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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내 여친은 린자오밍!: Capítulo 101 - Capítulo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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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시든 꽃잎에 남은 향기

해남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창문 너머로 햇빛이 기울고 있었다.노란 빛이 들판을 스쳐 지나며 모든 것을 금빛으로 덮었다.수진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손엔 언니의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종이 위에 묻은 그녀의 손자국이 어쩐지 아직 따뜻했다.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은 몇 시간 전 서울에서 떠날 때보다 달라져 있었다.눈 밑엔 피로가 번졌고, 눈동자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照明… 빛을 비춘다.”그건 더 이상 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이젠 자신의 목소리였다.버스가 멈췄다.해남의 공기가 차갑게 다가왔다.짙은 소금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도시에선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돌아왔네.”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마을 입구엔 ‘린꽃방’의 작은 간판이 보였다.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금속판이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그녀는 천천히 걸었다.발끝에 닿는 모래가 부드럽게 밀렸다.걸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언니의 이름을 들고 돌아온 해남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가게 문을 열자 라벤더 향이 퍼졌다.그 향은 언제나 그녀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그 향 속에 언니의 숨결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책상 위엔 어제보다 더 시든 꽃잎들이 널려 있었다.그녀는 무심히 그것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그러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그 소리가 마치 말없이 위로하는 듯했다.“꽃도 결국 죽네요.”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그래도 피었잖아요.”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뒤를 돌아보자, 강혁이 서 있었다.손엔 두 개의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커피요. 새벽부터 움직였을 테니 피곤할 것 같아서.”그녀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꽃집 안에는 커피 향과 꽃향기가 뒤섞였다.그 향이 이상하게 사람을 취하게 만들었다.“서울엔 다녀왔나요?”그의 물음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거기서 뭘 찾았는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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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라벤더의 계절

봄비가 내렸다.이른 아침의 해남은 흐린 하늘 아래 잠들어 있었다.비는 굵지도, 약하지도 않았다.그저 오래된 기억처럼,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수진은 가게 앞 처마 밑에 서 있었다.꽃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라벤더, 장미, 수국, 튤립.그녀가 키워온 꽃들이 비를 맞으며 몸을 숙였다.그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우산을 접었다.손끝이 젖었다.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차갑지 않았다.‘라벤더의 계절이네.’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언니가 가장 좋아하던 향이었다.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고무장화를 신은 발소리. 낮고 느린 걸음. 수진은 고개를 돌렸다.“오늘 바다 나가요.”강혁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그는 커다란 우산을 들고 있었다.그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녀의 신발 위에 닿았다.“비 오는데요.”“이런 날이 고기 잡기엔 좋아요.”“정말이에요?”“거짓말일 수도 있죠.”그녀는 피식 웃었다.그 웃음이 너무 짧아서, 사람이 아닌 바람이 웃은 것처럼 들렸다.두 사람은 함께 부두로 향했다.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엔 작은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수진은 조심스레 그 위를 건넜다.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넘어질 뻔했어요.”“괜찮아요.”“습관이죠. 사람 구해주는.”“이젠 그냥 반사예요.”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췄다.“언니한테도… 그랬겠죠?”그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빗속에서 고개를 숙였다.비가 머리카락 끝에서 흘렀다.그 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눈물과 섞였다.배가 떠났다.바다는 잿빛이었다.파도는 잔잔했지만, 그 잔잔함 속에 묘한 긴장이 숨어 있었다.수진은 갑판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손끝에 빗방울이 닿았다.그 물방울이 이내 피부에 스며들었다.“여긴 늘 비가 오네요.”그녀가 말했다.“이 바다는 비가 와야 예뻐요.”“왜요?”“맑은 날은 너무 솔직하거든요.”“사람도 그렇죠.”“솔직한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니까.”그녀는 그 말을 천천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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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라벤더 향의 주인

