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apítulo 601 - Capítulo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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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1화

화씨 어멈이 휘장을 걷어 올렸다.강유영은 비스듬히 몸을 틀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진한 향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상석에는 짙은 붉은색 바탕에 만복 무늬가 수놓아진 비단 저고리를 입은 조씨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우리 유영이 왔느냐."강유영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노부인은 뜻밖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친히 마중까지 나오며 살갑게 이름을 불렀다.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깐 채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었다.표정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고, 황송해하는 기색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노부인의 얄팍한 환대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어차피 노부인이 다정하게 대하는 것은 강유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가져다줄 이득일 뿐이니까.과거 그녀가 조원철을 꼬여내어 진국공부에 해를 끼친다고 여겼을 때는, 심방혈을 취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려 작정했던 사람이었다. 그 역겨운 두 얼굴은 진작에 꿰뚫어 본 지 오래였다."격식 차릴 것 없다."노부인이 다가와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으려 했다. 남의 손길이 닿는 것을 질색하는 강유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며 미간을 찌푸렸다.노부인은 굳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그녀를 자리로 이끌었다."어서 이리 와 앉거라."멋쩍게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물러선 노부인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어디서 고고한 척이야? 나라고 제 손을 잡고 싶어 잡는 줄 아나?'강유영은 그제야 방 한쪽에 조연화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조연화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강유영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짙은 음울함이 서려 있었다.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초췌해진 몰골이었다. 예전의 그 생기발랄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몸에 꼭 맞는 화사한 분홍빛 치마조차 칙칙해 보일 지경이었다. 안하무인으로 굴던 예전의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강왕과의 혼약이 어지간히도 뼈아픈 타격이었던 모양이었다.그 모습을 마주한 강유영은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함을 느꼈다. 아직 혼례도 치르기 전인데 벌써 저 지경이니,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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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강유영은 마음속에 서늘한 경계심이 일었다.원래부터 제 성격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조연화였다. 저토록 지독한 증오를 품고 있으니, 홧김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다.그녀는 앞으로 단단히 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조연화의 말을 핑계 삼아 대답했다."저도 마침 피로하던 참이었습니다. 할머니, 이 혼사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으니 훗날 다시 말씀 나누시지요.""오냐, 얼른 가서 쉬거라."노부인은 손을 내저으며 몸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배웅했다.화씨 어멈이 황급히 휘장을 걷어 올렸고, 강유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방을 나섰다."대문에 사람을 붙여 철저히 감시하거라. 서왕부에서 혼담을 넣으러 오면 즉시 내게 고하라 이르고."노부인이 강유영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화씨 어멈에게 은밀히 지시했다.강유영이 내심 서준과의 혼사를 꺼리고 있음이 노부인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 괜한 말썽이 생기기 전에 하루빨리 이 혼사를 쐐기 박아버릴 심산이었다."할머니, 저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조연화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노부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꾸짖었다."주제 파악 좀 하거라. 강왕은 어찌 되었든 폐하의 형님이자 버젓한 친왕이시다. 우리 국공부가 감히 척을 질 수 있는 분이 아니야."조연화의 억울한 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노부인 자신인들 이 상황이 달갑겠는가?진국공부의 적녀인 조연화는 본래 가문을 위해 더 큰 데 쓰일 패였다. 그런데 강왕과 엮여버렸으니, 이건 명백히 밑지는 장사였다.허나 일이 이 지경이 된 데다 서왕이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국공부 전체의 명운을 위해서라면 조연화의 혼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조연화는 이가 부서져라 꽉 깨물고는, 아무 말 없이 쌩하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손에 쥔 손수건이 찢어질 듯 구겨졌다. 제 혼례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컸던 만큼, 지금 닥친 절망은 끝없이 깊었다.당당한 진국공부 적녀인 자신이 강왕 같은 음흉하고 무능한 늙은이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니.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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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소녀 연화, 강왕 전하를 뵙습니다."조연화는 다가가서 사뿐히 예를 올렸다.그녀는 편전으로 오기 전, 처소에 들러 한껏 치장을 하고 나온 참이었다.금실로 뭇 나비가 꽃밭을 나는 무늬를 수놓은 붉은빛 비단 치마가 매끄러운 몸선을 감쌌고, 눈부시게 흰 살결 위로 머리에 꽂은 순금 비녀의 술이 걸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옅게 분을 바르고 입술에 붉은 연지를 덧발라 초췌한 기색을 감쪽같이 숨긴 뒤였다.강왕은 시선이 그녀에게 닿자마자 게슴츠레했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격식 차릴 것 없다."