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별전문가! 신나리: Kapitel 1 – Kapitel 10

28 Kapitel

1. 끝내야 시작된다

유리창을 타고 내려온 빗줄기가 막 그친 뒤라 거리는 씻긴 듯 말갛고, 카페 문을 여는 순간 퍼지는 따뜻한 우유 냄새가 목울대를 가볍게 적셨다. 종소리가 한 번 흔들리고 고요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창가에 앉은 여자가 나를 향해 몸을 반쯤 일으켰다. 얇은 손가락이 머그컵을 꼭 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우산을 접어 문 옆에 세우고, 앞치마를 매는 바리스타를 스치듯 지나 그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그냥… 나리라고 부르면 돼요.”이름을 짧게 건네자 여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민하. 스물아홉.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하기 위해, 표정을 평소보다 한 겹 더 단단하게 닫아둔 얼굴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한 번 눌러 다잡더니 문장을 한 톨씩 꺼냈다. 아버지 회사가 지난주에 무너졌고, 집안의 통장들이 동시에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으며, 예비신랑은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고.“알면 분명히 말릴 거예요. 같이 갚자고 하겠죠. 그 사람은 늘 그런 식이에요.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말끝에 미안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게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본인도 분간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나는 메모장을 펼쳤다가 곧 덮었다. 적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 묵으면 스스로 모양을 갖추는 것들.“그래서, 그만두고 싶다… 그 얘기죠?”민하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나쁜 사람으로 남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착한 척하다 같이 가라앉고 싶지도 않고요. 어떻게 해야 덜 망가질 수 있을까요? 저도, 그 사람도.”“두 사람 모두 살아남는 길을 찾는 게 제 일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가 먼저 손을 놓도록 유도하되, 당신 손에는 흠집이 나지 않게.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을 모두 숨기자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보이자는 뜻이기도 해요. 괜찮겠어요?”민하는 과감하지 않은 고개짓으로 천천히 동의했다.그녀의 동의는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던 아이가 아닌, 스스로를 설득한 어른의 움직임이었다.그 순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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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녕을 위한 리허설

점심 무렵, 회사 주변 카페의 공기는 갓 내린 샷의 향과 사람들의 일정으로 바쁘게 진동했다. 앞치마를 묶고 카운터에 서자 손동작이 금세 일의 리듬을 찾아갔다. 설탕 두 스푼은 줄이고, 거품은 어제보다 살짝 더 가볍게. 문이 열릴 때마다 종이 울렸고, 열 번째 종 뒤에 도윤이 들어왔다. 단골의 동선으로 카운터에 섰고, 무심하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오늘은 조금 달게 가보실래요?”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봤다.“아침에 단단히 달리셨잖아요. 몸이 당을 찾고 있어요.”웃음이 한쪽 입가에 살짝 걸렸다. “정확하네요.”“오늘만 예외.” 나는 더티초코를 내밀며 재빨리 별 모양 시나몬을 그렸다. “내일부터 다시 고지식하게 쓰게 가셔도 되니까요.”첫 모금 뒤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는 변화에 호의를 갖는다. 축하 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레 결혼 얘기를 꺼내자, 그의 눈빛에서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반짝였다 사라졌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장면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해가 기울 무렵, 민하의 집은 서랍 하나만 열려 있어도 마음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카드가 한쪽으로 밀려 있고, 계약서 모서리에 손톱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물컵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결혼식 말고,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뭐예요?”민하는 오래 침묵했다.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바른 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의 침묵.“빚이 없는 내일.”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내일은 누군가가 대신 떠받치는 미래가 아니어야 해요. 당신 스스로 서는 내일. 오늘 우린 그걸 배우는 첫날이에요.”“이별은… 누가 대신 말해줄 수 있나요?”“말은 대신할 수 있어요.” 나는 단호했지만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그 말 이후의 생활은 누구도 대신 못 해요. 연락 끊는 법, 공동 지인 대응, 가족 설득, 재무 동선 정리, 주거 계획. 설계도를 함께 만들죠.”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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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놓게 만드는 법

