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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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1화

강유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명백한 사실 앞에서 한씨도 발뺌할 수 없을 것이다.안타깝게도 지금 한씨의 수중에는 은자가 한 푼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은자를 뱉어내게 만들었을 것이다."틀린 말은 아니다만……."한씨는 굳어진 얼굴로 마지못해 인정했다.강유영을 집안에 남기기로 그날부터, 한씨는 그녀를 철저히 무능한 인물로 곁에 둘 생각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강유영은 철저히 한씨의 뜻대로 글을 읽지 못하고 겁 많고 나약하게 자랐다. 한씨는 이 전당포가 영원히 자신의 차지일 줄 알았다.조원철이 강유영에게 글과 장부 보는 법을 가르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온갖 수완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한씨는 속이 타들어 갔다."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강유영은 단칼에 말을 끊었다."어머니께서 가져가신 은자가 백삼십만 냥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차용증에는 삼십 만 냥이 적혀 있지요. 어머니 수중에 있는 은자로 직접 갚으십시오."강유영은 말을 마치고 의자 등받이에 편히 기대어 한씨와 유덕전을 번갈아 보았다.과연 두 사람이 은자 때문에 서로 물어뜯고 싸울까?이 정도로 순순히 물러설 이들이 아니었다. 불을 더 지펴야 할 듯했다.유덕전은 강유영이 이런 식으로 치고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한씨를 쳐다보았다."부인 생각은 어떠시오?"애초에 한씨가 먼저 그를 찾아와 은자를 융통하는 척하며 넉넉한 대가를 약속한 일이었다. 그래서 친히 걸음을 한 것이었다. 앞으로 어찌 대처할지는 전적으로 한씨의 몫이었다. 어찌 되었든 돈줄을 쥐고 있는 쪽은 한씨였다."내 수중에는 은자가 없다. 이것은 전당포가 진 빚이니, 내가 갚을 이유가 없다."한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쏘아붙였다. 애당초 은자가 넉넉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수작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그동안 가져가신 은자는 다 어디 있습니까? 백삼십만 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저를 위해 쓰신 것도 아니고, 국공부 생활비는 공금으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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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2화

하지만 강유영은 유덕전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이런 자들은 파리 떼 같아서 얽히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적당히 구슬려 돌려보내면서도 단단히 겁을 주어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 만들어야 했다."그렇다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당장 사람을 시켜 전당포를 박살 내더라도 원망하지 마시오. 내가 손을 쓰면 진열된 물건과 집기들을 모조리 때려 부숴 반 조각도 남기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말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게 좋을 거요."그는 성을 내거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짙은 위협이 깔려 있었다.게다가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뱉은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 것 같았다."제가 듣기로 유 점주께서는 원칙을 지키는 분이라 하셨는데, 이리 막무가내로 구실 리 없습니다."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깐 채 찻잔을 매만졌다.유덕전의 얼굴이 워낙 흉측하고 사나워 똑바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다행히 조원철에게 단단히 훈련받은 덕분에, 속으로는 거부감 때문에 괴로웠지만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여 두려운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그건 무슨 일인지, 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유덕전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그렇습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청란."청란을 나서게 하지 않고서는 순순히 끝날 일이 아닐 듯했다."아씨."순식간에 눈앞이 아른거리더니 청란이 창문 밖에 나타났다. 그의 수하들도 회랑에 나란히 섰다.문가에서 대기하던 유덕전의 수하들은 갑자기 나타난 다섯 명의 기세에 바짝 긴장하여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굳이 합을 겨루지 않아도 상대가 만만치 않은 고수들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들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한씨는 그들을 보며 멍하니 굳어버렸다.청란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청류와 청운은 알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조원철이 강유영에게 붙여준 자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조원철과 강유영, 그 배은망덕한 것들을 거두어 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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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3화

유덕전은 강유영을 바라보며 잠시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좋소."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자였다. 강유영 뒤에 버티고 있는 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쯤은 바로 알아차렸다.우선 강유영의 말을 들어본 뒤에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하기로 했다."어머니는 먼저 나가주십시오."강유영은 한씨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이 일이 끝나면 한씨와는 두 번 다시 엮일 일이 없었다. 굳이 체면을 차려줄 필요도 없었다.한씨는 안색이 굳어진 채 유덕전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손에 쥔 손수건을 거세게 움켜쥐었다.유덕전은 분명 자신이 부른 사람인데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강유영의 편에 서려는 듯했다.하지만 상관없었다.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강유영이 끝내 은자를 내놓지 않는다면, 전당포를 고스란히 그녀에게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멀리 처마 밑의 나한송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살기가 스쳤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유덕전은 의자 손잡이를 짚은 채 강유영을 살피듯 바라보았다."이 차용증은 가짜입니다."강유영은 그의 앞에 놓인 차용증을 가져와 탁자 한가운데 놓고 손끝으로 종이를 가리켰다.그녀는 유덕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담담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확신에 찬 어조였다."강 점주, 나는 이곳에 와서 이미 여러 번 양보를 했소. 허튼소리를 하려면 증거를 대시오."유덕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강유영을 노려보았다."유 점주, 서두르지 말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지요. 이 차용증의 종이는 오래된 것이나, 그 위에 적힌 글씨는 새것입니다. 점주께서 인정하지 않으시고 관아로 가져가 검수를 받게 한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얼마나 확신하십니까?"강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물었다.그녀는 이 차용증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글씨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이것 말고도 증거는 더 있었다. 유덕전이 발뺌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유덕전은 얼굴이 차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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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4화

