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251 - Chapter 260

264 Chapters

제251화

주변을 살피던 신시아가 조심스레 문틈을 열었다.“짜잔!”그때 김지원이 고개를 쑥 들이밀고 손에는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먹을래?”“어떻게 왔어?”신시아가 문을 활짝 열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전에는 못 먹게 했잖아.”“가끔 한 번 먹는 건 괜찮아.”김지원은 안으로 들어와 신시아의 캐리어를 끌었다.“배부른 임산부 혼자 짐 싸게 두는 게 말이 돼? 얼른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김지원의 재촉에 신시아는 신발을 갈아신고는 아이스크림을 든 채 뒤따라 내려갔다.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리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눈웃음을 지었다.“빈이랑 낮잠 한숨 자고 났더니 기운이 펄펄 나네. 이따 밥부터 먹으러 갈까?”김지원이 가방을 트렁크에 싣는 사이, 신시아는 새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어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아니, 빈이가 너 안 보이면 또 칭얼거릴걸.”“시터 이모님이 차 안에서 보고 계셔.”김지원이 뒷좌석을 힐끗 가리켰다.창문 너머로는 내부가 잘 안 보이지만 그럼에도 신시아는 어렴풋이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다 먹고 타. 우리 빈이 입맛 다시게 하지 말고.”김지원은 짐을 다 정리하고는 건네받은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신시아도 서둘러 먹어치웠다.“이따 어디 가?”“우리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식당이 하나 있는데 분위기가 꽤 괜찮더라. 거기 가보자.”김지원이 그녀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나중에 여기 떠나면 맛집들 다 그리워질 거야.”떠난다는 말에 신시아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우진은 여태껏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그녀가 한창 생각에 잠겨있을 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마침 정우진이었다.신시아는 아이스크림을 김지원에게 넘기며 ‘쉿’하는 시늉을 했다.“네, 대표님.”전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꼿꼿이 세웠다.수화기 너머로는 정적만이 흘렀다.몇 초를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신시아는 끊기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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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내려와 봐. 옆 상가에 아이스크림 가게 또 있거든. 가서 하나 더 사줄게. 대신 작은 거밖에 안 돼...”김지원이 다가와 신시아의 시야를 가리며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다만 그녀가 좀처럼 내리지 않자 아예 문을 열고 밖으로 끌어내렸다.신시아는 갑작스러운 힘에 밀려 차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시선은 김지원을 지나쳐 조금 전 그 장소에 고정되었다.아파트 구석 나무 그늘에 정우진이 서 있던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다.예전에 그가 이곳으로 자신을 데리러 왔던 때가 생각났다.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서리가 내려앉은 날,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그녀가 내려오길 기다리던 정우진의 모습.찰나의 환영처럼 그날의 잔상이 지금과 겹쳐 보였다.하지만 그늘에 서 있던 그 형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빽빽한 나뭇잎 때문에 드리워진 그림자만이 그 자리를 어둡게 메우고 있었다.정우진은 없었다. 그 어디에도...“어이, 뭘 그렇게 봐?”김지원이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이에 신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아무것도. 방금 뭐라 그랬어?”“상가 가서 아이스크림 사준다고.”김지원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무 쪽을 힐끗 보았다.“됐어. 배고파. 가서 밥이나 먹자.”신시아는 얼른 차에 타라는 듯 손짓하고는 먼저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들어갔다.김지원이 조수석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으로 향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다시 나무 그늘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꽤 오래된 듯 굵직한 나무, 그 뒤편으로 검은 옷자락이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차 문을 열려던 동작을 잠시 멈췄다.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함을 되찾고 차에 올라탔다.“가자.”그녀가 차를 몰아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갈 때, 백미러를 통해 나무 쪽을 다시 확인했다.코너를 돌 때, 나무 뒤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똑똑히 보였다.탄탄하고 다부진 체격의 정우진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한 손에는 검은 양복 상의를 들고 있었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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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정우진은 사무실 의자에 늘어지듯 앉아 있었다.단정했던 흰 셔츠는 어딘가 풀어 헤쳐져 헝클어진 상태였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천천히 타들어 갔다.재떨이에는 채 꺼지지 않은 꽁초들이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다.임정현이 들어오자 그는 담배 재를 털어내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말해봐.”“신 비서님은 지사에서 아주 잘 지내고 계십니다. 회사 임원들과도...”“본론만 해.”정우진이 언짢은 듯 말을 끊었다.“신 비서님, 임신했습니다. 22주 차입니다.”임정현은 숨을 몰아쉬며 단숨에 내뱉었다.사무실은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지경이었다.정우진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곧바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불을 붙이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라이터 불꽃이 눈동자에 비치며 이글거렸다.깊게 연기를 들이마신 남자가 더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누구 애야?”임정현은 고개를 숙인 채 눈만 굴렸다. 머릿속으론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당장 조사해! 