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231 - Chapter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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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뼛속에서 배어 나오는 엄숙한 기운이 이 순간 한층 더 뚜렷해졌다.손연경은 은유라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너희 젊은이들 일은 너희끼리 알아서 얘기해.”그녀는 은유라에게 정우진에게 좋은 말이라도 두 마디 건네라고 눈짓했다.은유라는 떠밀리다시피 정우진의 곁으로 갔지만 정우진은 그 자리에 앉아 정면만 응시할 뿐, 눈길조차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뼛속까지 꼿꼿한 짧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현주 씨, 유라는 어릴 때 정씨 가문에서 살다시피 했고 현주 씨가 보면서 키웠잖아. 보다시피 애가 워낙 순진해서 꿍쳐둔 속셈 같은 건 아예 없어요.”손연경은 기현주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팔짱을 꼈다.“내 말은 이 일이, 그 신시아랑...”“시아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냐?”권미희는 손연경의 입에서 신시아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남이 누구와 연애를 하든, 애를 낳고 결혼을 하든 그게 너희랑 무슨 상관이야? 자기들이 쩨쩨해서 꼬투리나 잡아놓고 누구를 탓해.”손연경은 그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그러나 그녀가 던진 몇 마디 말에 기현주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자신이 보고 키우기도 했거니와, 은유라가 정말이지 너무 고지식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정우진의 앞에 서 있는 은유라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 애처로운 모습에 가슴이 아파 왔다.“우진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은유라한테 미안한 짓을 한 건 사실이잖아.”그녀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권미희는 눈을 까뒤집고는 고개를 홱 돌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행여나 눈알이라도 빠질까 봐 겁이 난 건지, 아예 실눈조차 뜨지 않았다.그때 정우진이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따라와.”은유라에게 짧게 내뱉은 그는 몸을 돌려 테라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은유라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그의 뒤를 쫓았다.“우진이랑 얘기 잘해봐.”손연경이 나지막이 당부했다. 테라스에는 햇살이 가득했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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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손연경이 테라스 문을 열었다.“유라야...”그녀의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은유라가 휙 돌아서 밖으로 내달렸고 문 앞에 서 있던 손연경을 거칠게 밀치며 지나쳐 갔다.손연경은 벽에 부딪히며 휘청거렸고 홧김에 다급하게 소리쳤다.“우진아, 빨리 쫓아가 봐!”은유라가 울며 사라진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터라,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은유라의 뒷모습을 좇았지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 여자애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사과하러 온 건데, 이 일 때문에 며칠이나 자책하며 잠도 못 잤어...”손연경이 다급히 정우진을 재촉했다.“그만해!”은성빈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거실에 있던 정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 저마다 다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은유라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해도, 결국 이 일을 저지른 건 그녀였다.그런데 울며 도망치는 꼴이라니, 마치 정씨 가문 사람들이 은유라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설마 정우진더러 쫓아가서 달래주기라도 하라는 건가?은성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고개를 숙였다.“어르신들, 돌아가면 저희가 유라를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 은씨 가문의 잘못이니, 부모인 저희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테라스에서 돌아온 손연경은 입을 열려 했으나 은성빈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딸을 위해 변명해주려던 말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성빈과 같은 사과의 말로 바뀌어 버렸다.“정말 죄송합니다.”결국 은씨 부부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가정부의 배웅하에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난 후, 기현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유라 그 아이가 원래 좀 천진난만해서 그래요. 속이 뻔히 보이는 스타일이라 신시아처럼 살갑지는 못하죠.” 문이 열린 테라스에서 정우진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길고 깨끗한 손가락에 들린 담배 끝에서 연기가 느릿하게 피어올랐다.자욱한 연기 사이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차갑고 신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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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권미희는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난 시아가 네 오빠한테 시집오면 팔자 고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니.”은씨 가문에 이어 하씨 가문까지 엮였으니 말이다.“기회를 봐서 하씨 가문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내 늙은 체면 다 버리고서라도 시아가 헤쳐나갈 길을 만들어줘야지.”정다슬은 권미희를 방으로 모셔다드리고 몇 마디 안심시킨 뒤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그러고는 방금 전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신시아에게 보냈다.[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니가 억울한 일 당한 거 다 아세요. 은씨 가문에서 사과하러 왔는데 은유라가 울고불고 징징대는데 얼마나 짜증 나던지. 