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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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지난번 신시아가 진료 차트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기를 썼을 때, 이미 그녀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을 터였다.그 후 채 선생님에게로 옮겨갔던 차트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박도영 본인의 책상 위에 놓이게 된 과정까지 전부 말이다.신시아는 박도영이 이미 자신의 임신 사실을 정우진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까지 눈치챘으리라 짐작했다.“감사합니다, 박 선생님.”“별말씀을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박도영이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신시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필요한 검사들을 받았다. 검사를 마친 뒤 복도에서 한두 시간쯤 대기한 끝에 마침내 결과지가 나왔고, 그녀는 서류를 들고 다시 진료실로 향했다.그 무렵 박도영은 거의 퇴근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마침 마지막 환자의 진찰에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다.신시아는 문가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기다리다, 앞선 진료가 끝난 후에야 안으로 발을 디뎠다.“박 선생님.”그녀는 검사 결과지를 박도영에게 건넸다.다만 결과지를 훑어보던 박도영의 미간이 점차 무겁게 좁혀졌다.“신시아 씨, 검사 수치가 그리 좋지 않네요. 고위험군 소견이 나와서 추가로 정밀 검사를 진행해 보셔야겠습니다.”임신 기간 내내 아기가 주수보다 다소 작다는 것 외에는 늘 가뿐하게 검사를 통과해 왔던 신시아였다.그렇기에 갑자기 찾아온 이 비보에 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마비되는 듯했다.“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박도영은 그녀의 급격한 동요를 알아채고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타일렀다.“우선 너무 겁먹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확률상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뜻이라 추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거지, 백 퍼센트 아기에게 이상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이상이 있다면, 대체 어떤 이상인가요?”신시아는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커다란 손에 꽉 움켜쥔 듯한 통증을 느꼈다.보육원에 머물던 시절, 몸이 불편하거나 선천적으로 지능에 문제가 있던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었다. 그런데 제 아이에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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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실타래처럼 엉망으로 엉켜있던 신시아의 마음이 일순간 굳어버리더니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지듯 덜컥 내려앉았다.“운도 지지리 없지. 대체 어딜 가도 저 인간이 버티고 있는 거야.”김지원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목구멍 깊은 곳에서 거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신시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안색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정말 우연이네요. 또 박 선생님을 만나러 오셨나 봐요.”“그러게, 꽤나 기막힌 우연이야.”정우진의 어조에는 묘한 의미심장함이 묻어났다.“이번에도 친구 일 때문에 온 거야?”그 말에 신시아의 온몸을 팽팽하게 죄고 있던 긴장의 끈이 그제야 스르륵 풀리기 시작했다.“아.”김지원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네, 맞아요. 저 따라온 거예요. 정 대표님, 오랜만에 뵙네요.”신시아가 정우진과 결혼해 살던 2년 동안, 김지원이 그를 직접 대면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당시 김지원은 막 시험관 아기 시술에 성공한 직후였다. 기쁜 마음에 신시아를 불러내 밤새도록 광란의 축하 파티를 벌이려던 참이었는데, 뜬금없이 정우진이 한밤중에 데리러 오겠다며 아파트 밑에 롤스로이스를 대기시켜 놓은 것이었다.그녀가 살던 아파트 단지 전체를 통째로 사고도 남을 만큼 비싼 명품 차였다. 단 5분 동안 정차해 있었을 뿐인데도, 그 짧은 새 찍힌 차 사진이 입주민 단톡방에 올라가며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대체 어떤 거물이 온 거냐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그 만남이, 김지원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었다.“김지원 씨, 오랜만이에요.”정우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그의 범접하기 힘든 기세 앞에서, 평소 기가 세기로 유명한 김지원마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속으로는 '눈이 삐어서 신시아 같은 보석을 몰라보고 은유라 같은 싸구려를 좋아한다'며 온갖 흉을 다 보았지만, 정우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지배자 특유의 강렬한 아우라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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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그래, 이런 뻔한 위로가 전혀 와닿지 않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확률 문제야.