뜻밖의 대우에 황송해진 그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그도 그럴 것이, 조연화는 지금껏 그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곱게 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진국공부가 이 혼사를 받아들인 이상, 강왕으로서는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릴 이유가 만무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너 번씩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건만 매번 싸늘한 냉대만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조연화가 이리 갑자기 살갑게 구니 놀랍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호색한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입으로는 다정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음흉한 시선으로 조연화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기어이 훤히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시선을 고정하고 꿀꺽 군침을 삼켰다.조연화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간신히 억누르며 수줍은 척 입을 열었다."전하께서 목이 다소 불편하시다 들었습니다. 주방에 일러 배즙을 끓여왔으니 한번 맛보시지요.""참으로 기특하구나."강왕은 그녀가 왜 이리 태도를 싹 바꿨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캐물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이 호사를 누리면 그만이었다.곁에 앉은 조연화는 찬합에서 배즙을 꺼냈다. 그러고는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뒤 한술 떠서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그녀는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깐 채, 차마 강왕의 늙은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칫하면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그릇을 얼굴에 냅다 집어 던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음, 달면서도 질리지 않으니 맛이 아주 좋구나."강왕이 입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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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이 두 사람은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게다가 강유영은 감히 친왕의 목에 칼까지 들이밀었던 독한 계집이 아닌가. 그는 앞으로도 안락한 여생을 즐기고 싶지, 제 발로 무덤을 파고 싶지는 않았다.강유영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었다."아니, 아니야."강왕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는 강유영을 감당할 배짱이 없었다."전하, 무엇이 두려우신 겁니까?" 조연화는 간사한 말로 강왕을 부추겼다. "전하께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제가 수를 써서 그 계집을 전하의 눈앞에 대령할 테니, 일단 일을 저질러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면 그 계집인들 별수 있겠습니까?"조연화는 강왕의 겁 많고 찌질한 꼴을 보며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쥐고 있던 그릇으로 저 머리통을 박살 내고 싶었다.늙고 흉측하고 뚱뚱한 것도 모자라 이토록 무능하다니!이런 작자가 정녕 자신이 시집가야 할 지아비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져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애초에 서준이 자신을 강왕에게 떠넘기기 위해 썼던 수법이 바로 사고를 치고 기정사실로 만들기였다. 이제 그녀도 똑같은 수법으로 강유영을 옭아맬 작정이었다."안 돼, 안 돼." 강왕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생각도 말거라. 서왕이 눈독 들이는 여인이 아니냐. 나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그가 다른 재주가 없을지는 몰라도, 제 한 몸 건사하는 데는 도가 튼 위인이었다. 겉보기엔 노망난 늙은이 같아도 속으로는 계산이 빠삭했다. 이 일만큼은 결단코 저질러서는 안 될 짓이었다."어째서입니까?"공들여 꾸며냈던 조연화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녀는 강왕이 색욕에 눈이 멀어 뇌수까지 썩어빠진 쓸모없는 늙은이인 줄만 알았다. 얄팍한 수만 부려도 당장 미끼를 물 거라 여겼건만, 보기 좋게 거절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건 영 찜찜한 일이다. 네 오라비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진짜 그런 짓을 벌였다간 서왕이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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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아씨가 입을 열지 않으니, 오씨 어멈도 굳이 이 일을 꺼내기 어려웠다. 설령 아씨가 털어놓는다 한들 어찌 위로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찌 됐든 지금 두 사람은 명의상 남매지간이 아닌가.아가씨의 처지가 너무도 가엾고 딱해 한숨만 나왔다."어멈, 여기 앉으세요."강유영은 오씨 어멈을 끌어당겨 곁에 앉히고는, 그 어깨에 가만히 얼굴을 기대었다.이러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오씨 어멈은 어린 시절 달래주던 때처럼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여주었다."어멈, 눈이 오네요. 예전에 어멈이 화로에 구워주던 만두 조각이랑 고구마가 먹고 싶어요."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예전 소은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시절, 겨울이 오면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럴 때면 오씨 어멈은 숯불 화로 곁에서 만두 조각과 고구마를 구워주곤 했다. 바삭한 만두 조각은 씹을수록 고소했고, 두 손에 쥔 달콤한 고구마는 따스했다.그녀는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리웠다. 가난했지만, 적어도 이렇게 마음 졸이며 괴로워할 일은 없었던 시절이었다."내일 당장 구워 드리지요."오씨 어멈은 그녀를 끔찍이 아꼈기에,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세자."밖에서 단비가 예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오씨 어멈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자께서 오셨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원철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강유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외면했다.오든지 말든지, 그를 아는 체하고 싶지 않았다.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소매 속에 감춘 손가락을 조용히 움츠렸다."세자를 뵙습니다."오씨 어멈이 황급히 예를 갖췄다."