마치 우리가 갑질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요. 오빠도 완전 뚜껑 열렸고...]정다슬이 이 영상을 신시아에게 보낸 이유는 정씨 가문이 신시아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은유라가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한 건 정우진 때문이니까.신시아는 매일 밤 김지원 라이브 방송을 도우며 보조 역할을 하느라 잠이 늦었다.그녀가 잠에서 깨어 이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전해줘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우니까.]정씨 가문 두 어르신과 정다슬에게 신시아는 고맙다는 말 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참으로 조율하기 힘든 관계였다.서로 걱정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그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다.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잘잘못을 떠나 신시아와 은씨 가문의 관계는 이미 물과 불처럼 상극이 되어버렸다.떠나는 일은 발등의 불이었다.다만 회사 쪽은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배도 불렀는데 이제 나랑 밤샘 작업 같은 건 하지 마.”김지원은 잠에서 깨자마자 그녀의 방으로 건너와 이불을 들치고 침대에 올라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일찍 자.”신시아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네 일을 좀 거들어 주려고.”비용을 아끼기 위해 김지원은 서브 방송 진행자도 고용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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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은유라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환자복은 그녀를 한층 더 수척하고 가련해 보이게 만들었다.정우진은 침대 발치 쪽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다.노크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신시아는 문을 열고 들어서다 실내를 훑어보더니, 잠시 멈칫하고는 문을 닫고 걸어 들어왔다.“대표님.”그녀의 미간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정우진이 자신을 은유라의 병실로 불러낸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앉아.”정우진이 자신의 곁에 있는 1인용 소파를 가리켰다.신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 앉으며 과일바구니를 곁에 내려놓았다.그녀와 정우진은 나란히 앉아 병상에 쓸쓸히 앉아 있는 은유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 순간, 은유라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신시아는 은유라를 힐끗 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정우진을 향해 물었다.“대표님, 사직에 관한 건 말입니다만...”“잠깐 기다려.”정우진이 신문을 내려놓고 손을 팔걸이에 얹은 채 손가락 끝으로 팔걸이를 톡, 톡 가볍게 두드렸다.병실 안의 분위기가 점점 미묘해지기 시작했다.신시아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입술을 살며시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신 비서, 미안해요.”은유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 비서와 하선재 사이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서 신 비서의 명예를 더럽히고, 업무에도 피해를 준 거 정말 미안해요. 나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영상에서 정우진과 은유라가 테라스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신시아는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험악하게 다퉜던 이유가 은유라가 정우진에게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그런데 은유라가 직접 사과를 하다니.그녀는 정우진을 바라보았고 맑은 눈동자 깊은 곳에는 당혹감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넌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어.”정우진이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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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정우진을 회사에 데려다주는 한 시간 동안의 여정은 사직 문제를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애초에 이혼할 때도 이렇게까지 번거롭지는 않았는데 싶었다.“정말 떠나고 싶은 거야?”정우진의 덤덤한 말투에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교차로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차들이 엉켰다.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자 신시아도 액셀을 밟았다.도로가 뚫렸는데도 정우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차가 백영 그룹 지하 주차장에 들어와 정우진의 전용 구역에 멈출 때까지 말이다.정우진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지만, 손잡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시아를 돌아보았다.“대표님, 아직 제 질문에 답을 안 해주셨잖아요.”신시아가 잠금장치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그녀는 지금 정우진을 차 안에 가두고 있었다.정우진의 미간이 더 깊게 패었다.“만약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쩔 거지?”“제가 계속 남아 있는 건 정말 맞지 않아요. 대표님도 은유라 씨가 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건 원치 않으시잖아요.”신시아는 ‘상처와 고통’이라는 단어를 교묘하게 활용해 정우진을 압박했다.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은유라가 계속 소란을 피울 테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곤란해질 것이라는 논리였다.정우진은 다시 좌석에 기대앉았다. 잠금장치를 풀지 않는 그녀의 배짱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신시아, 내가 허락 안 하면 계속 문 안 열어줄 생각이야?”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설득해서 대답을 받아낼 겁니다.”설득이 안 되면 계속 말할 작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우진은 이 차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을 테니까.결국 대답을 안 해주면 안 열어주겠다는 고집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일단 올라가. 