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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전문가! 신나리의 모든 챕터: 챕터 131 - 챕터 140

146 챕터

131화. 무너지는 선

저녁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웠다.낮 동안 쏟아진 햇빛이 식어가는 자리에서 바람은 축 처진 잎사귀를 끌고 다녔다.카페 유리문에 걸린 종이 팻말이 살짝 흔들렸다.Open 쪽이 Closed로 천천히 넘어가듯, 세 사람의 하루도 그렇게, 조용히 경계선을 넘어가고 있었다.나리는 커피잔을 닦으며 생각했다.‘언제부터였을까. 이 일이 이렇게 조용한 싸움이 된 게.’사람의 감정을 정리해주는 일이라 믿었는데,요즘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보낸 사람: 수경“선배… 저, 의뢰인 만나고 있어요.”그 한 줄이 나리의 손끝을 멈추게 했다.“제하야.”“응?”“수경이 또 의뢰인 만나고 있대.”“오늘은 일정 없었잖아.”“그러니까.”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제하의 눈빛이 금세 굳어졌다.“이건 안 좋아. 지난번에도 혼자 움직이다가 감정선 무너졌잖아.”“나도 그 생각했어.”나리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안 받아.”“위치 공유 돼 있지?”“응.”그녀는 지도 앱을 켰다.“호텔 앞이네.”“호텔?”“‘마레 그린 호텔’… 1층 로비 근처.”“의뢰인이 거기라면…”“응, 상황 안 좋아.”둘은 말없이 자리를 나섰다.호텔 로비.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수경의 모습이 낯설게 보였다.그녀는 의뢰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남자는 중년,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그의 얼굴엔 묘한 여유가 깔려 있었다.나리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이건 감정선의 문제 아니야. 권력 관계야.”“뭐?”“저 남자, 의뢰인을 가장한 관찰자야. 우릴 시험하려는 타입.”수경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녀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그만하세요. 이별을 도와준다니, 우습네요. 결국 감정 팔아 돈 버는 거잖아요.”“그게 아니라”“아니면 이렇게 하죠.”그의 시선이 수경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당신이 날 설득해봐요. 이별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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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선의의 죄, 살아가는 벌

새벽 공기가 묘하게 불안했다.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하늘 아래 도시가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꺼질 때쯤, 나리는 잠에서 깼다.밤새 뒤척였는지, 이불이 바닥으로 반쯤 흘러내려 있었다.머리맡엔 미처 지우지 못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제하: “나 오늘은 네 옆에 있고 싶었다.”그 문장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그냥 핸드폰을 엎어놓았다.창밖으론 아직 잔비가 내리고 있었다.“오늘은 버텨야 해.”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카페 문을 열자, 수경이 먼저 와 있었다.평소보다 얼굴이 창백했다.“선배…”“왔네.”“저… 연락 받으셨어요?”“무슨 연락.”“협회에서요. 윤리위원회 소집 통보요.”“무슨 소집?”“제가 지난 의뢰인과 개인적 관계를 맺었다는 제보가 들어갔대요.”그 말에 나리의 눈빛이 굳었다.“개인적 관계라니.”“그분이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근데 그걸 제가 답장했어요.”“답장?”“그냥 ‘응원해요’라고 한 줄 썼어요. 근데 그게 문제래요. 감정 개입으로 간주된다고…”수경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그 사람, 언론 쪽 사람이었어.”“기자야?”“아니요. 협회 쪽 이사였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제하가 들어와 둘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무슨 일인데.”“수경이 윤리위 소집됐대.”“왜?”“감정 개입으로.”“설마.”“설마가 아니야.”제하가 수경을 바라봤다.“너, 무슨 짓을 한 거야.”“전 진짜 그런 의도 아니었어요. 그분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냥…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어요.”“그게 더 위험해.”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이 일에서 위로는 칼날이야. 한쪽을 살리면, 다른 쪽은 베이거든.”수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럼 제가 잘못한 건가요?”“아니.”나리가 끼어들었다.“그건 잘못이 아니라, 미숙함이야.”“선배…”“사람의 감정에 손을 대면, 그게 상처인지 위로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아. 지금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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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선이 흐려지는 밤

