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Chapter 81 - Chapter 89

89 Chapters

우리가 기다리는 계절 II

다음 날, 지원과 하연은 동네 작은 꽃가게에 들렀다.가게 안은 습기가 가득했고, 초록 잎에서 나는 흙 냄새와 촉촉한 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전구들이 달려 있어 잎마다 빛을 머금고 있었다.하연은 한눈에 마음에 드는 화분을 발견했다. 잎이 길쭉하고 통통한 산세베리아였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조심스레 잎을 만졌다.“얘는 숨이 참 고요해 보인다.”지원도 곁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이 친구는 네가 말한 대로 집 공기를 맑게 해줄 것 같아.”"이름은 뭘로 짓지?"“몽실이가 있으니까.. 얘는 통통이?”“그건 너무 강아지 이름 같잖아.”“그럼.. 봄비?”“너무 감성적이다. 완전 인스타감성.”이름 논쟁은 끝이 없었다. 결국 가게 주인이 재촉하듯 웃으며 계산서를 내밀자, 둘은 그냥 나중에 정하자며 계산을 마친 후 품에 하나씩 화분을 안고 나왔다.저녁 무렵, 집에 돌아와 새 화분을 창가에 나란히 두었다. 몽실이 옆, 그리고 침실 창가 한쪽.밤이 되어 불을 끄고, 지원은 침대에 눕기 전 잠시 창가를 바라봤다. 고무나무 몽실이, 그리고 이제 막 가족이 된 산세베리아 두 그루. 그 작은 생명체들이 어둠 속에서도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소리가 평온하게 들려온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연은 이미 지원의 손을 꼭, 붙잡고 잠에 빠져있었고, 지원은 그런 하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으으.."살짝 구겨진 미간이 귀여워 지원은 속으로 킥킥, 웃었다.그러다, 지원은 속으로 생각했다.사랑은 거창한 약속보다 이런 반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같이 화분을 고르고, 같은 밥상을 차리고, 같은 시간에 잠들고, 같은 아침에 눈을 뜨는 일. 그 모든 ‘같이’가 쌓여 결국 하나의 계절이 되는 것 같았다.*며칠 뒤, 지원은 거실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물었다.“이름 정했어?”하연은 책상에 엎드려 과제를 하다 고개를 들었다.“아직. 언니는?”지원은 창가에 놓인 두 화분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말했다.“왼쪽은 너, 오른쪽은 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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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시작될 때 I

4월 초.겨울의 잔해가 아직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지만, 햇살은 이미 봄을 품고 있었다.서울 시내를 따라 흐르는 바람은 묘하게 설레는 기운을 실어와 곳곳에 흩뿌리고 다녔고, 곳곳의 벚나무 가지마다 분홍빛이 조심스럽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지원은 아침부터 괜히 들떠 있었다. 원래 주말에도 차분히 하루를 시작하는 타입인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방 안으로 밀려들었고, 그 안에 묻어온 꽃향기가 괜히 마음을 간질거리게 했다.옷장을 열고 고민하는 지원.방 한 구석 거울 앞에서 옷장을 열어두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옷이야 늘 입던 것들이었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특별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스며들었다. 그게 허영인지, 아니면 어떤 다짐의 표현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하연아, 옷 골랐어?”지원은 방문 너머로 물었다.잠시 후,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금 열리더니 하연의 얼굴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앞으로 흘러내려 작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응. 이거 어때?”몸 전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어깨부터 내려오는 부드러운 크림빛 니트와 청치마, 그리고 발끝의 운동화까지, 조합만으로도 봄날을 그대로 입은 듯한 하연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개화 전이지만, 벚꽃보다 먼저 봄을 품은 사람 같았다.지원의 입가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이 흘러나왔다.“예뻐. 진짜로.”그 한 마디가 방 안 공기를 바꿔놓았다.하연의 뺨은 순식간에 연분홍빛으로 물들었고, 입술이 살짝 오므려졌다 풀렸다. 그 표정 하나에 지원의 가슴도 따라 두근거렸다.“언니는 뭐 입을 거야?”하연은 괜히 시선을 피해 바닥을 보며 물었다.지원은 옷장 안을 훑으며 대답했다.“나? 벚꽃보다 눈에 덜 띄는 걸로.”“싫은데.”하연은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나는 언니가 제일 예뻤으면 좋겠어. 오늘은 나만 보기엔 아까운 날이잖아.”지원의 심장이 순간 기분 좋게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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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시작될 때 II

