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좌충우돌 꽃미남 흥신소: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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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각인 : 잔상의 시작 (1)

“와~ 박지훈 진짜 미쳤다. 너 또 전교 1등이냐?”“야- 너는 도대체 공부의 ‘공’ 자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어째 맨날 전교 1등을 찍냐고!”지금보다 앳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18살의 지훈.그를 둘러싼 아이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이 섞인 눈빛으로 웅성거렸다.하지만 지훈은 그런 소란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책상 위 물건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었다.“이것 봐 이것 봐. 야자도 맨날 빼먹는 놈이 성적은 괴물이라니까”“야- 박지훈 솔직히 말해봐. 너 사실 초능력 같은 거 있지?”장난 섞인 친구의 물음에 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런 게 어딨냐 임마! 나 먼저 간다”“야! 어디 가는데?”멀어지는 지훈의 뒤로 친구들이 소리쳤다.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방끈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여동생 보러”그 말에 친구들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모았다.“지독한 시스터 콤플렉스 같으니라고”멀어지는 친구들의 야유를 배경음 삼아 지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나섰다.***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지훈의 집 대문이 열렸다.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표정의 지훈이 긴 다리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외쳤다.“지민아! 오빠 왔다!”그 소리에 맞춰 작은 방 안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다다다’ 소리를 내며 달려 나왔다.아이는 지훈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훈의 입가에도 그제야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그는 무릎을 굽혀 앉아 여동생의 눈을 다정하게 맞췄다.“지민이 오빠 기다렸어?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아이는 대답 대신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훈에게 익숙한 듯 고사리 같은 한 손을 내밀었다.지훈은 오른손에 끼고 있던 얇은 가죽 장갑을 부드럽게 벗어 던졌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순간, 지훈의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 지민이가 보고 겪은 일들이 파노라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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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각인 : 잔상의 시작 (2)

“어머,지훈아!” “박지훈! 정신 차려!”귓가를 찢는 고함 소리에 지훈은 남자의 역겨운 과거로부터 서서히 현실로 끌어올려졌다.간신히 눈을 뜨자 거실 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붙잡고 흔드는 어머니와 당황한 안색의 아버지, 그리고 오빠의 팔을 꼭 쥔 채 펑펑 울고 있는 지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지훈은 파르르 떨리는 시선을 옮겼다. 난장판이 된 식탁 너머 그곳에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인자한 가면에 가려졌던 포식자의 눈빛. 지훈의 눈동자가 분노로 번뜩였다.“괜찮니- 지훈아? 갑자기 왜 그래?”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이성이 마비된 자리에 짐승 같은 본능만이 남았다. 지훈은 순식간에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졸랐다.“이 개새끼야! 죽여버릴 거야!”광기 어린 비명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돌발 행동에 어머니는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고 지민은 겁에 질려 오열했다.‘짝-!’그때 거실을 울리는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지훈의 몸이 저만치 내동댕이쳐졌다.지훈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남자가 컥컥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이게 무슨 짓이야! 박지훈!”주방을 울리는 아버지의 노호. 지훈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아버지를 노려보았다.붉게 충혈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저 남자가......... 지민이를 노린다고요! 저 괴물이!”“지훈아! 너 정말 왜 이러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어머니가 울먹이며 지훈을 말렸지만 아버지는 참담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미안하네.... 내 아들이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요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야...”“아닙니다 검사님.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군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남자는 여전히 선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뒷머리를 긁적이며 현관으로 향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지훈은 마지막 힘을 짜내 비명을 질렀다.“저놈 장기매매 브로커라고요! 지민이가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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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雲)의 귀환, 깨어진 기억의 구슬

