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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곰의 인간 코스프레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06.04.2026 09:49:24

희수의 썸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그냥 곰이 인간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이었다.

1년 전, 집 앞 편의점.

그곳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희수는 퇴근길에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렀고, 그 시간대에는 항상 그 남자가 있었다.

큰 키, 딱 벌어진 어깨, 무뚝뚝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단정한 인상.

희수가 그에게 호감을 느낀 건, 알바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계산대에 물건을 올릴 때도 바코드가 찍기 편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카드는 이미 손에 들려 있었다.

“봉투는 괜찮습니다. 수고하십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정중한 목소리.

진상 손님이 난무하는 편의점에서, 그는 알바생의 감정 노동을 1g도 시키지 않는 ‘유니콘 같은 손님’이었다.

동네 어르신이 길을 물으면, 귀찮은 내색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정확한 방향을 지시했다.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친절한 남자. 희수의 눈에는 그게 ‘다정함’으로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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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94화. 한 달의 무게

    희수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멈췄다.핸드폰 화면을 다시 내려다봤다.[원장님, 내일 미용실 문 여시나요?]모르는 번호. 오늘 미용하고 간 손님은 박시윤 하나였다.'오늘 미용 다 끝내고 갔는데. 내일 왜?'희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찜찜한 기분이 발뒤꿈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다음날 오전, 미용실 문이 딸랑거렸다.박시윤이었다. 뭉게는 없었다."안녕하세요. 뭉게 다음 예약 하러 왔어요.""어서 오세요. 달력 보고 날짜 골라요, 여기요."희수는 가위를 정리하며 달력을 내밀었다. 시윤이 날짜를 고르는 동안 미용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강아지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은 벽을 훑다가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액자 속 작고 하얀 말티즈."혹시 이 강아지도 키우세요?"희수는 고개를 들었다가 시윤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했다."아, 구름이요. 예전에 키웠어요.""뭉게랑 많이 닮았네요. 그래서 어제 뭉게 보자마자 반응하신 거예요?"희수는 잠깐 멈칫했다. 어제 뭉게 손 내밀던 게 그렇게 티가 났나."...그랬나요, 제가.""네. 표정이 확 바뀌셔서요. 좋은 의미로요."희수는 픽 웃었다."눈썰미 좋으시네요.""자주 봐서요."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시윤은 달력을 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사실 어제 처음 온 게 아니에요. 뭉게 산책시키면서 이 앞을 지나다닌 게 한 달 좀 넘었거든요. 원장님이 일하시는 거 유리창 너머로 자주 봤어요. 어제 마침 노쇼 있으셔서 들어온 거고요."희수는 잠시 시윤을 바라봤다.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 고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톤이었다. 불편하게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사실만 전달하는 것도 아닌 묘한 온도."그래서 내일 문 여냐고 문자 하신 거예요?""네. 뭉게 데리고 산책 나올 것 같아서요. 혹시 또 타이밍 맞으면 들어올까 싶었는데." 시윤이 희수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 예약을 잡는 게 더 낫겠네요.""그게 서로 편하죠."희수는 예약을 잡아주며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93화. 행동주의자의 생일 주간

    오후 두 시, 미용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희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낯선 남자가 말티즈 한 마리를 안고 서 있었다."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들어왔는데요. 혹시 지금 미용 되나요? 예약은 없는데."희수는 잠깐 달력을 확인했다. 마침 두 시 예약이 노쇼였다."되네요. 들어오세요."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훈훈한 외모에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희수는 반사적으로 남자가 아니라 그가 안고 있는 말티즈에게 시선이 꽂혔다.하얗고 둥근 얼굴. 크고 까만 눈.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구름이랑 판박이였다."이름이 뭐예요?""뭉게요."희수는 손을 내밀었다. 뭉게가 코를 킁킁대더니 손바닥을 핥아왔다."대기해도 되죠?""그러세요."박시윤이라고 했다. 동네 살면서 미용실 지나칠 때마다 눈에 띄었다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태도가 매너 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희수는 뭉게를 테이블에 올리며 물었다."언제부터 키우셨어요?""3년 됐어요. 혼자 사니까 얘가 낙이에요.""그렇구나. 뭉게야, 우리 잘해보자."뭉게 손질을 하는 내내 간간이 대화가 오갔다. 희수가 적당히 받아치는 사이, 시윤이 호감을 보이는 건지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손질을 마치고 뭉게를 안겨주자 시윤이 카운터 앞 명함 꽂이를 힐끗 봤다."명함 가져가도 되죠? 뭉게 데리고 자주 올 것 같아서요.""그러세요."딸랑, 문이 닫혔다.희수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뭉게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우리 구름이랑 많이 닮았네.별거 아닌데, 괜히 마음이 잠깐 물컹해졌다.---며칠 뒤, 희수의 미용실 카운터 달력에는 4월 19일에 커다란 빨간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생일'이라는 세 글자가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퇴근 시간에 맞춰 들어온 재원은 달력 앞에 멈춰 섰다.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었다.희수는 가위를 정리하며 기다렸다. 재원의 넓은 등판 너머로 머릿속 엑셀 창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92화. 한 달간의 독방