"처자가 이 빚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건 나와 처자의 어머니 사이의 일이오. 굳이 이 차용증의 흠집을 들춰낼 필요가 있었소?"유덕전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고리대금을 업으로 삼는 그들에게 차용증 위조가 밖으로 알려지는 것은 장사에 치명적이었다.강유영이 정말 영악하다면 굳이 들춰내지 말았어야 했다.그가 갑자기 격분하여 해코지라도 할까 두렵지도 않은 걸까."오늘 이후로 제 전당포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다면, 일꾼들을 시켜 주동자를 붙잡아 관아에 넘길 겁니다. 무리 중 몇몇을 몰래 매수해 배후를 캐낼 수도 있겠지요. 밖의 제 수하들을 보셨습니까? 그들을 교대로 전당포 앞에 세워두면 감히 소란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백삼십만 냥에 관한 일은 아버지께서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제가 이 일을 아버지께 알리면, 분명 어머니를 가만두지 않으시겠지요."강유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조리 있는 말투와 태연한 행동거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마치 유덕전을 상대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나 굳이 다 꺼내놓지 않았다는 태도였다.유덕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그는 한참 동안 강유영을 살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오늘 일은 우리가 무례했소.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테니, 강 점주가 이해해 주길 바라오."세상 물정에 밝은 그는 강유영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부드러운 말투로 험한 말 한마디 쓰지 않고도, 그가 꼬투리를 잡고 나설 핑계를 철저히 막아버렸다.그를 상대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경고였다.겁이 많은 자는 아니나 관아와 엮이는 것은 확실히 성가신 일이었다.게다가 강유영의 뒤에는 만만치 않은 뒷배가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이 바닥에서 오랜 구른 자일수록 이해득실 계산이 빨랐다. 내어준 은자는 한씨에게서 원금과 이자를 받아내면 그만이었다. 굳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유영과 얽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유 점주, 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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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5화

강유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매를 곱게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이토록 공을 들여 유덕전과 담판을 지은 것은 전당포의 모든 일을 확실히 매듭지어 두기 위함이었다.자신이 떠난 뒤 유덕전이 다시 사람을 끌고 와 소란을 피우면 밖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어찌 되었든 제 눈에는 아씨가 제일 대단하십니다."서유는 그런 복잡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유영의 팔을 껴안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강유영은 가볍게 웃고는 문가에 선 청란을 향해 손짓했다."이리 오거라.""아씨."청란이 다시 서재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밖으로 나가 한씨와 유덕전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오거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강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청란에게 명했다.그녀의 짐작대로라면 방금 유덕전에게 던진 말들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유덕전이 한씨의 말을 따른 이유는 오로지 은자 때문이었다. 이쪽에서는 은자는커녕 아무런 득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예상일 뿐, 유덕전이 어찌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청란을 시켜 상황을 알아봐야 마음이 놓일 듯했다."예."청란은 짧게 대답하고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유 점주, 저쪽에 찻집이 있으니 들어가서 이야기하게."보흥 전당포를 나선 한씨가 걸음을 멈추고 유덕전에게 권했다."필요 없소. 할 말이 있다면 여기서 합시다."유덕전의 태도는 아까와 판이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돌변해 있었다."유 점주, 그 애가 대체 무슨 말을 했소? 그 아이는 이간질에 능하니 절대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오. 무슨 말이든 툭 터놓고 이야기해 봅시다."한씨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유덕전이 강유영의 말에 넘어간 것이다. 강유영은 이제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영악해졌다."그 처자가 차용증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챘소."유덕전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한씨가 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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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6화

