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Kapitel 571 – Kapitel 580

852 Kapitel

제571화

강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침상에서 옷섶을 여미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그는 헝클어진 옷자락을 추스르며 푸르죽죽한 얼굴로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방금 전 자신이 건드린 여인이 다름 아닌 조원철의 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분명 서준은 이 여인을 왕비로 맞이하겠다 하지 않았던가. 헌데 어찌 자신을 이 여인의 방으로 들여보냈을까?그는 뭐라 변명하려 했으나 어디서부터 입을 떼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오해, 오해네. 이건 오해야...."그는 고개를 들어 조원철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자 바들바들 떨며 애써 해명하려 입을 열었다.하지만 이 상황을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그때 곁눈질로 여유로운 표정의 서준이 눈에 들어오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는 다급히 소리쳤다."서왕,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내게 절세가인을 준비해 두었다더니, 어찌 조 소저가 여기 있단 말이냐!"조원철은 그의 치부를 너무나도 많이 쥐고 있는 자였다. 당장 납득할 만한 변명을 내놓지 못하면 조원철은 결코 이를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숙부님, 제가 분명 옆 객원으로 가시라 일렀거늘,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서준은 순식간에 서늘해진 얼굴로 능청스레 따져 물었다."여, 옆 객원이라니...."강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그, 그럼 내가 방을 잘못 찾았나 보네... 술기운에 그만 몹쓸 실수를 했어, 내가...."그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힐끗힐끗 조원철의 눈치를 살폈다. 비대한 몸집이 부들부들 떨렸다.분명 서준이 사람을 시켜 그를 이 방으로 데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허나 서준 역시 그가 감히 함부로 원망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끝났다. 이번에는 정말 끝장이다!조원철은 시선을 돌려 조연화를 바라보았다.조연화는 한씨의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떨며 작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 한씨는 이미 자신의 겉옷을 벗어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딸을 단단히 감싸주었다.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조원철을 보며 절규했다."원철아, 네가 동생을 대신해 기어이 죗값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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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그는 분명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겠노라 약조했다.헌데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녀를 위해 화를 내주기는커녕, 강왕에게 시집을 가라니?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매정할 수가 있을까?"다들 왜 나만 쳐다보는가? 자네들이 입을 다문다 한들, 내 입은 가벼워서 비밀을 못 지키네."서준은 다시 한번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조원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세자의 누이가 운이 좋은 거지. 우리 숙부님께서 정실을 잃고 아직 후비를 들이지 않으셨으니, 마침 잘 된 일 아닌가. 이 혼사를 맺으면 진정한 황실의 외척이 되는 것이니, 진국공부에서 설마 이 혼처를 마다하지는 않겠지?"그는 대놓고 비아냥거렸다.조원철에게 강왕 같은 매제를 안겨준다면, 진국공부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두고두고 속을 썩일 터였다.조원철을 평생토록 찝찝하게 괴롭히기에 충분했다.그는 생각만으로도 좋은지 당장이라도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릴 기세였다.강유영은 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방 안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고 이내 사건의 내막을 깨달았다.이 일은 분명 서준이 치밀하게 꾸민 짓이었다.서준이 저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만약 서준이 오늘 일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약조한다면, 조연화와 강왕 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르게 묻힐 것이다. 조연화가 굳이 강왕에게 시집갈 이유도 없었다.허나 서준이 저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기어이 조연화를 강왕에게 넘기겠다는 뜻이었다.그렇다면 서준은 처음 조연화와 혼인하겠다고 약조했을 때부터 이미 이럴 작정이었던 걸까.참으로 지독한 사내였다.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조연화를 보며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다.강왕 같은 자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면 누구라도 불쌍히 여길 만했다.허나 그간 조연화가 제게 저지른 악행들을 떠올리자, 약간의 연민마저 싹 가라앉았다.그녀가 강인하게 버티지 않았다면 진작에 한씨 모녀에게 시달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녀를 불쌍히 여겨준 자가 과연 있었던가."안 돼, 싫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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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서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조연화를 내려다보는 두 눈에는 조롱이 가득했다."전하... 어찌...."조연화는 입을 달싹였으나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그저 왕비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뿐,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처음부터 나를 이런 시궁창에 처넣을 작정이었단 말인가.'"어째서입니까? 어찌 제게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싫으셨다면 그저 거절하시면 될 것을, 어찌 이토록 잔인하게 짓밟으십니까!"조연화는 분통이 터져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녀가 원망 섞인 오열을 토해냈다."네가 늘 남을 괴롭히는 꼴이 역겨워서, 나도 널 좀 괴롭혀 본 것뿐이다. 너도 그 기분이 어떤지 뼈저리게 느껴보라고."