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또 한 장, 신시아의 펜 끝에서 정우진의 이름이 거침없이 쓰여 나갔다.그녀의 필체는 매혹적이면서도 강렬한 힘을 뿜어냈다.쓰다 지치면 시큰거리는 손가락을 주무르며 화려한 청첩장들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백 장이 넘는 청첩장을 모두 쓰려면 적어도 하루는 꼬박 걸릴 터였다.한편 주하영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헉 소리 나는 예산안을 들여다보며 삶의 회의감마저 들었다.수십억 원대의 약혼식 비용, 제대로 플렉스 해버리는 부자들의 클래스였다.게다가 그 안에는 그녀의 손가락질 몇 번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멍들이 보였다.꿀꺽 침을 삼킨 주하영은 고개를 돌려 신시아와 다른 직원들을 훑어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재빨리 예산안을 찢어 주머니에 넣었다.한순간 찾아온 양심의 시험에 그녀는 불안해하며 말이 없어졌다.신시아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머리를 파묻고 일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대충 때울 생각에 주하영의 이상한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뭘 먹을지 아직 고르지도 못했는데 오혜린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녀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시아 씨, 점심시간이야.”“네, 언니. 안 그래도 배달 음식 시켜 먹으려던 참이었어요.”신시아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같이 드실래요?”별안간 오혜린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대충 때우지 말고 나가자. 외식 고고.”신시아는 오혜린에게 이끌려 일어섰다. 외투와 가방도 전부 오혜린이 챙겨주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저 오후에도 할 일이 태산인데.”“걱정 마. 밥만 먹고 금방 올 거야.”오혜린이 갈색 코트를 그녀 어깨에 걸쳐주었다.“점심시간에 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잖아. 못 끝내면 저녁에 하면 되지!”신시아는 야근 수당에는 관심 없었다. 그저 모든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몇 분 뒤, 오혜린은 그녀를 데리고 상업 지구의 한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갑자기 웬 양식이에요?”신시아는 그녀에게 이끌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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