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경이 테라스 문을 열었다.“유라야...”그녀의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은유라가 휙 돌아서 밖으로 내달렸고 문 앞에 서 있던 손연경을 거칠게 밀치며 지나쳐 갔다.손연경은 벽에 부딪히며 휘청거렸고 홧김에 다급하게 소리쳤다.“우진아, 빨리 쫓아가 봐!”은유라가 울며 사라진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터라,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은유라의 뒷모습을 좇았지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멍하니 뭐 하고 있어? 여자애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사과하러 온 건데, 이 일 때문에 며칠이나 자책하며 잠도 못 잤어...”손연경이 다급히 정우진을 재촉했다.“그만해!”은성빈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거실에 있던 정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 저마다 다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은유라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해도, 결국 이 일을 저지른 건 그녀였다.그런데 울며 도망치는 꼴이라니, 마치 정씨 가문 사람들이 은유라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설마 정우진더러 쫓아가서 달래주기라도 하라는 건가?은성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고개를 숙였다.“어르신들, 돌아가면 저희가 유라를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 은씨 가문의 잘못이니, 부모인 저희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테라스에서 돌아온 손연경은 입을 열려 했으나 은성빈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딸을 위해 변명해주려던 말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성빈과 같은 사과의 말로 바뀌어 버렸다.“정말 죄송합니다.”결국 은씨 부부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가정부의 배웅하에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난 후, 기현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유라 그 아이가 원래 좀 천진난만해서 그래요. 속이 뻔히 보이는 스타일이라 신시아처럼 살갑지는 못하죠.” 문이 열린 테라스에서 정우진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길고 깨끗한 손가락에 들린 담배 끝에서 연기가 느릿하게 피어올랐다.자욱한 연기 사이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차갑고 신비로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