어멈은 격식 차릴 것 없네."조원철이 손을 들어 올리며 온화하게 말했다. 오씨 어멈은 안도하며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일으켰다.조원철은 방 안을 쓱 둘러보았다. 침상 곁에 숯불 화로가 하나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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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강유영은 오기로 목을 빳빳이 세우고 대꾸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기어이 눈물이 차올랐다.목소리 쫙 깔고 부른다고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을까?그녀는 진작부터 그가 두렵지 않았다.그가 가자고 하니까 더욱 가기 싫었다."무슨 헛소리냐." 조원철이 나직하게 말했다. "네게 사냥을 가르쳐준 건 나다. 사냥터에는 덩치 큰 맹수도 없으니, 실력을 키우기엔 아주 좋은 기회다.""싫습니다."그가 무슨 구실을 대든, 강유영의 대답은 한결같았다.방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강유영은 조금씩 초조해졌다.지금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짜증이 치밀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두려워 숨이 막혔다.조마조마하던 찰나, 돌연 허리춤이 단단히 조여왔다.언제 다가왔는지 조원철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쥔 채 번쩍 들어올렸다."놓으십시오!"강유영은 본능적으로 발버둥 치며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하지만 조원철은 그녀가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에 가볍게 힘을 주더니, 그대로 그녀를 비좁은 창틀 위로 올려앉혔다.그러고는 쥐고 있던 손을 휙 놔버렸다.창틀이 워낙 좁아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데 허리를 받쳐주던 힘마저 사라지자, 강유영은 중심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뒤로 넘어갔다."앗!"그녀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본능적으로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조원철은 그 기세를 몰아 그녀를 품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어찌 이런...."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강유영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여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쳤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차마 그의 목을 놓지 못했다.그녀는 본디 아픈 게 싫고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었다.이렇게 높은 창틀에서 떨어져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대체 누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준단 말인가?조원철은 돌연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거친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악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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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가겠습니다!"다급해진 강유영이 엉겁결에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틀어막았다.검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속눈썹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살짝 부어오른 입술은 유난히 붉은빛을 띠며 옅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서러우면서도 반항적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여기서 더 거절했다간, 이 사내는 정말 무슨 짓이든 저지를 위인이었다.감히 더 튕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결국엔 그가 두려웠다.조원철은 몸을 기울여 그녀를 응시했다. 칠흑 같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짙은 기운이 일렁였다.강유영은 그 시선에 온몸이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편해졌다.입술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을 뚫고 혈관까지 스며들어, 기어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그녀가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며 손을 거두려 했다.조원철은 돌연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눈물 젖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조원철은 그녀의 손바닥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의 눈빛에 서려 있던 탁한 기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손바닥에 닿은 입술은 마치 애지중지 아끼는 것을 대하듯 한없이 부드러웠다.마치 그녀가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강유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확 뺐다.이 사내는 늘 이런 식이었다. 꼭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정한 태도를 꾸며내어 헛갈리게 만들곤 했다.하지만 그가 소은경과 남몰래 밀회를 즐기던 꼴을 목격한 뒤로는, 두 번 다시 주제넘은 착각 따위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그녀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손을 홱 뿌리쳤다.덕분에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반동이 너무 컸던 탓에 몸이 중심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창밖을 향해 넘어갔다.조원철이 재빠르게 손을 뻗어 다시 그녀를 낚아채 품에 안았다."정말 갈 셈이냐?"그가 물었다."가겠습니다."강유영은 한치 망설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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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알겠습니다."강유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속으로는 천불이 났지만 그저 마음속으로만 온갖 불만을 토로할 뿐, 입 밖으로는 감히 한마디도 내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틀 동안 수련은 잘했느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했습니다."강유영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수련만큼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오늘은 눈이 내린 탓에 방 안에서 몸을 풀었다.