    "인스타 즐겨찾기? 진짜 언제부터 본 거야?"희수의 장난 섞인 질문에 재원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그저 귓가로 피가 몰려 터질 것처럼 붉어질 뿐이었다.언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희수와 헤어지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던 날부터였다.처음 일주일 동안 재원은 지독한 오만과 자존심으로 버텼다.고작 연애 하나 끝났다고 무너질 사람인가 싶어 평소보다 출근을 앞당기고, 일에 미친 사람처럼 몸을 굴렸다.하지만 불 꺼진 텅 빈 아파트에 들어설 때마다 명치끝이 짓눌리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몸이 아픈 거라 스스로를 속이며 타이레놀을 삼켰지만, 그건 약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그리움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평소 SNS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남자가, 결국 희수의 소식이 너무 궁금해 의미 없는 영어와 숫자를 조합한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ajw19820314. 고심 끝에 입력한 아이디는 본인 이니셜과 생년월일의 조합이었다.프로필 사진도 없고 팔로워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계정이었다.오직 희수의 미용실 인스타 하나만 즐겨찾기 해둔 채,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새로고침만 수백 번을 눌렀다.남들은 그냥 지나칠 강아지 미용 사진을 한참 동안 확대해 보곤 했다.사진 구석 유리창에 아주 작게 비친 희수의 실루엣을 찾아내고, 혹시 손가락에 대역 밴드가 붙어 있으면 어디 다친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사진 속 희수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 보여도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독한 미련의 시작이었다.회사에서 대형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서류의 글자 대신 희수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공적인 자존심과 회사에서의 완벽함이, 희수가 없는 공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껍데기일 뿐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퇴근길, 예전에 희수가 찾아왔을 때 모질게 돌려보냈던 본사 로비 구석을 지날 때마다 밀려드는 죄책감과 후회로 숨이 막혔다.그날 희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도시락 가방 끈을 꼭 쥐고 아무 말 없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91화. 성문을 연 국왕 폐하

    희수는 본사 로비의 거대한 회전문을 통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높은 층고와 대리석 바닥,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수트 차림의 사람들.이곳은 재원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견고한 '성'이자, 희수에게는 가장 아픈 기억이 서린 장소였다.몇 년 전, 서투른 마음으로 도시락을 들고 찾아왔던 날이 떠올랐다.그때 재원은 로비 구석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희수를 몰아세웠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공과 사 구분 안 돼? 업무 방해니까 그냥 가."그날 희수는 제 손에 들린 도시락 가방보다 더 무거운 비참함을 안고 돌아섰어야 했다.희수는 로비 안내 데스크 앞에서 주춤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그냥 돌아갈까. 또 그때처럼 무시당하면 어떡하지.'불안함이 발끝부터 차올랐지만, 아침에 재원이 보여준 그 당당한 미소를 떠올리며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자기야, 나 지금 로비인데."재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저 멀리 엘리베이터 홀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평소라면 절대 뛰지 않는 안 대리가, 넥타이까지 휘날리며 로비를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로비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재원에게 꽂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희수야!"숨을 헐떡이며 멈춰 선 재원이 희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희수는 당황해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손을 빼려 했다."잠깐, 자기야. 사람들 다 봐. 안 대리님 체면이...""체면 같은 거 모른다. 백성이 직접 알현을 오셨는데, 왕이 마중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재원은 예전의 그 차가운 철벽 대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표정으로 희수를 응시했다.그의 눈에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적인 공간'에 대한 강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가자. 내 자리가 저 위다."재원은 망설이는 희수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당당히 게이트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 타서도 그는 희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마주치는 동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자, 재원은 유례없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A, 내 여자친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90화. 왕의 귀환

