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1031 - Chapter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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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1화

"여기사 뭐 하고 있느냐?"등 뒤에서 갑자기 도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사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도 부인이 방에서 나와 있었다."어머님."조사예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인사를 올렸다.어제 막 시집온 참이라 도씨 가문의 생활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진국공부에서는 서출이라 해도 독채를 썼으니 시어머니와 한 지붕 아래 부대끼며 지내는 생활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불쑥 나타난 도 부인을 보고 놀란 것도 그 때문이었다."경진이를 부르는 것이냐?"도 부인은 다가와 조사예를 흘끗 보며 심드렁하게 물었다."예."조사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수줍은 기색을 띠었다."서방님을 깨워 어머님께 문안을 올릴까 했습니다."혼례 다음 날 신혼부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어젯밤 도경진이 방을 따로 쓴 것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에게 차를 올리는 일마저 거부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관아에 일이 생겨 동이 트기도 전에 나갔다."도 부인은 그녀를 지나쳐 대청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관아에요?"조사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기가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화사한 의복과 대조를 이루었다.관아 일이 그리 바쁠 리가 없었다. 갓 혼례를 올린 사람에게 공무를 억지로 떠맡길 이유도 없었다. 도경진이 그녀를 마주하기 싫어 자발적으로 관아로 향했을 터였다.참으로 매정한 처사였다. 만약 상대가 강유영이었다면 관아는커녕 방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순간 울화와 원망이 치밀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모욕감이었다.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평생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모든 것이 강유영 때문이었다."그래."도 부인은 시선을 들어 그녀를 훑어보았다."관직에 몸담은 사람이니 공무가 우선이다. 그런 일은 네가 이해하고 뒷바라지해야지."도 부인 역시 아들이 일부러 조사예를 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내심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조사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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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2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조사예는 황급히 고개를 들고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그저, 서방님이 어머님께 문안을 올리는 자리에 함께하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닌 듯하여……."머릿속이 어지러워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린 말이었다."그게 뭐 대수라고."도 부인은 그제야 찌푸렸던 미간을 펴며 말했다."차나 올리거라."소심이 붉은 옻칠을 한 쟁반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하얀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심은 조심스레 조사예의 뒤로 다가갔다.소심은 도 부인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춘 조사예를 보며 가엾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다.진국공부에서는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어찌 도경진 모자 앞에서는 저리도 맥을 못 추는 것일까.차라리 조사예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버텼다면 곁에서 힘이라도 보탰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굽히고 들어가니, 그녀 역시 도 부인 밑에서 죽어라 일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어머님, 차 드십시오."조사예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찻잔을 받들어 도 부인에게 올렸다."오냐."도 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을 치켜들고 어른 행세를 하며 찻잔을 받아 들었다."네가 경진이를 선택해 시집왔으니, 앞으로는 얌전히 분수를 지키며 살거라. 경진이는 본래 심성이 고운 아이다. 당장 제 마음에 네가 없다 해도, 네 진심을 알게 되면 널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예."조사예는 고개를 숙여 대답하며 치밀어 오르는 조바심을 억눌렀다.도경진의 인품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강지처에게 모질게 굴지는 않을 거라 믿었기에 이런 수를 써서라도 시집온 것이었다.'난 절대 지지 않을 거야!'*날이 밝아오고 있었다.침상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강유영은 뒤척이다가, 습관처럼 바깥쪽에 누운 사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끝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깜짝 놀란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비몽사몽간에 몸을 일으키며 무의식중에 그를 불렀다."오라버니?"잠이 덜 깬 몽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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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3화

전에 감시를 붙이지 않았다고 했으니 아마 감시자가 몰래 그에게 전한 소식은 아닐 것이다."또 엉뚱한 생각을 하는구나."조원철은 가볍게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어머니 쪽에 사람을 붙여두었다는 걸 잊었느냐?""의심한 게 아닙니다."강유영은 황급히 변명했다.애초에 의심할 생각은 없었다. 웬만하면 그를 믿는 편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광기만 부리지 않으면 꽤 든든하고 의지할만한 사람이었다."전당포에 같이 가줄까?"그가 물었다."괜찮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한씨 정도는 혼자 상대할 수 있었다. 거절하고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가신다 해도 직접 나서진 못하시지 않습니까?"그가 전당포까지 따라가서 뭘 돕겠다는 건지 의아했다.한씨야 두 사람 사이를 알고 있으니 들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유덕전은 달랐다.두 사람의 관계는 양지로 나올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가 떳떳하게 나서서 그녀를 감싸줄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내가 곁에 있으면 든든하다 하지 않았느냐."조원철의 눈가에 옅은 웃음기가 번졌다."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강유영이 되물었다.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 게 맞았다. 위협이나 위기, 불확실한 상황에 닥쳤을 때 그가 곁에 있으면 굳이 나서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정작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는 말이었다."안 했지."조원철이 그녀의 흩어진 옆머리를 넘겨주며 말했다."네가 혼자 감당치 못할까 걱정이 되어 그런다."강유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맑은 얼굴에 순식간에 발그레한 홍조가 번졌다.걱정된다는 말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하다니. 평소의 그답지 않은 솔직한 고백이었다.화로 곁에 선 것처럼 온몸에 후끈한 열기가 올랐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럼 혼자 다녀오거라. 청란에게 사람을 붙여 몰래 호위하라 일러두마."조원철이 손을 뻗어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졌다."대놓고 호위하면 안 됩니까?"강유영이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안 그래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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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4화