바람이 유난히 거칠었다.간판이 흔들렸고, 골목 끝마다 낙엽이 쓸려 다녔다.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눅눅했다.나리는 카페 문을 닫으면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이상하게, 사람의 감정도 날씨를 닮아 있었다.오늘은 분명 무너질 날이었다.핸드폰 진동이 울렸다.보낸 사람: 수경“선배, 기사 났어요.”그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손끝으로 화면을 스크롤했다.[단독] ‘이별전문가’ 팀, 감정 개입 논란 재점화 -내부 윤리 위반 제보사진은 흐릿했지만, 수경의 모습이 있었다.카페 앞에서 찍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사진.그 밑에 적힌 문장들이 칼날처럼 눈을 찔렀다.“감정의 전문가들이 감정에 무너졌다.”“대표 신나리, 제자 보호 명목으로 침묵 중.”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심장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문이 열렸다. 제하가 들어왔다.“봤지?”“응.”“또 터졌어.”“이번엔 정확히 겨눴네.”“우리 세 명 다 이름 나왔어.”“수경은?”“기사 보고 울고 있겠지.”나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지금은 울 시간도 없어.”“무슨 뜻이야.”“기자한테 직접 전화할 거야.”“미쳤어?”“아니. 이번엔 도망 안 가.”그녀는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짧게 울리다가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신나리 씨죠?”“네.”“기사 보셨죠?”“봤어요.”“정정 요청하려고요?”“아니요. 직접 인터뷰하죠.”“지금요?”“지금요.”“위험할 텐데.”“진심은 위험할수록 선명해요.”전화를 끊자 제하가 말을 잇지 못했다.“너 지금 제정신이야?”“정신이니까 하는 거야.”“그 기자, 지난번에 너 찔렀던 놈이야.”“그래서 더 나가야 해.”“이번엔 너 혼자 못 가.”“제하야”“나랑 같이 가.”그녀가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엔 단단한 확신이 있었다.결국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자와의 인터뷰는 강남의 작은 바에서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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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버틴 사람들의 마침표

비가 그친 아침, 공기는 이상하게 텅 비어 있었다.창밖의 하늘은 밝았지만, 그 밝음이 차갑게 느껴졌다.마치 세상이 너무 조용해서 불안한 날처럼.나리는 카페 문을 열었다.며칠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기자들이 매일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 문 앞이,이젠 그냥 바람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되어 있었다.“선배.”수경이 먼저 와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이거… 협회에서 왔어요.”“벌써?”“오늘 오후 두 시, 조사 시작이래요.”“시간 안 줬네.”“네.”나리는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그녀의 손끝이 약간 떨렸다.“너한테도 왔지?”“네. 저, 가야겠죠?”“당연하지. 근데 이번엔 내가 같이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왜요?”“이번엔 나도 조사 대상이야.”그 말에 수경의 얼굴이 굳었다.“선배까지요?”“응.”“이건 말도 안 돼요. 전 제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선배까지…”“그만.”나리는 고개를 숙였다.“이건 우리 일이지, 네 일만 아니야.”그녀는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감정은 같이 일했잖아. 그러면 책임도 같이 져야지.”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수경은 아무 말도 못 했다.그저 “죄송해요” 대신 고개를 숙였다.그때 문이 열렸다. 제하가 들어왔다.“둘 다 얼굴이 왜 그래.”“오늘 조사 통보 받았어.”“...그럴 줄 알았다.”“너한텐?”“왔지.”“너도 포함이야?”“응. 이번엔 우리 셋 다야.”나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이제 진짜 끝이 보이네.”“끝이라니.”“이 일, 이렇게 끝날지도 모르잖아.”“아니. 끝이 아니라 변할 거야.”“변하면 뭐가 남아.”“사람.”그 말이 어딘가 익숙했다.그건 늘 그녀가 하던 말이었다.이번엔 제하가 대신 말했다.그녀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가 오래가지 않았다.수경이 조심스레 물었다.“선배, 만약 협회에서 팀 해체하라고 하면…”“그럼 해체하지.”“그게 그렇게 간단해요?”“복잡하게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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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진심의 무게

