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Kabanata 91 - Kabanata 100

108 Kabanata

91화. 아주 작게 시작되는 미래

창밖으로 구름이 낮게 깔린 아침이었다.햇살은 없었지만, 그 탓에 방 안은 오히려 더 포근해 보였다.유리는 거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그녀의 옆엔 작은 노트와 펜, 그리고 어제 밤 남겨놓은 문장 한 줄.‘말보다 오래 남는 하루였다.’그 문장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유리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그 문장이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마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부엌 쪽에서 조용한 기척이 들려왔다.이현은 어제 정리해둔 그릇을 다시 확인하며손끝으로 하나하나 덜그럭 소리를 내지 않게 꺼내고 있었다.유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편으로 다가갔다.“오늘도 커피 내려줄까요?”그녀의 물음에 이현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웃었다.“기다리고 있었어요.”두 사람은 나란히 주방에 섰다.이제는 익숙해진 아침 의식이었다.서로의 손이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이고,말보다 시선으로 더 많은 걸 확인하는 시간.커피가 완성되자 이현은 조용히 잔을 들고 유리에게 말했다.“우리 노트에, 하루를 남긴 지 며칠째죠?”“일주일 정도요.”“그런데도,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에요.”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매일 비슷한 말만 남기고 있긴 해요. 오늘도 평온했다. 오늘도 다정했다. 같은 것들.”“그래서 더 좋지 않아요? 그런 말이 계속 쌓일 수 있다는 게.”이현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유리의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그날 오후, 두 사람은 별다른 계획 없이 루체빌을 정리했다.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침구를 바꾸고,베란다의 초록 잎들을 닦아주며 서로의 하루에 작은 숨을 불어넣었다.해가 기울 무렵, 유리는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다 조용히 말했다.“이현 씨.”“네.”“가끔,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미래 같을 때가 있어요.”이현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어떤 미래요?”“우리가 계속 이렇게 지내고 있는… 어느 날의 한 장면처럼요.”그 말에 이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하지만 곧 그녀의 손을 천천히 감싸며 말했다.“그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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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예고 없는 마주침

그날 아침, 유리는 혼자였다.이현은 본사 회의가 있어 일찍 나섰고, 루체빌은 모처럼 완전히 그녀의 공간이 되었다.식탁 위엔 따뜻한 차 한 잔과 전날 정리해둔 노트, 그리고 반쯤 펼쳐진 일기장 한 권이 놓여 있었다.유리는 노트의 페이지를 넘기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조용한 골목. 그 안에서 햇살은 느리게 기울고 있었고,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만이 이 아침이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오늘은 괜찮겠지.’그녀는 그렇게 중얼이며 컵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그 순간, 현관 벨이 울렸다.이른 시간. 택배도, 약속도 없었던 날이었다.조심스레 문을 연 유리의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베이지색 코트, 단정하게 묶은 머리,그리고 낯익은, 그러나 여전히 낯선 눈빛.“안녕하세요. 저… 그날 카페에서 인사드렸던…”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윤세빈이에요.”순간, 현관 너머의 공기가 묘하게 차가워졌다.“잠시, 시간 괜찮을까요?”세빈은 정중하게 말했다.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문을 반쯤 열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오세요.”루체빌 안으로 들어선 세빈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조용하고… 따뜻한 공간이네요. 딱 유리 씨 같아요.”유리는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무슨 일이신가요?”세빈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유리 앞에 마주 앉았다.“이런 식으로 찾아온 게 실례라는 건 알고 있어요.그런데… 그날 카페에서 뵙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어요.”“생각이 많아졌다는 건…?”세빈은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이현 씨는… 예전의 제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어요.”그 말에 유리는 손끝을 가만히 모았다.“그분과 함께한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많이 알았고, 많이 아꼈고…”유리는 말을 끊었다.“그래서 지금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죠?”세빈은 망설이지 않았다.“유리 씨가 누군지 궁금했어요. 그 사람이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유리는 그제야 작게 웃었다.그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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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먼저 닿으려는 마음

