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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핏빛 유산: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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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 기다리는 문

찾지 마세요. 하지만 잊지도 마세요.서아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태성은 늘 반대로 했다.찾지 말라는 사람을 추적했고, 잊지 말라는 사람을 기록에서 지웠다.이번에는 달라야 했다.도윤은 노트북을 열고 외부 회신 창구를 만들었다.“태성 서버와 완전히 분리하겠습니다. 접속 로그도 최소화하고, 위치 추적 금지. 회신자가 원하면 익명으로 남길 수 있게요.”한재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법적 고지문도 넣겠습니다. ‘본 절차는 신원 확인을 강제하지 않으며, 응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지연이 낮게 중얼거렸다.“태성에서는 절대 못 쓰던 문장이네. 응답하지 않을 권리.”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권리가 먼저예요.”유도현은 도하라고 수놓인 턱받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는 N-13이라는 표기를 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저는… 누군가가 조금만 더 빨리 찾아줬으면 했습니다.”서아는 그를 보았다.유도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알겠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무서울 수 있다는 걸.”그의 목소리는 낮았다.“어머니는 저를 찾고도 못 왔고, 저는 어머니를 찾고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기다림이 미웠는데… 지금은 그 기다림이 우리를 살렸다는 것도 압니다.”서아는 조용히 대답했다.“그래서 문만 만들 거예요.”“네.”유도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문은 열어두되, 끌고 들어오지 않는 것.”도윤의 화면에 회신 문안 초안이 떴다.도담님께.당신이 남긴 ‘찾지 마세요. 하지만 잊지도 마세요.’라는 말을 확인했습니다.우리는 당신을 추적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원할 때 안전하게 연락할 수 있는 문을 남깁니다.당신과 아이의 이름은 당신의 동의 없이 어떤 절차에도 올리지 않습니다.서아는 문장을 읽고 한 줄을 더했다.당신이 침묵을 선택해도, 그것은 포기가 아닙니다.도윤이 그녀를 보았다.서아는 낮게 말했다.“그 말이 필요할 것 같아요.”한재욱이 조용히 답했다.“좋습니다.”메시지는 실종아동 단체의 독립 회선을 통해 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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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 책임지는 회사

법원 임시 심문실은 태성 중재홀보다 좁았다.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이곳에는 대리석 벽도, 창업주 초상도, 회장석도 없었다.긴 책상과 재판장, 서류 더미, 녹음 장치만 있었다.서아는 그 단순함이 오히려 좋았다.태성의 장식이 없는 곳에서, 태성의 죄를 말할 수 있었으니까.강도현 측 대리인은 먼저 일어났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신청인 측 주장은 사실상 태성그룹의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만 명의 직원, 협력업체, 주주에게 즉각적인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그는 준비한 듯 화면을 넘겼다.태성그룹 고용 인원협력업체 수시장 영향 예상치숫자들이 벽에 떠올랐다.“피해 회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업 전체를 범죄 집단처럼 취급하는 방식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듭니다.”서아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익숙한 방식이었다.아이의 울음보다 이사회가 먼저였던 말.엄마의 이름보다 회사 리스크가 먼저였던 말.이번에는 피해자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말.재판장이 한재욱을 보았다.“신청인 측.”한재욱이 일어섰다.“저희는 태성을 멈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태성이 사람을 멈추게 했던 장치를 멈추자는 것입니다.”그는 화면에 새 구조도를 띄웠다.운영 유지범죄 연계 권한 정지피해자 보상 재원 분리증거 보존 관리인 선임독립 청구인 위원회 설치“직원 급여, 거래처 지급, 일반 영업은 유지합니다. 다만 창업주 혈통 신탁, 의료·법무·문화재단의 비밀 권한, 피해자 기록 접근권, 보상기금 이동 권한을 독립 관리 아래 둬야 합니다.”강도현 측 대리인이 즉시 반박했다.“그 독립 위원회라는 곳에 강서아 씨가 들어갑니다. 결국 S-01이 후계자 지위를 거부하면서도 회사를 통제하려는 것 아닙니까?”심문실의 시선이 서아에게 꽂혔다.서아는 천천히 일어났다.“저는 회사를 통제하고 싶지 않습니다.”짧은 침묵.“통제라는 말 자체가 이 사건의 문제였습니다. 엄마를 통제했고, 아이를 통제했고, 목소리를 통제했고, 이름을 통제했습니다.”그녀는 재판장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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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 문 앞의 대답

