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Bab 111 - Bab 120

197 Bab

제111화

진후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주예가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입꼬리를 비틀며 자신을 받아치는 모습이 이상하게 귀엽게 보였다.진후는 고개를 저으면서 터무니없는 생각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딱딱하게 말했다. “알았어. 이미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 괜한 문제는 만들지 말고.”...그날은 주예의 작업이 비교적 일찍 끝났다. 작품의 전체 형태가 거의 잡힌 덕분에 며칠 전보다 여유가 생겼다.오른손도 대부분 회복됐다. 오래 쓰거나 무거운 것만 들지 않으면, 겉으로는 다친 흔적이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주예가 촬영장 출입문을 나섰을 때 진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주예를 본 진후의 눈이 밝아졌다. 성큼 다가온 진후가 말했다. “끝났어? 오늘 저녁 같이 먹자.”주예는 황당했다. ‘한씨 가문 후계자가 이렇게 한가해?’“안 가. 나 할 일 있어.”“이렇게 오래 화냈으면 이제 풀릴 때도 됐잖아. 봐, 나도 당신이 전국미술콩쿠르 나가는 거 막지 않고 있고, 밖에서 이렇게 오래 지내는 것도 넘어가고 있잖아.” 진후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요즘은 이혼하자는 말도 안 하고.”‘막지 않는다.’ ‘넘어가 준다.’... 말 하나하나가 정확히 주예의 신경을 긁었다.게다가 박효주는 이혼합의서에 이미 서명이 끝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진후에게 말하지 않았다.주예는 묘한 눈길로 진후를 바라봤다.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후 주변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진후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까지도 그랬다.“안 간다고 했잖아. 이제 최종 심사 얼마 안 남았어. 저녁에도 준비할 게 있어.” 진후와 더 오래 실랑이하고 싶지 않은 주예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몸을 돌렸다.“그럼 내가 데려다주기라도 할게.” 진후가 다시 붙잡았다.“됐어. 여기까지 해.” 주예가 선을 긋자 진후도 더는 밀어붙이기 어려웠다.예전이라면 주예가 이렇게 거절했다면, 진후는 기분이 상해서 바로 자리를 떴을 것이다.그런데 요즘 진후는 이상할 만큼 주예에게 오래 참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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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강빈은 전화를 걸자마자 진후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뭔가를 직접 확인했을 가능성이 컸다.“형님, 저도 규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짐작이 사실이라면, 형님만 아무것도 모른 채 계시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진후는 강빈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한층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강빈이 말했다. [규나랑 이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내 곁에 없었던 건 3년 전 해외에 나갔을 때뿐이야.][따로 확인해 봤어. 그때도 분명 규나 본인이었어. 중간에 누군가로 바뀌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강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갔다. [네 추측이 맞다면 가능한 건 하나뿐이야. 규나가 다섯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을 무렵 바뀌었다는 것...]진후는 침묵했다. 자신도 가장 나쁜 경우로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맞아떨어진 셈이었다.강빈은 다시 말했다. [혹시 내가 괜히 규나를 의심했다가 상처라도 줄까 봐 유전자 검사까지 했어. 그런데 결과가... 나랑 규나는 친남매가 아니었어.]마지막 말을 꺼낼 때 강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강빈은 오랫동안 규나에게 오빠이면서도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 왔다. 이제 와서 친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진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규나에게 말씀하실 겁니까?”강빈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복잡한 감정이 더 컸다. 진후도 강빈이 규나에게 쌓아 온 정까지 버린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말은 해야지. 그때 사고 현장에 있었던 아이는 규나뿐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내 친동생은 어디로 간 건지 반드시 알아야 해.] [다만 네가 먼저 말하지는 마. 내가 어떻게 이야기할지 좀 생각해 볼게...]강빈은 지친 목소리로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끝낸 강빈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친동생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바뀐 거라면, 다섯 살짜리 아이 혼자 이런 일을 꾸밀 수는 없었다.