해남의 밤은 유난히 깊었다.낮 동안 내렸던 비가 그치고, 공기 속엔 바닷소금 냄새와 젖은 흙 향이 섞여 있었다.수진은 불 꺼진 꽃집 안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작은 전등 불빛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 빛은 노랗게 흔들리며 책상 위 꽃잎들을 비췄다.꽃은 잠들지 않는다.그녀는 언젠가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꽃은 잠들지 않아. 단지, 숨을 고를 뿐이야.’그녀는 라벤더 잎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손끝에 묻은 향이 오래 남았다.그 향 속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그때, 창문 밖에서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났다.누군가가 가게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그 발소리가 이상하게 익숙했다.그녀는 커튼을 살짝 젖혔다.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얼굴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 자세, 어깨의 각도,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아봤다.“서여진…”입안에서 그 이름이 굴러나왔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그 이름은 오랜 시간 금기처럼 묻혀 있던 단어였다.여진은 잠시 꽃집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그 발소리가 바다 쪽으로 멀어졌다.수진은 커튼을 닫지 못했다.그녀의 손끝이 떨렸다.다음 날 아침.바다는 유난히 고요했다.파도는 잔잔했고,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강혁은 부두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손에는 낡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다.불은 붙이지 않았다.그는 그냥 그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다시 피우는 거예요?”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수진이었다.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렸다.햇빛이 머리카락 끝에서 반짝였다.“아니요. 그냥… 무게를 느껴보는 중이에요.”“무게요?”“이 냄새, 이 습관, 이 죄책감. 한때는 다 나한테 익숙했거든요.”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어제… 누가 왔어요.”“누구요?”“서여진.”그는 고개를 돌렸다.“확실해요?”“그녀 얼굴은 못 봤어요. 하지만, 그 느낌… 맞아요.”그의 얼굴이 굳어졌다.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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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검은 꽃이 피다

밤은 차가웠다.비가 멎었지만, 공기엔 아직 젖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서여진은 해남의 좁은 숙소 창문을 열었다.창밖엔 파도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규칙적이고, 잔잔하고,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그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쓰디쓴 맛이 입안에 번졌다.그 맛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책상 위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사진 속엔 웃고 있는 강혁의 얼굴,그리고 그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자신.그때는 그의 눈이 자신만을 향하던 시절이었다.“강혁 씨, 당신은 아직도 그 여자를 꿈에 보나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대답은 없었다. 있을 리도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책상 서랍에서 작은 총기 케이스를 꺼냈다.안엔 오래된 권총이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닦았다.“이제 다시 쓰지 않으려 했는데.”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그 여자가 당신 곁에 다시 서 있다면…어쩌면 써야 할지도 모르겠네요.”총구를 바라보는 눈빛은 차가웠다.하지만 그 안엔 눈물 한 방울만큼의 연민이 있었다.다음 날 아침, ‘린꽃방’의 문이 열렸다.꽃 향기와 함께 밝은 빛이 쏟아졌다.여진은 그 문 앞에 서 있었다.오늘은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깊고, 어딘가 절박했다.“또 오셨네요.”수진이 말했다.“이 가게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서요.”“향 때문이겠죠.”“향일까요, 아니면 사람일까요.”수진은 짧게 웃었다.“전 그냥 꽃을 파는 사람이에요.”“그렇지 않아요.”여진이 천천히 다가왔다.“당신은 향을 팔지만, 그 향은 사람을 흔들죠.”그녀는 라벤더 한 다발을 손에 들었다.“이건 마음을 안정시킨다던데요.”“그건 향이 아니라 기억이에요.”수진의 대답은 단호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한쪽은 진심으로, 다른 한쪽은 두려움으로.그때,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바람과 함께 강혁이 들어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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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그림자가 빛을 삼킬 때