늦은 아침. 루체빌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 묵직했다.창문은 열려 있었고, 바람은 부드럽게 흘렀지만방 안에 흐르는 감정은 멈춰 서 있는 듯 느려져 있었다.유리는 부엌 앞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손에는 머그잔이 들려 있었고, 그 속의 커피는 식은 지 오래였다.그녀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잔을 들고 있는 이유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이현은 거실에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며칠째 이어지는 그녀의 조용한 기척,식어가는 말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시간들.그는 알 수 있었다. 유리가 그 안에서 천천히 침잠하고 있다는 것을.하지만 그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그녀가 지금 어떤 감정을 붙들고 있는지,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은지를 그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오전 내내 말없이 흐른 시간이 해를 넘기고 오후가 되었을 때,이현은 조심스럽게 유리 앞에 앉았다.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무… 조용했죠.”유리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사실은, 어떻게 해야 유리 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몰라서… 그저 멈춰 있었어요.”그의 말은 변명도, 해명도 아니었다.그저 조심스럽게 내민 손끝 같은 말이었다.유리는 한참을 침묵했다.그러다, 조용히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이현 씨.”“네.”“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그 무너짐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는 중이에요.”그 말은 자신을 위한 고백이자, 그를 향한 신호였다.“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옆에 있어주면 돼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녀의 손등에 살짝 손을 얹었다.그 손길은 어떤 확신도, 욕심도 담지 않은 그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조용한 증표였다.그날 저녁,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이현은 채소를 씻고, 유리는 조용히 조리대를 정리했다.동작은 다정했고,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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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누구의 곁에 설 것인가

회의실의 공기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조금 더 날이 서 있었다.긴 테이블. 앞쪽 프로젝터엔 새 프로젝트 제안서가 띄워져 있었고,벽시계 초침 소리조차 또렷하게 들릴 만큼 조용한 공간이었다.유리는 이현 옆에 앉아 있었다.차분하게 노트북을 펴고 있었지만, 손등 아래의 힘이 조금씩 굳어져 있었다.그리고 문이 열렸다.“늦지 않았죠?”윤세빈이었다. 여전히 정제된 말투,흰 셔츠 위에 재킷을 자연스럽게 걸친 모습.그리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곧았다.“프로젝트 쪽 메인 PM입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엔프로소프트 쪽과 직접 소통하게 될 거예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결하게 인사를 나눴다.유리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하지만 시야 끝에 닿는 모든 미묘한 변화들을 그녀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미팅은 계획대로 진행됐다.예산안, 타임라인, 전반적인 역할 분담.세빈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능숙했고 그 능숙함은 오히려 유리에게‘그녀가 이현과 공유했던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상기시키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문서의 문장을 따라가고 있었지만,그 문장들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세빈이 이현에게 질문을 던질 때,이현이 조용히 대답을 이어갈 때,그리고 가끔 유리의 메모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마다.유리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다시 반복해서 묻고 있었다.그 순간, 세빈이 조용히 말을 던졌다.“참, 이번 디자인 컨셉 초안은 유리 씨가 직접 진행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유리는 고개를 들었다.세빈은 미소를 머금은 채 명함을 건넸다.“예전엔 현장 정리로 처음 뵀었는데, 이렇게 직접 협업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그 말은 평범했지만 기억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흘러갔다.“그땐 정말 손끝 하나하나가 정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집중력,그 사람 곁에 오래 있으려면 꼭 필요하죠.”그 순간, 공기 한 겹이 가볍게 뒤집혔다.이현이 조용히 말했다.“세빈 씨.”세빈은 눈길을 멈췄다.이현은 고개를 돌려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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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고요한 평온 뒤의 속삭임

