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1021 - Chapter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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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1화

도경진은 마지못해 움직였다.그는 천천히 상체를 굽혔다가 잠시 후 허리를 폈다.조사예도 그를 따라 절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부모님께 절!"주례관이 다시 외쳤다.도경진은 몸을 돌려 어머니를 마주 보았다.도 부인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훤칠한 모습을 한 아들이, 정작 얼굴에 기쁜 기색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홀몸으로 아들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이 혼례를 올리는 날이니 마땅히 기뻐야 했다.하지만 아들 곁에 선 비대한 체구의 조사예를 보자 도무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명문가의 훌륭한 적녀와도 충분히 짝을 지을 수 있는 아들이건만, 어쩌다 저런 며느리를 들이게 되었단 말인가.게다가 조사예 측에서 약속한 혼수도 턱없이 부족했다.하객들이 지켜보고 있어 당장 화를 낼 수는 없으니, 신방에 들어가고 나면 따로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도 부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시울을 붉혔다.도경진은 어머니를 향해 절을 올릴 때만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도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절을 받았다.어찌 되었든 아들은 오늘 가정을 꾸렸으니 새로운 시작이었다.조사예 역시 바닥에 머리가 닿을 만큼 허리를 깊숙이 굽혀 절을 올렸다.강유영은 조용히 앉아 하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새신부가 예를 아주 잘 갖추네.""그러게, 무척 정중해.""역시 국공부의 아씨라 배운 태도가 다르구먼……."강유영은 곁눈질로 사람들을 살폈다. 겉보기에 조사예는 진심으로 도 부인을 공경하는 듯했다.하지만 도 부인이 어떤 사람인가. 조사예가 저렇게 스스로를 한껏 낮추고도 도씨 가문에서 순탄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신랑 신부 맞절!"주례관이 외쳤다.조사예는 천천히 몸을 돌려 도경진을 마주 보았다.도경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돌아섰다.그의 시선은 조사예의 붉은 너울에 머물렀지만, 초점은 아득히 먼 곳을 향하는 듯했다.그는 무언가에 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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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하객들은 각자 둥그런 원탁에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갖가지 요리가 상에 올랐다.최고급 연회는 아니었으나 강왕과 도경진의 동료 관원들이 자리한 만큼 나름 구색은 갖춘 한상이었다.강유영은 조월아와 나란히 앉아 앞에 놓인 음식을 적당히 맛보았다.맞절도 끝났으니 식사만 마치면 곧장 국공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연회장에는 술잔이 오가며 제법 떠들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옥에 티라면 새신랑이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동료들은 도경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더는 권하지 봇하고 그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도록 내버려 두었다.뒤에서는 은밀한 수군거림이 오갔다. 도경진의 모습이 어디 장가가는 사람 같냐고, 영문 모르는 이가 보면 초상을 치르는 줄 알겠다는 말도 들려왔다..강유영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애초에 도경진과 거리를 둘 생각이었고, 그가 조사예와 혼인한 이상 더더욱 멀리해야 했다.자칫하면 조사예가 도경진에게 외면받은 원한을 전부 그녀에게 풀려고 할지도 모른다.애초에 조사예 스스로 억지를 부려 얻어낸 결과이니, 그녀가 괜한 원망을 살 이유는 없었다.주빈석 상석에는 조원철이 앉아 있었다.그는 수저를 거의 들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강왕은 술잔을 들고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진국공 세자.""강왕 전하."조원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왕이 제아무리 평판이 나쁘다 한들 엄연한 황족이었다. 대놓고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격식차릴 것 없네." 강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 처남이고, 도 대인은 이제 동서가 되었으니, 우리는 오늘부로 한 식구 아닌가."조원철은 입술을 닫은 채 대꾸하지 않았다.강유영은 실소가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조원철이 강왕과 엮이기를 얼마나 꺼리는지 훤히 보였다.다만 조연화가 처신을 잘못한 탓에, 조원철로서는 싫든 좋든 한 식구 노릇을 해야 할 판이었다."자자, 우리 한식구끼리 술이나 한잔하지."강왕은 술잔을 내밀며 조원철에게 권했다."잠시 후 폐하를 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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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허허, 그냥 해본 소리니 마음에 두지 말게."강왕은 문득 강유영을 바라보았다. 눈 밑으로 예리한 빛이 스쳤다."그러고 보니, 오늘은 넷째인 사예가 혼인하는 날이지. 진국공부의 저 양녀는 강씨라 했던가? 내 왕비와 동갑인 듯한데, 저리 고운 얼굴을 하고 어찌 아직도 혼인하지 않았는가? 슬슬 혼처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이는 진국공부의 집안일입니다. 전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집안일이라니? 또 잊은 모양인데, 이제 우리는 한 식구일세."강왕이 껄껄 웃었다."전하, 취하셨습니다."조원철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알았네, 알았어. 그만하겠네."강왕이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강유영은 아무 말도 못 알아들었다는 듯, 묵묵히 수저만 움직였다. 강왕의 속내는 뻔했다.강왕은 강유영을 이용해 조원철을 떠보는 중이었다. 일종의 협박일 수도 있었다.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해 던진 말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정황상 보면 아직까지 확신은 없는 듯했다.강왕은 방탕한 생활로 본색을 숨기고 황제까지 속여 넘겼다.이는 그가 무척이나 영악한 인물이라는 것을 뜻했다.예전 궁에서 조연화가 계략을 꾸몄을 때 조원철은 사사건건 강유영을 감싸고 돌았다. 