    희수는 바쁘게 가위질을 하면서도 시계와 핸드폰을 번갈아 확인했다. "내 세상에선 자기가 왕이야." 아침에 던진 그 한마디에 사레까지 들려 켁켁거리던 재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미용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이며 묵직한 존재감이 들어섰다. “끝났어?” 재원이었다. 평소 같으면 문가에 어정쩡하게 서서 "나 왔다" 한마디로 출석 체크만 하던 남자가, 오늘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희수의 옆자리 정중앙에 섰다. “어, 자기 왔어? 오늘 회사에서 일 많았다며.” “많았지. 하지만 왕이 백성을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 희수는 하마터면 손에 든 빗을 놓칠 뻔했다. “...뭐? 왕?” “네가 아침에 그랬잖아. 내 세상에선 내가 왕이라고.” 재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주 진지하게 대꾸했다. 희수는 눈을 크게 떴다. 평소라면 묻기 전엔 입도 안 뗐을 재원이, 먼저 입을 열어 하루 일과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무가 기획안으로 트집을 잡더군. 평소 같으면 데이터 보완하겠다고 물러섰겠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었어. 내 판단이 왕의 결단인데, 대리 나부랭이가 태클 거는 기분이라서. 논리로 눌러버렸지.” “들이받아? 상무님을?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안 아프다. 내 로직이 왜 완벽한지, 상무가 놓친 변수가 뭔지 하나하나 짚어줬을 뿐이야. 결국 내 안이 채택됐고, 팀원들이 다 놀라서 쳐다보더군.” 희수는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 접속사까지 써가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곰탱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자기야, 그거 병이야. 왕자병. 근데 너... 오늘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적응 안 되게.” “병이라도 상관없어. 효과는 확실했으니까. 앞으로는 네가 궁금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 보고할 생각이다.” --- 차에 올라타서도 재원의 '수다스러운 왕' 모드는 해제될 줄 몰랐다. 항상 목적지까지 '안전 운전'이라는 루틴만 수행하던 침묵이 사라졌다. “희수야.” “응, 왕님. 또 무슨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89화. 덩치 큰 미운 일곱 살

    삼계탕의 진한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식탁 위로 서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분명 기력 보충하자며 기분 좋게 마주 앉았으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엔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재원의 사소하고도 지독한 철칙 때문이었다. '내 공간의 질서와 루틴은 완벽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희수가 무심코 재원의 서재 책상을 정리하며 물건들의 위치를 바꾼 것이, 재원에게는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침범당한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다가온 것이다. 재원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문 채 희수의 시선을 피했다. “자기야, 아직도 화났어? 나는 그냥 먼지가 너무 많아서 청소해준 거잖아.” “싫다.” 재원이 희수의 말을 뚝 잘라먹으며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뭐가 싫은데? 깨끗해지면 좋은 거 아니야?” “싫다. 내 물건에 손대는 거 안 좋아한다. 내 규칙이 있는데 왜 네 마음대로 바꾸나.” 희수는 턱을 괸 채 그런 재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왜 물건의 위치가 중요한지' 논리적 근거를 댔을 남자가, 이제는 아예 귀를 닫고 "싫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건 자존심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느끼는 그 지독한 불안감이 재원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재원은 닭다리 하나를 앞접시에 가져다 놓고는 먹지도 않은 채 젓가락으로 툭툭 치기만 했다. --- 희수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재원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자기야, 나 좀 봐봐. 응? 희수 좀 보라고.” “싫다니까. 나 지금 기분 안 좋다.” “뭐 때문에 그런데? 내가 자기만의 질서를 망가뜨려서?" “...그냥 싫다고." 재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희수의 눈에는 재원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불안한 듯 식탁보를 꽉 쥐고 하얗게 질린 그의 커다란 손이 다 보였다. 입으로는 무뚝뚝하게 "싫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사실 재원은 지금 자신의 세계가 무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3화. T들의 감정선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왜 보고 안 해…?’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 늦어도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화. 몰래 읽기 의혹 1차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재원이 아침부터 보내는 ‘초건조 모드’를 보며슬슬 불쾌함이 쌓여갔다.[회의들어간다] 09:30[끝났다] 10:10[밥먹고 쉰다] 12:31[일하는 중] 13:05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오늘은 유난히 ‘정보만 던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심지어 온도도 없음.희수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섞었다.[나 지금 밥먹었어!] 13:30[오늘 손님 많아 ㅠㅠ 지쳐어~] 14:25그런데 돌아오는 답은—[네에] 15:40[집이다 쉰다] 15: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1화. 투명인간이 된 기분

    무릎 수술 후 회복기.희수는 여전히 두꺼운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집 안에만 갇혀 있는 게 답답해, 재활 겸 아주 천천히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절뚝, 절뚝.걸음은 느렸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골목은 조용했다.봉지를 든 손이 조금 시리다고 느꼈을 때였다.저만치 앞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어?’재원이었다.칼퇴근을 하고 집 근처로 온 모양이었다.반가움에 희수가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는 혼자가 아니었다.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직장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3화. 나쁜놈 인 줄 알았는데 그냥 곰이었다

    그날의 ‘외면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다.표면적으로는 다시 평화로운 루틴이 돌아왔다.[기상] 06:11[출근 준비] 06:12하지만 희수의 마음속에는 아직 잔여물이 남아 있었다.친구들에게 하소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야, 그거 완전 나쁜 놈 아니야?”“지인한테 숨기는 거? 빼박이지. 어장관리 아니야?”“희수야, 너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아.”친구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사생활 숨김, 차가운 말투, 감정 회피.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체크리스트와 일치했다.희수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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