강바람은 아침마다 강 위에 얇은 주름을 새겨놓았다. 햇살은 물결을 따라 반짝이며 달리는 이들의 땀방울과 뒤섞였다. 그 무리 속에서도 한 남자의 모습은 단숨에 눈에 들어왔다. 달리는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고, 마치 누군가의 눈금에 맞추듯 일정한 속도로 호흡을 정리했다. 민하의 예비신랑, 도윤이었다.제하는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리고, 오래 바라본 뒤 낮게 중얼거렸다. “예상대로군. 이런 사람은 책임과 죄책감을 구분하지 못해요.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끝까지 매달리거든.”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웅담을 만들어주면 안 돼. ‘내가 떠나야 저 여자가 산다’라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우리가 멈춰야 둘 다 살아남는다’는 현실을 보여줘야 해.”한강 위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이 흩날렸다. 도윤은 물을 한 모금 삼키고 다시 출근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흐트러짐 없는 뒷모습이 오히려 위태로워 보였다. 누구보다 견고해 보이지만, 그 견고함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더 크게 부서지는 법이니까.정오 무렵, 회사 주변의 카페에 들어선 나는 가볍게 앞치마를 걸쳤다. 커피머신이 뿜어내는 김과 원두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작은 종소리가 손님들의 리듬을 끊임없이 바꾸어 놓았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도윤이 들어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나는 짧은 숨을 고른 뒤 부드럽게 제안했다.“오늘은 조금 다른 걸 드셔보시면 어떨까요? 아침에 달리셨잖아요. 몸이 단 걸 찾고 있어요.”도윤은 순간 놀란 눈빛을 띠었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정확하시네요. 늘 같은 것만 마시다 보니, 다른 걸 권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나는 따뜻한 초코 음료 위에 시나몬을 별 모양으로 뿌리며 건넸다. “오늘만 예외예요. 내일부터는 다시 규칙대로 돌아가셔도 되죠.”그는 잔을 받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삼켰다. 달콤한 맛이 혀끝에 번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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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장 빛나는 자리를 비워두고

오후의 햇살이 유리창을 비스듬히 스치며 카페 안쪽으로 들어왔다. 빛은 테이블 위에 길게 눌린 물결처럼 번졌고, 그 위에서 잔에 담긴 얼음은 서서히 녹아내리며 부드럽게 울음을 흘렸다. 나는 가장 빛이 고운 자리를 비워두었다. 사람이 앉지 않은 빈 의자가 오히려 준비된 무대처럼 보였다.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걸음이 들어섰다. 도윤이었다. 평범한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 매무새가 단정했다. 어제와 달리 이번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초코 음료를 주문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몸짓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은 늘 짧고 미묘하다. 그는 곧장 창가에 앉았다. 마치 자신이 그곳에 앉을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준비된 자리에 제자리를 찾아온 배우처럼.문이 다시 열리고, 다른 기척이 들어왔다. 오늘은 메이크업도 헤어도 힘을 빼고 나온 민하였다. 단정한 셔츠 대신 후드티 차림, 손가락에 걸린 작은 액세서리조차 없는 모습. 어쩌면 본래의 민하일지도 모른다. 꾸밈을 벗어낸 얼굴은 방어막이 아닌 솔직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는 듯 카운터에서 물 한 잔을 주문하고 근처 자리에 앉았다.나는 흘끗 도윤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무심한 척했지만, 시선이 순간 흔들렸다. 말없이 누군가의 모습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흔적이 남는다. 민하는 휴대폰 화면을 켜고, 몇 차례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입술이 떨리는 순간마다 긴 문장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우연히 지나치는 풍경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된다.나는 카운터에서 컵을 정리하다가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 목소리는 낮았고, 눈빛은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어른에게 묻듯 불안했다.“헤어짐을 준비하는 사람은… 뭐부터 해야 하나요?”그 순간, 주변의 소음이 파도처럼 멀어졌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자기 목소리를 확인하는 게 먼저예요. 남의 목소리가 아니라.”“그게… 들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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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말이 입술에서 떨어지기까지