겉으로 드러난 친밀한 행동이 없었다 해도, 눈치 빠른 강왕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했을 수도 있었다.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다른 사람의 의심과는 무게가 달랐다. 강왕은 황제의 형으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황제 앞에서 몇 마디 이간질이라도 한다면, 강유영과 조원철 모두 무사하기 어려웠다.그녀는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입에 들어간 음식 맛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그 무렵, 도 부인은 하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서 신방으로 들어갔다."아씨, 제발 제가 다시 곁에서 모시게 해주십시오……."소심이 조사예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고 있었다.조사예는 한 손으로 붉은 너울을 살짝 걷어 올린 채 난감한 얼굴로 소심을 내려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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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예, 어머님."무안해진 조사예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사예야, 하나만 묻자."도 부인은 방금 전 일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처음 혼담이 오갈 때 너희 집에서 혼수 열여섯 함을 보내기로 하지 않았더냐? 아까 내가 세어보니 어째서 열두 함뿐이냐?"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혼수인데 네 함이나 부족했다. 도 부인은 참지 못하고 당장 따져 물으러 온 참이었다."어머니께서 나머지 네 함은 먼저 맡아두었다가 나중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조사예는 시어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살피며 덧붙였다."어머니께 자식이라고는 저 하나뿐입니다. 어머님, 염려 마십시오. 그 재산은 어차피 다 제 차지가 될 것입니다."그제야 도 부인의 안색이 조금 풀어지며 미소가 번졌다."그럼 원래 주기로 한 논밭은 어떻게 되었느냐?"애초에 조사예는 비옥한 밭 열 마지기를 챙겨오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비록 성곽 밖이라 하나 수도인 경성의 근교였다. 도 부인네 고향에 있는 땅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값나가는 알짜배기였다."예."조사예는 상자에 든 땅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도 부인은 땅문서를 받아 들고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너 농사일을 좀 아느냐? 어느 계절에 뭘 심어야 하는지, 소작농들이 꾀를 부리는지 아닌지 알아볼 눈썰미는 있고?"땅을 이대로 차지할 속셈으로 하는 말이었다."저는 그런 일은 하나도 모릅니다. 집안일은 모두 어머님께서 주관하시니, 이 땅과 제 혼수 모두 어머님께서 대신 맡아 관리해 주십시오."조사예가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 부인의 속셈은 뻔했다.달라고 하니 순순히 내어주는 것뿐이다.어차피 도 부인에게는 도경진 하나뿐이니, 훗날 이 집안의 재산은 전부 그녀에게 돌아올 터였다.당장 시어머니와 부군 모두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니, 이런 재물로나마 도 부인의 환심을 사야 했다.정성을 들이면 통하는 법이다. 도 부인이라고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은 아닐 터였다.도경진은 효심이 지극했다. 시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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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도경진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조사예는 점차 다가오는 발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도 덩달아 빠르게 요동쳤다.기다리던 서방님이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손끝마저 미세하게 떨려왔다.탁자에는 혼례용 다과가 놓여 있고, 옆에는 신부의 너울을 걷어낼 때 쓰는 막대도 있었다.도경진은 막대를 들고 다가와 너울을 걷어줄 것이다.조사예는 긴장감에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비단이 구겨지는 줄도 모를 만큼 깊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마침내 도경진이 신은 장화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너울을 걷고 합환주를 나누어 마시면 정식으로 부부가 될 것이다.오늘 밤만 무사히 넘기면 낮에 겪은 냉대쯤은 참을 수 있었다.원하던 사내에게 시집온 것만으로도 꿈이 이루어진 셈이니 더 바랄 것도 없었다.관계는 천천히 회복하면 될 일이었다. 조사예는 진심이 통할 거라 믿고 있었다.하지만 도경진은 그녀의 곁에 머물지 않았다.그는 조사예의 곁을 그대로 지나쳐 침상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집어 드는 듯했다.잠시 후 소리가 멎었다. 장화는 다시 방향을 틀어 문 쪽으로 향했다."어딜 가시는 겁니까?"조사예는 순간 다급해졌다.수줍음이나 예의를 따질 겨를도 없이 제 손으로 붉은 너울을 확 걷어버리고 도경진을 바라보았다.도경진은 품에 이불과 베개를 안고 있었다. 그녀의 부름에 걸음을 멈췄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일찍 쉬시오."그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밖을 향해 걸었다."잠깐만요."조사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경진을 향해 다가갔다.지금은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는 상상했던 첫날밤의 모습이 아니었다. 명색이 신혼 첫날밤인데 신랑이 이불과 베개를 챙겨 들고 다른 곳으로 가다니.이는 부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는 짓이었다."할 말이 남았소?"도경진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서늘하게 물었다."오늘이 신혼 첫날밤인데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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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조사예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결국 그의 부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목적을 달성했는데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서방님 마음은 잘 압니다. 제가 약간의 수완을 써서 시집온 탓에 언짢으시다는 것도, 저를 마음에 두지 않으셨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다 괜찮습니다. 