새벽 다섯 시.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진 그림자 사이로 스며들었다.나리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눈 밑의 어두운 그림자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오늘은 울지 말자.”그렇게 혼잣말했다.탁자 위엔 준비된 원고가 놓여 있었다.기자회견용 발언문. 수십 번을 고쳤지만,아직 완성된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그 문장만이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노크 소리.“선배.”수경이었다.“안 잤어요?”“오늘은 못 자겠더라.”“저도요.”“긴장돼?”“무서워요.”“괜찮아.”“선배…”“응.”“오늘은 그 말 듣고 싶었어요.”나리가 미소를 지었다.“그럼 잘 왔네.”잠시 침묵이 흘렀다.수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선배, 어제 제하 선배랑 있었죠?”나리가 눈을 들었다.“응.”“무슨 일 있었어요?”“많은 일.”“그럼… 괜찮아요?”“그게 무슨 뜻이야.”“선배가 감정에 휘말리면, 세상이 진심을 오해할까 봐요.”그녀의 말엔 걱정과 존경이 함께 섞여 있었다.나리는 잠시 웃었다.“수경아.”“네.”“사람이니까 괜찮아.”“근데 사람이라서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그럼 무너지면 돼.”“선배답지 않아요.”“이제 그만 ‘선배답게’ 살고 싶거든.”그 말에 수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신나리가 아닌 ‘한 사람 나리’가 보였다.오전 열 시. 카페 앞엔 이미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고,‘신나리 팀’이라는 문장이 전광판처럼 입에 오르내렸다.나리는 검은 재킷을 입고 걸어 나왔다.수경은 뒤에서 조용히 마이크를 들고 따라섰다.제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직접 찍기로 했다.그녀의 진심을 세상이 왜곡하지 않게. 기자가 소리쳤다.“신나리 씨, 감정 개입 사실 인정합니까?”“의뢰인의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 어떻게 된 겁니까?”“이별을 설계한다는 건, 결국 감정을 조작한다는 말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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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식어버린 손의 온도

기자회견이 끝난 지 사흘째, 세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듯 보였다.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서 ‘신나리 팀’은 사라졌고,카페 앞을 지키던 기자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하지만 고요는 언제나 위험했다.그건 끝이 아니라, 다음 파도가 일기 전의 정적일 뿐이었다.아침이 오는 시간, 나리는 커피머신을 켜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바람이 유리창을 스치고 지나갔다.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이별은 버티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는 거야.”온유가 예전에 했던 말이었다.“선배.”수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일찍 왔네.”“오늘 첫 의뢰 있어서요.”“네가?”“네.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재배정했어요.‘신나리 팀’ 명의로 들어왔지만, 담당자는 저로.”“어떤 건데.”“남자가 의뢰인이에요. 3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고요.”“남자 의뢰인?”“네. 조건부 허락 받았어요. 선배가 감독자로 동행하는 조건으로요.”“그럼 내가 같이 가야겠네.”“괜찮아요. 이번엔 저 혼자 해볼게요.”“수경.”“선배가 가면, 그 사람 나리 선배만 보겠죠.근데 저는,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그 말에 나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 그럼 이번엔 네 방식대로 해봐.”“네.”“근데 약속 하나.”“네.”“감정 개입하지 마.”“그건 선배가 가르쳐줬잖아요.”“그래도… 사람은 언제든 흔들려.”“흔들려도 무너지진 않을게요.”수경이 웃었다.그 웃음이 어딘가 성숙해 보였다.정오 무렵, 제하가 카페로 들어왔다.어제보다 수척했다. 셔츠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고, 눈 밑엔 깊은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수경 갔지?”“응.”“혼자?”“응.”“괜찮을까.”“모르겠어. 근데 이번엔 혼자 해봐야 돼.”“너, 요즘 말투가 점점 내려가.”“내려가?”“예전엔 날 세워서 말했잖아. 지금은 자꾸 무너지듯 말해.”“그게 더 솔직한 거야.”“그래도… 너답진 않아.”그녀가 잠시 웃었다.“제하야, 나 요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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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부서지는 철학