오히려 당시의 규나도 아무것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그 생각이 들자 강빈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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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임주예...!” 진후는 자신의 의심이 맞았다고 확신했다.그래서 주예가 그렇게 단호하게 이혼을 요구했던 거였다. 진후가 최근 자존심까지 접어 가며 관계를 돌려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야!’분노가 이성을 완전히 밀어냈다.진후는 손을 들어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안에서 들리던 소리가 뚝 끊어졌다. 뒤이어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났다.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남자가 문을 여는 걸 본 진후는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진후는 그대로 굳어졌다.짙은 회색 셔츠 차림의 정재는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둔 상태였다. 불쾌함이 어린 표정으로 진후를 내려다보며, 정재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한 대표님, 이 늦은 시간에 제 집 앞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 이유가 뭡니까?”진후는 말을 더듬었다. “심... 심 회장님? 회장님께서 왜 여기 계십니까?”정재가 차갑게 웃었다. “제 집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합니까?”진후는 고개를 들어 문패를 확인했다. 1802호였다.정재의 어깨 너머로 안을 보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바닥에 떨어진 선물 상자를 줍고 있었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성숙한 분위기가 짙은 여자였다.진후는 그제야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민망함에 이 자리에서 통째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바로 그때 옆집 1801호 문도 열렸다. 복도에서 소리가 나자, 무슨 일인지 보려고 나온 주예는 예상 밖의 광경과 마주했다.주예는 부드러운 분홍색 잠옷 차림이었다. 머리카락 끝에 물기가 남아 있는 걸 보니 방금 씻고 나온 게 분명했다.조금 전 관리 데스크의 인터폰을 받지 못한 이유도 자연스럽게 설명됐다.주예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정재는 주예가 입은 잠옷을 알아보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날 정재가 준비해 둔 잠옷이었다. 가라앉아 있던 눈빛 안쪽에 뜨거운 기색이 번졌다.진후는 주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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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주예가 현관문을 거의 닫으려고 하는데, 정재의 손이 문틈으로 들어오며 문을 막았다. 동시에 정재가 자기 집 안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물건 전달했으면 이제 가.”여자는 가방을 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어머, 볼일 끝났다고 바로 보내네. 진짜 매정하다.”정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네 남편한테 전화한다.”“그건 안 돼! 나 P국에서 몰래 빠져나온 거라 며칠만 조용히 쉬고 싶단 말이야.” 여자는 주예를 향해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넘겼다. “예쁜 아가씨, 다음에 봐.”여자가 떠나자 정재는 주예의 현관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뒤로 손을 뻗어 문까지 자연스럽게 닫았다.정재가 몸을 낮췄다. 코끝은 주예의 머리카락에 닿을 듯 가까웠고 목소리에는 짓궂은 기색이 묻어 있었다.“방금 나 모른다고 한 거... 질투해서 그런 거야?”정재가 갑자기 거리를 좁히자, 주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조금 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기에 주예도 자신이 오해했다는 건 대략 알 수 있었다. 귀 뒤가 금세 붉어졌지만 끝까지 우겼다. “무슨 질투? 아니거든. 전혀 아니야!”정재는 잔뜩 굳은 주예의 얼굴을 보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이어서 일부러 더 놀렸다.“너 남편 엄청 사랑한다며. 어렵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왜 안 붙잡았어?”“내 집안일이야. 그쪽은 좀 신경 꺼.”계속 놀림을 받자 주예도 오기가 생겼다. 눈을 굴리던 주예가 곧바로 받아쳤다. “그래? 그럼 지금 내 남편 다시 부를까? 둘이 아주 달콤한 밤을 보내게.”주예는 ‘달콤한’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을 주면서 말했다.“너...!” 정재는 말문이 막히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주예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조용히 말했다. “임주예, 넌 진짜 태어날 때부터 나 괴롭히려고 나온 것 같아.”어릴 때도 주예가 사고를 치면 정재가 묵묵히 뒤처리를 맡았다. 다 컸는데도 여전히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러다 언젠가는 정말 주예 때문에 속병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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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고마워.” 