Door remains open.서아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열려 있지만, 끌어당기지 않는 문.태성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방식.법원 복도를 나오자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플래시가 터졌고,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태성은 사실상 해체 수순입니까?”“강서아 씨가 실질적 경영권을 잡는 겁니까?”“도담이라는 인물은 N-13과 관련 있습니까?”마지막 질문에 태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서아는 멈춰 섰다.“그 이름을 다시 묻지 마세요.”기자들이 조용해졌다.“오늘 법원 명령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태성이 피해자 이름을 더 이상 마음대로 열 수 없다는 것.”짧은 침묵.“그건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누군가 손을 들었다.“그럼 국민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서아는 정면을 보았다.“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보고도 침묵했는지, 어떤 권한이 사람을 지웠는지, 어떤 돈이 보상금으로 분리되어야 하는지.”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하지만 아직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은 이름은 알 권리의 대상이 아닙니다.”그 말은 짧았지만 분명했다.서아는 더 말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차 안에는 하윤의 담요가 있었다. 작고 오래된 담요. 끝에는 민서윤이 남긴 글씨가 있었다.하윤서아는 손끝으로 그 이름을 쓸었다.“집에 먼저 갈까?”태준이 물었다.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윤이한테 돌려줘야 해.”보호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하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엄마!”아이는 달려와 서아 품에 안겼다. 서아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하윤을 꼭 끌어안았다.“엄마 왔어.”“담요는?”서아는 조심스럽게 담요를 펼쳤다.하윤은 자기 이름이 적힌 끝부분을 만지작거렸다.“진짜 내 거야?”“응. 하윤이가 아주 어렸을 때 덮었던 거래.”하윤은 담요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갸웃했다.“잘 모르겠어.”서아의 가슴이 조용히 저렸다.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았다.기억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몰라도 돼.”하윤이 서아를 올려다봤다.“그래도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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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 아이 없이 온 엄마

