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apítulo 591 - Capítulo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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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1화

"뭘 그리 예의를 차리느냐."서준은 붉고 촉촉한 강유영의 입술로 시선을 내리며 묘한 기색을 띠었다."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저도 쉬어야겠습니다."강유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남녀의 일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서준의 끈적한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허나 서준은 조금 더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무슨 짓입니까."강유영은 제 몸을 감싸 안고 잔뜩 경계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미간이 좁혀졌다. 혹여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걸까?"내 망토는 돌려주어야지."서준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덮인 대창의 매듭을 풀어내며 짓궂게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강유영은 무안함에 슬그머니 팔을 풀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조원철에게 지독하게 시달린 탓이었다. 뱀에 한 번 물리면 밧줄만 보아도 놀란다더니, 세상 사내들이 다 조원철 같은 줄 알았다. 서준이 가끔 짓궂게 굴긴 해도, 조원철처럼 강압적으로 그녀를 대한 적은 없었다. 지레짐작으로 오해한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전각 밖, 조원철은 뒷짐을 진 손을 우악스럽게 말아 쥐었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며 우드득 소리가 났다.창호지 위로 서준이 망토를 벗겨주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흐릿한 웃음소리와 낮게 속삭이는 밀어가 새어 나왔다.서준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똑똑히 들리지는 않았으나, 오랜 세월 단단하게 다져온 이성은 이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서준의 인영이 움직였다. 그는 망토를 챙겨 들고 문가로 걸음을 옮겼다.조원철은 창호지에 맺힌 그림자가 멈춰 서서 강유영을 돌아보고는 무언가 더 말을 건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서준이 밖으로 나왔다.강유영도 따라 나와 문가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 서준이 회랑을 따라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시녀들을 물리고는 방문을 닫았다.조원철 역시 서준이 마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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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화

강유영은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바로 등 뒤가 탁자인 탓에 피할 곳이 없었다.그녀는 뒤로 손을 뻗어 탁자를 짚고 나서야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온 음성은 이미 잘게 떨리고 있었다.이 야심한 시각에 조원철이 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왕부까지 들이닥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그녀는 두려움에 마른침을 삼켰다.그는 단단히 분노한 듯했다.오늘 밤 그녀가 그를 거부하고 서준을 따라 서왕부로 온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쫓아온 것이다.그는 결코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눈앞까지 다가왔다.강유영의 까만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그녀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고, 이마에 촘촘하게 식은땀이 맺혔다."그자가 네 몸에 손을 대었느냐."조원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잔뜩 잠긴 목소리에서 뱉어지는 글자 하나하나는 얼음장처럼 시렸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그는 대체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여기기에, 이리 함부로 남의 손을 탔을 거라 지레짐작한단 말인가.하지만 바로 체념했다.어차피 그는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그녀의 몸을 취하지 않았던가.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남들도 그럴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대답해라."조원철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그의 눈 밑으로 짙은 먹구름이 소용돌이쳤고,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강유영은 턱을 파고드는 통증에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그녀는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여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치밀어 올라 앞뒤 잴 것 없이 쏘아붙였다."세자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 일에 신경 끄십시오."서준과 그 어떤 일도 없었지만, 설령 무언가 있었다 한들 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에게는 소은경이 있지 않은가. 가서 소은경이나 챙길 일이지, 왜 예까지 와서 자신을 통제하려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강유영, 방금 한 말 다시 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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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3화

강유영은 억지로 고개를 젖힌 채 그의 거친 입맞춤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어느새 그녀의 목을 조르던 손이 뒷덜미를 단단히 휘어잡고 있었다. 조원철은 그녀를 품으로 쪽으로 강하게 밀착시키며, 마음속에 들끓는 맹렬한 분노를 숨 막히는 입맞춤으로 온통 쏟아냈다.강유영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 보았으나, 그는 태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의 기운이 속절없이 빠져나간 채 허리가 꺾여 탁자 끝에 간신히 기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맹수에게 새끼양처럼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그녀가 입고 있던 질 좋은 비단옷은 그의 억센 손아귀에서 허무하게 찢어져 나갔고, 북북 찢기는 섬뜩한 소리에 강유영은 공포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정녕 미쳤군요…."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행여나 밖의 시녀들이 눈치챌까 두려워 차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조원철이 어떻게 감히 이런 곳에서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곳이 어디라고. 여기는 다름 아닌 서준의 서왕부였다. 당장 문밖만 해도 시녀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 짐승 같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당장 뛰어 들어올 것이 뻔했다."날 보거라!"조원철이 다시금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 보게 했다."이거 놓으십시오!"강유영은 겁에 질려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그의 손을 내쳤다. 허나 그 알량한 반항은 그에게 티끌만큼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내가 누구냐. 말해 보거라, 내가 누구지?"조원철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숨 막히게 몰아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절박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확인받고 싶어 안달 난 음성이었다."원철 오라버니… 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극도의 공포에 질린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더 이상 그를 거스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조원철의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그는 굳은살이 밴 엄지손가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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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4화