아쉽게도 조원철은 여느 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강유영은 조금 기운이 빠졌다.'설마 정말로 눈치챈 걸까?'"그래."조원철은 짙은 눈동자로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오늘부터 청란은 서유처럼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할 것이다. 오직 네 명만 따를 것이다.""어째서 갑자기 청란을 제게 주시는 겁니까?"강유영은 그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는 안심할 수 있었다. 조원철은 그녀가 멀리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청란을 온전히 넘겨주는 대신, 보호를 핑계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을 것이다."먼 길을 떠나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런다."조원철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이제 궁으로 가봐야겠다."짙게 가라앉은 눈동자 깊은 곳에 옅은 아쉬움이 숨어 있었다."언제 출발하십니까?"강유영은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그를 향한 걱정도 있었지만, 자신이 언제 떠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마음도 컸다."오전에 안 가면 오후에는 출발할 것이다."조원철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바깥에서 매사 조심하십시오."강유영은 이불을 걷어내고 침상 위에 서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조원철은 그녀를 끌어안았다.침상 위에 선 강유영은 그보다 훌쩍 컸다. 그녀는 그의 목을 껴안고 얼굴을 바짝 기댔다. 익숙한 감송향이 코끝을 스치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이대로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부디 무탈하게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기를 바랄 뿐이었다.조원철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낮게 당부했다."혹여 감당하기 힘든 일이나 사람을 마주하거든 정면으로 부딪치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라.""예."강유영의 목소리에는 이미 물기가 어려 있었다.철이 들 무렵부터 그를 향한 마음은 남달랐다. 어릴 적에는 그가 곁에서 알뜰히 챙기고 보호해 주었다.훗날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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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5화

"서유야."강유영은 나지막이 서유를 불렀다."아씨, 왜 그러십니까?"서유가 다가와 그녀를 보며 물었다."네가 보기에, 청란은 믿을 만한 자인 것 같으냐?"강유영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당연히 믿을 만하지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서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세자 곁에 있는 사람 중에 믿지 못할 이는 없었다.혹시 청란이 무례한 짓이라도 한 걸까?그녀가 보기에 청란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그자가 내 사람이 되어, 너처럼 나와 함께 멀리 떠나자고 한다면, 몰래 고자질을 하지는 않겠느냐?"강유영은 서유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조원철 수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가 밝고 눈치 빠른 고수들이었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당장 엿들을 것이 뻔했다."세자께서 청란을 아씨께 내어주셨다는 말씀이십니까?"서유는 곰곰이 생각하다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는 조심스레 물었다."오늘 아침에 그리 말씀하셨다. 청란을 내게 줄 테니 앞으로 너처럼 내 명만 따르게 하겠다고 말이다. 나도 정녕 믿어도 될지 모르겠구나."강유영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조원철 곁의 사람들 중에서는 청류와 청운 정도만 안면이 있었다. 두 사람은 제법 믿음직했다. 하지만 청란은 평소 마주칠 일이 적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지난번 강남으로 도망칠 때도 청란을 속이고 떠났었다. 그 일로 청란은 조원철에게 벌을 받기도 했다. 속으로 앙심을 품고 조원철에게 달려가 낱낱이 고해바칠지 누가 알겠는가."참으로 잘된 일입니다!"서유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청란은 꽤 믿음직한 자입니다. 절대 고자질할 사람이 아닙니다. 성정이 청운님과 비슷하면서도 꽉 막힌 구석이 없어, 그가 곁에 있으면 아씨께서 먼 길을 떠나실 때 훨씬 안전할 것입니다.""정말이냐?"강유영은 서유의 말에 덩달아 눈을 반짝였다.청란이 그토록 쓸 만한 자였다니!"든든한 장수를 얻으셨으니, 앞으로의 일도 한결 수월하게 풀릴 것입니다. 경하드립니다, 아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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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6화