주예는 환하게 웃었다. 다시 만난 뒤 주예가 이렇게 꾸밈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준 건 처음이었다. 정재는 그 웃음을 보느라 잠깐 넋을 잃었다.“내 집에도 더 있어. 아까 막 도착했어. 이따 전부 가져다줄게.” 정재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데 정신이 팔리는 기분이 어떤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두 시간이 지나서야 주예는 만족스럽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정재는 여전히 옆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주예가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잡지 한 권을 들고 있었다.“아, 아직 있었어?” 주예는 조금 민망해졌다. 귀한 고서화를 보면 주변의 모든 걸 잊어버릴 만큼 빠져드는 버릇이 있었다.“익숙해. 너 어릴 때도 늘 이랬잖아. 기다리는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정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밴 부드러움까지 숨기지는 못했다.어릴 때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수많은 오후를 함께 보냈다....본선 최종 경연 당일, 현장 전체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완성작이 미리 노출되는 걸 막고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여섯째 날부터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참가자들의 최종 작품을 철저히 가렸다. 대신 팀원들 사이의 대화와 작업 과정이 주로 담겼다.덕분에 시청자들의 기대는 최고조로 올라 있었다.현장.심명그룹은 가장 큰 후원사였기에 정재에게는 당연히 VIP 좌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술 분야는 심명그룹 전체 사업에서 작은 비중에 불과해서, 심씨 가문의 총수인 정재가 직접 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평소라면 가문에서 다른 임원이나 친척 중 한 명이 참석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재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진후도 현장에 왔다. 앞서 적지 않은 후원금을 냈던 덕분에 제작진의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진후는 꼿꼿하게 앉아서 무대 뒤 출입구 쪽만 뚫어지게 바라봤다.고홍근까지 나타나자 주변이 더 술렁였다. 고씨 가문의 고홍그룹은 오랫동안 예술 분야를 이끌어 온 기업이었다. 다들은 고홍근이 하늘을 보러 왔다고 생각했고,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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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그제야 소민이 모습을 드러냈다.소민은 애초부터 자신이 ‘구원자’가 되어 돌아올 생각이었다.소민이 예상하기로는 팀의 작업은 거의 실패 직전까지 갔을 터였다.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고하늘에게 받은 홀로그램 장비를 꺼내 놓으면, 상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꼴찌는 면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그러면 그동안 자신에게 불만을 품었던 팀원들도 결국 고마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선 소민은 거의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꽃이 온몸으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소민이 들어오자, 다른 사람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소민은 팀원들의 그런 반응을 못 본 척 넘겨야 했다.곧 무대 심사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지금은 갈등을 더 키울 때가 아니라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다....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됐다.심사위원 세 명이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왼쪽에는 오래전부터 예술계에서 이름을 알린 원로 작가 엄소연이 자리했다.가운데에는 전국예술진흥원 본부장 장준이 앉았다.오른쪽에는 심명그룹의 국내 예술투자를 총괄하는 심중성이 자리했다.발표 순서는 다시 추첨으로 정했다. 주예가 속한 팀은 여덟 번째를 뽑았다.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팀은 고하늘의 팀이었다. 이들이 받은 주제는 ‘전성기’였다.무대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이국적인 선율이 흘러나왔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하늘의 팀이 제작한 거대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그램 기술까지 더해져 천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시대가 눈앞에 펼쳐졌다.관객들은 음악과 영상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시대와 시간이 교차하는 흐름을 따라갔다.음악이 끝나면서 하늘 팀의 발표도 마무리됐다.객석에서는 우레와도 같은 박수가 터졌다. 