"돌아보거라."조원철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이제 분노를 가신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서늘하지만 차분하게 돌아와 있었다.강유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은 채였고, 굵은 눈물방울만이 쉴 새 없이 볼을 타고 흘러 이불 위로 툭툭 떨어졌다.지금은 전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고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그에게 존중이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서왕부까지 쫓아와 기어이 이런 망측한 짓을 벌일 줄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사람이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강유영."조원철이 상체를 바짝 밀착해 왔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 그녀의 매끄러운 등에 고스란히 닿았다.강유영은 소스라치며 몸을 앞으로 웅크렸다.허나 이미 침상 맨 안쪽 구석까지 내몰린 터라 더 이상 달아날 곳조차 없었다.조원철의 커다란 손이 한 줌도 안 되는 가녀린 허리를 휘감더니, 억지로 제 쪽으로 몸을 돌려세우려 들었다."손대지 마십시오."강유영은 물기 젖은 쉰 목소리를 내뱉으며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밀어냈다.조원철은 대꾸 한마디 없이, 기어코 그녀의 몸을 억지로 비틀어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원하시는 것을 취하셨으니, 이만 가십시오." 강유영은 목끝까지 차오르는 오열을 삼키며 차갑게 내뱉었다. "전 이미 결심했습니다. 서왕 전하의 측비로 시집갈 것입니다."두 번 다시 그와 얽히지 않겠다고 진작에 마음을 굳힌 터였다.하물며 자신을 이토록 무참하게 짓밟지 않았던가.뼛속 깊이 그녀를 무시하고, 한낱 노리개 취급이나 하는 사람이었다.이제는 정말 그와 그 어떤 것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방금 한 말, 다시 지껄여 보거라."조원철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칠게 힘을 주어 기어이 그녀를 제 쪽으로 확 돌려세웠다.강유영은 고집스럽게 시선을 내리깐 채 끝내 그를 마주 보지 않았다. 눈물에 푹 젖어 뭉친 속눈썹이 눈가에 처연하게 드리워진 모습은, 흡사 폭우에 무참히 짓밟힌 산다화처럼 가엾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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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5화

조원철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강유영은 한 손으로 비단 이불을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돌아가지 않겠습니다."차라리 죽을지언정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미 마음에 품은 여인이 따로 있으면서, 어찌하여 자신을 이토록 무참히 짓밟는단 말인가.비록 출신도 불분명한 한낱 양녀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그녀 역시 감정을 지닌 사람이었다.어찌하여 단 한 번도 그녀의 마음은 헤아려 주지 않는 것일까.조원철은 꽉 쥐었던 손을 풀고는 흐느낌에 잘게 떨리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응시했다."오씨 어멈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냐?"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그 말에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듯했다.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또 오씨 어멈을 들먹이며 협박하실 작정이십니까!"그녀는 당장이라도 그를 물어뜯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창백한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어지럽게 얼룩져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칼이 뺨에 엉겨 붙어 있었다. 마치 잔뜩 구겨졌다가 억지로 펴낸 종이장처럼 가엾고 처연한 모습이었으나,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반항심이 엿보였다."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더냐. 협박은 요란할 필요 없이, 가장 확실한 것 하나면 족하다고."조원철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뺨의 눈물을 다정히 닦아주었다."정 그러시다면 마음대로 죽이십시오."강유영은 그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그녀가 오씨 어멈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약점을 틀어쥐고, 번번이 그분을 인질 삼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허나 그가 정녕 죄 없는 오씨 어멈에게 해를 가할 리 없었다."지금 내가 오씨 어멈에게 손을 댈지 어떨지 도박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조원철은 손이 내쳐졌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다시 손을 뻗어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강유영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눈앞의 휘장만 노려보며 묵묵부답으로 버텼다.그는 언제나 그녀의 속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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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화