고작 사흘 만에 조사예는 몰라보게 초췌해져 있었다.도경진은 아직 그녀를 부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조사예의 뒤에는 소심이 서 있었다. 주종 두 사람이 나란히 강유영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서유야, 호칭이 틀렸잖니. 나는 이제 사예 아씨가 아니라 도 부인이라 불러야지."조사예는 턱을 치켜들고 서유를 흘겨보았다."아씨, 어쩌지요? 길이 좁아 마차를 돌리기가 마땅치 않습니다."서유는 조사예의 말은 못들은 척 무시하며, 미간을 찌푸린 채 강유영에게 작게 속삭였다.전당포 일로 바쁜 와중에, 조사예 따위가 길을 막고 소란을 부리고 있으니 불쾌하기 그지없었다."강유영, 네게 사과하러 왔어."조사예는 앞으로 다가오며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다."필요 없습니다."강유영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엇을 사과하겠다는 건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조사예가 좋은 뜻으로 왔을 리 만무했다."어머님께서 그러시더라. 우리 부부가 혼례를 올리던 날 손님이 너무 많아 널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내게 대신 미안함을 전하라 하시며 괘념치 말라 하셨어."조사예는 미소를 띤 채 강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묘한 우월감이 스며 있었다.강유영은 그동안 도경진과 잦은 왕래가 있었으니, 필시 그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을 터.이제 도경진은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강유영 때문에 사사건건 자신을 냉대하고 있었다. 마침 친정에 왔다가 강유영을 마주쳤으니, 상대의 속도 한번 뒤집어놓을 심산이었다."괘념치 않으니, 길이나 비키십시오."강유영은 조사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화려하고 눈부신 의복으로 치장하면 그 처량하고 비참한 모습이 가려질 거라 여긴 걸까.조사예가 저런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뻔했다. 시어머니와 화목하게 지내며 어엿한 한 식구가 되었음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강유영은 도 부인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뭐 그리 자랑할 거리라고 저러는 건지 우스울 뿐이었다."내 말 아직 안 끝났어."조사예는 길을 비켜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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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7화

강유영은 조사예의 말을 듣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상대를 응시하다가 그 말의 뜻을 깨닫고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그녀가 도경진을 연모한다니. 대체 어디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무엇을 보고 저런 헛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애초에 도경진과 혼인할 마음이 있었을 때조차, 그저 성품이 온화하고 외모가 반듯하여 혼인 상대로 적합하다 여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훗날 도 부인의 드센 성정을 알게 된 후로는 그 생각마저 미련 없이 접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경진을 연모하거나 설렌 적은 없었다. 다만 그는 좋은 사람이니 평탄하게 잘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도 부인 같은 어머니에 조사예 같은 부인까지 두었으니, 앞으로의 날들이 순탄치만은 않을 듯했다."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도 못 하겠어?"조사예는 강유영이 입을 다물자 더욱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였다.그녀는 강유영이 도경진에게 마음을 품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도경진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탐화랑 출신으로 조정에서 승진도 빨랐다. 외모 또한 큰오라버니인 조원철에게 뒤지지 않았고, 온화한 성품에 앞날이 창창한 사내였다. 일개 양녀 주제에 강유영이 어찌 그런 사내를 넘볼 수 있겠는가. 당연히 도경진에게 온 마음을 쏟았을 테고, 그러니 그동안 꾸준히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아쉽게도 도경진은 이미 그녀와 혼인을 올렸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속이 후련해지며 며칠 동안 쌓였던 우울함이 단번에 가시는 듯했다.강유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예, 참으로 부럽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예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마차 앞에 앉아 있던 서유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아씨가 화가 나서 홧김에 내뱉은 소리인지, 어찌 저런 말에 수긍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조사예는 그 말에 턱을 치켜들며 한껏 우월감을 드러냈다.사실 지난 며칠 도씨 가문에서의 생활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도경진은 꼭두새벽에 나갔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집에 오면 서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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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8화

설마 도경진이 말해준 것일까?"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도 부인이 가장 잘 아실 텐데요."강유영은 눈매를 휘며 가볍게 웃었다.처음에는 조사예가 독수공방을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곡을 찔린 듯한 지금의 표정을 보니 사실인 듯했다.도경진은 정말 그가 말한대로 조사예를 안지 않았다.같은 여인으로서 조사예가 혼인 후 겪는 수모와 도 부인에게 휘둘리는 처지를 생각하면 내심 씁쓸하기도 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앞날을 도모하기는커녕 달려와서 도발이나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조사예는 상대가 예전의 만만한 양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조사예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들썩였다. 단단히 분통이 터진 듯했다.도씨 가문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조사예는 자신이 입을 다물면 밖에서는 아무도 모를 테니 최소한 체면은 지킬 수 있으리라 여겼다. 어쨌든 의식주 면에서는 도경진의 간섭이 없었으니, 앞으로 점점 나아질 거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고작 사흘 만에 강유영은 이 내밀한 사정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이런 일까지 강유영에게 다 말했단 말인가.'"서유야, 출발하자."강유영은 휘장을 놓으며 명했다.굳이 독설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모두 조사예가 자초한 일이었다."비키십시오."서유는 손을 뻗어 조사예를 가볍게 밀쳤다.조사예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더 이상 강유영과 실랑이를 벌일 여력조차 없었다. 그녀는 마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참, 도 부인. 부러운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마차가 조사예 앞을 지나칠 때, 강유영은 창의 휘장을 걷고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사예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이를 꽉 깨문 채 상대를 노려보았다.강유영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막을 방도 또한 없었다."친정에 왔는데 어머니께서 마중조차 나오지 않으시니, 귀찮은 예법을 또 덜게 되어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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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9화

