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카페는 회사에서 몇 분 떨어진, 평범한 곳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마주 보는 자리. 주문은 간단했다. 나는 아메리카노,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같은 걸 골랐다. 커피가 나오기까지, 대화는 없었다.
시선을 둘 곳이 애매했다. 창밖을 보다가, 테이블을 보다가, 결국 다시 그녀를 보게 된다. 아마네 씨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자주 오세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요.” 짧은 대답.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커피가 나왔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컵을 들어 올렸다. “…손해 보고 있죠.” 손이 멈췄다. 그녀는 커피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뭐가요.” 괜히 물었다. “어제 산 거요.” 시선을 피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조금.”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계속 들고 갈 거예요?”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마도요.” 그렇게 답했다. 그녀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 더 손해 보겠네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럼, 팔아야 하나요.” 반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그녀는 이번엔 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짧고 단정적인 부정. “지금 팔면, 제일 손해예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이 됐다. 왜일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입 안에 퍼졌다. “그럼 언제요.”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컵을 손에 들었다가,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알려드릴게요.” 그 말은 너무 가볍게 나왔다. 나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그녀가 처음으로, 아주 조금 웃었다. “대가를 받아야겠죠.”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렸다. “…대가요?” 나는 괜히 되물었다. 그녀는 잠깐 나를 보더니, 시선을 아주 조금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밤에, 시간 비세요?” 그 말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밤에요?" 되물으면서도,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컵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무슨 뜻이에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은 거였는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건조하게 나왔다. “그냥… 시간 있냐는 거죠?” 괜히 덧붙였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질문을 되돌려놓는 느낌이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결국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뭘 원하시는 건데요.”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어렵지 않아요.” 낮은 목소리였다. 설명하려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걸 확인해주는 듯한. “같이 있어 주시면 돼요.”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전부예요?” 말이 조금 늦게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제가 말하는 대로.” 짧게 덧붙였다.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길게 남았다. 나는 시선을 한 번 떨궜다가, 다시 들었다. “그게… 대가예요?” 그녀는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컵을 들어 올렸다.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어 말했다. “손해는 안 보게 해드릴게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상하게— 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는 개뿔, 이건... 그러니까 주식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섹스를 해달라는 거잖아? 물론 그런 건 지금까지 여러 명의 여자들과 연애를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이 해왔지만. 사귀지도 않는 여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살면서 이런 제안을 받을 일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확인하고, 화면을 넘기고, 업무 자료를 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흐름.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자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몇 줄을 읽었는데, 읽은 기억이 없었다.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같이 있어 주시면 돼요.” 나는 괜히 화면을 한 번 더 넘겼다. 그래프가 바뀌고, 숫자가 움직이고— 그런데도, 머릿속은 전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제가 말하는 대로.” 한 번 더, 그 말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업무 화면은 그대로 멈춰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말만—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일은 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키리시마 씨.” 고개를 들었다. 아마네 씨가 서 있었다. “오늘, 늦지 마세요.” 짧게 말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대답할 틈도 없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사람들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 흐름에 섞여, 아무 생각 없이 역으로 향했다. 개찰구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고, 전철을 기다리는 줄에 섰다. 이래도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로 복잡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안 가면 되는 일이었다. 약속한 것도 아니고,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굳이 나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전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나도 그 사이에 섞여 올라탔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동안에도,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평소라면, 이런 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귀찮아질 일이면 안 하고, 이상하면 피하고, 그걸로 끝이었을 텐데. 나는 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인데도— 괜히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한 번 더, 같은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전철에서 내리고, 익숙한 길을 걸어 올라갔다. 언제나 같은 풍경, 같은 골목, 같은 계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몸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걸까. 현관 앞에 섰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려다가— 손이 멈췄다. 바로 옆.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아마네 씨의 집. 문은 닫혀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지, 안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여기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그 문을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에 쥔 열쇠를 한 번 더 쥐었다. 이상하다. 그냥, 문 하나인데. 그때— 철컥. 바로 옆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네였다. 문틈 사이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내가 여기 있을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오셨네요.”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도 아니었다. 그냥, 이미 정해진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열쇠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네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안쪽이 어둡게 보였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는, 거절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잠깐 멈춰 서 있다가, 결국 한 발을 내디뎠다. 