"밖에서 기다리마."조원철이 불쑥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언제 챙겨 입었는지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모습은 수척하지만 꼿꼿한 그의 체구에 유려하게 들어맞아 있었다. 단단한 허리춤에는 옥패와 금인이 매달려 있었고, 겉옷 자락 아래로는 상아색 속적삼이 살짝 내비쳤다.수려하고도 서늘한 이목구비에 소박한 색상의 장포까지 걸치고 나니, 감히 범접할 수 없이 고결한 분위기가 한층 짙어져 있었다.조원철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그녀를 흘끗 내려다보더니, 성큼성큼 뒤쪽 창가로 다가가 가볍게 창밖으로 뛰어넘어갔다.'짐승 같은 사람.'강유영은 속으로 씹어 삼키듯 욕을 내뱉으며 주먹을 쥐어 침상을 내리쳤다.이불을 걷어내자 온몸 곳곳에 얼룩덜룩 남은 푸르스름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언젠가 반드시 수를 내어 오씨 어멈을 모시고, 저 사내에게서 영영 벗어나고야 말리라.침상에서 내려서려 다리를 내딛던 찰나, 다리가 꺾이며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거친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가 옴짝달싹할 힘조차 없었다. 속으로 다시 한번 조원철을 사무치게 저주했다.밖에서 대기하는 시녀들을 불러 시중을 들게 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온몸이 뻐근함을 꾹 참으며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그러고는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침상 위의 이불깃을 몽땅 뜯어냈다.다행히 이 방 뒤쪽으로는 작은 욕실이 딸려 있었다.그녀는 뜯어낸 이불깃을 모조리 욕탕의 물속에 처박고 나서야, 벽에 기대어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조원철은 제멋대로 훌쩍 떠나버렸고, 남겨진 지저분한 흔적들을 수습하는 것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아씨, 대체 이건..."욕실에서 방으로 나오자, 때마침 찬합을 들고 들어오던 시녀가 갈기갈기 뜯겨 나간 침상을 보고 멍하니 멈춰 섰다."아, 그게...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다 그만 실수로 이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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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7화

그녀가 몸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하자, 등 뒤로 쫓아오는 발소리가 순식간에 거칠고 다급해졌다.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두 사내는 명백히 그녀를 노리고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었다.대체 누가 보낸 자들일까. 어찌 이리 거머리처럼 들러붙는단 말인가. 서왕부 대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달려들다니.무공을 익힌 사내들을 상대로 가녀린 여인의 걸음이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거리가 조금만 더 멀었더라면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으리라.허나 서왕부의 정문이 지척이었다. 저기까지만 닿으면 살 수 있었다.그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내달린 지 불과 몇 식도 채 지나지 않아, 섬뜩한 기운이 등을 바짝 덮쳐왔다.강유영이 질겁하여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커먼 손아귀가 뻗어 나와 당장이라도 그녀의 어깨를 움켜쥘 듯 닥쳐왔다.서왕부의 돌계단이 코앞이었건만, 그 찰나의 거리가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처럼 멀게만 느껴졌다.꼼짝없이 당했구나 싶어 절망하던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쉭─!날카로운 파열음이 허공을 갈랐다.잇달아 등 뒤에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고, 어깨에 닿기 직전이었던 흉흉한 손아귀가 벼락 맞은 듯 확 거두어졌다.강유영은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내 하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제 종아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다리에는 짧은 암기가 깊숙이 박혀 시뻘건 피가 배어 나왔다. 허나 사내는 이를 악물고 단 한 마디의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단번에 보아도 지독한 훈련을 받은 살수였다.곁에 있던 다른 사내가 그 꼴을 보고 흠칫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내 독기를 품고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강유영은 기겁하며 죽을힘을 다해 발걸음을 재촉했다."잡아라!"그때 앞쪽에서 익숙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유영이 퍼뜩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조원철이 서왕부의 대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그의 차갑고 단단한 윤곽 위로 부서져 내리며 옅은 금빛을 두르고 있었다.그 순간 강유영에게 그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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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8화

