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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Author: 노블다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4 11:47:07

회사에 출근해서도 주식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미뤄둔 채, 나는 아무 의미도 없이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분명 업무용 메일을 읽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어제 봤던 차트가 계속 떠올랐다.

테이블 위에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간단한 업무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파일을 열고, 숫자를 정리한다. 익숙한 작업이었다.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다시 읽고 나서야, 내가 방금 무슨 내용을 처리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던 중, 문득 시야 한쪽에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었다. 별 생각 없이 따라간 시선 끝에는, 어제의 그 신입 사원 아마네 씨가 있었다.

외형은 분명 단정했지만, 어딘가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있었다. 옅은 화장 속에 가려져 있어 멀리서 보면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다. 가까이에서 보면, 피부는 지나치게 창백했고 눈 밑에는 희미하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 특유의 건조한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빛만은 또렷했다. 피로와 각성이 동시에 남아 있는 듯한, 모순된 표정이었다.

머리는 어제처럼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었고, 회색 정장은 몸에 맞게 단정하게 떨어졌다. 구김 하나 없는 셔츠와 가지런히 정돈된 소매 끝까지, 어디 하나 흐트러진 곳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아마네 씨.” 옆자리 직원이 가볍게 그녀를 불렀다.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길다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다고 보기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네.”

한 박자 늦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정확히 상대를 향하기까지 또 한 번의 미묘한 지연이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사람처럼.

“이거 자료, 오전 회의 전에 한 번만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직원이 건넨 서류를 그녀는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뻗기까지, 또 짧은 공백이 있었다. 그 사이에 직원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네.”

이번에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느리지만, 이상할 정도로 일정한 간격. 나는 그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괜히 시선을 떼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었다. 방금까지 손을 멈추고 있던 게 떠올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나서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조차 흐릿해졌다. 커서를 움직이다가 멈췄다. 화면 속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여기저기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나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무리가 나뉘었다. 늘 같이 다니는 사람들끼리, 아무렇지 않게.

“오늘 뭐 먹으러 갈래?”

“근처에 새로 생긴 데 있다던데.”

가벼운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괜히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때였다. 시야 한쪽에,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마네 씨였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네 씨, 식사 안 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잠시 멈춰 있었다. “…괜찮아요.”

짧은 대답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끝이라는 듯, 더 이상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말을 건 사람은 잠깐 서 있다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럼 먼저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 뒤로는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아무 이유 없이 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같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딱히 어울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무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금방 조용해졌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괜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뭔가 하고 있는 척을 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렀다. 아마네 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같은 자세였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뭔가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화면은 켜져 있었지만, 시선은 그 위에 제대로 닿아 있지 않았다. 초점이 어딘가 흐릿하게 어긋나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였다. 그녀의 손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컵을 잡았다.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다시 내려놓는다. 그 동작이, 이상할 정도로 느렸다. 나는 이유도 없이 그걸 끝까지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괜히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아무 의미도 없이 화면을 넘기고,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할 일은 분명 있었지만, 손이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자꾸만 의식이 옆으로 흘렀다.

조용했다. 이상할 정도로.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건 처음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묘하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신경 쓰일 정도로.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조금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있었다. 손목. 소매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일부러 올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밀려 올라간 정도였다. 그 사이로, 희미한 선이 보였다. 한 줄이 아니었다. 겹쳐 있었다. 나는 순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녀는 다시 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시선을 돌렸다. 괜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 속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면 안 되는 걸 본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퇴근 이후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무도 없는 공간이 맞아줬다. 불을 켜지 않은 채, 그대로 신발을 벗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곧장 책상 앞으로 향했다. 익숙한 동선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증권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화면이 뜨기까지의 짧은 시간.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게 길게 느껴졌다. 차트가 나타났다.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이 오르고 내리는 걸 보고 있는데도,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겹쳐진 선들. 손목.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우스를 멈췄다. 잠깐, 숨을 고른다. 다시 화면을 본다. 선이 보인다. 숫자가 보인다. 그래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 선이 떠올랐다. 일정하지도, 정리되어 있지도 않은, 아무렇게나 겹쳐진 선들.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 괜히 차트를 확대했다. 의미는 없었다. 더 자세히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커서를 움직여 매수 버튼 위에 올렸다. 멈췄다. 오늘은 이미 샀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대로 클릭했다. ‘주문 완료’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에 남아 있는 감각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단순히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몸 어딘가가 자극된 것처럼 남아 있었다.

…왜지. 이 정도 금액이다. 잃어도 큰일 날 건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도, 방금 전의 감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괜히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문득, 낮에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잠깐 멈췄다. 왜 이게 같이 떠오르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트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그런데도. 묘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이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웠다.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희미한 빛이 방 안을 어둡게 비추고 있었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깐 눈을 붙이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을 감는 순간 다시 떠오를 것 같았다.