“연인인가? 정말로 연애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서로를 너무 아끼다 보니 착각하는 중인 관계일까?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그제야 깨닫게되는 그런?”지원은 대답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걸음을 멈췄다. 주변의 웃음소리, 아이들 뛰노는 소리, 바람에 스치는 꽃잎의 소리까지 전부 묘하게 멀리 들려왔다. 지원은 길가의 벤치를 발견하고 천천히 앉았다.옆자리을 손바닥으로 쓸어, 혹시 모를 먼지를 닦아주는 지원.“그런 생각, 나도 해본 적 있어. 남들처럼 확실하게 딱 정리된 관계가 아니라서.. 혹시 네 눈엔 모호하게 보일까 봐 불안했어.”하연은 그 옆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관계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해.”지원이 눈을 돌리자, 하연은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같이 있는 매 순간,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게 더 중요해.”지원은 그 말에 가만히 손을 내밀어 하연의 손을 잡았다. 체온이 스며드는 순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가 퍼졌다.“그럼, 나도 대답해볼게. 나는 너랑.. 지금, 여기, 이 계절 안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중 가장 특별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이 계절?”“응. 우리만의 계절. 벚꽃이 처음 고개를 내밀고 활짝 피어날 준비를 하는 이 날처럼,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계절...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시간.”하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눈가가 젖어들며 웃음이 번졌다.“언니, 우리 이 날, 매년 기념일로 만들자.”“응?"피식, 웃는 지원."그래. 근데 무슨 기념일로?”“굳이 이름을 짓자면.. 벚꽃 첫날. 우리가 처음으로 진짜 이야기를 꺼낸 날.”지원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럼 우리.. 현실적인 미래 얘기도 한번 해볼까?”*지원과 하연은 공원 옆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통유리창 너머로 아직 작은 벚꽃들이 흩날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는 따뜻한 라떼 두 잔이 놓였다. 컵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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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쩌면, 습관처럼 I

“언니, 양말 또 뒤집어 놨죠.”하연의 목소리가 조용한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세탁기 앞에서 양말을 정리하던 그녀는익숙한 포즈로 고개를 갸웃거렸다.지원은 식탁에 앉아 토스트에 잼을 바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알아요. 근데 오늘에만 벌써 세 번째잖아요.”하연은 양말을 뒤집으며 웃었다.투덜거리지만,표정엔 지겨움보다는 익숙한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지원은 뻔뻔하게 말했다.“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하면?”“그럼.. 평생 내가 뒤집어줘야죠, 뭐.”“그 말, 녹음해놔야겠다.”*주말 아침,햇살이 창문을 가득 메웠다.하연은 청소기를 돌리고,지원은 커피를 내렸다.각자의 자리에서 익숙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말이 없어도, 따로 말하지 않아도동선이 겹치지 않는 건오랜 습관처럼 몸에 밴 리듬이었다.“우리, 완전 부부 같지 않아요?”하연이 말했다.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을 닦으며.지원은 고개를 돌렸다.“뭐야, 갑자기.”“아니, 그냥.서로 뭐 안 물어봐도뭐 필요한지 아는 거 보면 그렇잖아요.”지원은 조용히 웃었다.“그러게.우리 그렇게 됐네.”*점심 무렵, 동네 마트에 함께 나섰다.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길,길가에 핀 유채꽃을 하연이 먼저 발견했다.“언니, 저거 봐요.”“음. 벌써 봄 같네.”“봄이 아니라, 이제 진짜 봄이에요.입춘도 지났고.”“그럼 우리도 새 계절에 맞게 바꿔볼까?”“뭐요?”지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이불.너 그 핑크색 이제 좀 지겹지 않아?”하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거 언니가 골랐잖아요.귀엽다고.”“지금은 네가 더 귀여우니까이불은 바꿔도 돼.”하연은 터질 듯 웃었다.“아 진짜, 언니 요즘 왜 이렇게 말을 잘해요?”“습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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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쩌면, 습관처럼 II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지원은 하연이 장바구니에 몰래 넣어둔 딸기 우유를 발견했다.“이거 또 넣었지?”“왜요? 언니 좋아하잖아요.”“...”“언니는, 아기입맛이 귀여운 거 모르죠.”지원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장바구니를 바꿔 들었다.“무겁다. 내가 들게.”하연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말했다.“언니, 나 요즘 진짜 많이 웃는 거 같아요.”“그래?”“네.이런 거.. 너무 좋잖아요.별거 아닌 거, 같이 하고아무 일 없어도 같이 있고.”지원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바람에 잔머리가 흩날리고,그늘 아래에도 미소가 묻어 있었다.“..나도 그래.”*밤.샤워를 마친 하연은 드라이기 소리를 줄이며 말했다.“언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지원은 소파에 앉아 책을 덮고,잠시 고개를 기울였다.“사랑?글쎄..하루에도 몇 번씩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고,그걸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네가 알아줄 것 같아서 안심하는 마음?”“..너무 좋다.”하연은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지원 옆에 앉았다.“나는요,사랑이란 게 꼭 타오르는 불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오히려 이렇게..습관처럼, 다정하게 흘러가는 게 더 어렵고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해요.”지원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대답했다.“그럼 우리, 지금 사랑 잘하고 있는 거네.”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어 말했다.“매일매일, 더 잘하고 있어요.”*불을 끄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잠드는 밤.다정한 말보다,익숙한 숨소리와나란히 있는 손끝이 더 진하게 사랑을 말해주는 시간.함께 사는 일이 사랑을 습관처럼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사랑했기에 이 모든 습관이 더없이 특별해진 거였다.그리고 그렇게,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두 사람의 가장 빛나는 날로 남는다.내일도,아무 일이 없어도,둘은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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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흔들림의 징조 I