낮이 다 지나가고, 해가 바다 끝으로 내려앉았다.‘린꽃방’ 안엔 따뜻한 오렌지색 조명이 켜져 있었다.작은 라디오에서 피아노 소리가 잔잔히 흘렀다.수진은 꽃다발을 묶던 손을 잠시 멈추고,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창밖엔 강혁이 서 있었다.그의 옷자락은 젖어 있었고, 손엔 고등어 상자가 들려 있었다.“낚시는 오늘도 실패?”그녀가 미소 지었다.“아니요. 성공이에요. 잡은 게 없다는 건, 오늘은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그 말에 수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그녀는 무심한 듯 고개를 숙였다.“그런 철학적 어부가 다 있네요.”“누군가 말했죠. 사람은 죽이지 않아야 사랑할 수 있다고.”짧은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 속에서 서로의 호흡이 들렸다.그냥 평범한 대화처럼 들렸지만, 서로는 그 말의 밑바닥을 알고 있었다.그때, 문이 열렸다.문종이 가볍게 흔들렸다. 서여진이었다.짙은 베이지 코트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채 들어왔다.“아, 여기 계셨네요. 둘 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어딘가 칼끝 같은 단단함이 숨어 있었다.강혁이 일어섰다.“이 근처 숙소 잡았어요?”“네. 바다가 잘 보여서요.”그녀는 자연스럽게 꽃집 안을 둘러봤다.라벤더, 백합, 장미. 그 향이 섞여 공기 속을 떠돌았다.“향이 좋네요. 특히 이건…”그녀가 라벤더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건 좀 과하네요. 너무 진해요.”수진은 짧게 답했다.“원래 사랑의 향은 오래 남아요.”“그럼 증오도 남을까요?”“남죠. 다만 향이 아니라 상처로.”공기가 순간 얼었다.세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라디오의 피아노 소리만 작게 울렸다.여진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강혁 씨가 제게 말했어요. 꽃이란 건 다 거짓이라고.”그녀의 시선이 수진에게로 향했다.“보기엔 예쁘지만, 결국 시들죠.”“그럼 사랑도 거짓이에요?”수진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아니요. 사랑은 착각이에요. 착각이 사라질 때, 그게 진심이 되죠.”그녀의 눈빛이 강혁을 향했다.“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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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바다, 불길처럼

아침 햇살이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수진은 물병을 내려놓고 화분을 돌보았다.밤새 피어난 장미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레 줄기를 만지며 속삭였다.“조금만 더 버텨. 햇살이 따뜻해지면, 다시 피겠지.”그 말은 꽃에게 한 말이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이기도 했다.테이블 위엔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누군가 새벽에 두고 간 듯, 표면엔 ‘린수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녀는 잠시 손을 멈췄다.봉투를 열자, 안에는 단 한 장의 사진.강혁이 낚시터에서 웃고 있는 사진,그리고 그 뒤쪽 - 멀리 서 있는 자신.그 사진의 구도는 누가 봐도 의도적이었다.누군가 그녀를 오래 지켜봤다는 뜻이었다.“서여진…”그녀의 입에서 이름이 흘러나왔다.바닷가로 나가자 바람이 강했다.모래가 흩날렸고, 파도가 거칠게 일었다.강혁은 낚싯대를 내려놓고 수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오늘은 일찍 나왔네요.”“잠이 안 와서요.”“그럴 줄 알았어요. 어젯밤에도 불빛이 늦게까지 켜져 있던데.”그녀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하지만 그의 시선이 자신을 오래 붙잡는 것을 느꼈다.그 눈빛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숨어 있었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요.”“그럼 왜 그 눈이에요?”“요즘, 이상한 꿈을 꿔요.”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꿈?”“당신이… 다른 이름으로 날 부르더라고요.”“어떤 이름으로요?”“린자오밍.”그녀의 손끝이 굳었다.파도 소리가 멈춘 듯, 순간 공기가 정지했다.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꿈이라잖아요.”“그런데,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바다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그 짠내 속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아득히 떠올랐다.‘거짓말을 오래 하면, 진심이 상해.’그날 오후, 여진은 국정원 내부망에서 오랜 기록을 검색하고 있었다.퇴직 처리된 계정으로는 접근이 어려웠지만,그녀는 여전히 비공식 경로를 알고 있었다.‘린자오밍 - 연변, 1994년생.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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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거짓말이 끝나는 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밤바다의 공기는 차가웠고, 공중엔 소금 냄새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달빛이 얇은 물결 위를 비추며 길게 흘렀다.수진은 '린꽃방’의 불을 끄고, 가게 문을 잠갔다.손끝이 식은 쇠자물쇠를 쥘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금속성의 기억이 울렸다.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오늘까지만… 이 거짓말.”하지만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강혁이었다.그의 얼굴엔 피로가 묻어 있었다.낚시용 모자엔 물방울이 떨어졌고, 눈빛은 전보다 훨씬 깊어져 있었다.“수진 씨, 할 말이 있어요.”“이 시간에요?”“지금 아니면… 늦을 것 같아서요.”그녀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바람이 뒤에서 밀어닥쳤고, 꽃잎 몇 장이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강혁은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당신… 진짜 이름이 뭐예요?”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진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린수진’이라는 이름이 이상하다고.”그는 목소리를 낮췄다.“누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요? 빛날 린(燐)이라니. 그건 사람 이름이 아니라…코드명이잖아요.”수진의 손끝이 서서히 굳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그걸 어디서 들었어요?”“국정원 내부 기록. 폐기된 파일 중 하나에서. 거기엔 린자오밍이라는 이름이 있었어요.연변 출신, 조직 소속. 사진은 흐릿했지만… 당신이었어요.”그녀는 잠시 숨을 멈췄다.마치 온몸이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창밖의 파도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그럼… 그게 사실이면 어쩔 건데요?”“확인하려고 왔어요. 당신이 누군지.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지.”“사랑한다고요?”그녀가 피식 웃었다.“당신은 날 믿지 않잖아요.”“믿어요.”그의 목소리가 떨렸다.“믿고 싶은 거죠.”“그래요. 믿고 싶어요. 하지만…”그녀의 눈이 젖었다.“내가 그 사람이 맞아요.”그 순간, 공기가 무너졌다. 강혁의 얼굴이 굳었다.그녀는 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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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불 꺼진 꽃집