문턱을 넘는 순간— 이상하게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마네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발을 벗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구조는 익숙했다. 내 집이랑, 거의 똑같았다. 좁은 현관과 왼쪽에 작은 주방, 안쪽으로 이어지는 거실. 그런데— 전혀 같은 집 같지 않았다. 생활감이 없었다. 신발장은 정리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벽도, 너무 깔끔했다. 장식도 없고, 사진도 없고, 누가 사는 집인지 알 수 있는 흔적이 거의 없었다. 작은 테이블과 소파 하나. 그 외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커튼은 반쯤 닫혀 있었고, 바깥의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조명은 켜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밝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잠깐 서서, 방 안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다. 그게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는, 쓸데없는 생각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 앉으세요.” 아마네 씨가 소파 쪽을 가리켰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앉는 순간, 이상하게 자세를 바로잡게 됐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가까이 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거리를 두지도 않은 위치. 잠깐의 침묵. 시선이 마주쳤다. 먼저 피한 건, 나였다. “…불편하시면, 지금 나가셔도 돼요.” 갑자기 나온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강요는 안 해요.” 짧게 덧붙였다.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 이상하게, 더 움직일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제야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발, 나에게 다가왔다. 발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여기서는…”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하는 대로 해주세요.” 그 말은— 이미 결정된 규칙처럼 들렸다. 잠깐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괜히 손을 모았다가, 풀었다가 했다. 시선을 둘 곳이 애매했다. 바닥을 한 번 보고, 테이블을 보고— 결국 다시 그녀를 보게 된다. 아마네 씨는,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손.” 짧게 말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네?” 되묻자, “올려 주세요.”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하게 말했다. 테이블 위를 가볍게 가리켰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올렸다. 손바닥이 테이블에 닿는 순간, 괜히 숨이 조금 얕아졌다. 아마네 씨가 한 발 더 다가왔다.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녀는 잠깐, 내 손을 내려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끝이, 아주 잠깐 닿았다. 그 순간, 이유도 없이, 몸이 조금 굳었다. “이 정도는, 괜찮죠.” 낮게 말했다. 질문처럼 들렸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손을, 그대로 둔 채로.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계가 더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파일을 열고, 숫자를 정리하고. 전부 익숙한 작업이었는데,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몇 줄을 읽었는지, 방금 뭘 처리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시선이 다시 한 번 시계로 향했다.…아직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늦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괜히 자세를 한 번 고쳐 앉았다. 손이 허벅지 위에 잠깐 올라갔다가, 다시 키보드로 내려왔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 박자 늦게 스스로 인식했다.집중해야 한다. 짧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다른 게 먼저 떠올랐다. 현관. 문. 그리고— 나는 아주 미세하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오늘도.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시선을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키보드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봤다.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그 짧은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의식은 전부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앞으로 밀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멈췄다.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던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한 글자도 더 입력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지금 당장 일어나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마우스를 놓았다.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의자가 아주 작게 뒤로 밀렸다. 나는 그걸 인식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잠깐…”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서 누군가 힐끗 쳐다본 것 같았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몇 시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이 먼저 깨어 있었다. 천장을 한 번 보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대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시간이 된 것처럼.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정리하고, 발을 바닥에 내렸다. 차가운 감각이 잠깐 스쳤다가, 금방 사라졌다. 세면대로 가서 물을 틀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잠깐, 시선이 멈췄다.…이상하지 않았다. 어딘가 바뀐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다른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물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다시 거울을 봤다.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걸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옷을 꺼내 입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채우는 동작이, 생각보다 일정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어디까지 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넥타이를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선택이었다. 굳이 맬 필요도 없었고, 어울리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나는 아무 말 없이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 매는 과정이 어딘가 어색했는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매듭을 정리하고, 옷깃을 한 번 더 다듬었다. 거울 속의 내가, 아까보다 조금 더 정돈되어 보였다. 나는 그걸 한 번 확인하고—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는 묻지 않았다.전철 안은 평소처럼 붐볐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선 채로, 손잡이를 잡고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숨이 완전히 막히는 건 아니었지만— 편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어깨가 부딪히고, 팔이 스치고, 체온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려던 것도 아니고, 누가 연락을 했는지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이 먼저 움직였다. 폴더를 열고, 증권 메뉴를 눌렀다. 작은 화면이 켜졌