서방님을 향한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조사예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이 세상에 저보다 서방님을 은애하는 여인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서방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 모르시겠지요. 방금 어머님께서 다녀가셨을 때, 제 혼수와 교외의 논밭 열 마지기를 모두 어머님께 맡겼습니다. 제 모든 것을 내어드릴 테니, 앞으로 그저 평범하게 잘 살면 안 되겠습니까?"그녀는 한없이 몸을 낮춰 애원하면서도 강유영의 이름만큼은 애써 입에 올리지 않았다.실은 그의 마음속에 강유영뿐이라는 것을 안다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도경진의 마음에 자리한 사람도 서서히 자신으로 바뀔 것이라 굳게 믿었다. 도경진이 시간만 내어준다면 충분했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강유영을 언급하지 않았다. 도경진과 단둘이 있는 신혼 첫날밤이었다. 강유영의 이름은 반 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강유영만 아니었다면 그녀와 도경진이 오늘 같은 사이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상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도경진과 부부의 정을 나누며 평생 백년해로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대의 혼수는 그대의 몫이니 어머니께 넘기지 마시오."도경진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이 말만 남긴 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서방님, 가지 마십시오……. 제가 스스로 원해서 한 일입니다. 제 혼수를 어머님께 맡기고 서방님과 함께 효도를 다하고 싶습니다……."조사예는 뒤쫓아가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그러나 도경진은 차갑게 손을 뿌리쳤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문지방을 넘어 나갔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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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강유영은 예전처럼 바보같이,홀린 듯 동거울 속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는 부드럽고 세심한 손길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강유영은 기분 좋은 손길에 살포시 눈을 감았다. 문득 작은 욕심이 피어올랐다. 평온한 일상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그녀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찰나의 헛된 미련은 금세 사그라졌다."청운을 시켜 요깃거리라도 사 오게 하마. 뭐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조원철이 물었다."저는 배부릅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거울 속의 그를 향해 물었다."오늘 강왕이 한 말은 무슨 뜻입니까? 추적하고 계신 공부의 은자가 강왕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연회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조원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터라 서둘러 답을 구하고 싶었다."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으나, 오늘 하는 모양새를 보니 짐작이 맞는 것 같구나."조원철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오라버니를 떠보려는 속셈이었군요. 어찌나 천연덕스러운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도 까맣게 속을 뻔했습니다."강유영은 강왕의 방탕한 얼굴 뒤에 숨겨진 영악함을 떠올리니 새삼 등골이 서늘해졌다.저렇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 조연화의 부군이라 생각하니 불길함마저 들었다.조연화는 강유영을 뼛속 깊이 증오했다. 강왕이 조연화의 이간질에 넘어가 그녀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다행히도 조만간 도성을 떠날 계획이었다. 앞으로는 그들과 엮일 일도 없을 것이다.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강왕은 속내를 깊이 숨기는 자다."조원철은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었다."그럼 갑자기 제 혼사를 들먹인 것은 단순한 떠보기일까요, 아니면 이미 눈치를 채고…… 협박을 가하는 걸까요?"강유영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차마 두 사람 사이를 대놓고 묻기 민망하여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어차피 조원철이라면 알아들을 것이다."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거다."조원철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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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이번에는 기필코 멀리 달아나서 완벽하게 숨을 것이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반짝이는 시선을 힐끗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의 짙은 눈동자 깊은 곳에 어두운 기운이 스쳤다."얼마나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강유영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낌새를 들킬까 염려되어 평소처럼 가벼운 어조를 꾸며냈다."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한 달, 길어지면 두세 달은 걸릴 것이다."조원철은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수건을 내려놓았다."그렇게나 오래요?"강유영은 엉겁결에 소리 내어 묻고 말았다.조원철이 이렇게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울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기대 이상의 긴 시간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싶었다."왜? 내가 아쉬운 것이냐?"조원철은 그녀를 잡아당겨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강유영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단단한 허리를 끌어안고 품에 얼굴을 묻었다."예……."그녀는 작게 대답했다.곧 떠날 것이고 앞으로는 볼 일이 없을 터이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하지만 과거 그가 했던 짓들, 견뎌야 했던 수모와 비참했던 순간들을 떠올리자 알량한 미련조차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에게 미련을 둘 이유가 없었다.