강변을 따라 노을빛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낮 동안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모두 흘러가 버린 듯, 둔치는 차분하게 고요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길게 늘어선 그림자를 드리우자, 바람은 더 차갑게 불어왔다. 이곳이 바로 내일의 무대였다. 오늘은 연습이었고, 내일은 결말을 찍는 촬영이 될 터였다.나는 오래된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쳐 들었다. 파란 펜으로 적힌 글씨들은 모두 계획표였다. 시간, 동선, 대사처럼 남아서는 안 되지만 결국 머릿속에 꼭 남아야 하는 것들. 펜 끝을 따라가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오늘의 연습이 흔들림 없을 때, 내일의 장면이 완벽해진다.민하는 내 옆에서 손을 모으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그녀의 손가락 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눈동자는 여전히 불안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표정에는 결심이 묻어 있었다. 말없이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의 결정을 품고 있을 때, 그 기운이 표정에 묻어나기 마련이다.“오늘은 리허설이에요.” 나는 노트를 덮으며 조용히 말했다. “내일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면, 그땐 실제로 부딪혀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당신이 먼저 말하는 게 아니라 그가 스스로 그 말을 꺼내게 만드는 거예요.”민하는 고개를 들었다. “만약 그가 끝내 말하지 않으면요? 만약 버텨낸다면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상대의 무게가 달라지는 순간을 느껴요. 당신이 오늘과 다르게 보여주기만 해도, 그는 스스로 깨닫게 될 거예요. 사랑이 의무로 변해 있다는 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자, 제가 도윤이라고 생각해요. 한번 해볼까요?”민하는 입술을 물고 잠시 망설였다가, 낮게 속삭였다.“우리… 여기까진가 봐.”그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분명했다.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일은 그 말이 당신 입에서 나오면 안 돼요. 당신은 그저 준비된 표정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가 먼저 내뱉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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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녕을 리허설합니다

노을의 막이 내리자 강가의 색은 금빛에서 서서히 은빛으로 변해갔다. 해가 사라진 자리에는 가로등의 둥근 불빛이 달처럼 하나씩 매달렸고, 바람은 저녁 내내 같은 방향으로 불면서 물결의 가장자리를 은근히 뒤집었다. 우리가 마지막 장면을 찍기로 정한 벤치는 낮 동안 데워진 온기를 겨우 지키고 있었고, 검은 난간에는 누군가 남겨둔 손바닥만 한 물 얼룩이 느릿하게 마른 흔적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벤치 앞에 서서, 혹시라도 흐트러질지 모를 표정을 고쳐잡았다. 오늘, 누군가의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꺾인다. 그러니까 모든 움직임이 과하지 않게, 그러나 선명해야 했다.민하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밀어 넣고, 한쪽 어깨에만 걸친 코트깃을 매만지며 숨을 천천히 정리했다.달빛이 켠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낯설게 맑아 보였다. 울 준비를 하는 얼굴이 아니라, 다짐을 마친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가까이 서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야 했다. 그림자는 몸을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빛의 각도를 맞춰 서 있을 뿐이다.멀리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강둑을 가볍게 두드렸다. 익숙한 보폭, 균일한 호흡. 도윤이었다. 그는 러닝을 마친 뒤라 숨이 조금 가빴지만, 걸음을 멈추는 위치를 정확히 잡았다. 벤치에서 두 걸음쯤 떨어진 곳. 우리가 어제 정리해둔 거리였다. 그는 물병을 들어 목을 축이고, 약간의 침묵을 두른 채 민하를 바라보았다.“오늘은 유난히 춥네.”그가 먼저 입을 연 말은 감상에 가까웠다. 이런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는 대체로 사람을 진실 쪽으로 데려간다. 민하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한 박자, 두 박자, 침묵이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들의 어깨선과 시선의 높이를 번갈아 보았다. 언젠가부터 알게 된 사실인데, 헤어짐의 문장은 얼굴보다 어깨에서 먼저 떨어진다. 기댈 곳을 잃은 몸이 가장 먼저 알아듣는다.도윤이 물병의 뚜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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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안하지 않은 내일

