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고요했다.폭발의 여파가 지나간 그 새벽,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정적 속에 바다의 파도만이 들려왔다.연기가 옅게 남아 있는 폐허 한가운데, 강혁은 무너진 철골더미 사이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그의 손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손이 붙잡혀 있었다.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수진… 들려요?”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귀를 가까이 댔다.미약한 숨결, 아직 살아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먼지와 재가 뒤섞여 있었지만,그 입가에는 희미한 색이 남아 있었다.그는 그 얼굴을 닦으며 낮게 중얼거렸다.“이제 끝났어요. 정말… 끝났어요.”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며칠 뒤, 캄보디아 프놈펜의 작은 병원.수진은 하얀 시트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낯선 천장, 그리고 어렴풋한 빛.눈앞에 강혁의 뒷모습이 있었다.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지친 눈동자, 수염이 자라난 얼굴.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긴 어디예요.”그가 고개를 들었다.“괜찮아요? 기억… 나요?”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저는… 누구죠?”그의 얼굴이 굳었다.“기억이…?”그녀는 미소를 지었다.“죄송해요. 당신, 저 아는 사람인가요?”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당신 이름은… 김수진이에요. 그리고, 린자오밍이기도 해요.”“이름이… 두 개나 있네요.”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그럼, 나는 누구예요?”그는 대답하지 못했다.그녀는 모든 걸 잃은 듯 보였지만,그 눈빛 한가운데엔 여전히 익숙한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살아 있다.비록 기억을 잃었어도, 그건 그녀의 새로운 빛일지도 몰라.’그날 밤, 그는 병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조용히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환자분 상태는 안정적이에요.다만 기억 상실 증세가 일시적인 건지 확정은 어렵습니다.”“그럼 언제쯤…”“기억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잃어버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고, 그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버리는 거래요.”그녀는 미소를 지었
Last Updated : 2026-04-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