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 희망이 여전히 훨씬 크다고.”신시아가 깊은 침묵에 빠지자, 김지원은 제 어떤 위로도 그녀의 귀에 닿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신시아는 가쁘게 떨리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해지려 애썼다.“괜찮아, 지원아. 제일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최악의 상황도 담담하게 준비하면 돼.”차라리 울기라도 하면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련만, 억지로 강한 척을 해대니 보는 사람 마음에 피눈물이 났다.김지원은 그 모습을 볼수록 가슴 끝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가녀리고 고집스러운 그 얼굴에 서린 단호한 눈빛은, 더 이상 위로하지 말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았다.참으로 허망한 위로였다.“신시아 씨, 이제 준비되셨으면 들어오시죠.”초록색 무균복으로 갈아입은 박도영이 시술실에서 나와 신시아를 안으로 안내했다.시술실의 밝은 조명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했고 사방을 메운 무거운 침묵은 가슴을 옥죄어 왔다.침대에 누운 신시아가 상의를 걷어 올리자, 뽀얀 피부 위로 미세하게 부풀어 오른 아랫배가 모습을 드러냈다.“몸이 너무 말랐어요.”박도영은 누워 있으니 한층 더 납작해 보이는 그녀의 배를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영양 섭취에 더 공을 들이셔야겠어요.”“네.”신시아는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그녀의 극심한 긴장감을 감지한 박도영이 그녀의 팔을 툭툭 가볍게 다독였다.“긴장 푸세요, 별 탈 없을 겁니다.”신시아는 눈을 감고 아랫배 부근에서부터 가느다란 한기가 천천히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두 시간 후, 신시아는 김지원을 따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며칠 동안은 그냥 회사 쉬어. 정우진한테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네가 간병해 줘야 한다고 대충 핑계 대고.”김지원은 신시아를 안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그 박도영이라는 의사 실력이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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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결과 나왔어? 신시아 배 속의 애... 우진 오빠 자식 맞아?”박도영은 투명한 튜브 두 개를 손에 쥔 채, 미동도 없이 그것들을 매만지며 침착하게 대답했다.“맞았으면 좋겠어, 아니었으면 좋겠어?”은유라는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그게 내가 바란다고 바뀔 일이야?”박도영은 여유로운 태도로 튜브를 꽂아둔 뒤, 하얀 장갑을 벗어 던졌다.“친자 확인 결과지야. 직접 확인해 봐.”그가 서랍에서 보고서를 꺼내 건네자 은유라는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불일치,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진짜... 우진 오빠 아이가 아니라고?”은유라는 멍해진 얼굴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도영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친자식이 아니라는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검사가 잘못됐을 리는 없고?”은유라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그녀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가 정우진과 어떻게든 얽혀 있을 거라고 굳게 확신해 왔기 때문이다. 이혼 후 반년이나 지나서 임신했다는 사실도, 최근 두 사람의 행보가 눈물겹도록 결백하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 자체가 이미 은유라의 마음속에 깊게 박힌 가시였다.“신시아한테 말해. 아이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지워야 한다고.”은유라는 테이블 위에 결과지를 툭 던져두고 가방을 챙겨 문으로 향했다.순간, 박도영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난 의사지 백정이 아니야. 그건 하나의 생명이고, 아무 죄도 없는 생명이라고.”문가에 다다랐던 은유라의 발길이 멈추었다.은유라는 고개를 돌려 박도영을 빤히 바라보더니, 몇 초 뒤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렸다.“박도영, 너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해?”박도영의 눈빛이 점차 매섭게 가라앉았다.“은유라, 그런 얄팍한 수작으로나 남자를 붙잡아 두려고 하다니 참 꼴불견이야. 원한다면 끝까지 가줄게. 난 의사 면허 날아가도 그만이니까, 너도 정우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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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이와 동시에 지난 며칠 동안 눈가에 가둬두고 애써 꾹 참아왔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왈칵 쏟아져 내렸다.“나, 나 방금 한 말 취소할래!”