서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가벼운 어투로 내뱉었다.그 말을 들은 조연화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홱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노려보았다. 두 눈에는 짙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서준이 누구 때문에 이리 잔인한 짓을 벌였는지 명백해졌다. 강유영을 대신해 제게 복수를 한 것이다!강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을 내리깔고 살짝 옆으로 물러서며 속으로 짜증을 삼켰다.'서왕은 굳이 저런 말을 입 밖에 내야 하나?'지금 조연화에게는 분풀이를 할 과녁이 절실했다. 방 안에 있는 사람 중 조연화가 감히 흠집이라도 낼 수 있는 상대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조연화가 이 끔찍한 원한을 온통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강왕 전하께서는 돌아가 채비를 하십시오. 길일을 택해 진국공부로 혼담을 넣으시지요."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조원철이 돌연 입을 열었다.그의 한마디에 방 안 사람들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하며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방 안은 다시금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짝, 짝, 짝."서준은 느릿하게 박수를 치며 능청스레 웃었다."세자는 과연 결단력이 남다르시군.""안 됩니다, 오라버니!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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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강유영은 한씨와 조연화가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지켜보았다.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조원철은 두 사람에게 서왕을 멀리하라 경고하며, 혹여 이를 어기고 사단이 나면 자신을 찾지 말라 단단히 일렀건만. 한씨와 조연화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헌데 막상 일이 터지니 결국 조원철에게 매달려 수습해 달라 떼를 쓰고 있었다.자신이 그간 당했던 핍박과 억울함을 떠올리다 눈앞에 처량하게 무너진 모녀를 보자,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통쾌함이 일었다.'자업자득이지. 악독하게 굴었으니 당연히 치러야 할 죗값이야.'조원철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서왕이 치밀하게 짠 판입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기어이 연화를 강왕에게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신다면, 서왕은 반드시 오늘 밤의 일을 천하에 퍼뜨릴 것입니다. 그리되어 연화의 명절이 더럽혀지고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면, 다시 제대로 된 혼처를 찾을 방도가 있으십니까? 부내 다른 이들의 혼사는 어찌하실 작정입니까."강유영은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빙빙 돌려 말했으나 그 속에 담긴 뜻은 명백했다.조연화가 강왕과의 혼사를 거절하여 추문이 퍼지면, 훗날 제대로 된 혼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는 강왕보다 나은 혼처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강왕에게 시집가면 어쨌거나 어엿한 왕비 자리에 오르지 않는가. 여기서 고개를 저어 혼담을 거절하고 새 혼처를 찾는다면 이보다 더 나은 혼처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게다가 가문 내 다른 사람들의 혼사까지 모조리 망치게 된다. 서녀들이나 양녀인 그녀는 차치하고라도, 아직 정실을 들이지 않은 조원철과 차남에게까지 치명적인 흠집이 될 터였다.서준의 덫은 참으로 지독했다. 상황이 이리 돌아가니 조연화로서는 강왕에게 시집가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한씨는 아들의 말을 듣고 한참이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진국공부의 체면은 둘째치더라도 조원철과 차남의 혼삿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는 늘 아들들의 혼사가 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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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마차는 진국공부 대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이내 앞으로 내달렸다.강유영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조원철이 하옥되고 진국공부의 대문이 굳게 닫혔으니, 그녀가 밖에서 그를 구할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따지고 보면 그가 태자 측 사람들을 감시하러 인주로 내려가지 못한 것도 다 그녀의 일에 발이 묶인 탓이었다. 그로 인해 벌어진 참사이니 그를 구하는 것은 그녀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다.다만 당장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아씨, 어디로 모실까요?"마차 앞쪽에서 서유가 다급히 물었다.강유영은 심란한 마음을 다잡으려 입술을 꽉 깨물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우선 묵을 객잔부터 찾자."지금 그녀에게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곳이 필요했다.객잔에 도착해 짐을 푼 그녀는 탁자 앞에 홀로 앉아 지난번 인주로 향했던 여정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일렁이는 촛불이 수심 가득한 그녀의 뺨을 비추었다.태자 측에서 창고에 무슨 짓을 벌였기에 건정제가 이토록 노발대발하여 이 깊은 밤에 사람을 보내 조원철을 압송해 간 것일까.문득 조원철이 일부 식량 포대에 특제 향료를 섞어 넣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기르는 추풍매만이 그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했었다.그것이 그녀가 아는 그의 유일한 대비책이었다.어쩌면 남몰래 다른 수도 다 마련해 두지 않았을까. 태자가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결코 호락호락 당할 사내는 아니었다.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어 지난번 자신이 거두어주었던 말단 관리 정기삼이 뇌리를 스쳤다.정기삼은 어린 동생들을 끔찍이 아끼는 정 많은 사내였다. 결코 은혜를 저버릴 배은망덕한 자로는 보이지 않았다.직접 인주로 내려가 정기삼에게 내막을 아는지 물어볼까?어쩌면 그가 인주 창고에서 벌어진 일들을 증언해 줄 귀중한 증인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창고에서 정확히 무슨 사달이 났는지 알 길이 없으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은 채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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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젯밤 일은 명백히 조원철의 목숨을 노린 함정이었다. 