겹쳐진 선들. 나는 결국 눈을 다시 떴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 화면은 아직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였다. 차트를 다시 열었다. 이미 끝난 장인데도. 그걸, 또 보고 있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불을 켜지 않은 채였지만, 컴퓨터 화면에서 새어나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했다. 희미한 파란빛이 책상과 벽을 비추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트는 그대로였다. 이미 멈춰 있는 선. 오늘 하루 동안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변할 일도 없고, 지금 와서 의미를 찾을 이유도 없는 것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계속 보고 있었다.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을 뻗으면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었고, 창을 닫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시선만. 고정된 채로. 그때, 문득.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낮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네 미호. 고개를 들던 순간. 그리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차트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왜 그런 게 떠오르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화면을 봤다. 선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이어진 선. 오르고, 내려가고, 다시 이어지는 선. 그 위에 겹쳐졌다. 끊겨 있는 선. 정리되지 않은 선. 방향도 없이 겹쳐진 선.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화면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마치, 거기서 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끝내, 화면을 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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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매도해줘   제12장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계가 더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파일을 열고, 숫자를 정리하고. 전부 익숙한 작업이었는데,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몇 줄을 읽었는지, 방금 뭘 처리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시선이 다시 한 번 시계로 향했다.…아직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늦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괜히 자세를 한 번 고쳐 앉았다. 손이 허벅지 위에 잠깐 올라갔다가, 다시 키보드로 내려왔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 박자 늦게 스스로 인식했다.집중해야 한다. 짧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다른 게 먼저 떠올랐다. 현관. 문. 그리고— 나는 아주 미세하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오늘도.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시선을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키보드를 한 번 더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봤다.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그 짧은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의식은 전부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앞으로 밀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멈췄다.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던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한 글자도 더 입력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지금 당장 일어나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마우스를 놓았다.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의자가 아주 작게 뒤로 밀렸다. 나는 그걸 인식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잠깐…”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서 누군가 힐끗 쳐다본 것 같았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

  • 날 매도해줘   제11장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몇 시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이 먼저 깨어 있었다. 천장을 한 번 보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대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시간이 된 것처럼.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정리하고, 발을 바닥에 내렸다. 차가운 감각이 잠깐 스쳤다가, 금방 사라졌다. 세면대로 가서 물을 틀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잠깐, 시선이 멈췄다.…이상하지 않았다. 어딘가 바뀐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다른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다. 물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다시 거울을 봤다.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걸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옷을 꺼내 입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채우는 동작이, 생각보다 일정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어디까지 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넥타이를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선택이었다. 굳이 맬 필요도 없었고, 어울리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나는 아무 말 없이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 매는 과정이 어딘가 어색했는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매듭을 정리하고, 옷깃을 한 번 더 다듬었다. 거울 속의 내가, 아까보다 조금 더 정돈되어 보였다. 나는 그걸 한 번 확인하고—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는 묻지 않았다.전철 안은 평소처럼 붐볐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선 채로, 손잡이를 잡고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숨이 완전히 막히는 건 아니었지만— 편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어깨가 부딪히고, 팔이 스치고, 체온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려던 것도 아니고, 누가 연락을 했는지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이 먼저 움직였다. 폴더를 열고, 증권 메뉴를 눌렀다. 작은 화면이 켜졌

  • 날 매도해줘   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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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매도해줘   제8장

    커서는 화면 위를 천천히 떠돌다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멈췄다.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아무 이유 없이— 시선이 아주 미묘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책상 밑.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그런데도, 그걸 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잠깐 그대로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금 전의 그 자세를,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일을 하나 열었다. 제목을 읽고, 내용을 훑고, 답장을 쓰기 위해 커서를 옮겼다. 익숙한 순서였다. 손은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문장을 완성하고, 엔터를 눌렀다. 그런데— 보내고 나서야, 내가 방금 무슨 내용을 썼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화면을 다시 열어봤다. 분명히 내가 쓴 문장이었는데, 어딘가 남의 글처럼 느껴졌다. 손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사이에, 전혀 다른 감각이 끼어들었다.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은 목 언저리. 그런데도, 어제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아주 조금 낮췄다. 누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이유도 없이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그게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왜지.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그 순간— “키리시마 씨.”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자세를,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뒤돌아봤다. 동료가 서 있었다. 별다른 표정은 아니었는데— 시선이 잠깐, 내 얼굴을 스쳤다가 내려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았다. “…아, 네.”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동료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요, 아까 부탁드린 거… 확인해주셨나요?”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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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도망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채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선은 여전히 맞닿아 있었다. 피해야 할 것 같은데, 피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네의 손이, 어깨를 잡은 채로 조금 더 가까이 당겼다.거리가 더 좁아졌다. 숨이 닿을 것 같은 거리.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셔츠.” 낮은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나는 아무 말 없이, 이미 풀어놓은 단추 사이로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 순간— 시선이, 더 직접적으로 닿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조금 더 얕아졌다.아마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짧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따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무릎이 바닥을 스쳤다. 거리가—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다. 손이 다시 움직였다. 어깨에 닿았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턱 끝에 닿았다. 가볍게 고개를 더 들어 올렸다. 시선이 완전히 맞닿았다. 숨이, 더 이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았다.“이제…”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낮은 목소리가 스쳤다. 그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칠 생각도, 멈출 생각도— 전혀 들지 않은 채로. 그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에, 손이 턱을 잡은 채로 멈췄다. 아주 짧은 정적. 시선이 맞닿은 상태에서, 숨만 가까워졌다.입술이 닿았다. 갑작스러웠지만 놀랄 틈은 없었다.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주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숨이 어중간하게 끊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시선이 맞닿았다. 그 다음—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다가왔다.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숨이 섞였다. 잠깐, 다시 멈췄다. 일부러 끊은 것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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