김지원은 신시아를 품에 와락 껴안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당연히 취소해야지! 우리 아기가 기특하게도 제힘으로 다 이겨낸 거야. 신령님이랑 거래해서 얻은 평안이 아니니까, 아까 했던 약속 안 지켜도 절대 부정 같은 거 안 타!”신시아의 얼굴 위로 마침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미소가 부드럽게 피어올랐다.“됐다,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이따 이모님한테 맛있는 거 잔뜩 해달라고 할 테니까 저녁 든든히 먹고 가. 영양 보충 좀 듬뿍 해 둬야지. 그리고 회사 복귀하는 건 너무 서두르지 마. 나 저번에 방송 복귀한 것도 반응이 꽤 괜찮고, 우리 빈이 영상 올리려고 새로 만든 부계정도 팔로워가 엄청 빠르게 늘고 있거든.”이번 일을 겪으며 김지원은 확실히 깨달았다.이 아기가 신시아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네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언제 들통나든 상관없지만, 처음에야 아무도 그 애가 정우진 자식인 걸 눈치채지 못할 거야.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만에 하나 정우진이랑 판박이처럼 닮아지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어. 그러니까 출산 직전까지 일하다가 바로 사표 던져. 내가 너 하나쯤은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몸 풀고 아무 일도 없을 때 그때 다시 회사 구해서 다녀.”신시아 역시 마음속으로 이미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참이었다.진행 중인 정부 프로젝트가 끝나면 꽤 두둑한 인센티브를 받을 테니, 그것만 있으면 당분간의 경제적 쪼들림은 가뿐히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지원아, 정말 고마워.”그러자 김지원은 쯧 하고 혀를 찼다.“내가 처음 1인 미디어 시작했을 때 돈 한 푼도 못 벌어서 네가 몇 달 동안이나 나 먹여 살려줬잖아. 난 그때 고맙단 소리 한 번도 안 했는데, 넌 무슨 이런 걸로 고맙다고 하냐? 나를 아주 남으로 생각하는 거지?”신시아는 아랫배 위에 가만히 손을 얹은 채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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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정우진이 그 자리에 차갑게 버티고 서자, 임정현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그는 미안함이 역력한 눈빛으로 신시아를 쳐다보았다. 사석에서야 연애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가볍게 투덜거려도 괜찮았지만, 대놓고 최고 상사인 정우진 앞에서 이런 실언을 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이는 결과적으로 정우진 앞에서 신시아가 사적인 연애에 빠져 일도 팽개친 채 데이트를 다녔다고 은근히 고자질을 한 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임정현은 결코 그런 나쁜 의도를 품고 한 말이 아니었다.신시아 역시 그의 당혹감을 눈치채고 있었다.그녀는 정우진과 허공에서 얽힌 시선을 자연스럽게 거두며 서류를 정리했다.“며칠 동안 임 비서님께서 고생 많으셨어요.”“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임정현은 얼른 눈치 빠르게 맞받아쳤다.“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해본 말이에요. 생각만큼 그리 바쁘지도 않았어요.”두 사람은 무안한 듯 부지런히 말을 보태며, 조금 전의 가벼운 소란을 어떻게든 어영부영 넘기려 애썼다.정우진은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마디가 굵은 손가락 끝으로 신시아의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잠시 내 방으로 들어오지.”차가운 목소리로 짧은 지시를 내린 정우진은 찬 바람이 부는 뒷모습만 남긴 채 대표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망했다.”임정현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었다.“대표님이 이렇게 타이밍 좋게 들이닥치실 줄 알았으면 입이라도 조심하는 건데.”그도 그럴 것이 정우진은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적인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신시아는 안절부절못하는 임정현을 다독이며 안심시켰다.“그래 봤자 한 소리 듣고 마는 정도일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서 일 보세요.”그녀는 발길을 돌려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널찍한 대표실 안으로 통창을 통과한 아침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빛을 등지고 선 정우진의 입체적이고 뚜렷한 이목구비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체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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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정우진은 그 메시지를 신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며 아무런 덧붙임 없이 건조하게 말했다.“됐어.”그는 휴대폰을 신시아에게 다시 건네주었다.“그럼 우리 언제 출발해...”수화기 너머로 은유라가 여전히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시아는 가차 없이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그녀는 오늘 밤 8시 비행편을 선택해 예매를 마친 뒤, 정우진에게 일정표를 전송했다.“유라한테도 한 부 전송해 줘.”정우진은 서류철을 무심하게 넘기며 나직하게 지시했다.