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으로, 조용히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녀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단단히 굳어 있었다. 내내 감정의 결을 곱게 다루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을 눌러 담은 채,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며칠 전, 이준의 말 한마디가 내내 마음속을 울렸다."그게… 당신 일이니까요. 원래 그렇게 하시는 거잖아요."그 말은 너무도 조용했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그녀의 내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그에게 내밀었던 따뜻한 손길, 밤마다 아무 말 없이 건넸던 찻잔,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던 마음. 그것들을 단순한 ‘업무’라 칭하는 이준의 무심함은 그녀의 자존을 가늘게 잘라냈다.그 밤 이후, 서윤은 그를 마주하지 않았다. 계약은 그대로였고, 업무 시간은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었고,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줄어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고, 그저 '담당자'로서의 역할만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이준은 그 변화에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서윤이 달라졌다는 걸.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자꾸만 과거를 되짚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그녀에게 익숙해졌는지, 그녀의 손길이 언제부터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그녀가 없으면 이 사무실이 왜 이토록 휑한지.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익숙함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것이 ‘감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엔 그는 여전히 서툴렀다.이진이 그 빈틈을 보았다.“너, 그 사람 놓치면 후회할 거다.”늦은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한 이진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이준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야.”“서윤 씨 말이야. 네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는 그냥 ‘업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그 손길이 생애 처음 받아보는 온기였을 수도 있어.”그 말은 마치 이준의 속을 꿰뚫는 바늘처럼 찔렀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그 자리
Last Updated : 2026-04-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