-왜 지금이냐?-다른 사람 생겼냐?-결혼식 취소에서 오는 비용은 어떻게 할 거냐?-그의 부모님께는 누가 연락하냐?“답은…”“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져요.” 민하가 스스로 정리해 나갔다. “다른 사람은 없고, 서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고, 비용은 제가 감당할 몫은 감당하고 최대한 정중히 협의할 거고, 그의 부모님께는 직접 연락드릴 거예요.”나는 마지막 줄을 굵게 밑줄 그었다. “좋아. 두 번째, 공통 지인. 단체 채팅방은 잠시 알림 꺼두고, 개인 연락만 정중히 응대. ‘우리 둘 다 괜찮다’는 메시지를 통일해서.”“문장은 이런 게 좋을까요? 오래 고민했고, 서로의 미래를 위해 정중히 인사드려요. 저희는 각각의 자리에서 잘 지내겠습니다.”“완벽해. 세 번째, SNS. 오늘 밤 비공개 전환, 내일 오후쯤 사진 정리. ‘삭제’ 대신 ‘아카이브’로.”“응.”“네 번째, 물건 분배. 집 열쇠와 중요한 서류는 오늘 전달 완료. 선물과 기념품은 보관한 뒤 한 달 후 다시 보기. 그때도 마음이 같다면 나누거나 돌려주기.”“한 달 유예.”“맞아. 급히 비우면 구멍이 크게 남아.”민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흰 김이 여전히 잔의 입구에서 얇게 피어올랐다. “나리 씨.”“네,:..”“오늘 이 장면… 제가 평생 잊을 것 같지 않아요. 근데 이상하게 그게 싫진 않아요.”“사람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보다, 가장 단정했던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해요. 오늘 우리는 단정했어요.”“단정.” 그녀가 그 단어를 한 번 더 흉내 내듯 입술로 굴렸다. “좋다.”문을 열고 나갈 때, 제하가 바깥에서 들어오다가 우리를 맞닥뜨렸다. 그는 상황을 한눈에 읽고, 내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민하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수고하셨어요.”민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차… 더 마실래요?” 제하가 제안했다.“괜찮아요.” 민하가 웃었다. 오늘은 혼자 걸어가고 싶어요. 혼자 걷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거든요.”“집까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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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끝난 자리, 다시 열리는 문

새벽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방 안을 서늘하게 적셨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젯밤 민하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울지 않았어요.그 짧은 문장 안에 그녀의 결심과 눈물이 다 담겨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베개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녀가 스스로 마무리해야 하는 마지막 날.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감시도, 조종도 아닌 단지 동행뿐이었다.아침 공기가 유난히 날카로웠다. 강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은 얼어붙은 흙 위에 단단히 박혔다. 민하는 일찍 나와 있었다. 검은 코트를 여미고, 고개를 들며 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정리된 결심을 품고 있었다.“어제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놀라셨지만, 오래 묻지는 않으셨어요.”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오히려 제가 울지 않으니까, 두 분이 더 울더라고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예상치 못한 강인함 앞에서 무너져요. 그게 부모든, 연인이든.”잠시 후 도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보다 걸음이 느리고, 표정은 한결 고요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멀리서도 민하의 존재를 인식했고, 다가오며 웃었다.“오늘은 얘기 많이 안 해도 될 것 같아.”민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최소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이미 많은 것이 정리되고 있었다.그 순간, 내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 없는 번호. 잘 지내지? 단 네 글자였다. 심장이 순간 움찔했지만, 나는 바로 화면을 꺼버렸다. 지금은 나의 과거가 아니라 민하의 현재가 더 중요했다. 온유의 그림자가 이 순간을 덮게 할 수는 없었다.두 사람은 오래 서 있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듯 자연스럽게 “안녕”이라는 인사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민하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천천히 놓았다. 그리고 뒤돌아 서서 강둑을 따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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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당신의 호흡을 찾아서

