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피안을 거슬러: Bab 91 - Bab 100

100 Bab

제91화

그날 밤, 정왕부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집안 전체가 불안에 휩싸인 듯했다.그와 반면, 유수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안았고, 심지어 유지영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기까지 했다. 다음 날 아침, 홍주는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며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전해 주었다.“정왕 세자께서 입궁해 북명대사께 만나 뵙기를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정왕 전하께서도 태의원 태의들을 모두 불러 진료를 보게 하셨는데, 누구도 숙태비를 구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네요. 소인이 듣기로 숙태비께서는 이미 의식을 잃으셨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문지기가 막지 않았다면 선주 아가씨는 한밤중에 정왕부로 달려갈 뻔했다더군요.”동주가 아침상을 들여오며 덧붙였다.유지영은 기분 좋게 아침을 먹었다.한편 유선주는 유씨 노부인을 찾아가 유지영을 설득해 달라고 매달렸다.“숙태비께서 정말 위독하시대요. 그분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왕부에서는 분명 지영 언니를 원망할 거예요.”유선주는 유지영의 냉정함이 미워 견딜 수 없었다.하지만 유씨 노부인은 지난번 유지영을 압박했다가 태후의 눈 밖에 나 몇 번이나 궁에 불려갔던 일을 잊지 못하기에, 이번에는 유선주가 아무리 애원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숙태비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세자는 손자로서 삼 년 동안 상을 지켜야 해요. 그러면 혼인은 반드시 미뤄질 거예요.”다급해진 유선주는 결국 가장 큰 걱정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칠월이었고 혼례까지는 아직 다섯 달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 숙태비가 버티지 못할까 봐 내심 두려웠다.자칫하면 혼기가 그대로 지나버릴 수도 있었다.유씨 노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선주야, 사람마다 타고난 명이 있는 법이다. 할미도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할머니…….”유선주는 울먹이며 애처로운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속으로는 분이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그때 연월이 밖에서 들어와 말했다.“노부인, 방금 밖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북명대사께서 숙태비를 살리고 싶거든 배 세자께서 성문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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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계약하겠습니다!”대장격으로 보이는 사십 대 사내, 종철민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군주님께서 저희를 거두어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아직도 길거리를 떠돌고 있었을 겁니다. 표국을 다시 세우는 일은 꿈도 못 꿨겠지요. 그곳은 형님의 평생이 담긴 곳이고, 저희에게도 삶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종철민이 먼저 뜻을 밝히자, 망설이던 사람들도 하나둘 계약서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동금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군주님은 좋은 분이시니, 후회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계약서가 있어야 유지영도 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둘러본 뒤, 미리 준비해 둔 은자를 내어 세 달 치 녹봉을 먼저 나누어주었다.“군주님, 저희는 이곳에 온 뒤로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지내기만 했는데 이 은자까지 받을 수는 없습니다.”종철민이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손에 은자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법이다.”그녀의 뜻이 확고하다는 걸 알자, 사람들은 더는 사양하지 못하고 은자를 받아들었다.“걱정하지 말거라. 그대들을 함부로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사람으로 들어온 이상 끝까지 나를 따라야 한다. 배신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유지영은 곧 종철민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을 모산촌으로 보냈다. 그들이 찾아야 할 사람은 운씨 가문의 후예인 운랑이었다. 그는 보물 주인의 후손이자, 그 보물에 관한 자세한 장부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유지영은 배준형과 유선주가 함께 써버린 금은보화를 전부 토해내게 만들 생각이었다.배준형도 회귀자였지만, 전생에 보물이 묻힌 곳을 알아낸 사람은 유지영이었다. 그 정보 역시 태후에게서 들은 것이었다.괜한 시비를 피하려고 그녀는 배준형에게 그저 주인 없는 보물이라고만 말해두었다.그러니 배준형은 운랑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이번 생에 그가 멋대로 보물을 파내 제 사욕을 채운 것은 명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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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배준형은 금운대 정상에 도착했다.북명대사는 약속대로 숙태비를 진료하러 정왕부로 갔다.해가 저물기 전, 숙태비는 겨우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자마자 북명대사가 보이자, 그녀는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대… 대사님,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북명대사는 손을 닦으며 무심하게 답했다.“태비의 손자가 지극한 효심을 보였기에 이번만 예외로 한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숙태비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북명대사가 돌아간 뒤에야 숙태비는 시녀에게서 배준형이 어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큰절을 올리며 금운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숙태비가 안쓰러운 얼굴로 물었다.“준형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정왕비가 눈시울을 붉히며 답했다.“막 쉬러 갔습니다. 무릎이 부어 걷지도 못하고, 이마도 다 까졌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숙태비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모든 게 장녕군주 그 계집이 말썽을 일으킨 탓이다. 