오늘 안으로 네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테니까.”정우진이 차 문을 톡톡 두드리며 신시아에게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그의 단호한 어조에는 신시아의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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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인사 발령은 그대로 보류되었다.신시아는 계속해서 휴직 상태였다. 그녀가 정우진의 사무실을 나오자 마주치는 동료마다 한결같이 물었다.“신 비서님, 혹시 퇴직 절차 밟으러 오신 거예요?”신시아가 아니라고 답하자 동료들의 눈빛에 미묘하고도 짓궂은 의미가 서렸다.한편 오혜린은 딱히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2층으로 서류를 전달하러 가던 길에 신시아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래서 대표님은 시아 씨를 어떻게 ‘처리’한대?”‘처리’라니, 참 적절한 단어 선택이었다.신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어요.”정우진이 전보 조치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퇴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확실한 건 이제 이곳으로 다시 출근할 일은 없으리라는 점뿐이었다.하지만 모든 게 결정되기 전까진 신시아는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백영 그룹을 뒤로하고 김지원의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유모차에 누운 빈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식탁 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김지원은 밤샘 라이브 방송을 하느라 밤마다 진한 커피를 마시는 게 습관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던 그녀의 미간이 꽉 묶인 매듭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고진감래라더니 왜 계속 쓰기만 한 거야? 언제쯤 단맛을 볼 수 있을까?”신시아는 손에 쥔 닭 다리를 야무지게 뜯으며 옆에서 군침을 흘리는 빈이를 곁눈질했다.“이제 거의 다 왔어!”확신에 찬 그녀의 목소리에 김지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무슨 자극이라도 받은 거야? 아니면 정면 돌파를 하겠다고?”상대는 강철처럼 단단한데 신시아는 그저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같은 존재였다.배경으로 따져도 은유라를 이길 수 없고 실력으로 맞서자니 정우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도대체 뭐가 거의 다 왔다는 말인가!신시아의 인생은 지금까지 너무 ‘순탄하기만’ 했다.보육원에서 자라 명문대에 진학하기까지 삶은 고단했을지언정 그 과정만큼은 탄탄대로였다.졸업 후 백영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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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권미희가 자리에 앉자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떴고 등나무 의자가 가볍게 흔들렸다.“시아 일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할 셈이니?”정우진은 쪽걸상에 앉아서 긴 다리를 여유롭게 뻗은 채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돌려 말하지 마시고 하실 말씀 하세요, 할머니.”권미희의 관심사는 정우진이 신시아를 어떻게 ‘배려’하느냐가 아니었다.어차피 손주 녀석이 내놓을 결론은 그녀가 생각하는 방식과 결이 다를 게 뻔하니까.“부부의 인연은 무시 못 해. 이번 일은 은유라의 잘못이 큰 것 같구나. 시아도 엄연한 피해자니 네가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니?”정우진은 술잔을 내려놓고는 양손을 깍지 낀 채 권미희가 이어갈 말을 묵묵히 기다렸다.이에 어르신이 잠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그냥 이참에... 시아가 하씨 가문으로 시집가게 네가 힘 좀 써줘.”이토록 직설적인 제안은 정우진의 귓가를 파고들어 날카롭게 박혔다.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권미희를 응시했다.“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시아랑 선재는 사람들 눈에 띄지만 않았을 뿐 예전부터 무언가 있었던 게 분명해.”권미희는 신시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정우진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굳이 지금 밝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신시아와 하선재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니?정우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누가 그러던가요?”“그건 알 것 없고. 어쨌든 이번에 좀 밀어줘. 하선재가 품행이 좀 별로긴 해도 그 집안 조건은 괜찮잖아. 우리가 뒤를 봐주면 시아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진 않을 거야.”지금 권미희의 소원은 딱 두 가지였다.정우진이 하루빨리 결혼하는 것, 그리고 신시아를 좋은 곳에 시집보내는 것.아니, 하나 더 추가해서 정다슬까지 좋은 혼처를 찾아주는 것.모두 세 가지 소원이었다.“오빠가 여동생 뒤를 봐주거나, 남편이 아내 뒤를 봐주는 건 들어봤어도 전남편이 전처 뒤를 봐준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네요.”낮게 깔린 정우진의 목소리는 깊은 가을바람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권미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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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임정현은 정우진을 보필해 온 오랜 시간 동안 공적인 업무 외에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하물며 감정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금기나 다름없었다.신시아와 정우진이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자신에게 급히 혼전 합의서를 준비하라고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당사자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임정현은 이미 짐작했다. 정우진이 그녀와 결혼하는 이유는 단지 ‘책임’ 때문이라는 것을.그렇다면 신시아는? 정우진과 결혼한 이유가 그 책임을 ‘받기’ 위해서였을까?“대표님, 술 드셨어요?”임정현은 정우진에게서 풍기는 옅은 술 냄새에 조심스레 물었다.불현듯 정우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를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대답이 딴 곳으로 샌 것에 대한 불만이 서려 있었다.