바람이 유리창 표면을 얇게 긁고 지나가던 오후, 카페 안쪽은 뜨거운 샷과 따뜻한 우유 냄새로 적셔져 있었다. 한쪽 벽면의 시계 초침이 분명한 소리로 나아갈 때마다, 내 머릿속 계획도 그와 같은 간격으로 정렬되었다. 오늘은 수경의 첫 관찰. 말끝이 매끄럽게 닫히는 사람일수록 행동의 기척이 더 느리게 드러난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길게 들어왔다. 갈색 코트의 여자가 스카프를 두 손으로 풀며 들어섰다. 수경은 어제와 같은 단정함이었지만, 눈동자의 결이 더 얇아져 있었다. 밤새 잠이 얇았다는 신호다. 나는 주문대 너머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제하는 주방 뒤쪽에서 시선을 잠깐 들어 그녀를 스캔하더니 다시 낮추었다. 말 없는 합의가 우리 셋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따뜻한 라떼로 부탁드릴게요.”수경의 목소리는 우아했지만 끝이 조금 빠르게 닫혔다. 사람은 불안할 때 문장을 서둘러 마친다. 나는 컵을 예열대에 올려놓고 물었다.“오늘 일정 전부 끝내고 오셨어요?”“아니요. 중간이에요. 다 끝내지 못할 일들이 있어도, 오늘은 여기 오는 게 먼저였어요.”“잘하셨어요.” 나는 웃으며 우유 거품을 올렸다. “가끔은 우선순위를 자기 쪽으로 당겨놓는 게, 모든 관계를 덜 망가뜨리는 방법이거든요.”라떼를 건넨 뒤, 나는 바쁜 척 컵받침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어디로 앉는지 지켜보았다. 창가에서 두 번째 테이블. 등 뒤로 낮은 음악이 흐르고,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오후 햇살이 테이블 모서리에 네모난 금빛을 놓았다. 수경은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잦아들자 비로소 그녀는 휴대폰을 열고 뭔가를 확인했다.“그 남자, 곧 올까?” 제하가 아주 낮은 소리로 물었다.“오늘은 아니야.” 나는 머그잔을 닦으며 속삭였다. “그의 루틴 표, 아직 반쪽밖에 못 채웠거든. 먼저 그녀의 리듬을 알아야 해.”“좋아. 그럼 ‘안심 루트’부터 잡자.”“응. 퇴근길 동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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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별의 디테일

“이별에도 이렇게 생활 매뉴얼이 있군요.”“안전이 연애보다 먼저라는 규칙이 있죠.”현관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리 씨.”“네.”“오늘 걷는 동안… 제 마음이 잠깐 멈춘 것 같았어요. 그 정지 버튼을 누른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지금 누르셨어요. 스스로.”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고마워요.”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길가에 잠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희미했고, 구름은 얇았다. 히터도 켜지지 않은 바람이 목덜미를 비집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익숙한 공백. 이름 없는 번호. 오늘도 잘 지냈지?한 문장씩 길이가 달라지는 게 이상했다. 처음엔 미안하다, 다음엔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안부. 누군가의 망설임이 숫자처럼 늘었다 줄었다. 제하의 말이 떠올랐다. ‘내일 아침까지 네가 답하지 않으면, 멈출 확률이 높다.’ 나는 그대로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심장은 여전히 조금 빨랐지만, 발걸음은 일정했다. 지금은 일의 시간이었다.카페로 돌아왔을 때, 제하는 이미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지도 앱에는 점들이 촘촘히 찍혀 있었고, 주황색 선이 오늘 우리가 걸은 길을 얌전히 따라가고 있었다.“골목 두 군데, 조도 낮음. 편의점 코너로 우회 추천.”“좋아. 엘리베이터는?”“7층 디폴트. CCTV 사각지대 없음. 대신 1층 로비 기둥 뒤쪽이 그늘. 밤에는 조심.”나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그 옆에 걸터앉았다. “그는 지금 전화와 메시지를 계속 보냈어.”“간격?”“30초 단위로 5회.”“의존형 패턴. 야간에 과호흡 올 확률 높음.”“내일 낮 2시, 카페에서 대면. 내가 뒷좌석에서 감시.”“오케이.”우리는 말없이 화면 속 지도와 일정표를 한 번 더 훑었다. 일은 늘 이렇게 생활과 겹쳐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작아지는 만큼, 우리의 디테일이 커져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별은 가장 약한 쪽을 먼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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