인주 창고 일이야 조원철이 진작부터 대비를 해두었으니 애초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허나 변방에서 군비를 빼돌렸다는 헛소문까지 퍼져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건정제는 의심이 많은 자이니, 앞으로 또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세자께서 아씨께 전할 말이 있으시다며,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청류가 그녀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세자를 뵐 수 있단 말이냐."강유영이 흠칫 놀라 청류를 쳐다보며 물었다.조원철은 대옥에 갇혀 있지 않은가. 적어도 이 거센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야만 면회가 가능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인주부터 다녀와야 할지 속으로 갈등하던 참이었다."얼굴을 뵙는 것쯤은 가능합니다. 다만 지체할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청류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가자."강유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청류는 말에 올라타 인적이 드문 샛길만 골라 내달렸다. 강유영도 서둘러 말을 몰아 그의 뒤를 바짝 좇았다.황성의 이 미로 같은 골목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청류를 따라 일 각쯤 내달리자 으스름한 대옥 입구에 다다랐다.대옥 안으로 들어서는 내내, 청류는 마주치는 옥졸들에게 두둑하게 은자를 찔러주며 강유영을 대옥 가장 깊숙한 감방으로 안내했다.가장 안쪽에 있는 깊고 어두운 감방이었다. 높게 난 작은 창문 하나로 희미한 빛이 겨우 새어 들어올 뿐이었다.어스름 속에서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입고 있는 새하얀 죄수복이 눈을 찌를 듯 시리게 다가왔다.인기척을 느낀 조원철이 몸을 돌렸다. 짤랑이는 쇳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그의 발목에 무거운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초연했다. 미간에는 한 치의 당황한 기색도 없었으며, 꼿꼿한 자태는 변함없이 단정하고 고고했다. 초라한 죄수복조차 그의 타고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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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속이 타들어 가는데, 그는 이 와중에도 그녀를 시험할 생각뿐인 듯했다."군량 포대에 향료를 섞어 둔 것은 너도 아는 일이지."조원철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주에는 내 사람들이 심어져 있다. 창고의 장부 역시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 진짜 내역을 적어둔 비밀 장부가 따로 있지. 창고에서 반출된 군량의 정확한 양부터 동원된 마차, 마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까지 모조리 기록되어 있다. 누가 우리 쪽 사람인지는 청류가 알고 있어."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찬찬히 일러주었다."장부가 있다 한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이 발뺌하면 그만이 아닙니까."강유영이 눈물이 고인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참, 지난번 제가 도와주었던 그 말단 관리 기억하십니까?""그래."조원철이 고개를 끄덕였다."제 생각엔, 그 자라면 기꺼이 오라버니를 위해 증언을 해줄 것 같습니다."강유영은 사뭇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직접 인주로 내려가 그를 설득해 보겠습니다."확실한 증인만 확보한다면 일은 훨씬 수월하게 풀릴 터였다."네가 직접 인주로 가겠다고?"조원철이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예."강유영이 입술을 앙다물고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녀에게 크나큰 은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이토록 잘해준 사람은 없었다.비록 먼 훗날에 결국 그의 곁을 떠나야 할 운명이지만, 그의 목숨이 달린 이번 일만큼은 온 힘을 다해 돕고 싶었다."그럴 필요 없다."조원철이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어째서입니까?"강유영이 의아한 듯 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사람을 부리는 법을 배워야지. 밖에는 청류가 있다. 그 수하로 쓸 만한 자들이 꽤 있으니, 어찌 움직여야 할지 네가 지시를 내리거라."조원철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네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일들을 일일이 다 쫓아다니며 처리한단 말이냐."강유영은 한참 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오라버니...."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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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황성에서 인주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왕복 칠팔 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청류가 떠난 뒤, 강유영은 하루하루를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보냈다.나흘 뒤.돌계단에 앉아 하늘의 구름을 보며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던 찰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강유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청류님이 돌아오신 걸까요?"곁에 있던 서유도 흠칫 놀라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그리 빨리 올 리가 없다. 가보자."강유영은 잰걸음으로 대문 쪽으로 다가가며 서유에게 눈짓을 했다.서유가 문에 대고 물었다."누구십니까?""유영아, 나다."맑고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장난기가 묻어나는 익숙한 목소리.서준이었다.강유영과 서유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강유영의 가슴이 불안하게 덜컥 내려앉았다.서준이 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이번에 원철 오라버니가 하옥된 데에는 저자의 공이 지대했다.그런 자가 굳이 예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면 십중팔구 흉사일 터였다."유영아, 문 열어라. 네게 전할 중한 소식이 있다."