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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별전문가! 신나리: Chapter 151 - Chapter 160

195 Chapters

151화. 우리가 서로를 다시 만나는 방법

오전 공기가 차분했다.봄이 한창이었지만,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았다.나리는 커튼을 반쯤 걷고,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었다.출근하는 직장인, 손잡고 걷는 연인,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로 흘러갔다.그녀는 문득 생각했다.‘나는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의 끝만 봐왔구나.’그 생각이 스스로에게 낯설게 느껴졌다.이제는 누군가의 시작을 도와야 할 때였다.책상 위에는 작은 노트북과 상담용 노트, 그리고 첫 번째 상담자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그 사람은 떠났지만, 마음은 아직 여기 있습니다.”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리는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누군가를 떠나보내고도 그 사람이 남긴 감정의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대던 시간들.그때 문이 열렸다.“선배.”수경의 목소리가 들렸다.밝은 베이지색 재킷에 가벼운 향수가 스쳤다.“오늘 상담 있어요?”“응, 오후에 한 건.”“아직 긴장돼요?”“긴장보다… 좀 이상한 기분이야. 새로운 일을 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계속 나.”“그건 아마 선배 마음이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어서일 거예요.”“그럴지도.”나리는 미소를 지으며 수경을 바라봤다.예전엔 늘 무언가를 두려워하던 후배가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요즘 강의는 어때?”“좋아요. 근데, 한 학생이 오늘 묘한 질문을 했어요.”“어떤?”“‘선생님은 누군가를 완전히 잊은 적 있나요?’라고요.”“그럼 뭐라고 했어?”“잊는 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했어요.”“그 답, 괜찮네.”“선배한테 배운 거예요.”“나한테?”“네. 예전엔 선배가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흐름이다’라고 했잖아요.”“그랬었지.”“그 말이 그때는 어려웠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수경은 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그녀의 눈빛이 유리잔에 비쳐 반짝였다.“오늘, 누군가 제 강의 끝나고 이런 말을 했어요. 이별을 배워도 사랑은 여전히 무섭다.그 말 들으니까, 이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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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지금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창밖에는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잔잔하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유리창에 닿아 부서질 때마다, 그 소리가 마음의 어딘가를 건드렸다.나리는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오늘의 상담 예약자, 이름 하유진.나이는 서른둘, 직업은 플로리스트.그녀의 상담 사유는 짧았다.“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그 문장 하나에 이미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나리는 손끝으로 그 문장을 천천히 문질렀다.종이 질감이 거칠게 느껴졌다.이상하게 그 한 줄이, 오래전에 자신이 썼던 일기장 한 구절과 닮아 있었다.‘사랑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그 사람이 내 안에 사는 걸까.’그녀는 눈을 감았다.한동안 잊고 있었던 온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나리야, 사람은 사랑을 끝낼 수 없대. 그저 다른 모양으로 옮겨 심는 거래.”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상담 내용과 겹쳐졌다.문이 열렸다.“선배.”수경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오늘도 상담 있어요?”“응.”“얼굴이 좀… 긴장돼 보여요.”“그냥 평소보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서.”“비슷한 이야기요?”“과거 얘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말이야.”수경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선배는 그런 이야기에 아직도 흔들리세요?”“흔들리지 않으면 사람 아니지.”“근데 선배는 그런 걸 다 이겨낸 줄 알았어요.”“그럴 리가 있나. 이별은 한 번 겪는 게 아니라, 살면서 계속 새로 배우는 거야.”그녀의 말에 수경은 고개를 숙였다.“맞아요. 저도 아직 배워가는 중이에요.”“그래, 그게 사는 거니까.”나리는 커피를 내렸다.수경이 떠난 뒤에도,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잔을 들고 서 있었다.커피 향이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마치 오래된 기억이 다시 피어오르는 듯한 냄새였다.상담실 문이 열렸다.하유진이 들어왔다.길게 묶은 머리, 작은 눈동자, 손끝에 남은 꽃가루 냄새.그녀의 손에는 작은 조화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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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그 사람이 다시 불려진 밤