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소은경뿐이고, 소지란을 첩실로 들이기까지 했다. 훗날 그의 후원에는 더많은 여인이 들어올 것이다.그는 그녀를 온전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단 한 줌의 미련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정말이냐?"조원철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추었다."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다시 품으로 고개를 숨겼다.두 사람 사이에 숱하게 친밀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웠다.무엇보다 표정에서 속내를 들킬까 두려워, 이렇게 품에 숨어 있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그렇게 아쉽다면……."그는 강유영을 끌어안고 큰 손으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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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조원철은 그녀의 턱을 잡고 다가와 입을 맞췄다.뜨거운 입술이 닿자 순식간에 온몸에 열기가 번졌다. 하얀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귓가와 목덜미를 타고 옷깃 아래까지 빨갛게 물들었다.차분하던 그의 짙은 눈동자가 일렁이고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코앞에 닿은 그녀의 얼굴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보며 거칠어진 숨을 내쉬었다.강유영은 가슴이 터질 듯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 울리는 고동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호흡이 가빠지며 무의식중에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고, 두 손은 저도 모르게 그의 허리띠를 꽉 쥐고 있었다."눈을 뜨고 나를 보거라."그는 입술을 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린 채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하지만 조원철은 그녀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젖히게 한 뒤, 입술을 깊게 머금었다."나를 보거라."입술이 맞닿은 채 흘러나온 목소리는 몹시 흐릿했다.강유영은 마지못해 물기 어린 눈을 떴다.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와 뺨에 엉겨 붙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조원철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가뿐히 안아 올려 침상으로 향했다."이러지 마십시오……."정신을 차린 강유영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울먹였다."방음이 안 되어 밖에서 다 듣습니다……."그녀는 남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하인들이 진작 눈치채고 있다 한들, 이런 상황까지 직접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조원철은 그녀를 침상에 눕히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그 오랜 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데, 이마저도 안 된다는 것이냐? 너는 내가 가는 게 전혀 아쉽지 않은 모양이구나?"강유영은 뻣뻣하게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녀는 그의 옷깃을 꽉 쥔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여기서는 안 됩니다……."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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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조원철은 그녀가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더욱 몰아붙였다."어서, 오라버니라 불러보거라."강유영은 서럽고도 당혹스러운 마음에 옅은 신음을 흘렸다."예전에는…… 읏…… 그렇게 부르지…… 말라 하셨으면서……."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참으로 치사하고 뻔뻔한 사내였다."이제는 허락하마. 착하지, 어서 불러보거라."조원철은 그녀의 귓불을 잘근거리며 낮게 어르고 달랬다.강유영은 그의 끈질긴 보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입을 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비바람이 잦아들고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웅덩이로 떨어지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조사예는 신방의 새 침상에 홀로 누운 채,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머릿속에는 도경진의 얼굴과 오늘 하루 겪었던 수모가 끊임없이 맴돌았다.그리고 강유영이 있었다.어떻게 해야 강유영을 짓밟을 수 있을지, 상대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가슴속 한이 풀릴지 거듭 곱씹었다.물론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도경진의 마음속에 아직 강유영이 남아 있으니 당분간은 숨죽여 기다리며 때를 노려야 했다.어찌 되었든 강유영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수많은 생각에 휩싸여 밤을 새우던 조사예는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마저도 잠시뿐, 그녀는 금세 눈을 떴다.이제 도경진에게 시집왔으니 부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혼례 다음 날 아침, 새며느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어머니에게 문안과 차를 올리는 것이었다.조사예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미리 준비해 둔 옷을 꺼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예전에는 소심이 곁에서 거들어주었기에 옷을 입는 수고로움 따위는 몰랐다.이제는 씻고 치장하는 모든 일을 제 손으로 직접 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채비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날이 밝아 해가 떠올라 있었다.동거울 앞에서 복장을 살폈다. 화사한 복숭앗빛 의복은 과하지 않아 새신부의 처지에 제격이었다.정갈하게 틀어 올린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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