서준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건들거리는 어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무슨 일인지 거기 서서 말씀하십시오."강유영은 그의 어투에서 짙은 불길함을 감지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솟구치는 불안을 억누르고 한껏 냉랭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청류와 그 수하들, 모조리 태자의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서준의 목소리가 다시 문 너머로 들려왔다."정 듣기 싫다면 이만 가볼까?"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수작이었다. 허나 그 말은 강유영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강유영은 앞뒤 잴 것 없이 황급히 문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젖혔다."지금 뭐라 하셨습니까!"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지만, 그녀는 안면 근육을 굳히며 애써 평정을 가장했다.조원철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남에게 속내를 들켜서는 안 된다고 누누히 말했다. 그리하면 상대에게 약점을 잡히기 십상이라고 했다.게다가 서준이 내뱉은 말이 진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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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고맙습니다."강유영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끝내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조연화의 비참한 말로에 대해서는 그녀도 만족했다.하지만 지금 더 시급한 일은 조원철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만약 조원철이 잘못된다면 진국공부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 그리되면 조연화가 강왕에게 시집가는 꼴을 지켜보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별말씀을."서준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입술을 꾹 다문 채 잔뜩 경계하는 그녀의 꼴이 영락없이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 같았다. 그 앙칼진 모습이 도리어 그의 흥미를 돋웠다."청류 일행이 어찌 되었는지 묻지 않는 것이냐?"서준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그들이 어찌 되었단 말입니까."강유영이 그의 말을 받아 물었다.어차피 물어야 할 참이었다. 허나 목소리는 차분했고 당황한 기색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제법 침착하구나."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주위를 반 바퀴 빙그르르 돌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참으로 궁금하네. 넌 어쩌다 그리된 것이냐? 불과 일 년 남짓 만에 그토록 겁 많던 아이가 이리 독하게 변하다니.""겁이 많은 척 연기한 것입니다."강유영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맑은 눈동자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그녀는 확실히 예전보다 담력이 커졌다. 서준이 이리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는데, 그녀 역시 꼬박꼬박 진실을 내어줄 이유가 없었다.서준이 코웃음을 쳤다."연기인지 아닌지 그쯤은 내 눈에도 훤히 보이네만.""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강유영이 미간을 좁히며 쏘아보았다.서준이 소리 내어 웃었다."청류 일행은 인주 경계에 닿자마자 우리 태자 형님의 사람들에게 기습을 받아 모조리 사로잡혔다.""그럴 리 없습니다."강유영이 불신으로 가득 찬 눈초리를 보냈다."청류의 무공은 제가 잘 압니다. 설령 그가 수세에 몰린다 한들, 이 세상에 그를 생포할 수 있는 자는 몇 없습니다."사실 이는 그녀가 지어낸 말이었다. 청류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만 알뿐, 그가 직접 손을 쓰는 것을 본 적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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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저리 노골적인 눈빛이라니. 참으로 무뢰한이 따로 없었다"유영아, 뭘 그리 화를 내느냐?"서준이 뒷짐을 진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정정당당하게 내 왕부로 들여, 내 그늘 아래 티끌만큼도 억울한 일 없게 해주마. 내가 조원철 그놈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 어찌 아무 희망도 없는 일에 목을 매단단 말이냐. 너희 둘에게는 어차피 미래도 없거늘."강유영과 조원철 사이에 무슨 애틋한 얽힘이 있다 한들 어떠한가. 그가 빼앗으려는 것이 바로 조원철의 사람이었다. 서준은 조원철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강유영의 그 순수하고 맑은 속내는 솔직히 말해 제법 마음에 들기도 했다."절 왕부로 들이신다고요?"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깔고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제 주제에 어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서준이 그저 자신을 욕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이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황자의 혼례는 말 한마디로 뚝딱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며칠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즉, 조원철이 감옥에서 풀려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 있다는 뜻이었다.그 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그 말인즉슨, 네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서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이토록 애를 썼음에도 아바마마께서는 끝내 널 내 정실로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널 측비로 들일 수밖에."강유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기서 너무 쉽게 승낙해 버리면 오히려 서준이 의심을 품을 것이다. 마지못해, 벼랑 끝에 몰려 억지로 수락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다.서준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가 꺾인 모습이 꼭 싸움에 진 고양이 같아, 보면 볼수록 귀엽고 마음에 쏙 들었다."어떠냐? 생각은 마쳤느냐?"서준이 재촉했다."나는 널 기다려줄 수 있지만, 대옥에 갇힌 네 오라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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