“온유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죠?”그 한마디가 공기를 멈춰 세웠다.나리는 순간 손끝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탁자 위에 놓인 펜만 바라봤다.그 펜촉 끝에서, 오래전에 꺼내지 못한 숨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상담실에 앉아 있던 하유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그 사람이… 제 첫사랑 이름이었어요.근데 이상하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름만 들으면 아직도 심장이 반응해요.”나리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그녀의 시선이 유진의 눈을 스쳤다.그 순간, 시간의 결이 흐트러졌다.‘온유’그 이름은 여전히 그녀의 세계 안에서 유효했다.“이상한 건 아니에요.”나리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사람은 사랑을 끝낼 때, 이름부터 내려놓는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그럼… 선생님도 그런 이름 있죠?”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입술이 떨렸다.“있어요. 아직도 입 밖으로 꺼내면, 마음이 흔들리는 이름이요.” 유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이름이 아직 선생님 안에 사는 거네요.”“응. 그 사람은 떠났는데, 그 사람이 만든 내가 아직 남아 있어서요.”그 말이 끝나자 둘 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유진의 눈동자가 젖어들었고, 그녀의 손끝이 천천히 무릎 위로 떨어졌다.“그럼 저도 괜찮은 거죠?”“그럼요. 괜찮아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은 아무리 오래돼도, 부끄럽지 않아요.”나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 속엔 알 수 없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상담이 끝나고 문이 닫혔다.나리는 의자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온유.’그 이름이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몇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은 여전히 같은 온도로 그녀 안을 파고들었다.그녀는 눈을 감았다.그때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바닷가, 바람, 그리고 온유의 목소리.“나리야, 언젠가 내가 사라져도, 네가 날 떠올릴 때 웃었으면 좋겠어.”그 말이, 지금 와서 잔인하게 느껴졌다.‘난 아직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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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사랑이 아닌 회복 중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빛이 카페의 테이블 위를 부드럽게 덮었다.나리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잔의 열기가 손바닥을 지나 심장으로 번졌다.그녀는 오래 전 잃어버린 감정을 손끝으로 더듬듯 느끼고 있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젯밤의 대화가 맴돌았다.“너, 다시 사랑해도 돼.”제하의 그 말. 그 단순한 한 문장이 밤새도록 마음 안에서 부서지고 다시 이어졌다.“선배.”문이 열리고 수경이 들어왔다.“오늘도 일찍 오셨네요.”“잠이 안 와서.”“어제는 좀… 힘들었죠?”“응. 조금 흔들렸어.”“상담자 때문이에요?”“그 사람 때문이기도 하고… 나 때문이기도 하지.”수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선배는 늘 강해 보이는데, 가끔은 너무 강해서 슬퍼요.”“그게 무슨 말이야.”“힘들다고 말하는 게 약한 게 아닌데, 선배는 늘 끝까지 혼자 참잖아요.”“누가 그러라고 했거든.”“누가요?”“온유.”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수경은 말없이 선배를 바라봤다.그녀의 눈빛은 평소보다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오래된 슬픔이 스며 있었다.“그 사람은 나한테 강한 사람이 돼달라고 했어. 자기 대신, 세상 앞에서 울지 말라고.”“그럼 지금은요?”“지금은 모르겠어. 이제 울어도 될 것 같기도 해.”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커피 위로 빛이 일렁였다.그 순간 문이 열렸다. 제하였다.“둘 다 여기 있었네.”“왔어?”“응. 커피 향이 문 밖까지 나더라.”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눈빛은 평온하지 않았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흔적이 그의 눈가에 깊게 남아 있었다.“어제…”나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어제 한 말 기억해?”“응.”“그 말… 왜 했어?”“진심이니까.”“그게 진심이었어?”“나리야.”“대답해.”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속에서는 이미 모든 감정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제하는 잠시 숨을 골랐다.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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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사랑과 회복의 사이