분명 서준이 보낸 자들은 아니었다.서준은 매사에 여유롭고 능글맞은 자였다. 설령 그녀를 막아세우지 못한다 한들 이토록 무리수를 둘 리 없었다. 게다가 사로잡혔다고 그 자리에서 단번에 독을 먹고 자진할 이유도 없었다.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녀의 목숨을 노린단 말인가?그녀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섞인 눈으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그는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하들까지 대동하고 서왕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리 없었다.조원철이 한 걸음 다가가 시신 곁에 쪼그려 앉았다.강유영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끔찍한 피의 참상을 두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밤에 악몽을 꿀 것이 뻔했다."이리 오거라."조원철이 불쑥 입을 열었다."뭘 어쩌시려는 겁니까?"강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온몸으로 가기 싫은 티를 역력히 냈다.시체 따위는 가까이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굳건한 태도는 분명 그녀더러 다가와 살피라는 뜻이었다.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오라 했다."조원철의 어조는 단호하여 거절을 용납하지 않았다.강유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마지못해 그에게 다가갔다. 허나 시선만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사내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자신은 이 자를 알지도 못하는데."직접 살펴보고 이 자의 정체를 유추해 보거라."조원철이 몸을 일으키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녀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제가 어찌 안단 말입니까!"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불만을 터뜨렸다.그가 지금껏 가르쳐준 것들이 쓸모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시신을 살피는 일은 오작(仵作)이나 할 일이 아닌가.보고 싶지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추호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전에 가르쳐 주었지.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할 줄 알아야 한다."조원철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물러설 틈을 주지 않았다.강유영은 원망스레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마지못해 쪼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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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9화

물론 서준이 그녀를 도운 데에는 조원철과 기 싸움을 벌이려는 사심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허나 이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어쩐지 배은망덕한 짓 같았다. 무안함과 까닭 모를 부채감에 훅 열기가 오르며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내 측비가 되기로 한 약조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냐?"서준이 한 걸음 다가왔다. 입가에는 느른한 미소가 띠어져 있었으나, 뱉어낸 말투만큼은 사뭇 진지했다.강유영은 그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까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당장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조차 그 약조를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조원철이 그녀를 등 뒤로 확 끌어당기며 서준을 향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혼인이라는 중대사는 부모의 허락과 매파의 중매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두 사람이 사사로이 맺은 약조 따위는 무효하지요."강유영은 조원철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서준의 제안을 승낙했던 것은 처음에는 조원철을 구하기 위해 쫓기듯 내린 결정이었다. 그 후로 곰곰이 생각해 보려 했으나, 머릿속이 온통 엉망이라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서준이 조원철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좋소. 명색이 오라비라니 그 말을 따라주지. 조만간 정식으로 국공부에 혼담을 넣으리다."강유영의 손목을 틀어쥐고 있던 조원철의 손아귀에 벼락같이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제야 조원철은 쥐고 있던 힘을 조금 풀고는 그녀를 억지로 끌고 홱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유영아, 기다리고 있거라."등 뒤에서 서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강유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려 하자, 조원철의 발걸음이 한층 더 거칠고 빨라졌다. 속도를 이기지 못해 휘청거리는 그녀를, 그는 거의 품에 안아 들다시피 하여 우악스럽게 마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이거 놓으십시오."마차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차갑게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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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0화

그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았건만, 목숨이 달린 일이니 이 주제만큼은 모른 척 넘길 수가 없었다.그 속에 얽힌 은밀한 내막도 궁금했고, 무언가 배울 수만 있다면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화쯤은 꾹 누르고 참아낼 수 있었다."십중팔구는 그자일 것이다."조원철이 앞을 응시하며 담담히 대답했다."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다른 황자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강유영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태자의 행보는 유독 오만하고 거리낌이 없지. 다른 자들과는 궤가 다르다."조원철이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마차 안은 이내 고요해졌다.얼마쯤 지났을까, 강유영이 창밖을 살피니 진국공부가 머지않은 거리에 있었다."제가 먼저 들어갈 테니, 세자께서는 조금 이따가 들어오십시오."그녀가 휘장 밖을 내다보며 차갑고 굳은 어조로 선을 그었다."그러마."조원철이 순순히 수긍했다.그 군더더기 없는 대답에 강유영은 오히려 멈칫했다.그가 자신의 요구를 이리도 고분고분하게 단박에 들어줄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볼 뻔했으나, 이내 충동을 억눌렀다.대체로 그녀는 저 사내의 시커먼 속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필시 병 주고 약 주는 얄팍한 수작이리라.그녀는 속으로 작게 코웃음을 쳤다.사람을 숨 막혀 죽을 지경으로 옥죄어 놓고는, 고작 이런 사소한 일에 선심이라도 쓰듯 물러나 주는 척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거늘, 이깟 일로 고마워할 줄 안다면 큰 오산이었다.이윽고 마차가 진국공부 대문 앞에 멈춰 섰다.마차에서 내린 강유영은 문 위에 걸린 진국공부라는 현판을 올려다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다시 이 감옥 같은 곳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계단을 올라 쪽문 앞에 선 그녀가 막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던 참이었다.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문지기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얼굴 한가득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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