5월 12일.전주역 앞은 이른 오후 햇빛으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서아는 검은 차를 타지 않았다.태성 로고가 붙은 차량도, 경호팀도, 수행비서도 없었다.기차를 탔다.작은 가방 하나, 하윤이 골라준 노란 손수건 하나, 그리고 이름의 자리에서 만든 안내문 한 장만 들고.태준은 같이 오겠다고 했지만, 서아는 고개를 저었다.“처음엔 혼자 갈게.”태준은 오래 침묵하다가 말했다.“위험하면 바로 연락해.”서아는 웃지 못했다.“응.”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이번 만남에서 가장 위험한 건 물리적인 위협이 아니었다.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는 일.그게 더 어려웠다.약속 장소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래된 책방이었다.간판은 작았다.잃어버린 책방서아는 그 이름 앞에서 잠시 멈췄다.잃어버린 것들.이름. 목소리. 물건. 엄마. 아이.그리고 이제는, 찾지 말라고 한 아이까지.문을 열자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책방 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창가 자리에는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서아는 단번에 알았다.도담.아니, 도담이라는 이름 뒤에 선 사람.여자는 서아를 보자 일어나지 않았다.대신 가만히 그녀를 살폈다.서아는 먼저 인사했다.“강서아입니다.”여자의 눈빛이 아주 조금 굳었다.서아는 바로 덧붙였다.“하윤이 엄마이기도 합니다.”그제야 여자의 눈이 흔들렸다.“그 이름으로 오신 거군요.”“네.”서아는 맞은편에 앉았다.“태성 사람은 데려오지 않았어요. 위치 추적도 없습니다. 제가 돌아간 뒤에도 이곳을 추적하지 않게 해뒀습니다.”여자는 짧게 웃었다.“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아니요.”서아는 고개를 저었다.“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인하셔도 되고, 오늘 아무 말 없이 나가셔도 됩니다.”그 대답에 여자는 처음으로 서아를 똑바로 보았다.기대했던 설득이 오지 않자 오히려 흔들린 얼굴이었다.“태성 사람들은 늘 반대로 말했어요.”“뭐라고요?”“믿으라고요. 안전하다고요. 협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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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 약속보다 절차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서아는 안내문 한 장을 다시 펼쳤다.도담은 이름도, 사진도, 주소도 남기지 않았다.하지만 한 문장을 남겼다.약속보다 절차를 원합니다.서아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태성은 늘 약속했다.안전하다고. 지켜준다고. 협조하면 괜찮다고.그리고 그 약속 뒤에는 늘 서류가 있었다.포기 각서, 비밀유지 합의서, 보호 이전 동의서, 심리 안정 확인서.약속은 사람이 바뀌면 무너졌다.절차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아야 했다.보호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하윤은 담요를 덮고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서아가 들어오자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엄마, 문 잘 있었어?”서아는 아이 옆에 앉았다.“응. 문은 잘 있었어.”“그 사람이 들어왔어?”“아니. 아직은.”하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기다려야 돼.”서아는 작게 웃었다.“응. 기다려야 돼.”하윤은 담요 끝에 적힌 자기 이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문이 있으면, 안 들어와도 괜찮아?”서아는 아이를 바라봤다.“응. 진짜 문은 그래. 열어도 되고, 안 열어도 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좋은 문이네.”그 말에 서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좋은 문.태성에는 그런 문이 없었다.문은 늘 잠그거나, 끌고 들어가거나, 누군가를 막는 데 쓰였다.이제 만들어야 할 것은 그런 문이었다.열 수 있지만 강요하지 않는 문.잠시 뒤, 독립 청구인 위원회 회의가 열렸다.화면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민유라. 유도현. 문이린. 이선. 서해린. 이재. 윤정원. 차라온. 그리고 외부 아동권리 변호사.서아는 도담과의 만남을 짧게 설명했다. 이름도, 장소도, 아이에 대한 정보도 말하지 않았다.“그분은 약속보다 절차를 원한다고 했어요.”한재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태성의 문제는 ‘좋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쁜 권한을 막는 절차가 없어서였습니다.”문이린이 물었다.“그럼 응답하지 않는 사람도 보호 절차 안에 들어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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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 돌아오지 않는 답

읽음.도담의 창구는 그 한 단어만 남긴 채 조용해졌다.서아는 한참 동안 화면을 닫지 못했다.답장이 없는 것은 거절일 수도 있었다.망설임일 수도 있었다.혹은 아이에게 다시 묻기 위해 시간을 버는 것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번엔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태성이 하지 못했던 일.기다림.그때 도윤에게서 다른 알림이 들어왔다.First Belongings Restoration — 1차 반환 대상 확인가든 하우스 3에서 나온 물건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었다.하윤의 담요와 양말.유도현의 턱받이.문이린의 천 조각.그리고 주인을 아직 찾지 못한 작은 모자와 발도장들.도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오늘 첫 반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서아가 고개를 들었다.“누구예요?”“서해린 씨입니다.”화면 속 서해린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옆에는 이재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모자 관계 검증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서해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제 아이 것일지도 모르는 물건이 있다고 들었어요.”도윤이 낮게 답했다.“확정은 아닙니다. Y-03 관련 보관함에서 나온 신생아 팔찌와 작은 천 모자가 있습니다. 다만 N-19와 연결될 가능성은 아직 검증 중입니다.”서해린은 눈을 감았다.“확실하지 않아도… 보고 싶어요.”이재가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저도 괜찮습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서아는 화면 가까이 앉았다.“두 분 모두 원하시면 열람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물건이 두 분의 관계를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서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보고 나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그것도 알아요.”잠시 침묵.서해린은 아주 낮게 말했다.“그래도 한 번은 제 손으로 보고 싶어요. 죽었다고 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이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그가 말했다.“만약 제 것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서해린이 그를 보았다.이재는 힘겹게 웃었다.“아프겠지만 괜찮습니다. 적어도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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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균열의 시작 — 벚나무에 숨겨진 불청객의 눈