새벽 공기가 희미하게 차가웠다.카페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나리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그녀는 커피를 내리며 한 모금 향을 들이켰다.그 향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언제부턴가 커피 냄새가 사람 냄새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어디선가, 누군가와 함께 마시던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어서일지도 몰랐다.“너 다시 사랑해도 돼.”제하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그 단순한 문장이 이상하게 자주 떠올랐다.그 말은 허락이 아니라, 마치 위로처럼 혹은 약속처럼 들렸다.“선배.”수경의 목소리가 들렸다.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종소리가 울렸다.“오늘도 이른 출근이네요.”“이제 거의 살다시피 하지.”“잠은 좀 잤어요?”“글쎄… 눈은 감았는데 마음은 못 잤어.”그녀의 말에 수경이 살짝 웃었다.“그건 선배답네요.”“그게 나한텐 칭찬일까?”“그럼요. 선배는… 늘 다치더라도 누군가를 이해하는 쪽을 택하잖아요.”“이젠 좀 덜 아프고 싶긴 해.”“그래도 완전히 안 아플 순 없어요.”“그건 네 말이 맞다.”둘 사이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 안에는 무언의 위로가 오갔다.수경은 여전히 선배의 마음을 완벽히 알 수 없었지만,그녀가 지금 어떤 파도 속을 건너고 있는지는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수업은 어때?”“오늘은 학생들한테 이런 질문을 던져보려고요. 사랑과 회복, 둘 중 하나만 택해야한다면 뭐가 더 어렵나요?”“좋은 질문이네.”“선배는요?”“나한테는… 회복이 더 어려워.”“왜요?”“사랑은 그냥 오는데, 회복은 노력해야 하거든.”“그 말, 오늘 제 수업에서 써도 돼요?”“써. 근데 인용은 하지 마.”“그럼 제 말인 척 쓸게요.”“그게 더 자연스럽지.”둘은 웃었다.그 웃음은 따뜻했지만, 나리의 마음 어딘가에는 여전히 파도가 잔잔히 출렁이고 있었다.점심 무렵, 제하가 카페로 들어왔다.흰 셔츠 위에 회색 코트를 걸친 채,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찍어도 돼?”“오늘은?”“그냥 공기 좀 찍으려고.”“공기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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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유리문 너머의 자리

밤새 내리던 비가 멈추자,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새벽빛이 유리창에 스며들어 카페 바닥을 부드럽게 적셨다.나리는 커피 머신을 닦으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하루가 시작되는 소리가 익숙했지만, 오늘은 그 익숙함조차 낯설었다.“선배.”문이 열리고 수경이 들어왔다.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이었다.“이 시간에?”“그냥… 집에 있으니까 더 답답해서요.”“그 마음 알아.”“어제 찍은 사진 봤어요.”“응.”“선배 표정이 달라 보였어요.”“달라?”“예전보다 조금… 편안해졌어요. 아니면, 조금 놓은 것 같기도 하고.”그 말에 나리는 잠시 멈췄다.“놓은 게 아니라, 그냥 손에 힘을 잠깐 뺀 거야.”“그게 다르나요?”“달라. 놓는 건 끝을 인정하는 거고, 힘을 빼는 건 버티는 거니까.”수경은 그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선배가 이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세밀하게 읽는 이유가,아마 자신이 그만큼 부서져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선배.”“응.”“이젠 선배도 누군가한테 기대도 돼요.”“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제하 씨는요?”“그 애는 너무 오래 나를 봤어. 그런 사람한테 기댈 순 없지.”“왜요?”“그 사람은 내가 아닌 나를 사랑하니까.”그 말이 떨어지자, 수경의 눈빛이 흔들렸다.“선배… 그 말은 조금 잔인한데요.”“그래. 잔인한 거 알아.”“그래도 제하 씨는…”“알아. 그게 문제야. 알고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게 제일 어렵거든.”그녀는 조용히 웃었다.웃음은 무너진 마음 위에 덮인 마지막 체온 같았다.그 미소가 아파서 수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오 무렵, 제하가 들어왔다.햇살이 그의 어깨 위에 닿았다.빛을 등에 업은 사람처럼 보였다.“촬영 자료 정리하다가 커피 생각나서.”“그 변명 너무 오래 썼다.”“그래도 통하잖아.”“그건 내가 착해서 그렇지.”그의 웃음은 여전했다.하지만 그 안에 묘한 조심스러움이 있었다.그는 그녀의 표정을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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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조용히 멀어지는 사람들

