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해남의 끝자락은 언제나 그렇듯,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수진은 유리창 너머로 흐릿한 수평선을 바라봤다.눈앞에 있는 건 분명 바다인데,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불투명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언니의 이름이 끊임없이 맴돌았다.“김수민…”한때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따뜻했는데,지금은 단 한 번의 발음조차 가슴을 갈랐다.꽃집 문을 여는 순간, 조용한 종소리가 울렸다.그 소리가 이상하게 낯설었다.그녀는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그때, 문가에 낯선 그림자가 섰다.“이 시간에 손님이라니, 의외네요.”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혁이었다.그는 새벽 바람에 젖은 듯,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눈 밑엔 잠 못 잔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미안해요. 이상하게 이곳 불빛이 꺼지면, 잠이 안 와요.”“그럼 켜둘까요?”“아니요. 오늘은 그냥, 얘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그녀는 찻잔 두 개를 꺼냈다.그의 손이 테이블 위에 닿자, 그 사이로 묘한 온도가 번졌다.찻물이 따뜻했지만, 그 따뜻함은 쉽게 식었다.“예전에 말했죠.”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그리움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감정이고, 죄책감은 죽은 사람의 그림자라고.”“네.”“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사람은 자신을 잃어요.”그의 눈동자가 창가로 향했다.“내가… 그런 그림자 속에 살았던 것 같아요.”그녀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그의 눈빛엔 오래 묵은 후회가 있었다.하지만, 그 후회가 진심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강혁 씨, 언니를 아세요?”수진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그 속엔 숨겨둔 칼날이 있었다.그의 손이 멈췄다.한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그 이름…”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잊을 수가 없어요.”그 한마디에 수진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그녀는… 아
Last Updated : 2026-04-0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