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병원 복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햇빛은 이미 반쯤 사라지고, 창가 유리 너머로 길게 뻗은 그림자들만이 공간을 나지막이 물들이고 있었다.서윤은 창틀에 팔을 올린 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머릿속은 온종일 이준과 나눈 말들과, 그의 무심한 다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무 말 없이 자신을 찾아와 줬던 그의 발걸음,서점에서 마주친 순간의 공기,그리고 마지막, 손등에 얹힌 손가락의 따뜻함까지.그 순간들이 자꾸 마음을 덮고, 울리며,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켜가고 있었다.그런데“오랜만이네요, 서윤 씨.”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지만, 낯설고 차가운 결을 품고 있었다.서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준과 닮은 얼굴이 서 있었다.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이준이 날 것의 감정과 조심스러운 진심을 품고 있다면,이 남자—이진은 정제된 자신감과 절제된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이진 부사장님.”“기억해 주셔서 다행이네요. 그때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가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던 것 같아서.”그의 말투는 상냥했고, 말끝마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특유의 리듬이 있었다.하지만 서윤은 순간적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그는 분명, 이준과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무슨 일이신가요?”“사실... 오늘은 개인적인 이유로 왔습니다. 병원 일도 아니고, 회사 일도 아니고. 그냥, 사람으로서요.”이진은 스스로의 말을 마무리하며 작게 웃었다.그리고 한 손으로 가볍게 병원 벤치 위에 놓인 꽃다발을 들어 보였다.“이 꽃, 어울릴 것 같아서요.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요즘 동생이 조금 다르게 웃더군요.그 변화가... 서윤 씨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서윤은 그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꽃다발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밀려온 낯선 감정.그 감정은 이준에게 느끼는 조심스러운 호감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어쩌면 더 노련하고, 더 계산된 방식으로 다가
Last Updated : 2026-04-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