비가 그친 아침, 카페 앞 도로가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밤새 내린 빗물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햇살이 바닥에 부서지며 눈부시게 흩어졌다.나리는 커피를 내리며 천천히 유리창 밖을 바라봤다.습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이어졌다.그녀는 컵을 내려놓았다.손끝에 남은 미묘한 떨림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사랑은 다시 시작하려 하면 늘 이렇게 몸이 먼저 알아차리네.’그녀는 조용히 웃었다.그 웃음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작은 숨이었다.문이 열렸다.“선배.”수경의 목소리가 들어왔다.어깨 위로 얇은 베이지색 카디건이 걸려 있었다.“오늘따라 일찍 왔네.”“오늘은 그냥… 오고 싶었어요.”“커피 줄까?”“괜찮아요. 향만 맡아도 좋아요.”수경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서서 조용히 선배를 바라봤다.그녀의 시선엔 말하지 못한 감정이 엉켜 있었다.“선배.”“응?”“사람은요, 언제 제일 조용해지는 걸까요.”“모르겠는데.”“저는… 이별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을 때인 것 같아요.”그 말에 나리는 커피잔을 닦던 손을 멈췄다.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 있어?”“아니요. 그냥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수경아.”“네.”“이별이 꼭 누군가와의 관계만을 말하는 건 아니야. 때론 자기 자신과의 이별일 수도 있어.”“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아요.”“맞아. 그건 익숙한 나를 놓아야 하니까.”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선배는요?”“나?”“요즘은 어떤 상태예요.”“글쎄… 살아있다고 느껴.”“그거면 충분한 거죠?”“지금은 그게 제일 큰 일이야.”그녀의 말에 수경은 잠시 웃었다.그 웃음이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나리는 그 표정을 본 순간 묘하게 마음이 불안해졌다.“수경아.”“응?” “너 요즘 표정이 달라. 무슨 생각 많지?”“그냥요. 사람이 언젠가 자리를 비워야 할 때가 있잖아요.”“그게 지금이야?”“아직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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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이제야, 진짜 나리로

“버리진 않아도 돼. 그냥, 자리를 옮기면 되잖아.”그의 말이 묘하게 따뜻했다.나리는 그 말의 의미를 금세 알아차렸지만,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쓴맛이 혀끝을 스쳤다.그 쓴맛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제하야.”“응.”“수경이 떠나니까, 이 공간이 좀 다르게 느껴져.”“어떻게.”“공기가 느려진 것 같아.”“그건 우리가 말을 아껴서 그래.”“말을 아끼는 게 나쁜 건가.”“아니. 사람이 서로를 알아갈수록 말은 점점 줄어들잖아.”“근데 그게 무서워.”“왜.”“말이 줄면 마음도 멀어질까 봐.”“아니. 그건 오히려 가까워진다는 뜻이야.”그녀는 잠시 눈을 들었다.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따뜻했고, 어딘가 불안했다.마치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조차 놓칠까 봐 조심스러운 사람처럼.“넌 왜 그렇게 날 잘 알아.”“모르겠어. 그냥, 네 표정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더라.”“그건 안 좋은 거야.”“왜.”“숨길 여유가 없어지니까.”그녀는 시선을 돌렸다.창문 밖에는 아직 이른 새벽의 어둠이 깔려 있었다.그 어둠 속에서 거울처럼 반사된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짝 짚었다.“이상하지.”“뭐가.”“이렇게 조용한데, 자꾸 심장이 시끄러워.”그 말에, 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대신 조용히 그녀의 앞에 컵을 밀었다.그 안엔 그녀가 좋아하던 진한 블렌드 커피가 담겨 있었다.“마셔. 오늘은 좀 달게 타봤어.”“너답지 않게.”“가끔은 변해봐야지.”그녀는 커피를 들었다.입술이 잔에 닿는 순간 그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그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쳤다.“달다.”“괜찮아?”“응. 근데 너, 왜 이렇게 조용해졌어.”“그냥, 네가 너무 예뻐서.”그녀는 웃었다.웃음이 잠깐 흘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그 말이 장난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런 말 쉽게 하지 마.”“쉽게 안 했어.”“그럼 어렵게 한 거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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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새로운 의뢰, 같은 마음