신시아는 휴대폰 화면을 조용히 껐다.“은유라 씨는 대표님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걸 훨씬 좋아할 겁니다.”방금 전 은유라가 자신에게 얼마나 기고만장하고 쌀쌀맞게 굴었는지 정우진도 뻔히 보았을 터였다.그저 은유라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정우진의 관심 밖이었을 뿐이다.정우진은 찌푸린 미간으로 불쾌함을 뿜어내며 신시아를 노려보았다.“대표님, 정부 프로젝트 건은 이제 마무리 단계라 제 손길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센티브 신청 결재 서류는 이미 메일로 발송해 두었습니다.”신시아는 은유라 얘길 굳이 길게 끌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지난 이틀 동안 1년이 10년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히 결과가 무사히 정상으로 나와 안도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그녀는 아기가 제게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그녀는 더 이상 출산 예정일 직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느꼈고, 정우진이 임신 사실을 알아채기 전에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그러기 위해서는 약속된 인센티브를 무사히 손에 넣어 당장의 쪼들리는 수중에 숨통을 틔워야만 했다.정우진은 성과급 지급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늘 시원시원하고 뒤끝이 없었다.게다가 그동안 신시아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밤낮없이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비록 프로젝트가 완벽히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성공이 거의 확실시된 만큼, 그는 결재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막힘없이 승인해 주었다.신시아는 승인된 메일을 즉시 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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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은유라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시아 배 속의 아이가 정우진의 자식이 아니라면서,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사실을 애써 숨기려 드는 걸까? 만약 그 아이가 하선재의 핏줄이라면... 설마 하씨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나서, 일단 몰래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빌미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심산인 걸까?’재벌가에서 사생아 스캔들이 나는 것은 가문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었기에 대개는 소란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수습하려 들고, 아기는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쥐여주며 내치기 마련이다.하지만 대기업 재벌들에게는 푼돈에 불과할 그 액수조차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먹고살 걱정 없이 떵떵거릴 수 있는 거금이었다.신시아의 얄팍한 계산속이 뻔히 들여다보였기에 은유라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흘러가게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한편, 정우진이 자리를 비우자 업무량은 늘어났지만 신시아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눈앞에 안 보이니 속이 다 시원했다.하지만 꼭 눈치 없이 초를 치는 불청객이 존재했다.정우진이 은유라를 대동해 해외로 나갔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지자 하선재는 정부 프로젝트를 핑계 삼아 당당하게 백영 그룹 본사로 들이닥쳤다.아무리 그래도 구창 그룹의 대표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1층 안내 데스크에서도 무작정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임정현에게 다급한 연락이 취해졌다.임정현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사색이 되어 신시아의 자리로 뛰어왔다.“하 대표는 분명히 신 비서님 만나러 오신 겁니다.”신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비서실 맞은편 엘리베이터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연회색 슈트에 튀는 핑크색 셔츠 깃을 풀어헤친 하선재의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는 아주 깔끔하게 빗어 넘겨 제법 그럴듯한 신사처럼 보였다.“신 비서.”하선재가 특유의 매혹적인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신시아를 향해 살살 녹는 듯한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 대표님 오셨습니까.”임정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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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신시아 역시 당시의 그 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업 간의 암투가 낳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하지만 정씨 가문의 유일한 적통 후계자가 음모에 휘말린 것은 가문 차원에서 뼈아픈 수치였기에, 관련 보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통제되어 묻혀버렸다.