비가 그친 새벽이었다.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젖은 흙 냄새와 눅눅한 라벤더 향뿐이었다.해가 뜨기도 전에, 강혁은 린꽃방 앞에 서 있었다.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간판 아래 조명은 꺼져 있었다.유리문을 손바닥으로 밀어보았다.잠금 장치는 걸린 채였지만, 안쪽의 공기는 이미 오래 비워진 듯 차가웠다.“수진 씨…”그의 목소리가 유리문에 부딪혀 되돌아왔다.바람에 실린 라벤더 냄새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가게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리되어 있었다.테이블 위엔 반쯤 시든 백합이 있었다.물컵엔 물이 반쯤 차 있었고, 그 옆엔 접히다 만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꽃은 시들어도 향은 남아요.”그 아래, 익숙한 필체로 린자오밍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는 손끝으로 종이를 만졌다.잉크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조심히 닿은 손끝에 파란 흔적이 묻었다.“…….”숨이 막혔다.그녀가 떠났다는 건 알았다.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떠날 줄은 몰랐다.가게 안의 공기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녀의 흔적은 지독할 만큼 남아 있었다.꽃가위가 기울어진 채로 있었고,작은 라디오엔 건전지가 다한 듯 희미한 잡음만 흘렀다.그는 무릎을 꿇었다.바닥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손바닥 위에서 부서지는 꽃잎은 그녀의 마지막 인사처럼 가벼웠다.‘왜… 아무 말 없이…’머릿속에 울리는 건 어젯밤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이 바다가 우리 둘 다 삼켜버릴 거예요.”그녀는 이미 자신이 사라질 걸 알고 있었다.그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그는 고개를 들었다. 서여진이 서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초췌했고, 눈가엔 밤새 지운 듯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여기 있었네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깨어진 유리처럼 불안정했다.“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강혁이 물었다.“모르겠어요.”“당신이 체포 명령을 내렸잖아요.”“명령은 내렸지만, 실행하지 않았어요.”“왜.”“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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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바다에 새겨진 피의 냄새