“천계에서부터 이어진 자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질긴 인연.........”스님의 나직하고도 깊은 목소리가 법당 안의 정막을 깨뜨렸다.잠시 몽롱하게 어두운 과거의 잿더미 속에 빠져들었던 지훈의 정신이 그 목소리에 이끌려 현재로 끌어 올려졌다.지훈은 방금 본 환영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직감하며 의문이 가득 서린 눈으로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스님 말처럼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옥선녀, 그리고 천계.......그 모든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운명을 만든 거죠?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겁니까?”격양된 지훈의 목소리가 법당 천장에 매달린 연등을 가늘게 떨게 했다.하지만 스님은 요동치는 지훈의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호수처럼 고요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이제 자네들도 기억해야 할 때가 되었지.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그 지독한 전쟁의 끝이 다시 시작될 터이니....”스님은 옆에 놓여 있던 다섯 개의 작은 단지 중 하나를 천천히 탁자 중앙으로 옮겼다.단지 표면에는 해묵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이게 뭐죠? 이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겁니까?”“이 안에는 200년전 자네들의 기억을 강제로 봉인해 놓은 영혼의 구슬이 담겨 있네..”지훈은 단지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문득 위질감을 느꼈다.“.......기억이라고요? 헌데, 우리 인연이 여섯이라 하셨으면서 왜 단지는 다섯 개뿐인 거죠?”“여섯 중 한 명의 기억이 이미 돌아왔기 때문이라네. 주인에게 돌아간 기억의 구슬은 저절로 깨져 사라지는 법이지”그 순간 지훈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사람“.........설마 스님......... 그 한 명이라는 ......... 이정혁입니까?” [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기억이 나게 해주지. ]지훈은 정혁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를 떠올렸다.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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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같은 기억의 조각

“담이 지금 그곳으로 갔어연목하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 옥선녀의 쪼개진 나머지 반쪽 영혼을 가진 강소하가 있는 곳으로...”구미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재민의 두 눈이 잔뜩 커졌다.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위협적으로 구미호에게 다가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은 목하의 이름과 소하의 이름이 왜 함께 나오는 것인지그리고 그들이 쌍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재민은 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물었다."목하가 강소하랑.......... 쌍둥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재민의 격앙된 반응에도 구미호는 ‘흐응’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그녀는 앞으로 기울였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뉘고는 재민을 비웃듯 앞에 놓인 펜을 손가락으로 데굴데굴 굴렸다.입가에 머금은 조소는 마치 어리석은 인간을 농락하는 포식자의 여유와 같았다."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말해!"재민은 당장이라도 구미호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수갑에 묶인 두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취조실 안은 그의 고함 소리로 윙윙 울려 퍼졌다. 구미호는 귀찮은 듯 귀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냈다."소리 좀 죽여. 그런다고 죽은 연목하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그 더러운 입에 목하 이름 담지 마! 죽여버릴 거야!"오열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재민이 구미호에게 달려들던 그때였다.굳게 닫혀 있던 취조실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훈이었다.그는 재민보다 빠르게 구미호에게 다가서더니 품에서 꺼낸 부적으로 감싼 예리한 칼날을 구미호의 목줄기에 들이밀었다."허- 어이없네?"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구미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구미호.....""박지훈- 너 어떻게 여기를...."지훈의 등장에 재민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바르르 떨리는 등을 바라보았다.지훈의 등 뒤로는 억누를 수 없는 살기와 분노가 진동하고 있었다. 지훈의 뺨을 타고 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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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인연 : 깨어난 전생의 조각

