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현신에게 향하는 한규련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누가 알려 줬어?”
찰나의 순간, 옥상의 공기가 급격히 냉각되며 현신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그때, 옆에 있던 강무가 규련의 허벅지를 툭 치며 싱겁게 미소를 지었다.
“규련아, 포털 사이트에 우리 신원 정도는 다 공개되어 있어. 게다가 비서실이나 보안팀 직원들도 다 아는 생일인데 뭘 그리 새삼스럽게 굴어.”
강무의 적절한 조력 덕분에 현신은 간신히 굳어있던 어깨를 풀고 간담을 쓸어내렸다.
규련의 경계심은 대체 어디가 끝인 걸까. 그는 그제야 ‘아하’ 하는 표정으로 장난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네. 내 신상 정보는 이미 탈탈 털리기는 했지. 어디 보자, 우리 귀여운 알바생이 준 선물은 바로 확인하는 게 예의지?”
포장지를 뜯어내던 한규련은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12월 5일 새벽 6시.상하이의 아침이 밝았다.마카오에서 사선을 뚫고 뒤늦게 귀환한 엘에프와 현신이었다.아직 현신은 엘에프의 스위트룸에 딸린 작은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엘에프는 극도의 피로 속에서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헤르만을 맞이했다.“감기 걸려, 엘에프. 머리나 제대로 말리지.”그 말에 엘에프가 피식 콧웃음을 흘렸다.“헤르만, 다정해졌군. 변하기라도 한 건가?”“설마. 네가 더 잘 알잖아, 사람 안 변하는 거. 에스는 어땠어?”엘에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새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자고 있는 현신이 누워 있는 방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나름 쓸모 있었어.”헤르만은 마카오의 그 지독한 습격을 뚫고 멀쩡하게 살아 상하이에 도착해 다행이라 중얼거리며, 거실 소파에 앉아 통 유리창 비오는 풍경을 응시했다.“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일이 이렇게 흘러가다니.”정의를 표방하던 한비단마저 빅토리아와 손을 잡고 전 세계 곳곳에서 악행을 자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폭주를 막아야만 했다. 그 중심에 엘에프가 있었고, 그를 돕는 자들이 바로 가계영과 현신이었다.“이제 켄즈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갔나?”“그래. K 호텔에 한비단 요원이 잠입했지만, 워낙 수단 좋게 포섭해 둔 덕에 홍콩에선 완전히 철수했다고 들었어.”“그 사내도 참 대단하군.”“더 대단한 건 코드명 휼이야. 정보가 아주 정확했어.”현신의 친구인 무휼이 제공한 극비 정보와 정교한 페이크 덕분에, 엘에프는 요즘
가계영은 지금 엘에프의 전술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어쩌면 E 호텔의 습격을 진작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현재 그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면 고스란히 이 난리를 겪었을 터였다.현신과 엘에프가 마카오에서 기습을 당한 것과 현재 홍콩 E 호텔의 습격은 설마 서로 다른 세력의 소행인 걸까. 가계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바로 그때, 보안 요원이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왔다.“한비단 녀석들 중 10명을 현장에서 생포했습니다! 마 실장님이 현재 후방에서 치열하게 교전 중이십니다!”“생포한 자들은 일단 마 실장에게 전권을 맡겨.”“예, 알겠습니다!”정의를 수호한다는 한비단의 요원들이 민간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방화까지 서슴지 않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홍콩으로 입국한 요원만 총 40명이야. 설마 E 호텔 습격도 한비단의 짓인가? 오직 현신을 노리고?’계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인원 비중을 고려했을 때, 나머지 정예 요원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숨을 죽인 채 진짜 표적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결국 모두 현신을 노린 거였군. 일단 전부 진압하는 대로 정보통제실에 연락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출입국 기록 대조하고, 한비단 요원들의 실시간 위치 확보해 둬.”“예!”계영은 당장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일반 투숙객들에게는 단순한 시스템 오작동 및 해프닝으로 보일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안내와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며 상황을 신속히 수습했다.회의실로 돌아온 계영은 노련한 사업가답게 호텔의 대외 이미지를 고려하여, 해당 사건이 언론에 절
계영과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감상에 빠져 있을 여유도 없이 현신은 왕첸을 따라 엘에프와 함께 카지노에서 밖을 향하는 비밀 통로를 달렸다.달리고 또 달리고. 지금 수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었다.분명 지금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오늘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은 어떻게든 엘에프 선배를 지켜야 해!’언젠가 가계영을 다시 만나 이 모든 자초지종을 털어놓을 기회가 생기기만을 바라며, 현신은 이를 악물고 엘에프를 바라보며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에스, 정신 딴 데 팔더니 몸도 느슨해졌어.” “선배는······ 여전하시네요. 헉, 헉······.”뒤를 돌아보니 넘버들마저 기진맥진하여 자세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이 긴박한 와중에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엘에프는 도대체 언제 이토록 몸을 단련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요즘 컨디션이 최악일 텐데도 믿기지 않을 만큼 민첩하고 엄청난 움직임이었다.“켄즈 대표는 네게 정이 떨어져서 곧 한국으로 가버릴 것 같은데?” “······윽! 노코멘트하겠습니다.”가슴에 묵직한 말뚝이 사정없이 박히듯, 엘에프의 무심한 한마디가 현신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아마 켄즈 대표를 돌아가게 만든 원인 중에는 네 그 입의 지분도 꽤 클 걸?” “그렇군요. 이놈의 입이 문제지, 후······ 후······. 선배는 항상 맞는 말씀만 하시네요.” “풉, 그래도 난 네가 싫지 않아. 사랑스러운 에스.”사람 속을 무섭도록 잘 꿰뚫어 보는 엘에프가 때로는 지독하게 얄밉기도 했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엘에프는 앞으로 치고 달리면서도 등 뒤를 힐끔거리더니 이번에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현신의 내면을 정확히 조준해 왔다.거의 차이다시피 도망쳐 나온 처지를 대놓