나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분명 익숙한 차트였다. 수없이 열어봤던 종목, 수없이 반복해서 봤던 흐름. 그런데—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은 그대로였다. 오르고, 내려가고, 다시 이어지는 선. 예전이라면 그 안에서 나름의 근거를 찾았을 것이다. 타이밍을 재고, 이유를 붙이고, 확신 없는 확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커서가 멈춰 있었다. 마우스를 쥐고 있었는데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지점을 눌러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감이 없는 게 아니라, 내 기준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마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서서,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그런데도— 그 존재감이, 화면보다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나는 아주 잠깐, 시선을 옆으로 돌릴까 고민했다.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 그런데—“…보지 마.”나는 그대로 멈췄다. 고개가 아주 미묘하게 돌아가려던 순간, 그대로 고정됐다.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돌아왔다.“스스로 봐.” 짧게 덧붙였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상하게 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화면은 그대로인데— 의미가 지워진 것처럼.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차트를 봤다. 선이 있었다. 숫자가 있었다.…모르겠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마네는 그걸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깐의 정적. 그리고—“여기.”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화면 한쪽을 가리켰다. 아주 짧은 동작이었다.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 지점을 봤다. 아무 특징도 없는 구간이었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지금이야.” 낮게 말했다.나는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커서를 움직였다. 매수 버튼 위에 올렸다. 멈췄다. 이유는 없었다. 근거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눌러도 되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망설이지 마.”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 들린 채찍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갔다. 도망칠 수 있는 거리였다. 한 발만 물러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아마네는 잠깐 나를 내려다봤다. 무언가를 재는 것처럼.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손에 들린 채찍을 한 번 들어 올렸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들어와.”낮게, 단정적으로 말했다.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한 발을 내디뎠다.문턱을 넘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구조는 어제와 같았다. 좁은 현관, 이어지는 거실, 같은 위치의 소파와 테이블. 그런데도, 같은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조명이 조금 더 어두웠다. 커튼은 완전히 닫혀 있었고, 바깥의 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한쪽 벽에만,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이 바닥을 길게 끌고 가면서, 공간을 더 좁게 만드는 것 같았다.소리도 달랐다. 어제는 조용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아무 소리도 없다는 느낌이었다. 숨을 쉬는 소리조차 신경 쓰일 정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한 번 울리고 나서, 그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나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움직여야 하는지, 그대로 있어야 하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어깨가 내려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어제랑, 다르다.짧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아마네는 문을 닫은 뒤에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시선이,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얼굴, 목, 어깨— 그리고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마치 어디까지 변했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것처럼.“생각보다 빨리 왔네.”낮게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커서는 화면 위를 천천히 떠돌다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멈췄다.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아무 이유 없이— 시선이 아주 미묘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책상 밑.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그런데도, 그걸 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그대로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금 전의 그 자세를,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일을 하나 열었다. 제목을 읽고, 내용을 훑고, 답장을 쓰기 위해 커서를 옮겼다. 익숙한 순서였다. 손은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문장을 완성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런데— 보내고 나서야, 내가 방금 무슨 내용을 썼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화면을 다시 열어봤다. 분명히 내가 쓴 문장이었는데, 어딘가 남의 글처럼 느껴졌다. 손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사이에, 전혀 다른 감각이 끼어들었다.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은 목 언저리. 그런데도, 어제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아주 조금 낮췄다. 누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이유도 없이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그게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왜지.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그 순간— “키리시마 씨.”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자세를,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뒤돌아봤다. 동료가 서 있었다. 별다른 표정은 아니었는데— 시선이 잠깐, 내 얼굴을 스쳤다가 내려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았다. “…아, 네.”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동료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요, 아까 부탁드린 거… 확인해주셨나요?”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이제 도망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채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선은 여전히 맞닿아 있었다. 피해야 할 것 같은데, 피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네의 손이, 어깨를 잡은 채로 조금 더 가까이 당겼다.거리가 더 좁아졌다. 숨이 닿을 것 같은 거리.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셔츠.” 낮은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나는 아무 말 없이, 이미 풀어놓은 단추 사이로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 순간— 시선이, 더 직접적으로 닿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조금 더 얕아졌다.아마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짧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따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무릎이 바닥을 스쳤다. 거리가—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다. 손이 다시 움직였다. 어깨에 닿았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턱 끝에 닿았다. 가볍게 고개를 더 들어 올렸다. 시선이 완전히 맞닿았다. 숨이, 더 이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았다.“이제…”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낮은 목소리가 스쳤다. 그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칠 생각도, 멈출 생각도— 전혀 들지 않은 채로. 그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에, 손이 턱을 잡은 채로 멈췄다. 아주 짧은 정적. 시선이 맞닿은 상태에서, 숨만 가까워졌다.입술이 닿았다. 갑작스러웠지만 놀랄 틈은 없었다.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주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숨이 어중간하게 끊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시선이 맞닿았다. 그 다음—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다가왔다.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숨이 섞였다. 잠깐, 다시 멈췄다. 일부러 끊은 것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