한씨는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강유영이 죽으면 전당포는 자연히 한씨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유덕전에게 진 빚을 갚는 것쯤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정 안 되면 전당포를 담보로 잡히면 그만이었다.하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진 부인이 강유영을 데리고 병주로 가는 데만 제법 시일이 걸렸다. 일을 처리하는 데 한두 달은 걸릴 테니, 상황을 수습할 여유도 남겨두어야 했다.석 달이면 충분할 듯했다.유덕전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이자는 예전대로 하겠소?""당연하지."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그럼 부인을 한 번 더 믿어보겠소."유덕전은 그녀가 요구한 기한을 승낙했다."그리고 유 점주가 나를 보호할 사람을 몇 명 내어주었으면 하오. 품삯은 후하게 쳐주겠소."한씨가 덧붙였다.앞으로는 그자들이 자신에게서 은자를 마음대로 뜯어가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광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들의 배를 불리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구체적으로 무슨 일이오? 사람을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일은 가벼이 맡지 않소."유덕전은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물론 그런 일은 아니오. 그저 그자의 입을 막거나,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가두어두기만 하면 되오."한씨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상대는 그녀의 목숨과도 직결된 비밀을 쥐고 있었다. 절대 그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사실 가능하다면 큰돈을 들여서라도 배후의 주동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찾아내기가 무척 까다로웠다."좋소."유덕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한씨는 뒤돌아 보흥 전당포의 간판을 올려다보며 손수건을 다시 거세게 쥐어짰다.우선 강유영이 이 전당포를 차지했다고 믿게 며칠간 기쁨을 누리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었다.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청란이 반걸음 물러서더니 재빠른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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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7화

청란은 대답을 주저하지 않았다.강유영은 눈매를 휘며 웃었다."좋아. 그럼 지금 묻겠다. 널 데리고 경성을 떠날 생각인데, 나와 함께 가겠느냐?"청란은 아주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기꺼이 따르겠습니다."강유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았다.청란 역시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서서 그녀의 시선을 받았다."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것이냐?"강유영이 다시 물었다."제 본분은 아씨를 호위하는 것입니다. 아씨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르겠습니다."청란은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좋아."강유영은 안도했다."그럼 짐을 꾸려두거라. 며칠 뒤에 출발할 것이다."그녀는 깊은 눈으로 청란을 주시했다.적어도 이번에는 멈칫하며 조원철에게 알리지 않느냐고 물을 줄 알았다.하지만 청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대답하고 돌아섰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문을 열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정말 몰래 알리지 않을까?"강유영은 서유를 돌아보며 물었다."아씨, 안심하십시오. 세자의 수하들은 모두 믿을 만합니다. 못 믿으시겠거든 저를 보십시오."서유는 제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그래, 알겠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유는 확실히 믿음직한 심복이었다."가서 유 낭자에게 밀린 품삯을 치러주고 전당포에 내보내거라. 앞으로는 나올 필요 없다고 전해."장부는 이미 낱낱이 훑어보았으나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한씨도 다녀간 마당에 유 낭자를 곁에 두어 봐야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일찌감치 내보내는 편이 전당포를 위해서도 이로웠다."아씨께서 드디어 결단을 내리셨군요."서유가 웃음을 터뜨렸다."당장 다녀오겠습니다. 헌데 아씨 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저 앞을 다녀오는 것뿐인데, 그 짧은 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느냐?"강유영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다녀오거라. 돌아오면 거리에 나가 물건을 좀 사고 어머니를 뵈러 가자꾸나.""예!"서유가 흔쾌히 대답하고 달려 나갔다."아씨, 저기 국공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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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8화