햇살이 부드럽게 창문을 스쳤다.이른 오전의 카페는 고요했다.에스프레소 머신이 예열되며 내는 낮은 진동음이 공기 속에서 잔잔하게 퍼져나갔다.나리는 그 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듯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테이블 위에는 작은 노트북 한 대와 그녀가 손으로 직접 적은 메모들이 흩어져 있었다.‘감정 회복 컨설팅 1호 의뢰자 - 이지현(35).이별 후 8개월, 직장인, 미완의 감정 상태.’그녀는 노트를 덮었다.그 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미묘하게 저렸다.‘이제 진짜 시작이네.’문득, 카운터 옆에 놓인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제하의 것이었다.그녀는 카메라를 손에 들어 조심스레 무게를 느꼈다.렌즈를 바라보는 순간, 어제와 오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졌다.그때, 문이 열렸다.“좋은 아침.”제하였다.회색 티셔츠 위에 가벼운 셔츠를 걸친 모습,머리카락엔 아직 아침 햇살이 얹혀 있었다.“일찍 왔네.”“네가 불렀잖아.”“커피 마시러 온 줄 알았는데.”“오늘은 일하러 왔어.”“일?”“감정 회복팀, 제1조. 감독 겸 조력자.”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그런 직함을 줬대.”“나.”“자기 임명?”“응. 자격은 충분하잖아.”그의 농담 같은 말투 속에 어딘가 단단한 진심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눈을 돌리며 작은 숨을 내쉬었다.“그래, 그럼 오늘은 일 파트너네.”“좋아. 그럼 회의하자.”“회의?”“첫 의뢰자 브리핑.”그녀가 메모를 건네자, 제하는 그것을 잠시 읽었다.“이지현 씨… 8개월째 후유증 상태.”“응. 헤어진 이유는 단순했는데, 마음이 아직 거기서 멈춰 있대.”“단순한 이유?”“서로에게 맞지 않았다. 그 말 뒤에 숨어버린 감정들이 문제지.”“그래서 우리가 나서는 거고.”“응. 이제부터는 ‘이별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줄 거야."그녀의 말이 끝나자, 제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그 말, 너한테도 해당되는 거 아냐?”그녀는 눈을 깜빡였다.“무슨 뜻이야.”“너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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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사랑 때문에 다시 걷는다

카페 안의 공기가 따뜻했다.봄의 마지막 잔향이 남아 있는 듯,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테이블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나리는 커피를 내리며 향을 맡았다.오늘은 유난히 커피 향이 달게 느껴졌다.어제보다 조금 더 살아 있는 기분.그게 요즘 그녀가 매일 느끼는 작은 변화였다.“선배.”문이 열리며 수경의 목소리가 들렸다.여전히 그녀의 말투엔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오랜만에 카페 냄새 맡으니까 이상하죠?”“응. 아직 손끝에 익숙하긴 해.”“오늘은 강의 없어요?”“쉬는 날이에요. 그냥, 커피가 마시고 싶었어요.”나리는 반가운 듯 웃었다.“잘 왔네.”“근데… 여전히 여전하네요.”“뭐가?”“이 공간이요. 사람 냄새가 진해요.”수경의 눈빛이 카페 구석구석을 훑었다.그녀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저, 사실 내일부터 연구휴직이에요.”“그래?”“조금 멀리 다녀오려고요. 일단 도쿄로.”“도쿄?”“네. 일본에서 감정치유 워크숍이 있어서요.3개월 정도.”그녀의 미소는 단단했다.“잘 됐다. 너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았어.”“선배 덕분이에요. 저도 이제 제 감정의 언어를 만들어보고 싶어서요.”“그 말 멋지다.”“선배가 시작하게 한 거잖아요.”그 짧은 대화 안에 세월의 온도 같은 게 느껴졌다.둘 다 서로를 향한 존중이 깊었다.이젠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같은 길 위의 사람들로.수경이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제하였다.손에 들린 USB가 보였다.“오늘 시사회 준비했어.”“드디어 완성했네.”“응. 편집 다 끝났어. 근데 네가 봐줘야 돼.”“내가?”“이건 우리 팀 이야기잖아.”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늘 끝나면 같이 봐.”오후 3시. 나리는 지현의 두 번째 상담을 시작했다.카페 한쪽 구석, 따뜻한 조명이 내려앉은 자리였다.지현은 지난번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깊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그 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요즘, 그 사람의 꿈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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