누구 자식인지 확실히 밝혀내라고!”정우진의 이마에 핏대가 곤두섰다.문득 임정현이 무심한 듯 대꾸했다.“대표님, 신 비서님과는 이미 이혼하셨지 않습니까.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굳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우진의 매서운 눈빛이 화살처럼 꽂혔다.임정현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철저히 조사해야죠. 대표님의 오른팔이었던 분인데 임신이라는 큰일을 보고도 안 했다는 건 상사인 대표님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잠시 숨을 고르던 임정현은 이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정우진을 마주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사흘 안에 아이 아빠가 누군지 못 알아내면 임 비서도 백영 그룹에서 일할 생각 마!”임정현은 정우진을 오랫동안 보좌했지만 이렇게까지 앞뒤 안 가리고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대표님이 신 비서님 아이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사무실을 나오는 임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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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한채은은 앞뒤 가리지 않고 급하게 뛰쳐나오다 신시아를 그대로 들이받을 뻔했다.옆에 있던 김지원이 황급히 신시아를 감싸지 않았더라면 벽에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김지원이 신시아를 부축하며 버럭 화를 냈다.“사람 칠 뻔했잖아요! 무슨 켕기는 짓이라도 했어요?”“아니, 그게...”한채은은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병원에서 연락 온 줄 알고 놓칠까 봐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김지원의 부축으로 겨우 중심을 잡은 신시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벌써 입원까지 마쳤네요. 병원 측에선 뭐라던가요? 수술 일정은 언제로 잡혔대요?”연이어 쏟아지는 질문에 한채은의 당혹감은 더욱 짙어졌다.그녀는 임보나의 이불을 여며주며 딴청을 피웠다.“아직 몰라. 연락 기다리는 중이야. 무엇보다 돈이 문제라... 수술비가 예상보다 4천만 원은 더 들 것 같아.”“4천만 원이나요?”김지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요?”한채은이 이불을 덮어주자마자 임보나가 더운지 이불을 밀어내며 투덜거렸다.“더워요.”한채은은 아이를 흘겨보더니 말투까지 퉁명스럽게 변했다.“아이가 너무 어려서 수술 난도가 높고 위험하다잖아. 유명한 전문의를 따로 초빙해야 한다고 하니 어쩌겠어. 너희들이 살리겠다고 고집 피운 목숨이니 그만큼 몸값이 비싼 거지...”“됐어요, 그만해요!”김지원이 말을 싹둑 잘랐다.“원장님 돈 들어가는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고요!”한채은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한편 신시아는 병상 앞으로 다가가 임보나의 새까만 눈동자를 응시했다.아직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그래서인지 아이의 눈은 맑고 생기가 넘쳤다.한채은은 핑계를 대고 다시 자리를 비웠다. 왠지 모르게 수상한 행색이었다.신시아와 김지원은 임보나의 곁을 지키며 시간을 보냈다.“시아 언니, 지원 언니. 제 병 때문에 돈이 많이 든대요?”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김지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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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말도 안 되는 소리.”한채은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박했다.“시아 너 며칠 전에 상여금 받았잖아!”신시아의 상여금 내역까지 꿰고 있다니.“돈이야 없으면 또 벌면 그만이지만 목숨은 한 번 잃으면 끝이야!”한채은은 그녀를 다그치듯 쏘아붙였다.“지원이랑 둘이서 잘 생각해보고 어떻게든 4천만 원 구해서 당장 입금해.”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신시아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한채은의 뒷모습을 멍하니 쫓았다.다시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겨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향했다.“저기, 실례지만 임보나 환자 주치의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간호사가 차트를 확인하더니 대답했다.“류태연 선생님입니다.”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를 표한 뒤 류태연의 진료실로 향했다.경원 병원 최연소 의사 류태연은 경력도 짧고 집도한 수술 경험조차 전무했다.신시아는 그의 진료실 앞에 서서 이름 석 자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인터넷으로 검색했다.3년 전 의대를 졸업하고 줄곧 레지던트로만 근무한 이력이 떴다.정식 의사가 된 건 겨우 지난달, 정상적인 절차라면 수술을 집도하는 주치의가 될 수 없는 자격이었다.그런데 그가 임보나의 담당 의사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신시아 씨?”문득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신시아가 뒤를 돌았다.박도영이 의사 가운을 입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복도 모퉁이에 서 있었다.“박 선생님.”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당분간 병원에 안 나온다면서요?”“응급 상황이라 호출받고 나왔어요.”박도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류태연의 진료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그녀를 보며 남자가 질문을 건넸다.“제가 뭐 도와드릴 거 있나요?”신시아는 고개를 저으려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혹시 백혈병에 대해서 잘 아세요?”“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기본은 압니다. 궁금한 게 뭔가요?”박도영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덧붙였다.“마침 급한 일 하나 처리하고 시간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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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네? 뭐라고요?”박도영의 목소리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사무실 문을 반쯤 연 신시아는 복도의 소음 때문에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박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심히 가세요.”이에 신시아도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박도영은 분명 수상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었다.