신시아가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동안 하선재는 그녀를 뚫어지게 관찰했다.하지만 그녀의 담담한 안색에서는 그 어떤 미동조차 찾을 수 없었다.“말씀 다 하셨나요?”신시아는 포개고 있던 다리를 얌전히 내리며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태세를 취했다.“아니, 머리를 더 굴려봐!”하선재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그녀를 몰아세웠다.“생각을 해봐라! 은유라가 정우진의 목숨을 구했잖아. 그럼 정우진이 은유라와 결혼하려는 게 단순히 그 목숨의 빚을 갚기 위한 정략적인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들어?”신시아는 눈을 깜빡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그런 쪽으로는 단 한 번도 머리를 굴려본 적이 없었다.아무리 은혜를 갚는다고 한들 정우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수히 많았을 텐데, 제 평생을 인질로 잡히면서까지 무리한 선택을 할 사람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너 리액션 좀 제대로 해주면 안 되냐?”신시아가 여전히 아무런 감흥 없이 시큰둥하게 굴자, 하선재는 또다시 혼자 찬물을 뒤집어쓴 듯 툴툴댔다.신시아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계적으로 대꾸했다.“정 대표님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은유라 씨와 결혼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하 대표님의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맑고 검은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의 파동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영혼 없이 달싹이는 입술로 그저 제 장단에 맞춰 비위를 맞춰주니, 하선재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노릇이었다.“너 안 믿는 거지? 두고 봐.”그가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날카롭게 다이얼을 눌렀다.“지금 즉시 알아봐. 은유라가 지난 2년 동안 해외에서 뭘 하고 지냈는지, 털끝만 한 사소한 일까지 싹 다 조사해서 나한테 보고해!”그는 정우진과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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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체로 병원.“우진 오빠, 우리 여기에는 왜 온 거야?”은유라가 차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그녀는 극도의 거부감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스커트 자락을 양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정우진은 활짝 열린 차 문 옆에 기대어 서서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은유라가 내리기를 기다렸다.“여기에 온갖 희귀 난치병을 전문으로 고치는 아주 유명한 명의가 있다고 해서 말이야.”병원 앞마당에 차가 멈춰 선 순간부터 은유라의 안색은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단 한 방울의 핏기도 남지 않은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나 병원 절대 안 가!”정우진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하얗게 퍼지는 담배 연기 너머로 그의 얼굴은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캄캄했다.“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지금과 다를 바 없으니, 일단 진료부터 받아보자.”정우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강력한 단호함이 서려 있어, 은유라가 거절할 여지를 단숨에 차단해 버렸다.은유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날카로운 손톱 끝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어 붉은 상처를 낼 지경이었다.“우진 오빠...”“내려, 내가 같이 가줄 테니까.”정우진은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끄며 반은 타이르고 반은 명령하는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이제 더는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은유라는 거칠게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정우진을 몇 초 동안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결국 마지못해 발을 내디뎠다.그녀가 차 밖으로 완전히 나오자 정우진은 무표정하게 차 문을 닫았다.하지만 정우진이 몸을 돌리는 찰나, 은유라는 이미 반대편 도로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정우진이 미간을 좁히며 급히 쫓아갔으나, 그녀는 간발의 차로 대기 중이던 택시에 몸을 실어버렸다.한 시간 후, 호텔.은유라는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나 돌아갈래.”문 너머로 은유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정우진은 거실 소파에 깊숙이 묻혀 앉아, 길고 수려한 손가락으로 잡지를 톡톡 두드렸다.다리를 비스듬히 꼰 그의 자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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