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는 차에서 내렸다. 편한 후드 티와 긴 바지를 입은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사람을 쉽게 곁에 두지 않는 듯한 주예의 태도는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정재와 오래 지내다 보니 차갑고 절제된 기품까지 자연스럽게 닮아 있었다.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홍근과 박 집사는 속으로 감탄했다.“앞으로는 나랑 이 본가에서 지내자.”고홍근이 주예의 손을 잡자, 주예는 들고 있던 짐을 자연스럽게 가사도우미에게 건넸다.“방은 다 정리해 놨어. 네 엄마가 예전에 쓰던 방이야. 그동안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왔다. 지내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네, 감사합니다.” 주예는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고홍근의 말을 듣고도 주예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필사적으로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하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고홍근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보상일지도 몰랐다.“다들 결혼하고 나가 살아서 본가는 조용하다. 나 같은 늙은이랑 같이 사는 게 싫지는 않겠지?”“괜찮아요.” 주예가 가볍게 웃었다.“그래, 그럼 됐다. 우선 밥부터 먹자. 며칠 안에 식구들도 전부 불러서 정식으로 소개해 줄게. 하하하.”저녁 식사는 누가 봐도 공을 많이 들인 상차림이었다.전채만 세 종류가 나왔고, 메인 셰프가 직접 테이블까지 음식을 올렸다. 식탁에는 두 사람뿐인데도 코스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서른 가지 가까운 요리가 차례로 나왔다.사용된 식재료 중에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 구경하기도 어려운 것까지 있었다.고홍근이 주예를 시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최대한 성대하게 준비해서, 고씨 가문이 주예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주예는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후드 티도 주예의 우아함을 가리지 못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은제 커트러리를 든 모습은 식사 자체를 하나의 정갈한 의식처럼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