비가 그쳤다. 창밖의 바닥은 젖어 있었고,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물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 바람이 스칠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루체빌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며칠 전의 무거움과는 결이 달랐다.이젠 숨 쉴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침묵.서로를 감싸는 거리 안에 말보다 오래 남을 이해가 머물기 시작한 시간이었다.유리는 작은 티포트를 열어 따뜻한 차를 내리고 있었다.“이현 씨는 무슨 향 좋아해요?”그녀가 물었다.이현은 창가에 걸린 커튼을 정리하며 대답했다.“나는…라벤더. 조금 느린 향.”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잔에 물을 부었다.“그럼 오늘은 라벤더로 갈게요. 오늘 하루… 천천히 마시자고요.”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잔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셨다.말이 많지 않았지만 그 적막은 안심이었고,그 안심 속에서 서로의 감정이 조금 더 자리를 잡고 있었다.“요즘은,”이현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매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예전보다 훨씬 다정하게 느껴져요.”유리는 그의 말을 한참 머금다가 말했다.“그건 아마, 그동안 우리가 말을 너무 조심히 골라서였을 거예요.이제는 그냥… 있기만 해도 괜찮아졌죠.”그 말에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다’는 말이 관계의 끝에 머무는 게 아니라계속 함께 걸어가도 좋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두 사람은 알게 되어 있었다.오후엔 가벼운 산책을 했다.봄이 조금씩 물러나고, 초여름의 냄새가 골목 안에 서성이고 있었다.유리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 말했다.“요즘 하늘이 왜 이렇게 자주 흐릴까요?”이현은 유리의 손을 잡은 채 짧게 웃었다.“흐려도… 우리 발밑은 괜찮잖아요.”그 짧은 대화는 둘 사이의 다정함이 어디까지 내려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저녁 무렵. 루체빌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창밖은 서서히 어두워졌고, 거실 조명은 은은하게 방 안을 감쌌다.그러다, 문득 이현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그는 손을 뻗어 확인하려다 잠시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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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멀어지려는 이유, 다가가려는 마음

오전 내내, 이현은 말이 적었다.그의 말투는 예전과 같았고, 표정도 무심하지 않았지만,유리는 그 모든 ‘변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그가 무엇을 애써 숨기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건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가장 잘 감추는 방식으로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는 그의 어깨는 늘 그랬듯 단정하고 부드러웠지만,그 안에 머물고 있는 무게는 이제 유리의 눈에 낯설지 않은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조용히 빵을 나눠 먹고 있었다.“오늘 오후 일정 있어요?”유리가 먼저 물었다.“네. 외부 사람들 몇 명 만나야 할 것 같아요. 투자 관련 조율이 아직 좀 남아 있어서.”이현은 담담히 대답했지만,그의 손끝은 컵을 잡은 채 잠시 멈췄다가 움직였다.유리는 그 미세한 움직임까지 눈으로 따라가며 속으로 혼잣말처럼 되뇌었다.‘지금, 당신은 나를 멀리 두려고 하고 있어.’그건 직감이었고, 동시에 지금껏 함께한 시간이 말해주는 감각이었다.그날 오후, 이현은 외부 미팅으로 나갔다.유리는 루체빌에 혼자 남아 거실을 천천히 정리했다.방금까지 이현이 앉아 있던 소파, 그가 정리해둔 서류, 식탁 위에 남은 머그잔의 온기.모든 것이 여전했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은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오후 3시. 유리는 현리하루 2호점에 들렀다.잠시 앉아 공기를 가만히 마시고 있을 때, 매장 직원이 말했다.“유리 님, 이번 외주 계약 건, 대표님이 최종 검토하고 계신데 조금 일정이 미뤄질 것 같다고 전해달래요.”“그래요?”“네, 이 대표님이 직접 전달하신 내용이긴 한데…그냥 오늘따라 좀 기운이 없으시더라고요.”유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고맙습니다.”그 말을 남긴 채, 유리는 다시 매장 바깥으로 나왔다.그리고 그곳에 서서 오래도록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전화할까. 문자를 보낼까. 아니면 오늘도 그냥 묻어둘까.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휴대폰을 천천히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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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돌아갈 이유가 된 마음