심사위원들도 서로 조용히 의견을 나누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투표가 끝난 뒤 하늘의 팀은 9.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작품에 감동해서 눈시울을 붉힌 관객까지 있었다.거의 만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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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꽃술도 떨어져서 공중에서 사라졌다. 세 번째 층인 꽃받침이 드러났고, 그곳에는 잔디밭에서 연을 날리는 소년이 그려져 있었다.이어 꽃받침마저 벗겨졌다.네 번째 층.다섯 번째 층.여섯 번째 층까지...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차례로 이어졌다. 여섯 번째 층의 ‘죽음’이 모두 타 버리자, 무대에는 새까만 벽면만 남았다.무대 전체가 꼬박 1분 동안 어둠에 잠겼다. 객석도 숨을 죽였다. 누구도 쉽게 감상을 끊어 내지 못했다.하늘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1위가 흔들릴 수 있었다. 이제 바랄 수 있는 건 주예 팀의 점수가 자신들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낮게 나오는 것뿐이었다.처음으로 계획 밖의 변수가 생기자, 하늘은 거센 위기감을 느꼈다. 소민을 노려보며 속으로 거세게 욕을 했다. ‘정말 쓸모도 없지.’모두가 작품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주예가 다시 손짓을 했다. 전시장 천장에 설치돼 있던 차광판 하나가 열리면서, 유리 너머로 들어온 햇빛이 어두운 벽면을 정확히 비췄다.빛을 받은 벽이 서서히 환해졌다. 유리처럼 맑고 투명해진 내부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빛 알갱이가 흐르듯 움직였다. 검은 벽마저 작품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 빛들은 희망을 뜻했고,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다시 시작되는 순환과 탄생을 상징했다. 음악도 다시 밝고 경쾌한 선율로 바뀌었다.관객들은 완전히 압도됐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내 공연장을 뒤흔드는 박수가 쏟아졌다.생로병사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가장 깊게 와닿는 이야기였다.더구나 관객들은 아름다운 꽃이 사라지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아쉬움을 품었다. 그 감정이 가장 짙어진 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희망을 마주했다.생중계를 보던 시청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미쳤다. 이걸 사람이 생각해 낸 거라고?][나 진짜 웬만해선 안 우는데, 저 빛들이 움직일 때 눈물이 났음.][과장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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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소민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처음에는 제가 시각적인 착시를 이용해서... 허무라는 개념을 보여 주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거기서 이 아이디어가 시작됐어요.”심사위원들의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명이 지나치게 수준이 낮아서, 마치 무대 아래의 관객들보다도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렸다.장준이 바로 질문을 이었다. “그렇다면 일곱 번째 층의 벽면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셨나요? 빛을 받았을 때 투명해지면서 내부의 빛 입자가 흐르는 효과는 어떻게 구현하신 겁니까?”질문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이어졌다.“그건...” 소민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화제를 돌리려는 듯 억지로 웃었다. “그 부분은 팀원이 담당했습니다. 각자 노력한 부분이 있으니 답변 기회도 팀원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그러나 카메라가 얼굴을 가까이 잡았을 때 소민의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에게 마이크를 줘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모습이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때 서라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소민의 손에서 마이크를 받아 주예에게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주예 씨가 가장 많이 기여하셨잖아요. 주예 씨가 설명해 주세요.”주예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재료를 고른 이유부터 구현 과정까지 막힘없이 설명했고, 세부적인 내용도 빠뜨리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고개를 끄덕였다.특히 장준은 꽃잎 구조에 큰 관심을 보이며 더 깊은 기술적인 질문까지 던졌다. 주예는 모든 질문에 정확히 대답했다.심사위원들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실질적으로 팀을 이끈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설명을 마친 주예는 팀원들을 한 번 둘러본 뒤 말했다. “각 층은 한 명씩 전담해서 완성했습니다. 첫 번째 층은 김승구 씨, 두 번째는 조윤 씨, 세 번째는 임정 씨, 네 번째는...”