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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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규나는 곧바로 사람을 불러 구조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강빈의 여동생을 쓰레기 수거함에 버린 채, 혼자 차 안으로 들어가 피해자인 척하며 구조를 기다렸다.그 탓에 강빈의 부모는 구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때를 놓쳤고, 여동생에게 남아 있던 생존 가능성마저 사라졌다.‘그 가짜 강규나...!’앞뒤 사정을 모두 맞춰 보자, 강빈의 가슴속에서는 규나를 향한 전에 없던 증오가 치밀었다.‘세 사람의 목숨이야.’‘우리 집안을 산산조각 낸 장본인이 바로 그 가짜 강규나였어!’강빈은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가에 가느다란 핏자국이 배어 나왔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20년이 흐르는 동안 이 일대도 제법 개발이 되어 상가와 주택들도 들어섰다. 예전처럼 인적조차 드문 황량한 곳은 아니었다.다행히 한밤중이라 대부분 잠든 시각이었다. 최고급 세단 두 대에서 남자 둘과 건장한 경호원들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적잖은 소란이 벌어졌을 터였다.두 사람은 사방을 훑으며 20년 전 쓰레기 수거함이 어디쯤 있었는지, 강빈의 여동생이 어느 곳에 버려졌을지 머릿속으로 되짚어 봤다.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자리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세월은 잔인할 만큼 많은 것을 지워버렸다.강빈도 이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직접 와 보지 않으면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강빈은 넋이 빠진 채 돌아서며 목에 걸린 옥 펜던트를 계속 문질렀다. 살갗 안으로 파고들 만큼 세게 쥔 그 물건은 부모가 남매에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강빈의 것은 용 문양, 여동생의 것은 봉황 문양이었다.서로 한 쌍을 이루는 문양처럼 남매도 평생 무사하고 복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었다.그 바람이 이런 결말을 맞을 줄은 누구도 몰랐다....진후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자, 박효주는 결국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박효주가 단호하게 지시한 탓에, 해고될 각오까지 한 비서가 진후의 집무실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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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대표님 명의로 게시물을 하나 올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모님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공개하는 겁니다. 사진이나 영상까지 있으면 더 좋고요.”그 말을 들은 진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진후는 무심코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내리다가 손끝을 멈췄다.주예와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조차 하나도 없었다. 둘이 어디를 놀러 간 적도 없었고, 제대로 된 데이트라고 할 만한 기억조차 없었다.“다음.” 진후가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과 다정한 모습을 몇 차례 공개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SNS에서 서로 댓글을 주고받거나 게시물에 반응을 남기는 식으로요.” 진후의 미간이 다시 일그러졌다. 더 씁쓸한 건 주예가 SNS 계정을 쓰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서로 팔로우하거나 소통한 적이 있을 리도 없었다.“다음.”“대표님, 아예 법무팀 명의로 내용증명과 법적 대응 통지를 일괄 발송하는 건 어떻습니까?” “말을 퍼뜨린 사람한테 하나씩 전부 보내는 겁니다. 몇 번만 강하게 나가면 곧 아무도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겁니다.”“나가.” 진후가 눈을 감았다.결국 진후가 택한 건 첫 번째 방안이었다. 남아 있는 사진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찍으면 되니까.방향이 정해지자, 직원들은 곧바로 하나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북적이던 공간이 금세 조용해졌다. 연이어 터진 일들을 겪고 나자, 진후는 이미 잠기운이 완전히 달아난 뒤였다.규나와 관련된 일은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진실이 잔혹할 만큼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 자책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그제야 진후는 지난날 자신이 주예를 너무 무심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번 인수합병만 끝나면 제대로 보상해 줘야겠어.’...주예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화면에 뜬 이름은 진후였다. 주예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상간녀 논란을 수습하려면 한진후도 뭔가 움직여야겠지.’[나야.]전화 너머 진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피로가 묻어났다. [온라인에 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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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그럼 해신그룹 인수합병에 절대 영향이 가면 안 되겠네!”주예는 순순히 맞장구를 치면서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슬쩍 떠봤다. “지금 인수합병은 거의 끝난 거야?”[응. 마지막 계약 서명만 남았어. 별일 없으면 이틀 안에 끝나.]진후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주예는 모든 일을 해신그룹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주고 있었다. 예전엔 자신이 이런 주예를 왜 그렇게까지 외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주예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번 주만 지나면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제발 아무 일 없이 끝났으면 좋겠네.’그래도 남에게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가장 확실한 건 스스로 챙기는 일이었다.[그럼 본가에서 만나는 건 어때? 