았다.“당분간 이혼 안 하겠다더니, 마음 바뀐 거야?”정루아가 말했다.“응,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그냥 소송하는 게 답이겠더라고. 혹시 지금 시간 괜찮아? 바쁘면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허도준이 싱긋 웃었다.“시간이야 당연히 있지. 내가 알아서 서류 접수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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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정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홀 안을 둘러보다가, 이내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정루아를 발견했다.웬 낯선 남자와 마주 앉아 식사하는 중이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묵묵히 구태윤의 뒤를 따랐다.정루아 역시 구태윤이 들어오는 걸 봤지만, 모른 척 시선을 내리깐 채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였다.“도준아.”하지만 구태윤은 바로 옆 테이블에 떡하니 자리를 잡더니, 허도준에게 아는 체를 했다.고개를 돌린 허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어? 너도 여기 밥 먹으러 왔냐? 이 꼬맹이는 누구...?”그의 시선이 구태윤의 품에 안긴 아이에게 닿았다.“조카야.”구태윤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구하준이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러고는 정루아를 보며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숙모, 안녕하세요...”그 말에 허도준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구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엄하게 말했다.“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야. 나한테 작은아빠라고 하니까, 숙모한테도 작은엄마라고 불러야지.”구하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작은엄마, 안녕하세요.”정루아가 무덤덤한 눈빛으로 아이를 힐긋 쳐다보았다.“이제 나 안 무서운가 보네?”그 말에 구하준은 저도 모르게 구태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구태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정루아를 쏘아보며 한마디 했다.“애 좀 그만 괴롭혀.”“하.”정루아가 냉소를 지었다.그러고는 옆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허도준에게 슬쩍 턱짓했다.“도준아, 저기 좀 봐봐. 셋이 꼭 한 가족 같지 않냐?”허도준이 세 사람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러네.”구태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너, 사는 게 지겹냐?”허도준은 능글맞게 웃어넘겼다.“에이, 틀린 말한 것도 아닌데 뭐. 셋이서 같이 걸어 다니면 십중팔구 한 가족으로 오해할걸? 게다가 이 꼬맹이는 너랑 완전 판박이잖아. 조카라고 안 밝히면 백이면 백, 다 네 친자식인 줄 알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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