언제 어느 때이든, 어느 장소에서든 엘에프에게 습격이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상이었다.그는 유럽 전역에 핏빛 공포를 뿌린 거대한 어둠의 수장 중 하나였으며, 빛의 세계에서도 막강한 재력을 무기로 기업의 명운을 쥐고 흔드는 악마 같은 대기업의 총수였다.늘 적이 그림자처럼 따랐고, 그가 지금 획책하는 일 또한 세상을 송두리째 뒤바꿀 대업이었기에 그 목숨을 노리는 불나방들이 사방에 깔린 것이 잔혹한 현실이었다.“선배! 조심하세요!”몸에 기합이 채 들어가기도 전이었으나, 현신은 다급한 대로 옆 테이블의 딜러가 사용하려 둔 카드 묶음을 통째로 낚아챘다.그리고는 카드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엘에프에게 달려드는 자들의 안면을 가로막았다.시야가 가려진 자들이 주춤하는 사이, 적들은 다시금 엘에프만을 집중적으로 겨냥해 쇄도했다.엘에프의 등 뒤를 지키던 넘버들이 일제히 화기를 꺼내 들며 엄호에 나섰고, 현신 역시 주변으로 들이닥치는 거구를 향해 전신을 날려 룰렛 테이블 위로 쳐박아 버렸다.순식간에 카지노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넘버들과 백인 무리들이 뒤엉켜 육탄전을 벌였다.바로 그 찰나, 말쑥한 검정 슈트 차림에 포마드를 정갈하게 바른 카지노 관계자 무리가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더니 침입자들을 신속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엘에프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슬쩍 현신을 바라보며 장난기 어린 윙크를 건넸다.“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이 롤러(High Roller)께서 곤란한 일을 겪으신 모양이군요.”“반갑군.”그 얼굴을 확인한 현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어? 왕첸?’홍콩 조직에 있어야 할 그가 도대
이른 맹추위가 기세를 떨치는 12월의 어느 날, 대한민국은 날씨보다 더 서늘하고 흉흉한 뉴스들로 연일 도배되고 있었다.[경찰청 요새 한복판에서 자행된 현직 경위 피습 사건으로 대한민국 수사 기관 전체가 발칵 뒤집혔습니다······.][대낮의 경찰서 내 칼부림, 원한 관계인가 배후가 있는가? 군 당국과 경찰은 극비 수사에 착수······.][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여렌 경위, 배후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취재진과 기자들로 인해 대형 병원 안팎은 극심한 북새통을 이루었고, 자극적인 구경거리를 바라는 인파까지 몰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김강무의 부친인 김민철이 병원장으로 재직 중인 종합병원 VIP 수술실의 붉은 표시등은 몇 시간째 꺼질 줄을 몰랐다.복도를 가득 채운 동료 경찰들은 비통함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사위는 온통 절망적인 기류로 가득했다.“흐윽, 여렌······ 제발······.”“언니, 정신 차려요. 리선 언니!”목발을 곁에 세워둔 서시온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마리선을 필사적으로 부축하며 달래고 있었다.“흑, 무휼이는······ 무휼은 무사히 빠져나간 게 맞니?”“언니······ 흐윽, 저도 잘 모르겠어요&midd
계영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을 떠 침대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분명 꿈이 아니었건만, 온기가 남아 있어야 할 자리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끝에는 오직 서늘한 한기만이 맴돌았다.‘현신이······ 가버렸군.’그는 가만히 어제의 기억들을 반추했다.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한 기색으로 제게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권하던 모습, 옷을 챙겨 입고 먼저 자겠다며 유난히 다정하게 굴던 행적들.결국 자정이라는 잔인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 품을 빠져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계영의 가슴속이 복잡하게 뒤틀렸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야속하게 피어오르는 감정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찬물로 안면을 씻어내며 거칠게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지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야속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단정하게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거실로 나서던 찰나, 지독한 데자뷔 같은 기시감이 계영의 전신을 엄습했다.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마 실장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대표님, 이것부터 확인하셔야겠습니다.”계영을 더욱 폭발하게 만든 것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현신의 핸드폰과 호텔 메모지에 정갈하게 적힌 메시지였다.계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 메모를 들어 올렸다. 곁에 선 마 실장의 안색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계영 님.잘 주무셨나요?미처 대면으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떠나 죄송합니다. 지난밤은 제 생애 가장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