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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71 - Chapter 80

94 Chapters

흔적 (1)

“이번 일은 비밀에 붙이도록 하지.” 정연복이 하는 소리였다.천우도, 이포교도 그런 정연복을 무슨 소리 하느냐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우리 세 사람만의 비밀로. 알아듣겠나?”“비밀에 붙이다니요, 영감?” 이포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정연복이 손바닥으로 수염을 쓸며 대답했다. “포청에 압수된 물건이 흔적도 없이 소실되어 버렸네. 누가 없애버리거나 파손된 것도 아니지. 가만히 있던 압류품이 삽시간에 불에 타 사라져버렸어. 이걸 어떻게 보고하고 증명할 수 있겠나? 또 압류품에 얽혀있는 배후는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나? 증거가 전혀 남지 않았거늘.”“그렇지만……”“포청에서 수거한 압류품이 도중에 실종되는 것은 드물기는 해도 가끔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네. 열에 아홉은 중간에서 포청 인원이 빼돌리거나 관리소홀로 없어지는 경우인데, 적발되었을 시에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지.” 정연복의 시선이 슬몃 천우에게로 향했다. “물론, 백포교가 자의로 압류품을 망가뜨렸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네만……” 주름진 포도대장의 눈가가 왠지 모르게 수상하게 보였다. “어쨌거나 압류품에 가장 마지막에 손을 댄 사람은 백포교였지.&rd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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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촌 (1)

반촌(泮村)인근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냄새였다. 한양 골목에서는 맡을 수 없는 독특한 풍취가 났다. 짚검불의 알싸한 향과 아궁이에서 맡을 수 있는 풀죽, 소죽 냄새에 약간의 그을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하게 독특한 노린내가 한데 섞여 있었다. “오늘 소 잡는 날이었나 보군.” 옆에 있던 이포교가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아닌 게 아니라, 반촌 근처를 지나는 행인들 중 몸집 좋은 사내들 여럿이 뭔가를 나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거죽에 싼 피륙(皮肉)이었다.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막 잡은 소고기임이 분명했다. “유일하게 소고기 도축이 허가된 곳이라고 하더니.” 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도착하자마자 진귀한 장면을 보는군.”“나도 사실 반촌에 와서 소 잡는 광경을 본 경우는 드물다네.” 이포교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어디서 대량으로 주문이나 들어왔던 모양일세. 크게 제사라도 지내나 보이.”“성균관이나 대궐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는가?”“그런 것 치고는 고기 양이 적어. 보아하니 어느 돈 많은 양반집에서 제사 올린다고 유난인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포교가 슬며시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 정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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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부르는 곳 (1)

“우의정 황희 대감이시라고?”천우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산속에서 살 때도 황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주상전하의 오른팔로, 비단 주상전하뿐 아니라 상왕 전하 때에도 중신으로 활약했으며 더 올라가면 태조대왕 시절부터 벼슬길을 걸었으니 가히 조선 땅 전체의 중역이라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그래. 우상 대감이 맞아.”이포교가 중얼거렸다.“몇 년 전에 잠깐 얼굴은 뵌 적 있었는데, 변한 것이 없으시군. 여전하셔.”“우의정께서 제례(祭禮)를 직접 보시기도 하는군.”“어쨌거나 반촌에서 행해지는 제사이니 말일세. 조정의 중신께서 계셔야 질서가 유지될 테니. 그리고 우상 대감께서 계시는 것을 보니, 이 제사가 무슨 제사인지 알 것 같네.”“뭔가?”“기우제(祈雨祭)야. 비를 바라는 제사가 틀림없네.”이포교가 옆머리를 긁적였다.의관을 정제한 것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긴장한 기색이었다.“그리고 십중팔구 그 패거리가 여기 있을 것인데……”“무슨 패거리 말인가?”이포교가 말하는 것조차 껄끄럽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풍수사라는 작자들일세.”“풍수사?”“풍수지리를 탐구하고 좋은 터를 잡아낸다는 서생들인데, 말이 풍수지리지 대부분 뜬구름 잡는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불과하다네. 금화도감에도 가끔 방문하는데, 어디 땅을 파면 우물이 나오네, 거길 파헤치면 화가 미칠 것이네 쓸데없이 딴죽을 거는데, 그치들 대부분이 조정 높은 분들의 자제나 친인척이라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다네.”풍수사라면 천우가 처음 한양에 도착했을 때, 관노들로 하여금 엉뚱한 물길을 파도록 명령했던 직종이었다.여기 와서 다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예감이 좋질 않았다.“또 한 가지 알려주자면.”이포교가 첨언했다.“황희 대감이 여기 계시다면, 풍수사는 분명 저분의 사위 양반일 것이야. 성정이 거칠고 젠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아는 사람은 다 꺼리는 사람일세.”“그런데도 용케 우의정 대감 사위가 되었군.”“혼맥이 대단하다네. 형조판서의 장남이니. 서달이라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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