본점을 한씨 대신 관리해온 유 낭자는 콧대가 높아 두 사람을 얕보곤 했다. 그러니 그들 역시 굳이 유 낭자를 설득해 새 주인을 따르게 할 마음이 없었다."도착했습니다."탁자에 앉아 있던 한씨는 유 낭자의 말에 맞은편의 유덕전을 쳐다보았다.유덕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한씨는 안하무인인 그의 태도와 등 뒤에 버티고 선 건장한 사내들을 보며 한결 마음을 놓았다. 강유영이 제아무리 영악하다 한들 어린 처자에 불과했다. 그녀가 무슨 수로 유덕전과 같은 망나니를 상대하겠는가.마차에서 내린 강유영은 전당포 앞을 막아선 험상궂은 사내 둘을 발견했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곧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턱을 넘어 주위를 둘러보니 전당포 안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유영 아씨."점주와 일꾼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격식 차릴 것 없네."강유영은 손을 들어 가볍게 웃어 보였다."어찌 이제야 오는 게냐. 한참을 기다렸다."한씨는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핀잔을 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한씨를 힐끗 보곤 입을 닫았다. 굳이 변명할 가치도 못 느꼈다.한씨는 유덕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처자가 이 전당포의 새 주인인가?"의자에 앉아 있던 유덕전이 몸을 돌려 강유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얼굴은 반반하나 한눈에 봐도 겁이 많아 큰일을 감당할 그릇이 못 되었다. 그는 쓱 훑어보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번 거래는 아주 쉽게 풀릴 것 같았다."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강유영은 웃음기를 거두고 상대를 살폈다.유덕전은 칙칙한 회색 옷차림에 툭 불거진 광대, 얇고 거친 피부와 가늘게 처진 눈매를 하고 있었다. 비스듬히 흘겨보는 음흉한 눈빛이 한눈에 봐도 만만치 않은 자였다.한씨가 대동한 인물에 이런 행색이니 유덕전이 분명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물어야 했다. 그래야 이쪽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이분이 바로 유 점주시다. 일전에 네게 넘긴 차용증의 주인이시지."한씨는 헛기침을 하며 거들먹거렸다. 유덕전이 버티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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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0화

원칙만 지킨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너희 둘은 잠시 물러나 있거라."유덕전은 그 말에 잠시 굳어지더니 이내 한발 물러섰다.그는 다시 강유영을 살폈다.어린 계집애가 지금 자신의 기를 꺾으려 드는 건가 싶었다.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이 처자가 만만한 상대라 여긴 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할 듯했다."유 점주, 들어가지."한씨는 웃으며 손을 들어 길을 내어주었다.세 사람은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당신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서유는 강유영이 한씨와 유덕전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서재 문 앞을 가로막고 수하들의 앞길을 막아섰다.수하들은 걸음을 멈추고 유덕전을 쳐다보았다."너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거라."유덕전은 손을 휘저었다. 그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자신과 한씨가 버티고 있는데 어린 계집애 혼자 무슨 짓을 벌이겠는가."앉으시지요."강유영은 손을 뻗어 자리를 권하고는 명을 내렸다."서유야, 차를 내오거라.""차용증은 가지고 있겠지?"유덕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치 제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태도였다."그렇습니다."강유영은 소매에서 차용증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한씨는 힐끗 유덕전을 쳐다보았다.유덕전은 찻잔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차용증을 집어 들었다. 가볍게 훑어본 그가 강유영을 바라보았다."빚을 졌으면 돈을 갚는 법. 이에 이의는 없겠지?""당연한 말입니다."강유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수긍하는 태도였다.한씨는 강유영의 여유로운 태도에 경계심이 일었다.강유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할 아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흔쾌히 수긍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상대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섣불리 나설 수도 없었다."어린 점주가 제법 시원시원하군. 그렇다면 곧장 은자를 내놓으시지."유덕전은 차용증을 내려놓고 손끝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축 처진 눈꼬리를 치켜뜨며 강유영을 주시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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