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신은 오늘도 총무과에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서류 뭉치를 정리했다. 급하게 움직이다 날카로운 종잇날에 손끝이 베여 따가운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손놀림을 서둘렀다. 눈앞에 일거리가 쌓여 있으면 쉬는 법을 모르는 그녀였기에, 얼른 마무리하고 밴드를 붙여야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손끝을 보다 문득, 제 상처 위에 정성껏 밴드를 붙여주던 가계영이 생각났다. 그는 늘 현신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위험한 임무 따위는 하지 말라고, 차라리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권위 있게 내뱉던 남자. 만약 자신이 소년이 아닌 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면, 그 냉철한 남자는 이토록 지독한 다정함을 보였을까, 아니면 단번에 질색하며 밀어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다.Rrrr— Rrrr—.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확인하니 무휼이었다. 현신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쉬나 싶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복도로 나와 인적이 없는 창가로 향하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무휼아,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알바 끝났어?”-어, 퇴근했어.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자고.무휼이 한가하게 수다나 떨 성정이 아님을 알기에 현신은 의아했다. 그녀는 창틀에 살짝 걸터앉아 창문을 조금 열고, 무휼이 본론을 꺼낼 수 있도록 침묵으로 시간을 주었다. 열린 틈으로 습기를 머금은 후텁지근한 더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시원하고 쾌적한 건물 내부와 대조되는 그 눅눅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저기, 있잖아.“그래, 말해.”무휼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현신아, 네가 일하는 회사의 한규련 사장 말이야. 어떤 사람이야?참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무휼은 왜 갑자기 한규련을 언급하는 걸까. H건설 CCTV 보안실 알바를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현신은 얼른 무휼을 채근했다.“우리 사장님은 돈도, 권력도 야욕도 없는 철없는 재벌 3세야. 왜?”-뭔가 이상해서 그
Last Updated : 2026-05-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