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창가에 내려앉은 밤. 루체빌 거실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식탁 위에는 여전히 열지 않은 작은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고,소파 한켠에는 이현이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었다.손끝에 걸린 건 유리의 메모였다.‘대표님, 내일은 저랑 같이 저녁 드세요. 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짧고 환한 문장이었지만,지금 이현의 마음에 그 문장은 서늘한 비수처럼 꽂히고 있었다.동이 틀 무렵, 유진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경쟁사 빌딩의 옥상,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에 유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온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오늘 저녁, 루체빌 앞에서 유리랑 마주쳐 줘. 마지막 부탁이야.’한참을 망설이던 온유는 결국 단 한 줄로 답했다.‘이거까지만이다.’유진은 피식 웃으며 머리카락을 넘겼다.‘이제 진짜 마지막.’그날 오전, 유리는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갑자기 핸드폰 알람이 울리자 작게 놀라며 몸을 움찔했다.메시지는 없었다.이현에게도, 온유에게도, 누구에게도.‘내가 너무…서툴렀던 걸까.’저녁, 루체빌.이현은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서류 가방은 발치에 내던져졌고, 셔츠 소매는 걷어올린 채 이마를 짚었다.서재 책상 위, 유진이 남기고 간 봉투가 아직 남아 있었다.그 안에는 경쟁사의 새 프로젝트 자료,그리고 온유와 유리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한 장.그 웃음은, 이현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 같았다.‘저 웃음, 나한텐 안 보여주더라.’해질 무렵, 유리는 화장을 고치며 마음을 다잡았다.‘오늘은, 대표님께 다 말해야지.’온유와 연락이 끊긴 지 한참이라는 것도,지금의 내 마음에 오직 대표님만 있다는 것도.그런데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문을 열자, 온유가 서 있었다.“유리씨, 잠깐만….”“온유 씨?”유리는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잠깐이면 돼요. 이건 유진 때문이야. 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온 거에요.”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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