"말도 마라. 방금 네 어머니가 와서 이 일을 묻더구나. 내 솔직하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우선 들어가서 앉자. 짐은 다 꾸렸니?"진 부인은 강유영의 손을 이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강유영이 한씨를 보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차라리 선수를 쳐서 다녀간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이러면 강유영이 보았더라도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그분에게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니까요. 이곳엔 어쩐 일로 왔습니까?"강유영은 마음속 의심을 거두었다.진 부인이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다면 먼저 한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와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니? 그저 네 소식을 캐물어 득을 보려는 속셈이겠지. 우리는 이제 막 서로를 알아본 처지라 네 일에 함부로 나설 수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둘러댔다."진 부인은 손을 저으며 해명했다."얼굴은 좀 어떠십니까? 흉터가 남았네요. 제가 그동안 바빠서 와보지도 못했습니다."강유영은 그제야 진 부인의 얼굴에 독벌이 남긴 상처를 살폈다. 붉은 기는 가라앉았지만 갈색 흉터가 점점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가슴 한편이 찔렸다. 어머니를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벌 독이 조금만 더 퍼졌어도 어머니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괜찮다. 의원 말로는 약을 바르고 시일이 지나면 옅어질 거라고 하더구나. 와서 앉거라."진 부인은 강유영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의자에 앉혔다."내 생각은 이렇다. 네 준비가 끝났다면 모레 출발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좋습니다."강유영은 흔쾌히 대답했다."내가 널 위해 머리 장신구를 한 벌 마련했다. 나중에 외가에 도착하면 단장할 때 쓰렴. 알다시피 내 수중에 은자가 넉넉지 않아 그리 귀한 것은 아니니 언짢게 생각하지 말거라."진 부인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정교한 나무 상자를 하나 꺼내 왔다. 강유영 앞으로 다가와 뚜껑을 열었다."이 장신구는 결코 싼 물건이 아닙니다. 저는 받을 수 없으니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십시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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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9화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길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 눈부시게 빛났다.마차 두 대가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진씨 가문 대문 밖에 앞뒤로 서 있었다.수수한 옷차림의 강유영은 진 부인의 팔짱을 낀 채 대문을 나섰다. 어깨를 다정하게 맞댄 채 눈매를 곱게 휘며 진 부인을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가득했다."다 준비되었니?"진 부인은 손을 들어 강유영의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볍게 넘겨주었다. 눈빛에는 애틋함이 적당히 배어 있었다."예."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리켰다."어머니와 저는 앞 마차에 타고, 뒤 마차에는 시녀들과 마마가 탈 겁니다. 짐도 그곳에 실어두었습니다.""진 부인."마차 곁에서 기다리던 오씨 어멈 등 세 사람이 다가와 진 부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세 사람의 마음은 같았다. 아씨의 친어머니이니 마땅히 예우를 갖추어야 했다."이리 여러 명을 데려가는 거니?"진 부인은 오 마마 일행을 보고 흠칫 놀라 가슴이 철렁했다.이번 병주행은 정말 친척을 뵈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다.강유영이 사람을 이리 많이 데려가면 번거로워지지 않을까."이게 많은 겁니까?"강유영이 웃음을 터뜨렸다."조연화가 외출할 때는 하인이 열 명 남짓 따라붙는걸요."오씨 어멈을 포함해 고작 세 명인데 어찌 많단 말인가.물론 안 보이는 곳에서 그녀를 호위하는 청란까지 합하면 네 명이었다.남자 호위가 따라붙는 것을 어머니가 불편해할까 봐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그 아이는 적녀가 아니냐. 어찌 적녀와 비교하겠니."진 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내 곁에는 춘화 하나뿐이다. 그러니 너도 저 세 사람 중에 하나만 골라 데려가는 게 어떠니?"강유영이 한 명만 데려가야 훗날 일을 처리하기 수월했다.세 명이나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손을 쓰기가 까다로워진다."안 됩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오씨 어멈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오씨 어멈은 제 유모로서 어릴 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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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0화

강유영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운귀 객잔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푸른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 앞에는 아직 불을 켜지 않은 등불 두 개가 걸려 있었다. 그리 번듯해 보이지는 않았다.하지만 이토록 작은 마을에 이런 객잔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싶었다.강유영은 서유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푸른 돌을 깐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곳곳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강유영은 몸을 돌려 진 부인을 부축했다."어머니, 조심해서 내리세요."진 부인은 강유영의 곱고 아리따운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매사에 세심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자니 또다시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정말 이런 다정한 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객잔은 규모가 작아 남은 객실이 두 칸뿐이었다.강유영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진 부인과 한 방을 쓰고, 오씨 어멈 일행이 나머지 방을 쓰면 딱 맞았다.평소 남과 한방을 쓰는 것을 꺼렸지만, 밖에 나온 이상 적당히 맞추며 지내야 했다. 너무 유난을 떨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오씨 어멈 일행도 불만은 없었다.여독이 쌓인 탓에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강유영과 진 부인은 침상에 기대어 까무룩 잠이 들려 했다.강유영은 타인의 손길이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명색이 친어머니라지만 아직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은 영 익숙하지 않았다.다행히 진 부인도 비슷한 모양이었다.두 사람은 이불을 각자 하나씩 덮고, 한 명은 동쪽, 한 명은 서쪽으로 머리를 둔 채 발을 맞대고 누웠다."어멈, 이렇게 늦었는데 주무시지 않고 어딜 가시려고요?"옆방에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 오씨 어멈을 본 단비가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하늘을 보니 천둥이 칠 것 같구나. 아씨가 어릴 적부터 천둥소리를 무서워하셨으니, 문앞에 가서 지켜야겠다."오씨 어멈은 손에 든 겉옷을 어깨에 걸치며 밖으로 나섰다."아씨 곁에는 진 부인도 계신데, 어멈 연세도 있으시니 일찍 쉬세요."단비가 만류했다.오씨 어멈이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아씨가 크게 걱정할 것이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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