하지만 상황은 긴급했다. 경원을 떠나면 이 모든 관계는 단절될 터.박도영이 정우진과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박도영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신시아가 떠나자마자 이 남자는 정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검진 결과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어.”수화기 너머 정우진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있었고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그래, 알았어.”“너 혹시 경원 병원에 아는 사람 좀 있냐?”박도영의 물음에 정우진은 곧바로 대답했다.“임 비서한테 연락해. 그쪽에서 알아서 해 줄 거야.”그는 박도영의 의중을 묻지도 않았다.“그래, 알겠어. 임 비서라면 시아 씨가 말한 보육원 여자아이 이름도 알고 있을 테니 내가 일일이 캐물을 필요도 없겠네.”박도영이 뼈 있는 말을 던지자 전화기 너머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더 할 말 없지? 끊는다.”박도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전화를 끊을 기미는 없었다.그때 정우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대체 뭘 조사하려는 건데?”“시아 씨가 그동안 모아둔 돈을 전부 그 아이 치료비로 쓰고 있더라고. 근데 병원비가 도를 넘을 정도로 비싸. 병원 측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아서 말이야.”박도영은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어쨌거나 네 비서니까 선뜻 나서서 도와주려는 거야.”박도영은 사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해 국내에 인맥이 없었다.박씨 가문의 세력을 함부로 쓸 수도 없어 정우진의 도움을 빌리려던 참이었다.“능력이 안 되면 덤비지를 마.”정우진의 말투에 불쾌함이 역력했다.“지금 나보고 신시아 씨 일에서 손 떼라는 거야?”박도영이 되묻자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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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임정현은 결국 그 자리에서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꾹 참았다.30분 후, 다시 돌아온 임정현이 보고했다.“대표님, 확인했습니다. 임보나의 병력은 조작된 것입니다. 신 비서님이 병원으로 송금한 돈은 전부 보육원의 한채은 원장 계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원장이 아이를 볼모로 신 비서님의 돈을 갈취한 것 같습니다.”이 일은 상식적으로 보육원 원장이 할 짓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임정현이 한 마디 덧붙였다.“신 비서님 친구분 김지원 씨도 이미 탈탈 털린 상태입니다.”“현재 상황은 어때?”정우진의 미간이 좁혀졌다.그는 일전에 한채은을 만난 적이 있었다.그날은 주말이었다. 신시아가 휴일을 이용해 보육원 봉사를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차가 고장이 났다.다음 날 출근에 지장이 생길까 염려한 그녀가 정우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었다.결혼 후 신시아가 사적인 일로 먼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정우진이 차를 몰고 데리러 갔을 때, 한채은이 우산을 받쳐 들고 신시아를 배웅하러 나왔다.빗줄기가 워낙 거세 신시아의 바지는 흠뻑 젖어 있었다. 곧고 가는 두 다리에 옷감이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던 기억이 났다.당시 그는 신시아에게만 신경이 쏠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한채은이 오랫동안 자신을 훑어보고 있었다는 것을.노골적인 그 시선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현재 보육원 원장은 수술비로 4천만 원을 더 요구하며 신 비서님과 김지원 씨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 비서님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입금을 차일피일 미루며 대치 중입니다.”정우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가 매달 보육원에 돈을 송금하며 아이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흡혈귀처럼 굴어대는 원장은 진심으로 역겨웠다.몇 번인가 신시아가 전화 받는 걸 엿들었는데 대부분 제때 돈을 보내지 않았다고 독촉하는 내용이었다.“계속 주시해. 어떤 동향이든 즉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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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김지원이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신시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빛나는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신시아는 그녀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줄 알았다.결과는 예상 밖이었지만...“만약 이 돈을 보나 병원비로 안 써도 되는 거면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남은 돈으로 병원 가서 네 머리부터 검사해 봐, 지원아.”신시아는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혜로운’ 눈빛을 한 번만 더 마주했다가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았으니까.한편 김지원은 지금 운전 중이라 머리가 잠시 이상해져서 신시아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거로 여겼다.“뭔데? 빨리 말해봐...”오는 길 내내 졸랐지만 신시아는 입꾹닫 모드였다.아직은 단순한 추측일 뿐이니까.한채은이라는 사람은 참 복잡했다.성격은 뾰족하고 모나서 정이 안 가지만 그동안 보육원을 위해 쏟은 헌신과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행여 오해라도 사서 그녀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밤이 늦도록 박도영에게서는 답장이 없었다.초조해진 신시아가 먼저 카톡을 보냈더니 곧장 답장이 날아왔다.[실은 제가 이제 막 경원에 돌아와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우진이가 돕겠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직접 연락해 보세요.]신시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최근 인사 발령 문제 외에는 정우진과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매일 얼굴을 보던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가 아니게 되니 두 사람의 거리는 훌쩍 멀어졌다.직접 전화해 묻는 것이 영 껄끄러웠지만,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이내 무언가 분주한 듯한 정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말해.”