그 뒤에는 당신이 가자는 데로 가서 사진 찍을게.] 주예가 제안했다. “나도 할머니 뵙고 싶어.”명분까지 충분한 제안이라 진후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까?]“아니, 내가 알아서 갈게.” 전화를 끊은 주예는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밤 한숨도 못 잔 티를 가리려고 메이크업을 좀 짙게 했다.높게 묶은 포니테일에 한쪽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입으니, 매끈한 목선이 한층 길고 우아해 보였다.건물 아래에는 전협의 차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한씨 집안 본가에 도착했을 때, 진후의 마이바흐는 이미 앞마당에 주차되어 있었다.주예는 이마 옆으로 흘러내린 잔머리를 정리하며 저택을 올려다봤다. 예전과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한때는 사람을 삼켜 버릴 것처럼 숨 막히던 곳이 이제는 그저 평범한 저택으로 보였다.거실에 들어서니 진후가 박효주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인기척을 들은 진후는 주예를 보자 눈빛이 환해지면서 먼저 다가왔다. 반면 박효주는 자리에 앉은 채 못마땅하다는 듯이 콧소리를 냈다.“왔어?” 진후가 가까이 다가오며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주예의 얼굴을 바라봤다.“응.” 주예의 반응은 담담했다.“할머니는 위층에서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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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그럼 다음에 둘이 같이 다녀와도 괜찮겠네요. 기분 전환도 될 테고요.”진후는 그런 쪽에는 아는 게 없어서 더 묻지 않았다.마침 입구에는 미리 부른 촬영팀이 도착해 있었다. 진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거실에는 주예와 박효주만 남았다. 억지로 붙들고 있던 평화도 곧바로 깨졌다.“오늘은 이혼합의서 받으러 왔어요.” 주예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아직 때도 안 됐는데 뭘 받아?”박효주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진후 앞에서 일부러 이 일을 떠올리게 만든 주예의 행동이 여전히 괘씸했다.“인수합병 서명도 이틀 안에 끝난다면서요. 하루 먼저 받든 늦게 받든 무슨 차이가 있어요? 계약 서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밖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내가 뭘 믿고?”“지금은 저를 믿는 수밖에 없으실 것 같은데요. 잠시 후에는 저랑 진후가 다정한 척 사진도 찍어야 하잖아요.” “이혼합의서를 안 주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는 저도 장담 못 해요.”주예는 여유롭게 일어나 치맛자락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너...” 박효주는 말문이 막혔다. “아주 대단해졌네. 예전에는 네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 왜 몰랐지?”촬영팀이 벌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주예는 태연하기만 했다.박효주가 한마디 더 하려던 때 본가의 집사가 다가왔다. “회장님께서 깨셨습니다. 작은 사모님을 위층으로 올려 보내라고 하십니다.”박효주가 따라가려고 했지만 집사가 자연스럽게 그 앞을 막았다. “회장님께서는 작은 사모님만 찾으셨어요. 조용한 걸 좋아하시니 큰 사모님은 아래에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큰 사모님이 원하는 물건을 저한테 주시면 제가 방으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박효주는 권수영이 직접 나서서 주예를 단단히 혼내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반기면서 급히 방에서 이혼합의서를 꺼내 가사도우미에게 건넸다....권수영의 방.“왔니?” 권수영이 침대 머리맡에 기댄 채 눈을 들어 주예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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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진후는 고개를 돌린 채 상체를 조금 숙였다. 옆에 앉아 있던 주예는 진후가 가까워질수록 몸이 서서히 굳어졌다.진후의 시선이 바로 눈앞의 주예에게 머물렀다. 주예의 피부는 모공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매끄러웠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진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여보.” 진후가 입술 사이로 나직하게 이름을 흘렸다.주예는 몸이 굳어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진후 너머를 향했다. 정원 한쪽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머릿속에는 가방 속 이혼합의서에 찍힌 도장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서 도무지 내려오지 않았다.사진작가가 신이 나서 셔터를 눌렀다. “좋습니다! 바로 그 눈빛이에요! 그 미소! 정말 행복해 보여요!”두 번째 촬영 장소는 경울시 동물원으로 정해졌다.이곳을 추천한 사람은 비서였다.홍보팀이 진후에게 주예가 특별히 가고 싶어 했던 곳이 있는지 물었을 때, 진후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진후가 주예를 가장 자주 본 곳은 집이었다. 늘 뭔가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뿐이었다. 두 사람이 살던 집이 지난 3년 동안 주예의 거의 전부였고, 진후가 알고 있는 주예의 세계 역시 거기까지였다.“한 대표님, 3년 전에 사모님께서 제게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표님의 주말 일정을 물으셨는데, 경울시 동물원 이야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억대 연봉을 받는 수석비서답게 꼭 필요할 때 기억을 꺼내 줬다.그제야 진후도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주예가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은 적이 있었다.“여보,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우리 동물원 갈래?”“나중에 보자.”진후는 그때 대수롭지 않게 답한 뒤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주예는 그 뒤에 비서에게까지 연락했던 모양이었다.이번에 진후는 일부러 동물원으로 정했다. ‘주예도 분명 좋아하겠지.’ 차 안에 앉은 진후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마치 어린 시절 중요한 약속을 앞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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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진후는 자연스럽게 주예의 손을 잡았다.