(비밀의 서막 챕터와 이어집니다.)[ 속보입니다. ST그룹 안성민 회장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안 씨는 안성민 회장의 아들로 확인되었으며....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재민이 수많은 기자에게 둘러싸인 채 살인 용의자로 검찰청에 들어가는 모습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흥신소 거실에 모여 있던 현빈과 도훈, 그리고 소하는 입을 떡 벌린 채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전히 TV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에 시선을 고정한 소하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설마..............저거 진짜예요?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싸가지 안재민 씨 맞는거에요?"".............아무리 봐도 그 안재민이 맞는 것 같은데.,,,"현빈이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훈은 기가 찬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뱉었다."아니 이 자식은 집에 간다더니 함흥차사여서 어디서 오도가도 못하나 했더니만 지금 뉴스에 살인 용의자로 나와서 안부를 전하는 거야?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그나저나 살인 용의자라니요.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니 아무리 안재민 씨가 싸가지 밥 말아 먹긴 했어도....."소하의 목소리가 떨렸다.그때 현빈과 도훈이 동시에 단호하게 입을 뗐다."안재민이 그럴 놈은 아니지""절대 아니지. 그 자식은 자기 손에 피 묻히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놈이야"멤버들의 신뢰 섞인 말이 오가는 그때였다.갑자기 한 손에 낡고 헤진 고서를 든 중원이 방문을 박차고 튀어 나왔다. 그는 뉴스 속 재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소하의 손목목을 낚아채듯 휘어잡았다.중원의 눈등자에는 이전에 본 적 없는 광기 어린 흥분이 서려 있었다."너였어? 그 나머지 반쪽이 정녕 너였던거야?!""네? 아.........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거 좀 놓고 말씀하세요....."소하가 당황하여 고개를 갸우뚱하며 팔을 빼려 했으나 중원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듯 손에 든 고서를 소하의 눈앞에서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그의 목소리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가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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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인연 : 깨어난 전생의 조각(2)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소하를 당장 어디론가 피신시켜야 한다는 중원의 성화에 소하와 현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하지만 도훈만은 달랐다.고서인 '선녀집'에 새겨진 그 기이한 기록들이 진실이라면 지금 당장 소하를 지켜줄 강력한 힘을 가진 신령 백호가 있는 산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도훈은 멍하게 서 있는 소하의 손목을 질질 끌다시피 하여 차에 태우고는 조수석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뭐? 선녀? 내가..............?"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소하는 황당하고도 허탈한 표정으로 조수석에 앉아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소하를 따라 뒷좌석에 급히 올라탄 현빈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었지만 중원과 도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님을 직감했다.현빈은 앞 좌석에서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는 소하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운전석에 올라탄 도훈에게 물었다."이도훈..... 아까 진짜 책에 그렇게 써 있었어? 그 땡중이 한 말이 다 사실인거야?"".......어 아마도.... 아니- 틀림없어...."도훈이 세심하게 소하의 안전벨트를 채워주었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짐짓 침착하게 엑셀을 밟았다.차가 비명을 지르며 도로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한참 동안 침묵만이 감도는 차 안에는 오직 불안한 소하가 엄지손톱을 질질 깨무는 서글픈 소리만 울려 퍼졌다."옛날 아주 먼 옛날에......... 옥제,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옥황상제에게 귀하디귀한 딸이 하나 있었대...."긴 침묵을 깬 것은 도훈의 낮은 목소리였다. 손톱을 깨물던 소하도, 창밖을 보던 현빈도 숨을 죽이고 도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도훈은 앞만 주시한 채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잠시 인간 세계에 내려온 옥제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옥제가 금이야 옥이야 아꼈던 옥선녀"소하가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 재촉하는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보았다.도훈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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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인연 : 깨어난 전생의 조각(3)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이 해골의 손가락처럼 뻗어 있는 깊은 산 속.소하의 등 뒤로 얼음장같이 서늘한 겨울바람이 휘몰아쳤다.바람은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소하와 그녀를 등 뒤에 숨긴 채 살벌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도훈, 그리고 그들을 비웃듯 마주 서 있는 담의 사이를 날카롭게 가르고 지나갔다.무거운 정적이 숲을 짓눌렀다. 서늘한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피가 흥건히 묻은 검은 단검을 든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담의 안광 때문일까.소하는 자신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부르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담이 쥔 단검에서 뚝, 뚝 하며 붉은 선혈이 흙바닥으로 떨어졌다.도훈은 그 피를 보는 순간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현빈의 피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남았던 그 바보 같은 도깨비의 피였다.“설마…… 그 피…….”도훈의 거친 숨소리가 공명하듯 숲을 맴돌았다. 소하 역시 담이 저지르려 했던 일을 예감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까 전,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해 자신들에게 어서 도망가라 소리치던 현빈의 마지막 모습이 잔인한 잔상처럼 눈앞을 가렸다.[ 이도훈 삐삐 데리고 빨리 가-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야해 ][ 김현빈 너 혼자 여기서 남겠다는 거야? ][ 빨리 가라고!!! 시간이 없어! ]소하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현빈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하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담은 그런 소하의 기대를 비웃듯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그리고는 냉소 가득한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도깨비....”그 한마디에 소하의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주 흘러내렸다.도훈의 표정 또한 짐승처럼 일그러졌다. 현빈이 죽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 괴물 같은 남자에게 처참히 당했다는 증거였다.“바보.......바보 도깨비......”“곰도......”건조하고 차가운 숲의 공기를 ‘스읍’ 하고 들이마신 담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터벅... 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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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辛巳)년의 아이

