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새벽은 무겁고 습했다.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도로 위의 빗방울이 길게 흘러내렸다.한적한 항구 구석, 낡은 창고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수진은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빨간 펜으로 표시된 선들이 국경을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캄보디아, 라오스, 광저우, 그리고… 부산.그녀의 손이 그 마지막 지점을 멈췄다.“결국, 다시 돌아가야 하네.”그녀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이 바다는, 나를 불러.”그녀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불꽃이 켜지는 순간, 벽에 걸린 사진 하나가 드러났다.젊은 시절의 수민, 그리고 그 옆의 강혁.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수진은 사진을 오래 바라보다 손끝으로 천천히 접었다.“언니, 이번엔 내가 선택할게.”서울. 국정원 구본청.새로 부임한 감찰관이 내부 정리를 진행하고 있었다.사무실 구석, 강혁은 흰 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그 안에는 여진이 남긴 USB가 있었다.그는 잠시 망설였다가, 컴퓨터를 켰다.화면이 켜지고, 암호가 입력되자 파일 하나가 떴다.Project_Illumination_Record_Alpha그의 손이 멈췄다.클릭.화면엔 CCTV 영상이 재생되었다.한 연구소의 실험실,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그리고 유리 캡슐 안의 한 여자.“……수민.”그녀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눈을 감고, 전극이 연결된 상태였다.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사랑은, 지워지지 않아요.’그 순간, 배신구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럼, 널 지우지.”총성이 울렸다.화면이 꺼졌다.강혁은 손을 떨어뜨렸다.눈앞의 불빛이 멀어졌다.그의 머릿속은 고요했다.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그리고, 작은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수진의 목소리였다.“당신은 살아야 해.”그는 눈을 감았다.“그래. 이제는 내가 살아남아서 끝까지 보게 될 거야.”늦은 밤, 부산 남항.어둠 속에 정박한 배 위로 여자의 그림자가 올라탔다.그녀는 모자를 눌러쓰고, 어깨 위의 배낭
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3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