주예의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손을 감싸 쥐자, 진후의 손바닥에도 서늘한 기운이 그대로 전해졌다.두 사람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처음에는 주예도 온몸으로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우리 안에서 통통한 몸을 움직이는 라쿤을 보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옆에 귀찮은 인간만 없는 셈 치면...’‘오늘은 그냥 바람 쐬러 왔다고 생각해도 괜찮겠네.’주예의 관심은 차츰 동물들에게로 옮겨 갔다. 라쿤, 기린, 황금들창코원숭이를 차례로 구경하다 보니 생각보다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진후는 걷는 내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주예를 바라봤다. 눈길은 부드럽고 한결같았다. 진후에게 지금의 주예는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사진작가도 어느새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에 빠져든 듯 목소리를 낮췄고, 조용히 뒤를 따르며 촬영했다.일정이 끝나자 사진작가는 카메라에 담긴 결과물을 넘겨보면서 연신 감탄했다.“두 분은 정말 잘 어울리세요. 누가 봐도 천생연분인데, 밖에서 도는 소문이 말도 안 된다는 게 사진만 봐도 느껴집니다.” 사진작가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촬영 끝났으면 난 갈게.” 주예는 방금 전까지의 미소를 말끔히 거두고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빼냈다.“오늘 밤... 안 돌아가면 안 돼?” 진후가 조심스럽게 떠봤다.“응? 뭐라고?”주예는 딴생각을 하는 듯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더니, 진후가 잡았던 손가락을 하나하나 아주 꼼꼼하게 닦고 있었다.진후는 방금까지 남아 있던 따뜻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주예의 행동을 보자 가슴속을 채우던 감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지금 뭐 하는 거야?”“소독. 당신도 쓸래?” 주예는 물티슈 한 장을 뽑아 진후에게 내밀었다. “위생 관리 중요하잖아. 동물원 같은 공공장소는 여기저기 사람들 손이 닿는 곳도 많거든. 아까 난간도 만졌고, 다른 지저분한 것도 만졌으니까.”진후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는 아직 주예의 차가운 손이 닿았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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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응. 고마워.” 주예는 장연을 꼭 안아 줬다....다음 날 아침.주예는 전날 해가 지기도 전에 돌아왔지만 너무 지쳐 있었다. 정신도 몸도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라, 내리 10시간이 넘도록 푹 자고 나서야 겨우 기운을 되찾았다.10시간이 넘는 동안 세상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진후의 홍보팀은 밤새 움직였다. 정성스럽게 보정한 사진과 영상이 진후의 SNS 계정에 올라오자 온라인 전체가 들썩거렸다.문구는 짧았다. [한진후 대표 부부.]사진 속 두 사람은 눈에 띄게 잘 어울렸다. 주예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옆에서 주예를 바라보는 진후의 눈길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다정했다. 두 사람의 외모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게다가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출한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진후가 주예의 손을 잡고 동물원을 걷는 모습은 평범한 연인들도 흔히 하는 데이트처럼 보여서 더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세상에, 재벌가 부부도 동물원 데이트를 해? 너무 현실적이라 더 설렌다. 둘이 진짜 잘 어울려!][저 눈빛 보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사람 나와 봐. 진짜 꿀 떨어지잖아!][...]여론이 완전히 뒤집힌 걸 본 하늘은 화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던졌다.‘강규나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이렇게 판까지 깔아 줬는데 한마디도 못 해?’‘한진후도 왜 저래? 20년 내내 강규나밖에 모르던 인간이 갑자기 정신이라도 차린 거야?’‘이제야 임주예가 눈에 들어오나?’그래도 하늘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관없어. 이건 임주예 기분 좀 더럽히려고 준비한 첫 번째 판일 뿐이니까.’아직 다른 준비도 남아 있었다. ‘3차 경연에선 무조건 떨어뜨릴 거야.’주예와 정재의 관계도 하늘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이미 결혼한 여자한테 심정재도 무슨 관심이 있겠어?’...심명그룹 최상층. 정재의 표정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불과 30분 사이에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간 임원 세 명이 연달아 눈물을 보이며 나왔다.평소 업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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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주예가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직접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신가요?”[주예야, 할 얘기가 하나 있는데 직접 만나서 해야 할 것 같구나. 괜찮으면 잠깐 볼 수 있을까?]전화 너머 고홍근의 목소리는 한없이 인자했다.“네, 괜찮아요.” 주예는 하늘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고홍근에게는 이상하리만큼 거부감이 덜했다.마침 새 차도 마련한 터라, 주예는 전협에게 부탁해서 고홍근이 말한 프라이빗 멤버스 라운지로 갔다.입구에는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안내를 받아 별실로 들어가니 고홍근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주예를 본 고홍근은 은장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짧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고홍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네... 네 어머니 이름이 고경란이었지. 경란이도 ‘고’ 씨고, 나도 ‘고’ 씨다.” 