새벽 바닷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하지만 유리는 이불 속에서 쉽게 빠져나왔다.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이하얀 커튼을 따라 바닥에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그녀는 묵은 공기를 털듯 가볍게 창문을 열었다.잔잔하게 부딪히는 파도 소리. 텅 빈 마당.그리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가로등 아래 조금 젖은 흙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유리는 두 손을 문틀에 얹은 채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무언가를 결심하려는 사람처럼.어젯밤, 그녀는 처음으로 루체빌의 문 앞까지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이현이 문을 열고 나오는 얼굴을 떠올렸다.그 얼굴은 그녀가 떠나올 때보다 더 초조해 있었고,그 초조함 속에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그 상상 하나로 유리는 새벽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아침이 되어, 유리는 조용히 짐을 정리했다.많은 짐이 아니었다.그녀는 떠날 때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무거운 걸 남기지 않았었다.메모지 한 장. 그 위에 짧게 글을 남겼다.“다녀올게요. 그리고 이번엔, 조금 더 확신을 갖고 돌아가요.”게스트하우스를 나선 유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기차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그 기다림은 그녀에게 필요한 ‘작은 준비’처럼 느껴졌다.벤치에 앉아 그녀는 처음으로 이현에게 메시지를 썼다.“지금 가요. 돌아가도 돼요?”보내지 않은 채 메시지 창을 한참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전송 버튼을 눌렀다.잠시 후. 답장은 단 세 글자였다.“기다릴게.”그 말이 도착하자, 그녀의 눈 안쪽이 조용히 젖어들기 시작했다.사랑은 가끔, 확신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의 짧은 말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걸 그녀는 지금 알 수 있었다.그 시각. 루체빌의 거실.이현은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말없이 일어섰다.그리고 유리가 떠나기 전 자주 앉아 있던 창가 자리로 향했다.그 자리에 앉아 그는 머릿속으로 유리의 손끝, 걸음,목소리의 억양까지 천천히 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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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지켜야 할 것들 앞에서

하루가 밝았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지만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마음속엔 분명 어제와는 다른 무게가 내려앉아 있었다.유리는 조용히 머그잔을 돌려가며 이현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오늘 일정, 미팅 두 개였죠?”“응.그리고 오후엔 투자사 쪽 중간 보고가 하나 더 잡혔어요.”그 말은 평범했지만, 이현의 어조엔 미묘한 피로가 스며 있었다.유리는 잠시 머뭇이다가 말을 꺼냈다.“혹시… 어제 말했던 그 고위 투자자, 오늘 직접 나온대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직접 만나겠다고 연락 왔어요.그 사람 입장에선 이번 투자건이 자신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부분이라서…”그 말을 끝낸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유리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같이 갈게요.”“유리 씨…”“지금 우리가 같이 있는 게 단지 ‘감정’ 때문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기회잖아요.”그 말에 이현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같이 가요.”오후 1시. 고급 오피스 빌딩의 프라이빗 미팅룸.유리와 이현은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의 눈빛은 정중했지만 그 안에 계산된 거리감이 있었다.“두 분의 동행은 예상했습니다.”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료를 뒤적였다.“제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관계가 아닙니다. 문제는 구조예요.회사 안에 개인적인 감정이 얼마나 개입되어 있는지, 그게 이 프로젝트의 결정 흐름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이현이 입을 열었다.“그 지점에 대해선 이미 내부 자문 변호사와의 회의에서도 투명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유리 씨는 현장 총괄로 프로젝트 초안부터 함께한 핵심 인물이고, 그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성과로 증명됐습니다.”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유리에게 옮기며 말했다.“유리 씨. 혹시 지금의 관계로 인해 현장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진 않으셨습니까?대표와의 관계가 부담으로 작용한 적은 없었나요?”그 질문은 겉으로는 배려처럼 들렸지만, 그 속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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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출근길의 투명한 벽