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든 간에 튼튼한 몸이 제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그러니 수련만큼은 이 사내의 감시가 없어도 악착같이 해낼 작정이었다."활쏘기를 연습하러 가자."조원철이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강유영은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의자 한쪽에 걸쳐두고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그를 따라나섰다.틈틈이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을 한 덕분에 이제 제법 팽팽하게 당길 수 있었다.하지만 평소 연습용으로 쓰던 화살은 촉이 뭉툭해 과녁을 맞춰도 툭 떨어지기 일쑤였다.정확히 맞힌 것인지 영 확신이 서지 않던 참이었기에, 그가 온 김에 진짜 화살로 실력을 시험해 볼 요량이었다.조원철은 반나절 내내 그녀의 활쏘기를 곁에서 지도했다.날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청운이 저녁상을 내왔다."방으로 돌아가 손을 씻고 밥을 먹자."조원철은 활을 내려놓으며 강유영을 불렀다.강유영은 팔에 힘이 쫙 빠져 손끝까지 얼얼했다.활쏘기를 배운 적은 있지만, 한 번에 이렇게 오래 연습한 건 난생처음이었다.너무 피곤했다. 밥이고 뭐고 그저 바닥에 쓰러져 자고만 싶었다.하지만 조원철은 요월원에 머물며 그녀가 저녁을 다 먹는 것까지 빤히 지켜본 뒤에야 자리를 떴다.눈은 사흘 동안 멎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날이 개고 사냥터 채비가 끝날 때까지 며칠의 시간이 더 걸렸다.그동안 강유영은 조원철을 따라 꼬박 대부분 시간을 활쏘기에 매달렸다.처음 사나흘은 팔이 바들바들 떨려 제 팔이 아닌 것 같았다.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밀려와 밤잠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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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강유영은 연갑이 자신의 체구보다 한참 크고 밑단도 길게 늘어진다는 것을 눈치챘다.조원철은 남는 부분을 세심하게 여미어 주었다. 거추장스러워 몸놀림이 둔해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이건, 오라버니의 연갑 아닙니까?"그녀가 까만 눈동자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품을 보아하니 필시 그의 것이었다."나는 평소에 입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서 말이지."조원철은 긴 속눈썹을 내리깐 채 허리띠를 단단히 매어주며 대답했다.강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허리춤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의 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잘해준다고 하기엔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털끝만 한 존중도 없었다. 하지만 모질다고 하기엔, 호신용으로 이리 귀한 물건을 선뜻 내어주지 않는가.도대체 이 사내의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팔 들어."조원철은 이번엔 면갑을 집어 들더니 연갑 겉에 덧입혀 주었다."이건 또 뭡니까?"강유영은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낙마를 대비한 면갑이다. 그리고 이건 사슴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것이고."조원철은 무릎과 팔목 보호대를 가져와 일일이 묶어주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쓰임새는 알았다. 말을 탈 때 쓸리거나 부딪히는 것을 막아주고, 떨어지더라도 찰과상을 크게 줄여줄 터였다.하지만 겨울 사냥에 따라가 봤자 십중팔구 구석에서 구경이나 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챙겨 입을 필요가 있을까?조원철은 그 위에 다시 짐승 털로 짠 상의와 작은 솜저고리를 덧입힌 뒤, 마지막으로 깃이 둥글고 소매가 좁은 겉옷으로 겹겹이 마무리했다."덥습니다."강유영은 몸을 배배 꼬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투덜거렸다.너무 많이 껴입은 탓에 마치 이불에 둘둘 말린 기분이었다."밖에 나가면 덥지 않을 거다."조원철이 능숙하게 허리띠를 매어주다, 그녀의 콧등에 땀이 맺힌 것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훔쳐주었다."씻는 건 어찌합니까?"강유영이 고개를 휙 돌리며 미간을 찌푸린 채 팔을 들어 올리려 애썼다.아예 안 올라가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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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산 중턱, 눈이 내려앉은 금빛 지붕이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듯 눈부시게 빛났다.막사 안은 곳곳에 피워둔 화로 덕에 훈훈했고, 탁자 위엔 겨울에 보기 드문 신선한 과일이 놓여 있었다.경화 공주는 푹신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포도 한 알을 입에 쏙 넣었다.시녀가 휘장을 걷자, 조연화)가 들어와 예를 갖췄다."공주 전하를 뵙습니다."머리를 틀어 올리고 무복을 갖춰 입은 늠름한 자태였다."예의 차릴 것 없다."경화 공주는 포도 껍질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웃었다."너는 장차 강왕비이자 내 숙모가 될 사람이 아니더냐. 훗날엔 오히려 내가 네게 인사를 올려야 할 판인데."말은 번지르르했지만, 조연화를 위아래로 훑는 공주의 눈동자엔 은밀한 경멸이 묻어났다.본래 두 사람 사이는 꽤나 돈독했다. 하지만 강왕에게 시집가게 된 이상, 조연화의 인생은 이미 시궁창이나 다름없었다. 공주의 속마음은 이미 그녀를 멸시하고 있었으나, 제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 겉으로는 그 기색을 감췄다."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습니다. 전하,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조연화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눈빛엔 한 가닥 서늘한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지." 경화 공주는 다시 포도 한 알을 까서 삼킨 뒤에야 나른하게 물었다. "내게 용건이라도 있느냐?""공주 전하,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조연화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내 숙부에게 시집가기 싫다는 게냐? 이미 결판이 난 일을 나더러 어쩌라고."경화 공주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조연화가 누구에게 시집가든 말든, 이런 귀찮은 일에 엮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전하께서 제 오라버니를 줄곧 마음에 품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전하를 돕겠습니다."조연화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공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강유영 말입니다. 전하께서도 그 계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산행을 기회 삼아 지난날의 수모를 갚아주십시오. 황실의 위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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