고홍근이 끝까지 다 말하지 않았지만 주예가 뜻을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주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주예는 어머니 고경란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지난번 고씨 집안 본가에서도 정재가 고홍근 회장이 주예 부모님의 일에 꽤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을 슬쩍 흘린 적이 있었다.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여러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고홍근이 직접 찾아온 지금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다만 고씨 집안이 오랜 세월 고경란을 외면했다는 사실에는 분명 원망이 남아 있었다.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주예는 이미 혼자 사는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그런 주예 앞에 지금 고홍근이 서 있었다.주예는 잠시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고, 저는 저예요. 저는 ‘임’ 씨예요.”고홍근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런데 눈에는 오히려 더 짙은 만족과 감탄이 떠올랐다.고씨 집안 같은 재력가 집안을 눈앞에 두고도 주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주예의 성정을 더 믿을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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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그래도... 네가 남아 있구나. 내게 만회할 기회를 줄 수 있겠니?” 지금의 고홍근은 거대한 집안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후회에 잠긴 노인처럼 보였다.“제가 어머니 대신 결정할 수는 없어요. 저는 입양된 아이였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주예는 최대한 감정을 누른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우리 집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앞으로는 내 외손녀로 살게 돼. 누구도 네 자격을 문제 삼지 못하게 할 거야.” 고홍근은 간절한 눈으로 주예를 바라봤다. “돌아오겠다고 하면 오늘이라도 바로 준비하마.”주예가 흔들리지 않자 고홍근은 더 큰 조건을 내밀었다. “주예야, 우리 집안으로 들어오면 앞으로 누구도 널 얕잡아 보지 못할 거다.” “지금 한씨 집안의 그 녀석과 결혼했다지? 거기서 많이 힘들었던 거 아니냐? 네가 고씨 집안 사람이 되면 한씨 집안도 다시는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해.”“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주예는 여전히 담담했다.“아, 한진후는 곧 전남편이 될 거예요.” 주예가 덧붙였다.고홍근이 멈칫했다. “전남편? 이혼하려는 거냐?”“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주예는 가볍게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저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갑자기 알게 된 게 너무 많아서 쉽게 결정할 수가 없어요.”“그래. 알겠다.” 고홍근은 아쉬워 보였지만 주예를 더 몰아붙이지는 않았다.고홍근과 헤어진 뒤 주예는 부모님이 생전에 살던 아파트로 향했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이곳을 제대로 정리한 적이 없었다.이혼 문제와 경연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주예는 아직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집에도 자주 오지 않았다. 안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주예는 오래된 가죽 트렁크 하나를 꺼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어머니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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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주예는 종잇조각을 사진으로 찍어서 장연에게 보냈다. [이거 좀 봐 줘. 뭔지 알아?]장연의 답은 금방 왔다. [신고 접수확인서 일부 같은데. 누군가 신고했다가 나중에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경찰에서 형사사건으로 진행하지 않고 민사 분쟁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있어.][근데 이 양식은 오래전에 쓰던 거야. 어디서 난 거야? 다른 내용도 남아 있으면 보내 봐. 내가 같이 봐 줄게.]주예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별일 아니야. 우연히 본 거야. 고마워.]주예는 핸드폰을 들고 고홍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홍근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주예야, 벌써 마음 정한 거냐?]“회장님, 예전에 엄마가 고씨 집안을 떠난 진짜 이유가 뭐였어요? 이번에는 사실대로 듣고 싶어요.”고홍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렵게 입을 연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묻어났다. [그 얘기는 아까 하지 않았니. 정략결혼 때문이었다고.]“엄마가 남긴 일기장을 찾았어요. 그때 일을 전부 적어 두셨더라고요.” 사실 일기에는 관련된 내용이 한 줄도 없었다. 주예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오랫동안 사업가로 살아온 고홍근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예의 말을 듣고도 태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엄마 일기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다는 거냐?]“엄마의 오빠들... 그리고 경찰서요.” 주예는 슬쩍 두 단어만 던졌다. 완전히 승부수였다.전화기 너머가 숨이 막힐 만큼 조용해졌다.주예는 바로 깨달았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휴... 결국 알게 됐구나.]고홍근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듯했다.하지만 고홍근은 당시의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주예도 더 캐묻지 않았다. 여기서 밀어붙였다가는 거짓말이 들통날 수 있었다.고홍근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이 많이 잔인하다는 건 안다. 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이해해. 그래도 내가 널 가족으로 다시 받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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