밤이 깊었는데도, 카페 불은 꺼지지 않았다.창문 밖은 어둡고 조용했지만, 그 고요 속엔 무언가 터지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이 있었다.나리는 빈 잔을 닦으며 생각했다.‘조용할수록 위험하다.’그건 그녀가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며 배운 직감이었다.“선배.”문을 열고 들어온 수경의 얼굴은 새하얬다.“왜 그래?”“일… 터졌어요.”“무슨 일.”“어제 제가 맡았던 의뢰, 그 남자요. 그 사람이 우리 팀 녹취파일을 올렸어요.”“녹취?”“네. 제가 상담하면서 한 말들… 전부 녹음돼 있었어요.”순간, 손에 들린 잔이 미끄러졌다.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소리가 났다.그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들렸다.“어디에 올렸는데.”“SNS요. 조회수 이미 백만 넘었어요.”“그럼 내용은?”“‘이별전문가’가 감정을 조작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장사로 팔았다…그런 식으로요.”제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봤어. 지금 완전히 불났어.”“기사도 떴어?”“응. 제목이 ‘감정 대행, 윤리의 붕괴.’”“미쳤네…”나리가 머리를 짚었다.“그 남자, 인터뷰까지 했어. 그녀가 내 마음을 이용했다고.”“수경이?”“아니요!”수경이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 그날 와인 엎질렀을 때 녹음기 켜놨던 거예요. 저 몰랐어요.”“그럼 그 파일엔…”“이별은 준비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수술이 아니라 상처처럼 남는다…제가 한 말이 전부 왜곡돼서 올라갔어요.”제하가 이를 악물었다.“그 자식 이름 뭐야.”“제하야.”“그만 좀 참아. 우린 사람 살리는 일이지, 복수하는 일 아니야.”“사람 살리는 일? 지금 우릴 죽이려고 덤비는 세상인데?”그의 목소리가 터졌다.“나리야, 언제까지 이렇게 맞기만 할 거야. 왜 항상 네가 대신 욕먹고, 대신 무너져.”“그게 내 역할이니까.”“아니, 그건 벌이야. 넌 계속 네가 죄인인 척하잖아.”“그게 죄가 아니라 책임이야.”“책임도 선 넘으면 자해야.”둘의 목소리가 부딪혔다.수경은 고개를 숙였다.“선배,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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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멈춘 시간, 다시 흐르는 숨

정지 처분. 그 두 글자는 묘하게 비현실적이었다.마치 누가 리모컨으로 세 사람의 인생을 잠시 ‘일시정지’해놓은 듯했다.나리는 첫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커피도 내리지 않았고, 불도 켜지 않았다.카페는 그날 하루 내내 침묵이었다.빛이 한 칸씩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오늘 하루만 쉬자.”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하지만 하루는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사흘이 되었다.문자 하나가 왔다.제하: 창문 좀 열어. 너 답답할 거야.나리: 괜찮아.제하: 그 말이 제일 위험하단 거, 알지?나리: 알아.그는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그녀는 그게 다행이면서도 이상하게 허전했다.반면, 제하는 잠들지 못했다.노트북을 켜놓은 채 새벽까지 영상을 돌려봤다.나리의 기자회견 영상, 그녀의 손짓, 표정, 말의 끝.그 모든 게 기억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너는 언제나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었지.”그는 혼잣말했다.“근데… 이번엔 좀 쉬어도 돼.”손끝에 닿은 커피잔이 식어 있었다.그는 잔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차가운 공기가 쏟아졌다.그 바람 속에서, 나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사람은 버틸 때보다 멈출 때 진심이 드러나.”그는 짧게 웃었다.“또 그 말이지.”그리고 속삭였다.“그래도 난 계속 버틸 거야.”수경은 조용히 이사를 했다.협회에서 권고했다.“당분간은 이 업계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짐이라곤 노트 몇 권과 컵 몇 개뿐이었다.나리와 함께 쓰던 탁자 위엔 커피 얼룩이 남아 있었다.그 얼룩을 닦지 않았다.그건 그녀에게 남은 ‘온도’였다.그녀는 이사한 원룸 창문을 열고 앉았다.바람이 스며들었다.손에 들린 공책엔 나리가 적어준 문장이 남아 있었다.“이별은 상처가 아니라,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일.”그 문장을 손끝으로 짚으며,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전 아직 그 방향 모르겠어요.”그때 휴대폰이 울렸다.보낸 사람: 제하“나리 혼자 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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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멈춘 자리에서 다시

