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었다.하늘은 아직 흐릿했고, 공기 속엔 비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나리는 커피를 내리며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오늘은 유난히 손끝이 차가웠다.‘몸이 아니라 마음이 긴장하고 있는 거겠지.’그녀는 스스로를 달래듯 속삭였다.문이 열렸다.“선배, 박채린 씨 도착했어요.”수경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응. 들어오시게 해.”“선배, 혹시 오늘은 제가 먼저 얘기 시작해도 될까요?”“좋아. 네가 오늘 진행 맡아.”“진짜요?”“응. 네 감정으로 부딪혀봐.”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네가 성장하는 방법이야.”박채린은 지난번보다 훨씬 차분한 얼굴이었다.검은 셔츠에 짧은 머리, 눈가에는 여전히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그 속에 조금의 평화가 비쳤다.“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수경이 먼저 손짓했다.“오늘은 어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그날… 마지막 통화요.”“남편분과요?”“네. 그날 다퉜어요. 아주 사소한 말이었는데,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죠.”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그때 제가 말했어요. 당신이 없어도 난 괜찮아.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질 않아요.”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리의 숨이 멈췄다.그 문장. 그 익숙한 말투.그건 그녀 자신이 과거에 온유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나, 너 없이도 괜찮을 것 같아.”그녀의 머릿속에 그날의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온유의 표정, 그 짧은 정적, 그리고 그 후의 침묵. 그녀는 손끝을 꼭 쥐었다.수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말을… 후회하세요?”“후회보다, 그때 그 말을 왜 했는지조차 모르겠어요.”“아마, 그 말로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걸 거예요.”“지키려고 한 게, 결국은 무너뜨렸어요.”박채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사람이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라 매일 다시 시작이더라고요.그 사람이 없다는 걸 매일 새로 확인하는 게.”그 말에 수경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그 감정,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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