“제가 신 비서님과 그렇게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말입니다.”정우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꽂히자 임정현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상사의 사생활을 논해야 하는 이 난감한 상황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결혼은 대표님이 먼저 제안하신 거니까 신 비서님이 거절하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어찌 됐든 상사잖아요.”임정현의 생각은 확고했다.그의 머릿속에서 신시아의 결혼은 일종의 ‘강압적인 선택’이었다.상사에게 몸을 맡긴 뒤, 행여 인사고과에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다 결국 떠밀리듯 결혼까지 하게 된 그런 그림 말이다.그나마 다행인 건 정우진이 대머리에 배가 불룩 나온 느끼한 중년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만약 그랬더라면...“그러니까 네 말은 시아가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야?”정우진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임정현은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그, 그럴 리가요! 대표님은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으시니 모든 여자의 로망이잖아요. 신 비서님도 당연히 결혼을 원했을 겁니다!”정우진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결혼하자고 물었을 때, 신시아는 꽤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승낙했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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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정우진은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연회색 잠옷으로 갈아입었다.“그리고 너, 다시는 귀국 안 한다며.”박도영 쪽에서 자동차 엔진의 낮은 윙윙거림이 들려왔다.그는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 되냐.”정우진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잘나신 박도영 도련님도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있네?”박도영이 씁쓸하게 웃었다.“내가 우리 집안에서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 너도 잘 알면서.”그에게 유일한 입지란 정우진과 가깝다는 것뿐이었다. 박씨 가문이 그를 해외로 유학 보낸 이유도 순전히 정우진과의 관계 때문이었으니까.“내가 해결해 줄게.”정우진은 박도영이 스스로 귀국한 진짜 이유를 털어놓길 기다렸다.하지만 이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화제를 돌렸다.“신 비서였나? 그분 일은 어떻게 할 건데?”뉴스는 연일 떠들썩하게 화제의 중심이었다.평소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소식이지만 박도영은 정우진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경제 뉴스만큼은 예민하게 챙겨보고 있었다.“원칙대로 해야지.”정우진은 간결하게 대답하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끊는다.”침대 머리맡의 은은한 조명이 그의 그림자를 벽면에 길게 드리웠다. 뚜렷한 얼굴 윤곽이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는 옆으로 돌아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이틀을 기다린 끝에 신시아는 드디어 인사 발령 소식을 접했다.정우진은 그녀에게 지사 현황이 담긴 검토표를 넘기며 어느 지사가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직접 골라보라고 했다.사실상 선택권을 신시아에게 넘긴 셈이었다.백영 그룹의 지사는 전국 방방곡곡에 뻗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지원과 애초에 가기로 했던 곳들은 후보에서 제외되었다.정우진의 눈길을 피하려던 두 사람의 의도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대표님이 회사를 맡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간 경영진 방문은 가까운 지사 두 곳에 그쳤어. 그것도 형식적인 순회였고. 그러니까 내가 어디를 선택하든 대표님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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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애초에 신시아가 백영 그룹에 입사한 건 정우진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였다.정우진의 비서가 된 후로는 더더욱 가까워졌고.이 남자를 차지하려 치열하게 노력했던 건 아니어도 최소한 그를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갔던 시간들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온갖 계산을 다 하고 있었다.배 속의 아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신시아는 마음속이 여전히 심란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알겠어, 다 알겠다고.”김지원은 신시아의 ‘미련 가득’한 얼굴을 넌지시 바라봤다.별안간 신시아가 눈꺼풀을 가볍게 치켜떴다.“뭘 알겠다는 거야?”“말 안 해도 다 알아.”김지원이 짐짓 신비로운 척 굴었다.이에 신시아는 묵묵히 계획서를 작성해 정우진에게 전송한 뒤, 결과를 기다렸다.입사 후 지난 몇 년간, 이런 식의 휴가는 그녀에게 처음이었다. 아무런 업무도 없는 완전한 휴식 말이다.매일 밤 김지원의 라이브 방송 보조를 하는 게 유일한 일과였는데 신시아에겐 그저 단순한 시간 때우기였다.그러던 어느 날, 김지원이 날짜를 하나 잡더니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한다며 신시아에게 동행을 부탁했다.사실 출산 후 재검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김지원의 목적은 검진이 아니라 순전히 박도영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오해하지 마라. 박도영 씨가 잘생긴 건 인정하는데 그렇다고 막 목매는 정도는 아니야. 그냥 곧 떠나면 이렇게 멋진 남자를 언제 또 보겠어? 기회 있을 때 말이라도 안 섞어보면 아깝잖아.”신시아는 안전벨트를 매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김지원이 힐끗 노려보며 반박했다.“말 안 해도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여.”두 사람은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지원은 생각나는 대로 뱉는 스타일이었고 신시아는 속으로 삭이며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대신 그녀는 매사에 생각이 깊고 섬세했다.“잘됐네. 나도 온 김에 진료 기록부나 챙겨야겠다.”다음 검진부터는 분명 타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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