3월의 따스한 봄바람이 셰어하우스 마당의 벚나무 가지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밸런타인데이의 달콤한 소동 이후, 셰어하우스에는 꿀처럼 끈적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 노란 가방을 멘 여름이가 학교로 향하고, 두부와 치즈가 툇마루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완벽하게 무해한 오전이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태준이 무심코 창밖을 응시했다.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수십 년간 사선을 넘나든 그의 직감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긁고 지나갔다. 아주 미세한 위화감. 공기의 흐름이 평소와 달랐다.그때, 거실 구석에서 셰어하우스의 보안 서버를 점검하던 유준의 손가락이 멈칫했다."…이상하네요. 새벽 3시 14분경, 우리 집 반경 50m 내에서 미확인 광대역 주파수 통신이 아주 짧게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단순한 노이즈로 보기엔 패턴이 너무 정교해요."유준의 말에, 커피잔을 내려놓는 태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하던 의경과,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강태의 움직임도 동시에 정지되었다. 셰어하우스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었다."발신지를 추적해."태준의 낮고 서늘한 지시가 떨어졌다. 유준이 랩톱의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리며 3D 지도를 띄웠다."마당입니다. 정확히 12시 방향, 저기 저 벚나무 근처."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수가 유령처럼 마당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소리 없이 벚나무 위로 올라가 굵은 나뭇가지 사이를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수의 손에 들려 내려온 것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초소형 무선 송수신기였다. 군용으로도 극비리에만 취급되는, 러시아제 최신형 광학 도청 렌즈였다."배터리 잔량을 보아하니 설치된 지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군."이수가 핀셋으로 렌즈를 분해하며 중얼거렸다. 강태의 거대한 주먹에서 우두둑,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떤 미친놈들이 감히 우리 구역에 눈알을 들이민 거지?" 강태가 당장이라도 담장을 부수고 뛰쳐나갈 듯 으르렁거렸다."놈들의 목적이 우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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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 부르지 않는 증거

Dodam-linked item sealed behind voluntary access.No notification sent.도윤은 마지막 문장을 저장한 뒤에도 한참 화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이게 맞을까요?”서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병원 팔찌 안쪽에 남아 있던 글자.도담그것은 단서였다.누군가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였고, 동시에 누군가를 다시 겁먹게 할 수 있는 미끼였다.이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리가 알려주지 않으면… 또 숨기는 게 아닐까요?”그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숨긴다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보호라는 말 뒤에서 얼마나 많은 문이 잠겼는지.서아는 팔찌가 담긴 보호 화면을 바라봤다.“그래서 기록해야 해요.”“하지만 연락은 안 하고요?”“네.”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가진 걸 없는 것처럼 숨기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해 흔들지도 않아요.”문이린이 낮게 말했다.“부르지 않는 증거.”서아가 그녀를 보았다.문이린은 자기 천 조각이 담긴 상자를 떠올리는 듯했다.“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게. 하지만 그 앞에 사람을 끌고 오지는 않게.”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필요해요.”도윤은 새 분류를 만들었다.Unclaimed Belonging / Silent Evidence주인 추정 가능, 당사자 미통지, 자발 접근 시 열람 가능한재욱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렸다.“법적으로도 가능한 방식입니다. 다만 위원회 승인과 외부 감시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나중에 ‘은폐’로 오해받지 않도록요.”“좋아요.”서아는 말했다.“숨기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겨요. 그리고 부르지 않았다는 기록도.”회의록에 새 원칙이 적혔다.원칙 7. 단서는 사람을 부르기 위한 미끼가 되어서는 안 된다.원칙 8. 주인이 준비되지 않은 증거는 사라지지 않게 보관하되, 강제로 보여주지 않는다.그때 하윤이 담요를 끌고 서아 옆으로 다가왔다.“엄마.”“응?”“내 담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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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 닫을 권리