“대표님, 보나 일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박도영 씨한테 부탁한 건으로요.”신시아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임 비서가 알아본 게 있으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회사 나와.”정우진은 무관심한 말투로 덤덤하게 말했다.일분일초가 바쁜 사람에게 고작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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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똑바로 설명해봐!”오랜 세월 형제처럼 지낸 사이라 정우진이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박도영은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아니, 난 그저 네가 은유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정우진은 기가 막혀 헛웃음이 터졌다.“그럼 이제 알겠니?”박도영이 태연히 답했다.“응, 알았어.”“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 내 손으로 아작내버릴 테니까!”정우진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거친 욕설로도 가슴속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휴대폰 화면이 꺼지자 휴게실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번져오는 네온사인 불빛만이 실내의 윤곽을 겨우 짐작게 했다.그는 밤새 뒤척이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날이 채 밝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 사무실로 출근한 남자, 실은 신시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오전 8시쯤, 정우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권미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저번에 말한 일은 생각 다 했어?”어르신이 말한 것은 바로 하선재와 신시아를 엮어보겠다는 이야기였다.정우진은 차갑게 답했다.“시아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곧이어 남자가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리고 이제 제가 관여할 일도 아니에요.”“분명 알겠다고 대답했으면서 왜 갑자기 말을 바꿔?”권미희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됐다! 그 일은 네 아버지랑 직접 얘기할 거야.”정우진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권미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대체 신시아와 하선재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걸까?그는 신시아의 인사 발령 계획표를 꺼내 들었는데 경원에서 멀어도 너무 먼 지사들이 우선순위에 있었다.이제 그녀와 진지하게 마주 앉아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된 듯싶었다.임신 사실을 숨긴 이유부터 퇴사하려던 진짜 목적, 그리고 지금 굳이 경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려는 이유까지.거기에 지난 연말, 김지원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 양 사진을 찍어 올린 의도는 뭘까?앞뒤가 맞지 않는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전 내내 정우진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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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왠지 모르게 정우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시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사무실 앞까지 다가가 임정현에게 낮게 속삭였다.“임 비서님, 물건 주세요.”“대표님! 신 비서님 오셨습니다!”임정현도 마음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사무실로 다가오는 신시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역시 헐렁한 옷 위로도 아랫배가 미세하게 불러와 있었다.눈썰미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한 줄도 모르겠지만 그는 단번에 알아봤다.이 진흙탕 싸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임정현은 다짜고짜 신시아를 대표이사실로 밀어 넣은 뒤, 통화 중인 정우진의 말을 큰 소리로 끊어버렸다.그러고는 신시아를 놓아주기 바쁘게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활짝 열렸던 육중한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혔다.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신시아는 대응할 틈도 없었다.정신을 차렸을 땐, 정우진이 바로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마치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보려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 내렸다.특히 볼록한 아랫배에 시선이 멈췄을 때는 그 깊이가 한층 더 서늘해졌다.“대표님, 업무 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신시아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정우진을 마주하기 싫은 그녀의 본능적인 거부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정우진은 아무 대답 없이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점점 더 깊고 무겁게 가라앉았다.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낱낱이 파헤쳐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끄집어낼 기세였다.신시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임 비서님 뵈러 온 겁니다. 방해할 생각 없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그녀는 황급히 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거기 서.”남자가 전화를 끊자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상대방의 끈질긴 목소리가 일순간 끊겼다.정우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 나왔다.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남자는 다시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언뜻 보기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신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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