바다에 안개가 내려앉았다.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며, 바위 틈새에서 하얀 거품이 터졌다.새벽빛은 잿빛이었다.해가 뜨지 않은 하늘은 구름으로 눌려 있었고, 바다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잔잔하게 움직였다.강혁은 오래된 낚싯배 위에서 무전기를 켰다.“여보세요, 해남 해경인가요. 혹시 어제 새벽 시간대, 작은 여객선이 통과한 기록 있습니까?”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있긴 합니다만, 확인하려면 정식 조회가 필요합니다.”“그 배 이름이 뭐였죠?”“남해 27호요. 부산항으로 향했어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혁은 모터를 걸었다.바다가 낮은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항구로 향하는 길.그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이름만이 맴돌았다.린자오밍.그 이름이 입에 닿을 때마다,가슴 어딘가가 뜨겁게 식어갔다.사랑이었다가, 분노였다가, 이제는 단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그는 속삭였다.“왜 하필… 나였을까.”바람이 얼굴을 스쳤다.그 바람 속엔 여전히 꽃 냄새가 묻어 있었다.부산항의 아침은 붐볐다.화물선이 짐을 내리고, 사람들은 검은 커피를 손에 들고 각자의 길을 갔다.그 틈에, 강혁은 낯선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항구 창고 뒤편, 검은 모자를 쓴 여자의 실루엣.그녀의 몸짓은 수진과 닮아 있었다.그는 숨을 멈췄다.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수진…”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심장이 미묘하게 멈췄다.그건 수진이 아니었다.비슷한 체형, 비슷한 머리결,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그 여자가 피식 웃었다.“그 이름, 이제 입에 올리지 말아요.”“당신은 누구지?”“그 여자의 흔적이에요.”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남겨진 건 작은 쪽지 한 장.“찾고 싶다면, 바다의 끝을 봐요.”그 문장은 마치 암호 같았다.강혁은 쪽지를 주먹에 쥐었다.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그 시각, 서울 남영동. 국정원 본부 8층.서여진은 조사실 안에 앉아 있었다.조명은 밝았고, 공기는 냉랭했다.맞은편엔 배신구 국장이 앉아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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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흑거미의 목소리

새벽이 지나고도 바다는 여전히 잿빛이었다.수진은 조타실 한켠에 앉아 있었다.라디오를 꺼버렸는데도, 귀 안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린자오밍, 넌 아직 끝나지 않았다.”그녀는 손으로 귓가를 막았다.하지만 그 소리는 머릿속 안쪽에서 반복됐다.누군가가 귓속에 대고 속삭이듯, 그녀의 기억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흑거미… 당신은 대체 뭐예요.”그녀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짙은 안개 사이, 바다가 잠들어 있었다.잔물결 사이에 검은 비닐 조각 하나가 떠다녔다.그건 언뜻 보면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였다.그녀는 손끝을 떨며 속삭였다.“이제 그만 끝내야지.”서울 남영동. 국정원 내부 브리핑룸. 강혁은 서류철을 내려놓았다.그 안엔 오래된 작전 보고서가 한 장 들어 있었다.'캄보디아 작전 / 코드명: 흑거미'그는 보고서를 훑었다.서명란에는 “배신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 밑엔 수민의 이름도 있었다.“……수민?”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페이지를 넘기자, 붉은 도장으로 ‘임무 중 사망’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그는 손을 움켜쥐었다.손끝에서 종이가 구겨졌다.그 순간, 뒷문이 열렸다.서여진이 조용히 들어왔다.얼굴엔 피로가, 손엔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그 파일, 당신도 봤군요.”“이게 뭐야, 여진 씨.”“진실이에요.”“이건 조작된 보고서야.”“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이 아는 게 거짓일지도 몰라요.”그녀는 테이블 위에 또 다른 문서를 올려놨다.“‘흑거미 프로젝트’. 그건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었어요. 국정원 내부에서 만든 실험이었어요.”“무슨 소리야.”“목소리, 심리 조작, 피싱 기술… 사람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을 연구한 거예요. 그 실험체가 바로 린자오밍.”강혁의 눈이 커졌다.“그럴 리가…”“수민 언니가 그걸 알아챘어요. 그래서 배신구를 폭로하려 했고… 죽었죠.”공기 속이 얼었다.그녀는 낮게 속삭였다.“린자오밍은 피해자예요, 강혁 씨. 그 여자는 악인이 아니라, 당신 대신 살아남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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