그날 밤. 루체빌은 다시 조용했지만,그 조용함은 오늘 하루를 함께 견뎌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평화처럼 느껴졌다.이른 아침. 루체빌의 창가에 유리가 앉아 있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노트북 화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창밖으로는 약한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고, 그 소리는 방 안을 부드럽게 감쌌다.이현은 조용히 부엌에서 나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오늘 인터뷰 준비 중이에요?”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브리핑 요청한 쪽에서 정식 대외 피칭 전에 나랑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혼자 괜찮겠어요?”유리는 화면을 덮으며 말했다.“이건 나 혼자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예요.이번엔 이현 씨 이름 없이 내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요.”그 말은 단호하지 않았지만, 확실했다.이현은 더 묻지 않았다.그녀의 말투, 표정, 그리고 고개를 드는 속도까지 모두가 준비된 사람의 그것이었다.오후 1시. 강남 모처의 스타트업 미디어 사무실.유리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앉아 있었다.마주 앉은 매체 담당자는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오늘은 유리 씨 개인 이력에 초점을 맞추되,현장 총괄로서의 의사 결정과 실행 과정을 중점적으로 들으려 합니다.”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걸 위해 이 자리에 나왔으니까요.”질문은 날카롭고 직설적이었다.“대표의 연인으로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이 현장 내 공정성을 해친다는 시각도 있는데,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유리는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군가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감정의 문제고,지금 제가 맡고 있는 건 기획, 시공, 디자인, 운영까지 포함한 복합 구조 관리입니다.”그녀는 손가락을 조용히 테이블 위에서 맞물렸다.“만약 저에 대해 의심이 있다면, 그건 제 실력이 아니라제 감정을 판단 기준에 포함시킨 사람들의 시선 문제겠죠.”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계속했다.“대표님과의 사적인 관계가 현장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 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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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물러서지 않는 선택

이현은 오늘도 루체빌을 가장 먼저 나섰다.유리는 그에게 문을 열어주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그가 떠난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문이 닫히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낮은 울림.모든 게 익숙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그녀는 부엌으로 돌아와 머그잔을 씻으며 조용히 생각했다.‘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멀리까지 물러서야 하는 걸까.’오전 9시. 엔프로소프트 본사.이현은 대표실 회의 탁자 위에 놓인 문서를 하나씩 넘기고 있었다.그 중에는 내부 파트너로부터 접수된 공식 건의서가 포함되어 있었다.“현장 운영 책임자의 직책 재조정 제안 건.”그 문장 하나가 이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다.이제는 유리에게 말해야 했다.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의 범주가 아니었다.오후. 루체빌. 이현은 돌아오자마자, 식탁에 앉아 유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유리는 그의 시선에서 이미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 왔는지 느끼고 있었다.“조정안이 올라왔어요. 현장 책임자 자리에서 유리를 정리하자는 제안이에요.”유리는 조용히 물었다.“이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그 질문은 사랑을 묻는 게 아니라,현실 속에서 ‘당신이 지금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묻고 있었다.이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난 당신을 빼고 가고 싶지 않아요. 근데… 당신이 그걸 감당하게 되진 않을까, 그게 겁나요.”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알아요. 내가 거기에 계속 있는 한, 당신은 나를 위해 불리해질 수 있다는 거.”둘 사이엔 긴 침묵이 흘렀다.그리고 마침내 유리가 입을 열었다.“그럼 이렇게 해요. 내가 물러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발로 내리는 결정을 해요.”“무슨 뜻이에요?”“공식적으로 자리를 내려놓되, 내가 결정해서 내려놓는 거예요.그리고 당신은 그걸 보호해줘요. 내가 밀려나지 않았다는 걸 내가 떠난 거라는 걸.”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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