그 계집만 아니었어도 준형이가 그런 고생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야!”유지영이 중간에서 일을 틀어놓지만 않았어도 북명대사는 약속대로 진료를 하러 왔을 것이다.“어린 계집이 갈수록 방자해지는군. 고얀 것!”숙태비는 배준형이 유지영과의 혼약을 깬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소주 쪽에서는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느냐?”정왕비가 고개를 저었다.“사람을 보내 잘 감시하거라. 또 무슨 변수가 생겨 궁까지 들어가게 하지 말고.”“걱정 마세요, 어머니.”그렇게 경성은 며칠 동안 조용한 분위기를 이어갔고, 몇일 뒤 국공부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유정남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유씨 노부인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수시로 사람을 보내 그가 어디쯤 왔는지 알아보게 했다.마침내 문밖에서 소란이 일더니, 익숙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유지영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마중을 나갔다.전생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모함을 당한 뒤 정왕부로 해명을 하러 갔지만, 온갖 냉대만 받았었다. 유지영은 그때의 쓸쓸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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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유정남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굳혔다.“서 낭자는 내 부장의 부인이란다. 사 년 전, 그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기 전에 부인과 아들을 내게 부탁했지.”그 말을 들은 서옥혜의 얼굴이 확 변했다.유씨 노부인도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니, 잡고 있던 동이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유지영은 서옥혜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서 낭자는 국공부의 손님이시네요.”손님이라는 말 한마디로 서옥혜의 신분은 분명해졌다.‘이번 생에는 우리 집안과 엮일 생각하지 마.’서옥혜는 어색한 얼굴로 동이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송씨는 유지영을 곱지 않게 흘겨보더니, 곧바로 유정남에게 말했다.“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서 낭자는 부군도 없이 아들을 데리고 아주버님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미 사람들 눈에는 좋게 보이기 어려운 상황인데, 국공부에서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유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송씨의 말을 잘랐다.“아버지는 정직한 분이십니다. 부하의 가족이 걱정되어 서 낭자 모자를 돌봐주셨을 뿐이에요. 게다가 오는 길에도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오셨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유지영이 차분히 되묻자, 송씨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생각은 없는 듯했다.“여인이 네 아버지를 따라 집까지 왔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니?”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옥혜가 서럽게 흐느끼며 유정남을 바라보았다.“국공 나으리, 제가 나으리께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유정남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서 낭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저희 숙모님께서 무슨 일로 화가 나셔서 괜히 낭자까지 의심하신 모양입니다. 저는 낭자를 오늘 처음 뵈었지만, 제 아버지의 인품은 믿습니다.”유지영은 괜찮다는 듯 서옥혜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서옥혜는 당황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 그게 무슨 말이니?”송씨가 눈을 부릅뜨고 유지영을 노려보았다.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지자, 유정남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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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송씨는 연달아 거절당하자 체면이 구겨진 듯 어색하게 답했다.“예,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유지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청운원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네요. 잠시 머무는 거라면 장미원이 더 낫겠어요.”“거긴 객원이지 않니?”송씨가 불만스럽게 말했다.장미원은 외진 곳에 있어 큰댁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유씨 노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송씨를 바라보았다.“손님이 객원에 머물지, 그럼 어디에 머물겠느냐?”계속 큰댁 일에 끼어들려는 송씨의 태도에 유씨 노부인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눈치도 없는 것 같으니라고.’서옥혜는 기대 어린 눈으로 유정남을 바라보았다.그가 나서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유정남은 오히려 흐뭇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이가 다 컸구나. 이제 살림도 꾸릴 줄 알고. 네 말대로 하자.”그 한마디로 서옥혜가 장미원에 머무는 것으로 정해졌다.유지영은 홍주에게 분부했다.“이따가 부관에게 말해서 괜찮은 시녀를 골라 서 낭자 시중을 들게 하거라.”홍주는 곧바로 뜻을 알아들었다.모든 안배를 마친 일행은 대청으로 향했다. 유지영은 유정남의 뒤를 바짝 따라붙는 서옥혜를 보고 입을 열었다.“서 낭자도 먼 길 오느라 피곤하실 테니, 동이를 데리고 객원으로 가서 쉬세요. 아버지는 오랜만에 돌아오셨으니 할머니와 단둘이 나누실 이야기가 많으실 겁니다.”그녀는 앞으로 나서서 서옥혜와 유정남 사이를 자연스럽게 가로막고, 옅게 웃었다.“필요한 게 있으면 시녀를 시켜 저를 찾으세요.”서옥혜는 당황한 눈으로 눈앞의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여쁜 얼굴에는 담담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차갑고 매서웠다.그 순간 서옥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급히 시선을 피했다.오랜 세월 전장을 누빈 유정남보다도 더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대체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지영아…….”