Silent Evidence preserved.그 문장은 밤새 화면 한쪽에 남아 있었다.서아는 노트북을 덮지 않았다.누군가 문 앞에 작은 표시를 두고 갔으니, 그 앞을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다음 날 아침, 첫 번째 질문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외부 감시인 회의에서였다.아동권리 변호사 최은경이 조용히 물었다.“증거를 보관하면서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결국 은폐 아닙니까?”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도윤은 화면에 팔찌 기록을 띄우지 않았다.그저 분류명만 보이게 했다.Unclaimed Belonging / Silent Evidence최은경은 말을 이었다.“선의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태성도 늘 선의라고 했습니다. 보호라고 했고, 안정이라고 했고,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쓰고 있다면, 경계해야 합니다.”문이린이 고개를 숙였다.“맞아요. 저도 그 말로 기록을 닫았으니까요.”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그래서 감시가 필요합니다.”“어떤 감시요?”“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감시요. 하지만 그 내용으로 사람을 부르지 않는 감시.”최은경은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서아는 이어 말했다.“증거가 있다는 기록은 외부 감시인에게 남깁니다. 날짜, 물건 종류, 보관 위치, 접근 제한 사유까지요. 다만 주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어와 아이의 흔적은 당사자가 요청하기 전까지 열지 않습니다.”한재욱이 받아 적었다.“공개하지 않는 것과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분리하자는 거군요.”“네.”서아의 목소리는 낮았다.“태성은 존재를 부정했어요. 우리는 존재를 인정하되, 주인의 속도를 기다리는 겁니다.”유도현이 조용히 말했다.“그리고 당사자가 끝내 보지 않겠다고 하면요?”서아는 잠시 침묵했다.“그럼 보지 않을 권리도 남겨야죠.”최은경이 다시 물었다.“폐기 요청을 하면요?”그 질문에 모두가 멈췄다.폐기.돌려주려고 찾은 물건을, 주인이 버리겠다고 하면.서아는 하윤의 담요를 떠올렸다.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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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 절차를 만지는 사람

Temporary Access Approved by: Court-appointed Operations Manager그 문장을 본 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법원이 붙인 사람.태성을 감시하라고 들여보낸 사람이, 도담의 문에 닿았다.서아는 노트북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태성 사람이 아니어도, 태성의 방식으로 문을 만질 수 있었다.도윤이 낮게 말했다.“운영관리인 이름은 최강우입니다. 대형 구조조정 전문 회계법인 출신이고, 법원 관리 사건 경험이 많습니다.”한재욱의 얼굴이 굳었다.“기업 회생과 자산 보전 쪽 사람입니다. 피해자 보호 절차에 익숙한 사람은 아닙니다.”지연이 헛웃음을 쳤다.“그러니까 숫자 보는 사람한테 이름의 문을 맡긴 거네.”서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만나야겠어요.”태준이 바로 따라 일어났다.“같이 가.”“응.”이번엔 혼자 갈 일이 아니었다.절차를 만든 사람들 앞에서, 절차를 만지는 사람이 무엇을 건드렸는지 말해야 했다.임시 운영관리인 사무실은 태성 본관 18층에 마련되어 있었다.유리문 안쪽에는 회계 자료와 조직도, 자산 동결 표가 벽 가득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태성 로고 위에는 ‘임시 운영관리실’이라는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최강우는 회의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마흔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단정한 정장, 차분한 얼굴, 피곤한 눈.그는 서아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서아 씨. 연락은 받았습니다.”서아는 앉지 않았다.“도담 창구에 접근 승인하셨죠.”최강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숨기지 않았다.“예. 다만 세부 정보에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 보안 점검이 필요했습니다.”“왜요.”“외부 독립 창구가 태성 책임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면, 법원 관리 대상 자산과 정보 흐름을 확인해야 합니다.”말은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더 위험했다.서아는 차갑게 물었다.“그 창구가 누구를 위한 문인지 알고 승인하셨습니까?”최강우는 서류를 내려놓았다.“비공개 보호 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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