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는 화면 위를 천천히 떠돌다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멈췄다.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아무 이유 없이— 시선이 아주 미묘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책상 밑.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그런데도, 그걸 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그대로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금 전의 그 자세를,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일을 하나 열었다. 제목을 읽고, 내용을 훑고, 답장을 쓰기 위해 커서를 옮겼다. 익숙한 순서였다. 손은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문장을 완성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런데— 보내고 나서야, 내가 방금 무슨 내용을 썼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화면을 다시 열어봤다. 분명히 내가 쓴 문장이었는데, 어딘가 남의 글처럼 느껴졌다. 손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사이에, 전혀 다른 감각이 끼어들었다.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은 목 언저리. 그런데도, 어제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아주 조금 낮췄다. 누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이유도 없이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그게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왜지.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그 순간— “키리시마 씨.”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자세를,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뒤돌아봤다. 동료가 서 있었다. 별다른 표정은 아니었는데— 시선이 잠깐, 내 얼굴을 스쳤다가 내려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았다. “…아, 네.”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동료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요, 아까 부탁드린 거… 확인해주셨나요?”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Last Updated : 2026-04-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