서옥혜가 무언가 해명하려 했지만, 유지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서 낭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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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유정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경성으로 올라오는 내내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유지영이 파혼을 당했고, 정혼자가 유선주로 바뀌었으며, 부광 비단 사건에 휘말린 뒤 경성에서 외톨이처럼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그 말을 들은 순간, 그는 당장이라도 경성으로 날아오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딸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스러웠다.“아주버님, 정말 오해세요.”송씨가 서럽다는 듯 눈물을 훔쳤다.“아주버님께서 어린 지영이를 두고 떠나신 뒤로 저는 줄곧 그 아이를 친딸처럼 대해왔어요. 가끔 선주가 잘못을 하면 혼내고 다그친 적은 있어도, 지영이는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 이런 취급을 받으니 저도 너무 억울해요.”송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유선주도 서러운 얼굴로 송씨를 부축하며 유정남에게 말했다.“큰아버지, 밖에서 들리는 소문은 전부 헛소문이에요. 어머니를 오해하신 거예요.”유정남도 아직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은 아니었기에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부광 비단 사건은 아직 조사 중이었고, 송씨가 일부러 그런 짓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하지만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신 뒤,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의 심상치 않은 안색을 보고 전생을 떠올렸다.아버지는 정직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가족 간의 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그래서 집안 여자들 사이의 암투를 알아채지 못해 손해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는 어머니인 유씨 노부인에게도, 동생인 유정혁과 제수인 송씨에게도 경계심이 없었다. 결국 그들의 모함에 당해 평판과 권력을 모두 잃고 말았다.지금 아버지가 송씨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유씨 노부인에게는 여전히 공경심을 가지고 있었다.유지영은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할머니는 제게 참 잘해주셨어요. 할머니께서 지켜주신 덕분에 저는 서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동안 할머니도 아버지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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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그래서 유씨 노부인도 서옥혜 모자를 좋게 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저는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처자라, 이런 일로 손님을 내보내는 것은 난감한 일입니다.”유지영이 곤란한 얼굴로 말하자, 노부인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그건 할미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쓰지 말거라.”유국공부의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유씨 노부인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유정남은 궁중 연회에 참석하러 갔고, 유국공부의 다른 사람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유지영은 침소에서 의서를 읽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임씨 어멈이 안으로 들어왔다.“군주님, 소인이 춘아와 운심을 서 낭자에게 보냈습니다. 국공 나으리의 처소에도 사람을 세워두었고요.”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다가 홍주에게 말했다.“대문 앞에 사람을 보내 지키고 있다가, 아버지께서 동정원으로 들어가시면 바로 돌아와 보고하라 해.”홍주가 나가자, 옆에 있던 동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군주님, 서 낭자라는 사람, 정말 무슨 일을 꾸밀까요?”“아버지만 빤히 바라보던 사람이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지.”유지영은 절대 서옥혜에게 틈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녀는 한 번 기회를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을 사람이었다.그러다가 유지영은 순간, ‘계속 막기만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먼저 손을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봐도 송씨네와는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어, 자신과 아버지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정연은 요즘 일을 잘 배우고 있느냐?”유지영이 물었다.“예. 나이는 어리지만 눈치도 빠르고 똑똑한 아이라, 한 번만 가르쳐도 바로 알아듣습니다.”“그럼 그 아이를 시켜 삼촌네를 잘 살피게 하거라.”“예.”책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다. 그때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홍주가 아직 잠들지 않은 유지영을 보고 곧장 아뢰었다.“군주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국공 나으리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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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유지영은 송씨를 보지도 않고 바로 노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할머니, 제가 어제 춘아와 운심을 서 낭자에게 보내드렸는데, 글쎄 밤중에 춘아가 유수각 문을 두드리지 뭐예요. 의원을 불러야겠다고 하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물어보니 동이가 잠자리가 바뀌어서 자지러지게 운다길래 걱정이 돼서 의원을 부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어요.”말을 마친 유지영은 다시 하품을 했다.“서 낭자도 참 이해하기 어렵네요. 아버지는 술기운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시던데, 그런 분께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요.”그제야 유씨 노부인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네 살이나 된 아이가 그렇게 밤중에 소란을 피웠다고? 어미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지. 하필 국공이 돌아온 때에 맞춰 울었다는 것도 이상하구나.”