이름이 불릴 때마다 해당 팀원이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대부분 예술계 변두리에서 무명으로 오랫동안 묵묵히 버텨 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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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소민은 팀원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굳이 이 일을 꺼낸 자신을 원망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다들 잘되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각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야 하잖아요. 주예 씨를 좋아한다고 해서 감싸 주거나, 실제보다 공을 부풀리면 안 되죠.”소민의 말에 프로그램 연출자조차 기가 막힌 듯 고개를 저었다.“저렇게 제 발로 구덩이에 들어가는 사람도 드물지.” 그러더니 곧바로 말을 바꿨다. “카메라 하나 붙여. 오늘 방송 건질 장면 나오겠네.”주예는 먼저 시비를 거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이 제 발로 찾아오면 피하지도 않았다. 잠시 생각한 주예가 차분하게 말했다. “팀장님께서 역할 분담에 이견이 있으시다면, 제가 작업한 기록 영상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제작진은 촬영 6일째 영상을 골랐다.대형 화면이 켜졌다. 영상 속 주예는 완전히 몰입한 채 그림 작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왼손이 막힘없이 캔버스를 오가면서 섬세한 선과 무늬를 만들어 냈고, 능숙함은 웬만한 사람의 오른손보다 뛰어났다.소민의 안색이 곧바로 창백해졌다. 연출자는 아예 전용 카메라 한 대를 돌려서 소민의 얼굴을 가까이 잡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표정까지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소민은 끝까지 체면을 붙들고 변명거리를 찾았다.“주예 씨, 왼손을 그렇게 잘 쓰시면 진작 말씀을 하지 그러셨어요. 계속 감추고 계시니까 제가 업무를 배정하기가 어려웠잖아요.”“그러셨어요?” 주예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우선 저는 오른손을 다쳤다고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팀장님께서 혼자 그렇게 판단하신 거고요.”“두 번째로 저는 작업 내내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른 여덟 명의 팀원은 전부 알고 있었는데 팀장님만 모르셨죠.”“왜 그런지는 촬영 영상을 본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카메라 앞에서 주예는 마지막으로 소민을 살짝 치켜세워 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팀장님께서 처음 제안하신 방향이 지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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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무대를 내려오면서 주예는 도해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차장에서 만나 오늘 밤 제대로 축하하자고 약속했다.소민은 어느새 조용히 사라지고 없었다. 주예 주변으로 모여든 다른 팀원들은 웃으면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동안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주예는 며칠 동안 함께 고생한 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미 선약이 있어서 아쉽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에게 떠밀린 서라가 앞으로 나왔다. 어색하게 헛기침한 뒤 등 뒤에서 작은 고급 상자를 꺼내 주예에게 내밀었다. “주예 씨, 이 스카프는 저희가 따로 돈을 모아서 산 거예요. 며칠 동안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를 드리고 싶었어요.”“순위에 못 들어도 저희 모두가 작품을 보여 줄 기회는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1위까지 하게 될 줄은...”서라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보니까 선물이 조금 초라해 보이네요.”팀원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떠 있었다. 주예는 망설이지 않고 상자를 받아 들었다. “마침 오늘 옷에 맞출 스카프가 하나 필요했어요. 센스가 좋으시네요. 고마워요.”주예가 진심으로 선물을 받아들이자 모두 안도했다. 하나둘 손을 흔들며 헤어졌고 장난스럽게 선전포고도 던졌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경쟁자예요.”“그때는 제가 꼭 주예 씨 이길 겁니다. 하하!”경기장을 나서던 주예의 핸드폰에 진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팀 1위 축하해.]주예는 대화 목록을 다시 훑었다. 다른 새 메시지는 없었다.입술을 가볍게 다문 주예는 도해산 일행과 합류했다. 일행은 곧바로 차를 타고 예약제 식당으로 향했다.진후는 원래 대기실로 가서 주예를 만나려고 했다. 하지만 강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규나의 신분 문제로 오늘 밤 만나 이야기하자는 내용이었다. 규나와 관련된 일이라 진후는 갈 수밖에 없었다....저녁, 강빈 집의 서재.진후가 도착했을 때 규나는 보이지 않았다.강빈은 몹시 지쳐 보였다. 넓은 소파 깊숙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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