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루체빌 거실엔 조명이 은은히 켜져 있었다.이현은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한 장도 넘기지 못했고,유리는 옆에서 무릎을 껴안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말은 없었지만, 그 조용한 틈 사이로 서로를 향한 마음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리고, 유진은 공연장 이후 처음으로 온유와 제대로 된 작별을 마친 밤,혼자 걸으며 짧게 중얼거렸다.“고마웠어. 그리고… 잘 지내.”그 말은 그녀 안에서도, 온유 안에서도 조용히 닫힌 문을 향해 전해졌다.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햇살은 분명히 떠 있었지만, 창문을 닫지 않고 하룻밤을 지낸 공기 탓인지루체빌의 거실 안엔 살짝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유리는 무릎 위로 담요를 끌어당기며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컵을 감싼 손끝에까지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이현은 부엌 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모닝커피 잔을 들고, 그녀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하지만 그 침묵은 어제와 달랐다.의심도, 거리감도, 설명도 필요하지 않은 고요였다.“…미안했어요.”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 갑자기 마주친 그 상황이 괜히 이현 씨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것 같아서.”이현은 고개를 저으며 손등으로 그녀의 손을 조용히 덮었다.“괜찮아요. 그런 날도 있는 거고… 저는 유리 씨가 나에게 말해주는 마음이 모든 것보다 확실하다는 걸 믿고 있어요.”그 말에 유리는 눈을 내리깔았지만 입가엔 조용히 미소가 피어났다. 그 미소는 그동안의 걱정과 오해를 조금씩 지워나가는 따뜻함이었다.같은 시간, 다른 공간. 유진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온유에게 보냈던 메시지, 그가 준 마지막 답장, 그리고 그 날의 짧은 작별.그녀는 손가락으로 메시지 창을 닫고, 일정을 확인하는 화면으로 바꿨다.‘오전 회의 – 기획팀 공유오후 – 협력사 브랜드 전략 회의저녁 – 비어 있음’그녀는 손가락을 멈추고 잠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밖은 여전히 분주했고,
Last Updated : 2026-03-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