6개월. 숫자로 보면 짧지만, 사람의 마음으로는 길었다.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나리는 처음 알았다.정지 처분이 내려진 뒤, 카페의 문은 닫혀 있었다.불 꺼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일하는 내가 아니라, 그냥 나리로 남는 건 어떤 기분일까.’그녀는 커피머신 대신 냄비를 켜고,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익숙하지 않은 손놀림, 조용한 부엌,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낮.“오늘은 진짜 아무도 오지 않네.”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문이 ‘탁’ 하고 열렸다.“그게 바로 내가 등장할 타이밍이지.”제하였다.그는 평소보다 수수한 차림이었다.티셔츠에 청바지,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두 잔.“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감시하러 왔어?”“아니, 생존 확인하러 왔지.”“확인 결과는?”“살아있네.”“그럼 성공.”그녀는 웃었다.그는 냉장고를 열었다.“냉장고가 거의 텅 비었네.”“그게 나야.”“공허하다고?”“응.”“그럼 채워줄까?”“너로?”“뭐, 나라도 괜찮지.”그녀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너 요즘 왜 이렇게 가볍게 말해.”“가볍게 말해야 버티잖아.”“그건 내 대사야.”“그럼 돌려줬다 생각해.”그들의 대화는 늘 그랬다.아무렇지 않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마음이 숨어 있었다.“커피나 마시자.”나리가 컵을 들었다.“근데 이거… 맛이 이상해.”“내가 만든 거니까.”“이제 커피도 못 내리면 어떡하냐.”“이제 내릴 이유가 없잖아.”“그래도 네 커피 좋아하는 사람 많았잖아.”“이젠 나부터 좋아해야 할 때야.”그녀의 말에 제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 말, 좋다.”“그래?”“응. 나도 좀 써야겠다.”그녀는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눈빛은 어딘가 멀리 있었다.며칠 후, 수경은 협회 건물에 있었다.고요한 복도를 걸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그녀의 손엔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신나리 팀 – 영업정지 6개월 통보서.’이제 그 문장은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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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되살아난 말, 얽힌 진심

다음 날 아침. 수경은 협회에 메일을 보냈다.제목: 수락합니다.내용은 짧았다.“신나리 팀이 돌아오면, 그 이름을 다시 빛낼 수 있게 돕겠습니다.”보내기 버튼을 누른 순간,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햇살이 들어왔다. 그 빛이 따뜻했다.그녀는 미소 지었다.“선배, 이제 다시 걸어요.”그 시각, 카페의 문이 열렸다.나리가 새로운 원두 봉지를 꺼내며 말했다.“이 향, 기억나?”“응.”“그때 우리가 시작할 때 썼던 거야.”“그럼 오늘은 진짜 리셋이네.”“그래.”그녀는 커피를 내렸다.따뜻한 향이 공간을 채웠다.제하는 천천히 컵을 들어 올렸다.“다시 시작이네.”“응. 이번엔… 끝까지 가자.”그들의 커피잔이 부딪혔다.짧은 소리였지만, 그건 새로 태어난 약속의 소리였다.문을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신나리 팀 – CLOSED’라고 적힌 표지판이 오랜만에 뒤집혔다.‘OPEN.’그 두 글자가 낯설 만큼 반가웠다.나리는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먼지가 쌓인 카운터, 한쪽 구석에 접힌 노트북,식물 화분엔 잎사귀 하나가 말라 있었다.그녀는 물을 붓고 손끝으로 잎을 만졌다.“살아있네.”혼잣말이었지만,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인사 같았다.문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그 말, 나한테 한 거야?”제하였다. 머플러를 두르고 들어온 그는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이거, 첫날 축하 선물.”“무슨 선물.”“새 원두.”“직접 고른 거야?”“응. 이제 커피는 너 대신 내가 맡을까 봐.”“웃기지 마.”“진지한데.”“너는 커피보다 사람을 잘 타.”“그건… 칭찬 맞지?”“아니.”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머신을 닦았다.“우리, 다시 시작이네.”“응.”“이 기분, 좀 이상하지 않아?”“살아 있는 느낌.”“그치.”“근데 나리야.”“응.”“우리 진짜 괜찮을까?”“무슨 뜻이야.”“세상이 우리한테 두 번째 기회를 줄까?”그녀가 커피를 내리며 대답했다.“세상이 안 주면, 우리가 만들면 되지.”“너 참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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