일요일 저녁.비가 내렸다.계절의 틈에 걸친 봄비는 유난히 차가웠고,거리는 젖은 우산들로 가득했다.지원은 작업실에서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회의가 길어졌고, 클라이언트 요청으로 급하게 수정할 게 생겼다.조용히 휴대폰을 확인하니하연에게서 온 메시지가 여러 개.[하연오늘 비 와요][하연우산 챙겼어요?][하연밥은요?]그리고 마지막으로,2시간 전의 메시지 하나.[하연저 먼저 잘게요조심히 와요]지원은 괜히 마음이 쿡 찔렸다.별말 아닌데도,그 “조심히 와요”라는 말 속에뭔가 지친 숨결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집에 들어섰을 때,하연은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불은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TV는 무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안 잤네.”지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하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기다리다가, 그냥 멍하니 있었어요.”지원은 코트를 벗으며 다가갔다.“미안. 회의가 길어졌어.”“괜찮아요. 그런 줄 알았어요.”하연은 웃었지만,그 웃음은 눈까지 닿지 않았다.늦은 저녁, 식사는 시켜 먹기로 했다.지원이 주문을 하고,하연은 아무 말 없이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라면 먹게?”“그냥.. 배고파서 먼저 먹을게요.”“말하지. 방금 주문했는데.”“말해도 바뀌는 거 없잖아요.”지원은 그 말에 순간,작은 파문처럼 퍼지는 감정을 느꼈다.서운함,그리고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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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흔들림의 징조 II

식탁에 앉은 둘 사이엔오랜만에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하연아.”지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요즘 무슨 일 있어?”하연은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아니요. 그냥..언니가 자꾸 멀리 느껴져서요.”“멀리?”“언니가 바쁜 거 아는데,그래도.. 난 가끔 혼자 있는 기분이 들어요.”지원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도 그래.너무 좋아서,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어.”“..그게 왜요?”“너한텐 나 하나뿐인데,나는 너한테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하연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근데 언니.그런 식이면.. 나도 언니한텐 하나뿐이에요.나도 언니 잃는 게 무서운 사람인데.”지원은 고개를 숙였다.말없이 하연의 손등을 감싸며,이런 감정이 꼭 싸움처럼 커지지 않게 조심하려 애썼다.“우리,서로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가끔 오해를 부르나 봐.”“맞아요.그게 문제예요.우린 서로 너무 좋아해서,작은 틈에도 금이 가는 것 같아요.”그날 밤,지원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잠든 줄 알았던 하연의 어깨에조심히 이마를 댔다.“다음부턴 꼭 말해줘.혼자 서운해하지 말고.”“..응.”“그리고, 나 너한테 멀어질 생각 없어.아무리 바빠도,항상 너한테 돌아올 거야.”하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알아요.그래서 아직, 괜찮아요.”사랑이란 게늘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작은 불안, 사소한 틈,말 한마디가 못다한 감정들.그럼에도서로를 놓지 않기 위해다시 손을 내미는 일.그게 결국,사랑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침대 위 두 사람의 온도는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었다.그리고 그 조용한 흔들림을 지나그들은 다시,조금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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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미래를 그린다는 건 I

