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안개가 내려앉았다.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며, 바위 틈새에서 하얀 거품이 터졌다.새벽빛은 잿빛이었다.해가 뜨지 않은 하늘은 구름으로 눌려 있었고, 바다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잔잔하게 움직였다.강혁은 오래된 낚싯배 위에서 무전기를 켰다.“여보세요, 해남 해경인가요. 혹시 어제 새벽 시간대, 작은 여객선이 통과한 기록 있습니까?”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있긴 합니다만, 확인하려면 정식 조회가 필요합니다.”“그 배 이름이 뭐였죠?”“남해 27호요. 부산항으로 향했어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혁은 모터를 걸었다.바다가 낮은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항구로 향하는 길.그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이름만이 맴돌았다.린자오밍.그 이름이 입에 닿을 때마다,가슴 어딘가가 뜨겁게 식어갔다.사랑이었다가, 분노였다가, 이제는 단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그는 속삭였다.“왜 하필… 나였을까.”바람이 얼굴을 스쳤다.그 바람 속엔 여전히 꽃 냄새가 묻어 있었다.부산항의 아침은 붐볐다.화물선이 짐을 내리고, 사람들은 검은 커피를 손에 들고 각자의 길을 갔다.그 틈에, 강혁은 낯선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항구 창고 뒤편, 검은 모자를 쓴 여자의 실루엣.그녀의 몸짓은 수진과 닮아 있었다.그는 숨을 멈췄다.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수진…”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심장이 미묘하게 멈췄다.그건 수진이 아니었다.비슷한 체형, 비슷한 머리결,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그 여자가 피식 웃었다.“그 이름, 이제 입에 올리지 말아요.”“당신은 누구지?”“그 여자의 흔적이에요.”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남겨진 건 작은 쪽지 한 장.“찾고 싶다면, 바다의 끝을 봐요.”그 문장은 마치 암호 같았다.강혁은 쪽지를 주먹에 쥐었다.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그 시각, 서울 남영동. 국정원 본부 8층.서여진은 조사실 안에 앉아 있었다.조명은 밝았고, 공기는 냉랭했다.맞은편엔 배신구 국장이 앉아
Última atualização : 2026-04-09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