갑작스러운 백호의 등장에 담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제아무리 영험한 능력을 갖추고 수많은 귀물을 부리는 담이라 할지라도 이 깊은 산의 절대적인 주인인 백호를 그의 영역에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그때였다. 거대한 신수의 형상을 하고 있던 백호가 담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커다란 앞발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스산한 겨울바람과 함께 눈을 멀게 할 만큼 진한 백색의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그리고 찰나의 순간 담의 공격을 받아 땅바닥에 험하게 널브러져 있던 도훈과 그 앞에서 처연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소하가 백호와 함께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담의 검은 단검이 허공을 가른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정적뿐이었다.소하의 눈에는 그 모든 상황이 찰나에 일어난 환상 같았다. 그저 두려움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린 순간, 소하의 몸은 달빛이 부서져 내리던 서늘한 겨울 숲속이 아니었다.머리를 들어 올리자 달빛 대신 은은한 한지 불빛이 비치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기왓장과 서까래가 촘촘히 쌓여 있는 낯선 기와집 안이었다.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은 고요하고도 영험한 분위기. 온 사방에서 기분 좋은 흙냄새와 마른나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소하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눈만 그저 껌뻑껌뻑 지켜보았다.어느새 거대한 백호의 모습에서 아까 전 바위 위에서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짓던 앳된 소년의 몸으로 돌아온 백호가 눈앞에 서 있었다."어...... 여긴 어디.........."소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한 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나무마루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백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소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휘휘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마당 한쪽 구석,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소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도훈에게 다가가려 발을 내딛던 바로 그 찰나, 소하의 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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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이정혁(1)

처음부터 모든 게 이상했다.흥신소의 수장인 정혁이 그 정체불명의 여자, 강소하를 처음 마주했을 그 순간부터 말이다.그녀가 처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날, 타인의 기억과 감정을 모조리 읽어내던 지훈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유독 그녀에게만은 단 한 자락도 통하지 않았던것그리고 평소 영적인 감각이 예리하던 도훈조차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그녀의 눈빛이 결코 범상치 않으니 무조건 우리 사무실에 곁에 두고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도훈의 그 집요한 고집이 꽤 석연치 않았지만, 내심 정혁 자신도 소하를 멀리 보내고 싶지 않다는 묘한 이끌림이 생겨 결국 그녀를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강소하라고 했나... 그 여자 이름이?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하네.”원귀가 된 무당귀를 눈앞에서 놓치고 허탈해하던 도훈을 위로해준뒤, 정혁과 사자는 잠시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정혁의 안색은 영 찜찜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무당귀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외딴 마을까지 내려간 이유가 힘이 약해진 터주신을 잡아먹으려던 거였지?”“응. 도깨비인 현빈이에게 이기기 위해 제 몸집을 흉측하게 불리는 중이었으니까.뭐-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힘이 빠지고 약해진 터주신이라 해도 일반 영혼들보다는 백 배는 더 강력하잖아.아- 맞다. 근데 무당귀가 왜 굳이 그 터주신을 눈앞에 두고 그 여자를 공격한 거야?”터주신의 영력이 일반 영혼들보다 몇 배는 강력하고 격이 높다는 사실은 정혁 또한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헌데 왜였을까. 식탐에 굶주린 무당귀는 그 강력한 터주신을 옆으로 팽개쳐두고 오직 소하라는 인간 여자만을 악착같이 먹어 치우려 들었다.정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자의 마지막 물음에 방금 전 현장에서 목격했던 기이한 현상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무당귀가 소하를 덮치던 순간 소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하고도 고결한 영기.일단은 이 불길하고 찜찜한 의구심을 파헤치기보다 그녀를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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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이정혁(2)

 그날은 참으로 정신이 없던 날이었다.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진 소하는 불과 3일 전에 상급 악령인 무당귀에게 살점을 뜯겨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세 좋게 일어났다.그녀는 마치 늘 마음 한편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흥신소 직원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구원자 같았다.무당귀 사건에서 도깨비인 현빈을 구해낸 것에 이어 이번에는 서해와 동해의 신령들이 얽힌 거대한 싸움 속에서 반인간 반이무기인 도훈까지 사지에서 완벽하게 건져내었다. “으으으으- 추워 죽겠네 진짜....” 모든 소동이 마무리되고, 도훈이 자신의 아비인 서해용왕과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정혁은 슬그머니 시선을 옮겼다.그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도훈을 구하느라 차가운 바닷물에 통째로 빠져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는 소하가 있었다. 정혁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에 섰다. “.....괜찮아?”“네? 아, 뭐. 큼큼.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소하가 머쓱한 듯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헛기침을 했다. 정혁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투박하게 걸쳐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몸이면서 그러다 감기 걸리겠네”“에이, 사장님 걱정 마세요! 저 20살 이후로 감기라곤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예요.보기와 다르게 무쇠 체력이라구욧!” 소하가 장난스레 주먹을 쥐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정혁은 그녀의 밝은 모습에 안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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