봄이 깊어가는 어느 평일 저녁.퇴근 후의 서울은 따뜻하고 붐볐다.지원과 하연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한강 근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앞에따끈한 파스타와 와인이 놓였다.“요즘엔 어때요? 일.”하연의 질문에, 지원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복잡해.새 프로젝트 맡았는데, 이직 고민도 같이 하니까 머리가 아프더라.”“이직하면.. 회사 근처로 이사 가요?”지원은 하연을 바라봤다.“그 얘기, 하려고 했어.”“ .응?”“이직하면, 좀 더 외곽으로 갈 수도 있어.조용하고, 넓은 집.너랑 같이 살기 더 편한 곳으로.”하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진짜요?”“응. 우리, 이제 진짜 함께 사는 걸한 번 제대로 해보자.”하연은 한참 말이 없었다.그러다 조용히 웃었다.“그거, 좀 감동이에요.”“감동만?”“..그리고 좀.. 무서워요.”지원은 고개를 갸웃했다.“왜?”“같이 살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좋기만 한 게 아니니까.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감당할 자신이 아직은 없을지도 몰라요.”지원은 그 말에 진지해졌다.“하연아,너한텐 아직 먼 이야기일 수도 있어.나보다 경험도 적고,이런 관계를 말로 설명하기조차 어렵잖아.”“응..”“하지만 나한텐 네가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가장 오래 옆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야.”하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식사 후, 한강을 따라 걸으며지원이 말했다.“나는 가끔..우리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너한텐 짐이 될까 봐 걱정돼.”“왜요?”“사람들이, 너한테 뭐라 하진 않아?”하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끔 친구들이 물어봐요.‘요즘 누구 만나?’ 같은 거.”“그리고?”“그냥 좋아하는 사람 있다는 정도로 말해요.”지원은 하연의 옆모습을 바라보다손을 천천히 잡았다.“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있는 거야.”하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언니,그런 거 다 감수하고도,나는 언니랑 있는 게 훨씬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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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미래를 그린다는 건 II

다음 날 저녁, 지원은 하연을 데리고집 근처 부동산에 들렀다.“언니, 진짜로.. 집 보러 다니는 거예요?”“우리 둘이 살 집.이왕이면 창문 큰 데로.”부동산 직원은 둘을 연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듯단순히 자매쯤으로 여겼다.그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어딘가 익숙하게 씁쓸했다.“두 분이 함께 지내실 거면, 이 집 구조 괜찮을 거예요.”하연은 집 도면을 바라보다작게 중얼였다.“함께라는 말, 되게 좋네요.”*밤, 돌아오는 길.지원은 문득 물었다.“진짜 괜찮아?”“뭐가요?”“사람들 말, 가족 반응, 미래 불확실한 거..그 모든 걸 다 감수하면서 나랑 같이 사는 거.”하연은 걸음을 멈췄다.“언니.”“응?”“우리 언제부터 당연하게 같이 살 생각했는지기억 안 나요.근데 그만큼.. 나는 이미 마음을 먹었나 봐요.”“무슨 마음?”“이 사람이랑은,어떤 불편도 같이 견뎌보고 싶다.. 그런 마음.”*그날 밤, 둘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로를 바라보다가지원이 말했다.“이게.. 사랑을 미래로 옮기는 과정인가 봐.”“조금 불편하고,조금 불안하지만,그럼에도 계속 가고 싶은 길.”하연이 웃었다.“언니,우린 이미 함께 살고 있는 거예요.마음부터.”사랑은 가벼운 설렘을 지나조금씩 삶이 되고 있었다.현실의 무게를 느끼며그 무게를 함께 감당하겠다는 약속.그것이 바로,사랑을 진짜 미래로 데려가는 일이라는 걸두 사람은 이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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