송씨는 얼른 노부인을 달래려 했지만, 유지영이 비웃듯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이내 이를 악물었다.‘처음부터 어머니께 이 얘기를 꺼내려고 했구나!’“가서 서 낭자를 불러오너라!”이미 서옥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유씨 노부인은 싸늘한 얼굴로 명했다.잠시 후, 불려온 서옥혜가 안으로 들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유씨 노부인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내 자네가 지낼 곳을 따로 마련해 줄 테니, 아이를 데리고 이만 나가게.”서옥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노부인, 저는 경성에 처음 와서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까지 데리고 대체 어디에서 혼자 살라는 말씀이십니까.”송씨가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가 어리면 잠자리가 바뀌어 칭얼댈 수도 있는 일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연약한 여인이 혼자 동이를 돌보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네 아버지도 저 모자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더냐.”그 말을 들은 서옥혜는 노부인이 왜 자신을 내보내려 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유지영을 향해 몸을 숙였다.“군주님, 어제는 제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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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말을 마친 서옥혜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덧붙였다.“노부인께서 이렇게까지 저희 모자를 못마땅해 하시니, 저희가 떠나겠습니다.”그 한마디로 유씨 노부인은 순식간에 속 좁은 노인네가 되어버렸다.결국 노부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쾅 내려치며 소리쳤다.“무엄하다!”분노에 찬 목소리에 서옥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어머니, 진정하세요. 이런 시국에 저 모자를 내쫓으면 사람들이 우리 국공부를 어떻게 보겠어요? 게다가 아주버님께서 이미 두 사람을 보살펴 주겠다고 하셨는데, 중간에 내보내는 건 신의를 저버리는 일 아니겠습니까?”송씨는 노부인의 등을 쓸어주며 말을 이었다.“아마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저택에 왔으니 적응하지 못한 것도 이해해 줘야지요.”그러고는 유지영을 돌아보았다.“지영아, 네가 서 낭자를 오해한 것 같으니 어서 사과드리거라.”그 말을 듣고 유지영은 확신했다.서옥혜는 분명 송씨 쪽 사람이었다.쾅!유씨 노부인이 다시 한번 탁자를 내려치며 분노한 얼굴로 송씨를 노려보았다.“보살피는 것도 방법이 여러 가지다. 꼭 저택 안에 둬야만 보살피는 것이더냐? 송씨,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게냐!”계속 선을 넘는 송씨의 태도에 유씨 노부인의 분노도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도 집안의 안주인이고, 정혁이 곁에도 첩실을 둔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도 저 여자가 무슨 생각인지 정말 몰라서 감싸는 것이냐?”이번에는 유씨 노부인도 송씨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옥혜의 속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집안 사람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을, 송씨는 오히려 계속해서 서옥혜를 저택에 붙잡아두려 하고 있었다.큰댁 일에 간섭하려는 속셈이 뻔했다.송씨는 서러운 듯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오해세요, 어머니. 저도 그저 국공부의 명성을 생각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어제 모자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하루 만에 내쫓으면 사람들이 우리 국공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서옥혜가 담담하게 답했다.“제 처지를 헤아려 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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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송씨는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시어머니까지 유지영의 편을 들고 있으니 더는 반박할 수도 없었다.그렇게 잠시 후 의원이 도착했고, 유정남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홍주가 조용히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그때 병풍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서옥혜가 얼굴을 감싸고 뛰쳐나왔다.그리고 유지영이 예상했던 것처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유정남을 올려다보았다.“국공 나으리, 저는 그저 기댈 곳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런데 군주님께 이런 오해까지 받게 되었으니, 제가 나가겠습니다.”유정남이 그녀를 말리려던 순간, 유씨 노부인이 먼저 눈빛으로 그를 제지했다.“정남아, 지영이가 잘못한 건 없다. 내가 서 낭자 모자에게 따로 머물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는데, 서 낭자가 싫다고 한 것이야.”“어머니…….”“나도 서 낭자의 명성을 생각해서 한 말이다. 과부가 아들을 데리고 남의 집에 얹혀 살면 뒤에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 더구나 서 낭자는 남편을 잃은 지 오래되지도 않았지 않느냐. 너도 나중에 동이가 자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게다.”유씨 노부인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서옥혜를 내보낼 생각이었다.이처럼 속내가 빤히 보이는 여인을 집안에 두었다가는, 다른 처자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역시 오래 산 사람의 눈은 쉽게 속일 수 없었다.전생에는 서옥혜가 동이의 진짜 신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그 바람에 노부인은 동이를 제 손자로 오해했고, 서옥혜가 무슨 짓을 해도 눈감아주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동이가 유정남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노부인이 서옥혜를 감싸줄 이유는 없었다.“경성은 치안도 엄하고, 서 낭자는 우리 국공부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다. 누가 감히 저 모자를 함부로 대하겠느냐?”유씨 노부인이 차근차근 말하자, 유정남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게다가 남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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