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서초동 예술의 전당.‘어머! 세상에···!’설마, 설마 했다. 무대 위 쏟아지는 조명을 받으며 불 켜진 객석을 훑어내리던 주효진의 눈이 일순 커졌다. 이내 그녀의 붉은 입가에 만개한 미소가 번졌다. 이곳에 절대로 있을 리 없는 남자,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될 만큼 비현실적인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빛이 나네, 정말 빛이 나. 신의 축복을 온몸으로 받아낸 남자, 엘에프가 오다니.’지난봄, 짧고 뜨거웠던 원나잇 스탠드를 뒤로하고 독일로 떠나보낼 때 건넸던 VIP 티켓이었다. 사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희의 조각으로 자신을 잊었을 거라 단정했는데, 이토록 오만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니. 효진은 당장이라도 무대 위에서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앙코르곡을 단 한 곡으로 갈음한 그녀는 무대 뒤로 달려가 비서의 어깨를 낚아채듯 신신당부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엘에프를 잡아두라고. 후다닥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가장 관능적인 옷으로 갈아입은 효진이 로비로 나섰을 때, 그가 그곳에 서 있었다.자나 깨나 명화처럼 고운 그의 얼굴을 그리며 밤을 지새웠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사람 맞지? 그림이네, 명화야!’어린 시절, 야생마 같은 거친 매력의 가계영을 보고 첫눈에 반해 평생을 쫓아다녔던 그녀였다. 그런데 정반대의 외모, 국적도 성격도 딴판인 데다 심지어 여자에게 다정하지도 않은 이 나쁜 남자에게 이렇게 미쳐버릴 줄이야. 제 인생은 매번 짝사랑으로 점철된 시시한 연애담뿐이었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정략결혼이라는 새장에 갇히기 전, 자신에게 선사하는 화려한 선물이라 여기면 그만이었다.‘어디 한번, 짝사랑도 폭풍처럼 제대로 즐겨보는 거지 뭐.’멀찍이서 엘에프를 관찰하던 주효진은 사뿐사뿐, 우아한 걸음걸이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 오늘 그의 드레스코드는 치명적일 만큼 완벽했다. 시원한 물 향기가 느껴지는 옅은 여름 투 버튼 슈트. 그 위로 하늘거리는 은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손길 하나하나가 로비의 공기
Last Updated : 2026-04-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